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모든 게 후회였다 (3)
영희는 흙을 파내고 꽃을 다시 심었다. 벌써 그 행동을 수십 번 반복했다. 손은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흙을 만지면 모든 게 편안해졌다. 꽃을 보면 가슴속에서 응어리진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듯했다.
울고 싶었지만 울지 못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신을 원망하다가 그녀 자신까지 놓아 버릴까 봐 더 악착같이 울음을 삼켰다. 그렇게 살다 보니 지금이 되었다. 저절로 살아진다는 삶을 깨닫기도 했다. 더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게 평온하길. 그렇게 될 줄만 알았다.
“……영이 엄마. 영희야!”
“어?”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몸이 반응하듯 고개가 들렸다. 두 딸을 낳은 순간부터 누구의 어머니로만 불렸다. 어린이집 일을 시작하고선 원장님일 때가 많았다. ‘영희’란 이름은 그때 경찰서에서 걸려 온 전화 이후로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걸 석완이 누구보다 가장 잘 알았다.
“뭘 하는데 넋을 놓고 있어?”
친구들과 등산을 나섰던 석완은 생각보다 일찍 집에 도착했다. 멤버 중 한 사람이 등산로 초입에서 발을 삐끗해 119를 부르는 일이 생겨 버렸기 때문이다. 우르르 병원으로 따라갔다가 환자의 가족이 도착하자 조용히 흩어졌다. 이 나이엔 조심을 해야 한다고 몇 마디 주고받은 게 다였다. 괜히 마누라에게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아 친구 놈이 하는 공방에라도 들렀다 갈까 생각했지만 오늘 아침 이영희 여사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온 길이었다.
“공부방 벌써 끝났어요?”
영희는 호미를 든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등산 간다고 했잖아. 커피 물까지 챙겨 줘 놓고선 왜 그래?”
“아……. 잘 갔다 왔어요?”
마당의 작은 정원에서 내려오며 영희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물었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어린이집에 골치 아픈 문제라도 생긴 걸까. 본인이 하는 일에 푸념을 하는 여자가 아니니 석완은 언제나 그녀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평소와는 좀 달랐다.
“무슨 일 있어?”
현관문을 열어 놓은 채 등산화를 벗으며 석완이 물었다. 영희는 들고 있던 호미를 공구함에 집어넣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일은 무슨 일. 밥은요? 얼른 차릴게.”
일부러 자리를 피하듯 영희는 뒷문을 통해 부엌 쪽으로 들어갔다. 석완은 의문이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그녀의 행동을 주시했다. 돌이켜 생각을 해 보자 영희가 이상해 보인 게 며칠 전 갑자기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고 나간 이후였다. 옷을 차려입은 모습을 보고 오랜만에 친구라도 만나는 줄 알았다. 잘 놀다 오라고 재촉하는 전화나 문자도 하지 않았는데 몇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영희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넋을 놓고 석류나무만 바라보았다.
“이영희 씨.”
석완이 부엌으로 들어가 한 번 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 부르지 마요!”
버럭, 영희가 화를 내며 그를 돌아봤다. 석완은 놀라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눈가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둘째를 보낸 날 이후로 절대 울지 않던 여자였다. 왜 이러는가. 석완은 더는 모른 척을 할 수가 없었다.
“서영 엄마, 왜 이래? 무슨 일이야?”
“…….”
영희는 석완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눈빛이 검게 가라앉더니 끝내 그녀가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멍하니 어느 한 곳을 바라보던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다…… 영이를 위해서야. 그런 거야.”
그날, 그녀를 찾아온 남자가 건넨 돈과 자료들. 그리고 그녀가 찾아온 남자를 향해 토해 냈던 모진 말들이 다시 떠올랐지만 영희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디 사무치는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다 제 살길을 찾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가까스로 잊고 덮어 둔 상처를 다시 들쑤실 수 없었다. 특히나 서영을 아프게 할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그게 그녀의 역할이었다. 영희는 석완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 먹고 영이한테 갑시다.”
“뭐?”
석완은 아내의 행동이 더욱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요. 가서, 우리가 데려와요.”
영희는 다시 음식 준비를 했다. 먹어야 살고, 살아서 지켜야 했다. 그녀의 전부인 딸을 위해서 못 할 것이 없었다. 살이 찢기고 다치는 건 본인이어야 한다. 절대 서영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 ◆ ○
주말 오전부터 아트센터 앞은 촬영 준비로 분주했다. 날리는 벚꽃들 자체로도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 주어 다른 장소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서영의 제안에 아트센터 쪽도 흔쾌히 동의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동선을 체크한 후 한숨을 돌리고 나서야 서영은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지앤지에서도 가현을 비롯해 여러 직원들이 주말을 반납하고 참석해 주었다. 지훈도 당연히 그 뒤를 지키고 서 있었다. 서영이 처음으로 준비한 큰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대표로서 모른 척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서영은 애써 긴장된 마음을 숨기기 위해 다시 한번 빠진 게 없는지 꼼꼼히 체크했다. 그러다 수첩 속에 동그라미가 쳐진 이름을 내려다봤다.
손태욱 이사
태욱은 어제 리조트에서 사라진 이후, 어떤 연락도 없었다. 어차피 곧 오늘의 주인공으로 만날 사람이었지만 어쩐지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핸드폰을 자꾸만 꺼내 확인하게 되었다. ‘잘 부탁한다’는 짧은 문자라도 남길까. 언제나 망설임은 그녀의 몫인 것만 같았다. 이러면서도 그의 행동에 서운함을 느끼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영이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사이, 저 멀리서 손 관장의 비서가 그녀 쪽으로 뛰어오는 게 보였다.
“윤 대리님.”
“……네?”
“아직까지 관장님이 도착을 안 하셔서, 연락도 안 되시고…… 어? 저기!”
비서는 서영의 뒤를 가리켰다. 서영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차가 보였다. 그곳에서 내린 은림이 서영이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로브 위에 대충 겉옷을 걸친 차림에 창백하게 굳어져 있는 얼굴을 보자 이상하게도 서영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서영 씨, 혹시 태욱이 연락 왔어요?”
“……네?”
“아니, 언제 연락하고……. 아니다, 안 했으면 됐어요.”
은림은 정신없는 얼굴로 다시 돌아섰다. 그러다 걸음을 돌려 서영을 바라봤다.
“미안해요. 오늘 인터뷰 촬영은 못 할 것 같아요. 잘 정리해 줘요.”
그녀는 순식간에 다시 차를 타고 떠났다. 서영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곧 유신 홍보 팀 사람들이 급한 일이라도 터진 것처럼 하나둘 핸드폰을 붙잡고 사라졌다.
서영은 우선 현장 정리를 해야 했기에 외주 촬영감독을 만났다. 갑자기 이런 식으로 캔슬을 하면 어쩌느냐며 그녀를 향해 화풀이를 할 때에도 귓속으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태욱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생각의 끝이 거기까지 미치자 서영은 그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뭐야, 이거 진짜예요……?”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돌아선 순간,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확인하던 지앤지 직원들의 표정이 당황으로 굳어졌다. 서영도 급하게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여기저기 채팅방에서 날아온 소식들은 동일했다.
[……유신건설 손필성 회장 뇌출혈로 쓰러져, 당시 함께 있었던 손태욱 이사는 이후 연락 두절된 상태로…….]
서영은 짤막한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사람들이 떠드는 추측은 오해일 것이다. 소문은 언제나 소설을 만드는 법이니까. 잠시 연락이 안 되는 것이겠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창백한 은림의 얼굴이 떠올라 서영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급히 가방을 챙겨 현장을 떠나려는데 누군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지훈이었다.
“서영아.”
“죄송해요. 대표님이 정리 좀 해 주세요.”
“윤서영!”
그의 부름에도 서영은 잡힌 손을 단칼에 떼어 냈다. 지훈이 이제껏 본 적 없는 야멸찬 행동이었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그녀를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윤서영의 마음엔 오직 한 남자뿐이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도 변하지 않았다. 그게 윤서영이란 여자의 사랑이었다.
서영은 택시를 잡아타고 리조트부터 향했다.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초조하게 입술만 깨물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어젯밤 그의 눈빛이 뒤늦게 되살아났다. 붙잡아야 했었다. 어떻게든 모든 걸 쏟아 내 진심을 보이고 같이 방법을 찾자고 약속했어야 했다.
모든 게 후회였다. 지금이라도 그를 만나면 사랑한다는 말부터 꺼낼 것이다. 그 한마디가 뭐라고. 단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마음이었는데. 그것만 원한다는 사람이었는데. 서영이 막막함에 가슴을 쳐 댔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리조트의 방은 텅 비어 있었고, 훈재를 찾아갔지만 그 역시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더 이상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쩌면 이리도 감쪽같이 사라져 버릴 수 있는가. 어제는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쓰다듬던 사람이. 내일 만나자는 말까지 해 놓고선 어찌 하루아침에 세상 끝에 서 있게 만드는지.
서영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집 앞에 도착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고개를 들자 그녀의 방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래, 미행도 하는 사람인데. 그녀의 집 비밀번호 정도는 식은 죽 먹기로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행이었다. 서영은 숨을 쉬지도 않고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열었다.
나란히 놓인 신발 두 켤레가 이리도 가슴을 무너지게 할 줄은 몰랐다.
“……영아.”
석완이 그녀를 보고 달려 나왔다. 그 너머로 그녀의 옷장에서 옷을 꺼내 가방 안에 담고 있는 영희가 보였다. 영희의 눈빛도 이미 평소와 달랐다. 이럴지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야만 한다고. 안 그러면 그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서영은 무릎이 꺾여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 옛날과 뭐가 달라졌나. 아무것도 바뀐 게 없었다. 그 일이 벌어진 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뿐, 상처를 끄집어내 이겨 내려고 한 적은 없었다. 매일 동생의 꿈을 꾸고 용서받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자.”
가방을 챙겨 일어난 영희는 서영의 손을 붙잡았다.
“엄마.”
“그래. 내가 안 된다고 했어.”
핏발이 선 눈으로 눈물을 머금은 채 영희가 서영을 바라봤다.
“네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했다.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했어. 누구 잘못이든 간에 그 사람은 안 되는 거야. 우리 소미가 거기서 어떻게 죽었…… 안 돼. 그러니까, 가자. 영아, 엄마랑 가자.”
어쩌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는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건 서영 자신일지도 몰랐다. 그 밤, 붉게 물든 태욱의 눈가가 심장을 찢는 것만 같았다. 서영은 영희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을 이끌어 내는 순간에도 초점 잃은 눈으로 태욱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