21. 아프면서 행복했어 (5)
경주 터미널에 도착해 주변을 구경하지도 못한 채 택시에 올라탔다. 서영이 핸드폰을 꺼내 기사에게 주소를 보여 주는 모습에서 태욱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채기 시작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경주를 콕 집어 가자고 했을 때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녀가 하는 대로 따라 주었다. 그래야만 서영의 마음이 편할 테니, 지금으로선 이게 그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었다.
낮은 건물들을 지나쳐 간 택시가 무덤 근처를 천천히 돌아 빠져나갈 땐 두 사람 모두 바깥 구경에 빠져 있었다.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특히나 태욱의 인생에서 이런 소박하고 충만한 여행은 어릴 적 이후론 처음이었다.
“외할머니가 여기 사셨어요.”
서영의 말에 태욱은 잠깐 그녀를 바라봤다. 어쩌면 그의 추측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서영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남아 있는 장소라면 이번 여행의 행선지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지금 거기 가는 거야?”
태욱이 묻자 서영이 고개를 저으며 흐리게 웃었다.
“동생 사고 나고 바로 돌아가셨어요. 그때 이후론 온 적 없어요.”
서영은 다시 창가 쪽을 바라봤다. 어릴 적 뛰어놀았던 공간이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 같아 신기하기도 했다. 경주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장소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하나도 달라진 게 없을 줄은 몰랐다. 당장이라도 동생이 그녀에게로 달려올 것만 같았다.
“동생…… 생각나겠네.”
태욱은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쓰다듬듯이 매만지며 자연스레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다. 모든 걸 금기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그 일의 진실을 궁금해하면 그가 파헤쳐 알려 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만 그들은 극복하고, 또 나아갈 것이라고. 죄책감 때문에 외면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만 했다.
“그러네요. 안 날 줄 알았는데.”
“너처럼 착했어?”
그가 묻자 서영이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착해요?”
“내 눈엔.”
“맞아. 내 눈에도 당신은 착한 사람이니까.”
졸지에 칭찬을 받고 나니 태욱은 할 말이 없었다. 그가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윤서영뿐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일 테고, 태욱 또한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겠지. 어쩔 수 없이 오글거리는 운명론으로 이야기의 결론이 나고 말았다.
“근데…… 다른 사람한텐 안 착했으면 좋겠어요.”
서영이 사랑 고백하듯 말했다. 태욱은 그 의미를 안다. 그가 손을 뻗어 서영의 뺨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백미러로 뒤쪽을 힐끔 바라보는 택시 기사와 눈이 마주쳤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낡은 한옥의 문을 열자 집보다 넓은 마당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보자 태욱은 문득 예전이 떠올랐다. 이제껏 자신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추억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가 되살아날 것만 같아 차마 눈을 감지 못한 채 잡고 있는 서영의 손을 더욱 움켜쥐었다.
“……계세요?”
서영이 조심스럽게 마당 안으로 들어서며 인기척을 냈다. 집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집 안이 아니라 마당 뒤였다. 호미를 들고 앞마당으로 나온 여인은 두 사람을 보자 눈빛에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누군교?”
억양 센 사투리를 뱉으며 둘을 노려보던 여인이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들고 있던 호미를 떨어뜨렸다. 그녀의 시선은 태욱에게 꽂혀 있었다. 별안간 달려온 여인이 불쑥 태욱의 손을 붙잡았다.
“니 태욱이제? 태욱이 맞제?”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일 모자로 가려져 있던 얼굴을 보는 순간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고, 니가 여기 우에 알고 왔노? 보자, 옆에는 누고? 니 색시가? 그래, 그래. 잘 왔다. 괜찮다, 마. 이래 멀쩡하면 됐지. 뭘 더 바라겠노.”
여인은 태욱을 끌어안으며 등을 쓸어 내 주었다.
“잘 지내셨어요?”
이모님이란 말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어릴 적 잠시 이곳에 내려와 있었던 적 이후로 본 기억이 없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버지를 잃고 서울로 상경해 유신으로 들어간 후 경주에 있는 친정과 모든 인연을 끊었다. 밉고 서운해도 행복하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죄가 없는 태욱이라도 죄송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내야 잘 있지. 못 있을 게 뭐 있노? 정애가 문…… 아고, 아니다. 내 무슨 헛소리를 하노. 잘못 말했다.”
시선을 피하며 웃는 이모의 모습을 보는 순간 태욱은 자신의 추측을 확신했다.
“어머니…… 여기 계세요?”
“……아니, 그게…… 그니까네…… 뭐, 그래. 이까지 왔는데, 숨겨서 뭐 하노. 정애 내랑 같이 산다. 내가 절에 있는 거 알고 몇 날 며칠을 찾아가서 안 빌었나. 피붙이가 없는 것도 아니고, 언니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왜 거기서 그카노. 내 너거 친할배 다시는 입에도 올리기 싫었는데 사람이 진짜 그러는 거 아니라. 도대체 얼마나 해…….”
“……그만해요.”
불쑥 뒤쪽에서 단단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이 뒤를 돌아보자 마당으로 들어오는 정애가 보였다. 절에 다녀온 것인지 그녀의 옷차림이 정갈했다. 그녀는 태욱이 아닌 서영에게 먼저 시선을 맞췄다. 잘 왔다며 웃어 주는 모습을 보자 결국 감정이 울컥하고 말았다.
“왔으면 들어가자. 밥은 먹은 거야?”
정애는 오늘 만나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들을 맞았다. 절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날, 그녀는 서영에게 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말없이 건넸다. 분명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떠난다고 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최후의 보루처럼 힌트를 남겨 준 건 아마 지금을 위해서가 아닐까, 서영은 생각했다. 그녀가 정말 그곳으로 내려간 건지, 간 게 맞는다면 아직까지 그곳에 있는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무작정 경주로 왔다. 그래야만 태욱을 다시 제자리로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을 못 봐가 차린 게 없다, 마. 그래도 마이 묵으소, 아가씨.”
“아, 아니에요. 너무 진수성찬이에요.”
안방으로 들어간 서영은 태욱과 함께 큰 밥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해요.”
그녀가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자 이모 정숙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어쩌면 이렇게 말도 예쁘게 하고 얼굴도 고우냐며 서영의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칭찬을 건네기도 했다. 태욱은 그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건네는 게 어떻겠습니까? 말 잘하는 이사님.’ 눈빛으로 눈치를 줘도 작게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지 정애는 아들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세 사람만의 시간을 주기 위해 정숙이 방을 나선 뒤에도 그녀의 태도는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렇게 눈앞에 나타나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인 걸까. 서영은 정애가 자신의 밥 위에만 생선을 발라 살을 올려 주자 죄송스럽고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사연을 속속들이 알진 못했지만 은림에게 들은 얘기도 있고, 지금 태욱과 정애의 태도를 보니 이 모자가 이제껏 어떻게 살아왔을지 그려지기도 했다.
“저만 주지 마시고, 어머니도 드세요.”
서영은 자신의 밥 위에 있던 생선 살을 정애의 밥 위에 올렸다. 늘 보살님이라 불렀는데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머니란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그녀의 호칭에 정애도 만족한 웃음을 보였다.
“내가 태욱이 엄만 거 알고 많이 놀랐어요?”
정애가 묻자 서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어요. 고모님이랑 가야산에 가려고 했다가 못 갔거든요. 그래서…… 한번 가 보고 싶었어요. 근데…… 보살님을 볼 때마다 자꾸 이 사람 얼굴이 보이더라고요.”
태욱은 서영의 말을 그저 듣고만 있었다. 외적으론 전혀 닮은 구석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모자였다. 태욱은 아버지인 인주를 빼다 박은 듯 닮았기에 정애는 그걸 알아차린 서영이 신기했다.
“분위기 같은 거, 그런 게 닮았다고 느껴졌어요.”
“그만큼 이 녀석 생각을 많이 했다는 거네요.”
정애가 놀리듯 태욱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게…… 그렇게 되나요. 하하.”
“이런 얘기는 나 없을 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결국 민망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태욱이 무뚝뚝한 말을 내뱉었다. 이곳에 오는 내내 다정히 굴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태욱의 태도는 건조했다. 그는 이 자리가 불편한 듯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정애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 걸까. 지금 벌어진 상황을 모르지 않을 테니. 결국 태욱은 담배를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영의 시선이 그에게서 떨어지지 못하는 걸 보며 정애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웃을 뿐이었다.
담뱃갑에 담배가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걸 보고 마을 근처의 작은 구멍가게에 다녀온 태욱은 집 안에서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는 세 여자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자신의 핏줄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여자였나. 둘만의 여행을 떠나자고 내려와 놓고 그에겐 관심이 없었다. 그게 섭섭하기도 했지만 모두 다 태욱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안다.
먼저 다가가 따뜻하게 손이라도 잡아 주는 아들이었다면 달랐을까. 그랬다면 어머니가 부처님이 아니라 그에게 기대어 두 사람 모두 덜 외롭고, 더 행복했을까. 태욱은 아직도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가족은 늘 그에게 아픔일 뿐 버팀목이 아니었다.
결국 태욱은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평상에 앉아 줄담배를 피웠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등장했다. 태욱이 입을 삐죽이자 서영이 그의 옆으로 쪼르르 다가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희미하게 알코올이 섞인 인삼 냄새가 나는 걸 보니 담금주까지 얻어 마신 것 같았다.
“재밌나 보네.”
“그래서 삐진 거예요?”
술이 오른 서영은 평소보다 대범해졌다. 볼을 발그레 물들인 채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눈웃음을 쳤다. 그날도 그랬다. 가져 보고 싶다고. 몇 년을 존재감 없이 멀찍이 앉아 시선만 보내던 여자가 맞는가 싶기도 했다. 술이 이 여자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 같아 태욱은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오늘부터 윤서영은 술 금지야.”
“에?”
“뭐?”
“치……. 알았어요. 그러라고 하면 그래야지. 내가 별수 있나. 원래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래요. 난 아무래도 이번 생에 계속 져야 할 것 같아요.”
서영이 괜스레 평상 아래로 내린 발을 이리저리 흔들며 체념하듯 말했다.
“뭐라고 했어, 방금?”
“뭐가요?”
“중간에 시옷이 들어간 말이 나온 것 같은데?”
능구렁이처럼 묻는 태욱이 얄미워 서영은 모른 척을 했다. 그녀는 흥, 거리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태욱은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담배를 한 갑 더 사 왔어야 했나, 잠시 후회가 들기도 했다.
뒤늦게 방 안으로 들어선 태욱은 후회를 절감했다. 서영은 안방 한쪽에 이불까지 펴고 잠들어 있었다. 술을 과하게 마셨고, 여행의 피로도 느껴졌을 테지만 태욱은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방은 이미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그와 그녀의 잠자리만 놓인 상태였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서영의 얼굴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다 입을 맞추려는데 이불 옆에 놓인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은림의 이름이 떠 있었다. 태욱은 무언가를 직감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나예요.”
― ……너, 강태욱!
“걱정 말아요. 잘 있으…….”
태욱이 말을 맺기도 전에 울음을 터뜨린 은림이 조용히 필성의 부고를 전했다. 태욱은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서영을 한 번 더 내려다본 뒤 옷과 가방을 챙겨 방을 빠져나갔다. 마당으로 나오자 정애가 달을 보며 서 있었다. 그녀는 그의 눈을 보곤 모든 걸 알아차린 것처럼 다가와 손을 붙잡아 주었다.
“저 사람 좀…… 부탁드려요.”
정애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