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을 원하는 나에게-62화 (62/75)

19. 이렇게 끝도 없는 걸 (3)

입술 사이로 혀가 파고들었다. 더 깊은 곳으로 침범하며, 그녀를 옭아매듯 몰아붙였다. 일순간 머릿속이 정지하고 숨이 모자랐다. 그를 밀어 내려 했지만 밀리지 않았다. 태욱이 그녀의 몸을 안듯이 소파에 올리고선 숨을 모조리 빼앗아 갔다. 도망치지 못하게 허리를 휘감은 손이 자석처럼 단단히 붙었다.

버둥대는 발끝에서부터 전기가 흐르자 온몸의 세포가 하나씩 일어서는 기분이었다. 몸을 떨리게 하는 진동은 신음으로 변하고 바짝 붙은 아랫배는 저절로 울렸다. 마치 반사 작용 같았다. 끝나지 않길 바라던 애틋한 밤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이렇게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니. 아니, 더 절절하게 가슴이 저릿해지고 저며 오면 어쩌자는 건지.

“그만…….”

울음 같은 신음을 뱉으며 서영이 몸을 늘어뜨렸다. 숨을 고르느라 머리가 처박히듯 그의 가슴에 닿았다. 태욱은 미동조차 없었다. 단단하게 그녀의 몸을 받치고 있을 뿐이었다. 조용한 공간에 서영의 거친 숨소리만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고개 들어.”

태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속엔 화가 묻어 있었다. 그가 그녀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두 눈으로 지켜보라고 했다. 눈을 감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도망치지 않고 마주하면 뭐가 달라지는가. 서영도 그 결과가 궁금해 오기가 생겼다.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들어 태욱을 바라봤다.

그가 만족한다는 듯 웃으며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다시 입술이 맞물리며 2차전이 시작되었다. 다정하면서도 사납던 그의 행동은 여전했다. 서영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저절로 밀려난 몸이 소파에 완전히 자리를 잡아 버렸다. 서영은 그의 아래에 온전히 눕혀진 채 그녀의 전부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거친 키스를 받아 내야만 했다.

화가 나는 그의 마음도 알았다. 이렇게 해서라도 풀어 버리고 싶겠지. 그러라고 겁도 없이 뭐든 하겠다고 했는데, 태욱의 행동을 받아들일 때마다 서영은 자신보다 그가 더 아파 보여 참기가 힘들었다. 결국 못 하겠다고 고개를 돌리려 하자 그의 손이 그녀의 뺨을 단단하게 붙잡았다.

잘 봐. 보란 말이야. 화가 솟구치던 그의 두 눈이 끝내 붉어지고 만다. 서영은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두 팔을 들어 그를 끌어안았다.

거친 숨소리가 서로의 귓가를 채웠다. 안겨 있는 품이 따뜻했다. 이번엔 태욱이 그녀를 밀어 내려 했지만 서영은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를 안은 채 겹쳐 있었다. 결국 태욱이 포기하듯 그녀의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자 왈칵 가슴속에서 울음이 솟구쳤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멋대로.

깜박 잠이 들었다. 그것도 오랜만에 찾아온 단잠이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린 동생이 꿈에 나왔다. 사고 일어나기 전 아침이었다. 엄마는 서영이 운동회에서 먹을 김밥을 싸느라 분주했다.

그녀는 가방 안에 과자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챙겨 넣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동생이 까치집을 지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서영의 곁으로 다가왔다. 고사리 같은 손에 들고 있는 건 동생이 좋아하는 초코 과자였다. 장을 볼 때 떼쓰는 걸 막기 위해 엄마가 쥐여 준 것이었다.

‘언니 먹어.’

‘고마워.’

서영이 감동한 눈으로 과자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방 안에 넣어 둔 과자 하나를 꺼내서 동생에게 건넸다. 동생은 뛸 듯이 좋아했다. 아빠에게로 달려가 자랑하는 목소리가 그녀의 방까지 들렸다. 수없이 그려 봤지만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는 아침 일상이었다. 꿈에서라도 만나길 마음으로 간절히 바랐었는데. 왜 이제야. 이렇게 불쑥.

서영은 억눌렀던 마음을 터뜨리듯 눈을 떴다. 두 눈에 도시의 야경이 담겼다. 여긴 어디지. 깨닫는 순간, 누군가와 밀착된 몸이 더욱더 깊이 포개지고 만다.

익숙하면서도 그리워했던 따듯함이었다. 그녀의 어깨에 태욱의 턱이 걸쳐지고, 목덜미에 입술이 앉는다. 조금씩 감각이 깨어나며 따뜻했던 온기가 열기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언제 이렇게 끌어안고 잠까지 들어 버린 걸까. 키스를 하다 그를 끌어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안겨 있던 품이 포근하고 편안해 스르르 모든 긴장이 풀렸다. 늘 가슴 끝에 매달려 있던 죄책감이란 꼬리표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를 볼 때면 더욱 도드라지던 감정이었는데, 오히려 그를 안으면서 지워 버렸다. 아이러니한 순간이라 서영은 웃음이 났다.

“네가 생각해도 웃기지?”

그녀의 목덜미에서 태욱이 속삭였다. 뒷모습만 보고 있으면서 어떻게 이리도 모든 걸 알아차릴까. 항상 신기할 따름이었다. 서영은 자신의 몸을 움켜쥔 태욱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그녀가 벗어나려 한다 생각했는지 그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안 돼.”

무턱대고 경고하는 말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뭐가요?”

“뭐든.”

“그리워했던 거 보라면서요. 이러면 어떻게 봐…….”

태욱은 얼른 팔을 풀어 서영의 몸을 돌려놓는다. 눈을 마주하자 또 어색함이 감돌고 말았다. 그래도 피하지 않았다. 서영은 태욱의 경고대로 그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잘하고 있어.”

그가 칭찬했다. 서영이 잠시 웃음을 터뜨렸다. 태욱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턱을 끌어와 입을 맞추었다. 다정하게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입맞춤은 곧 다급한 키스로 농밀하게 변해 갔다. 예전처럼 순순히 물러날 인내심이 이젠 그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잠들어 버린 그녀를 어쩔 수 없이 안아 올려 침대에 눕히긴 했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잠든 모습을 내려다봤다. 꿈을 꾸는지 얼굴에 감정이 실려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며 평온한 표정을 지을 때면 이중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 얼굴을 수없이 손안에 담고 어루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함께 잠들어 버렸다. 늘 함께하던 두통이 사라진 순간이라 태욱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감각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듯 곤두서 있었다. 놓칠 수 없다는 집념으로.

미련이라도, 동정이라도 좋다며 붙잡은 남자에게 자존심이란 게 있을까. 태욱은 서영을 자신의 밑에 가두며 더욱 깊게 입술을 빨았다. 달고 진하며 또 그만큼 아팠다. 헤어지고 나서 하는 모든 것들이 그랬다. 욱신거리는 가슴을 서로 모른 척하며 키스에 열중했다. 서영도 더 이상 밀어 낼 자신이 없었다. 핑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 버렸으니.

태욱의 행동의 농도가 깊어졌다. 절정에 다다른 듯 신음을 내뱉는 서영의 목소리가 한 단계 올라섰다. 숨이 차오른 서영이 그의 어깨를 갈급하게 쥐는 순간 태욱은 거침없이 그녀의 블라우스를 붙잡아 올렸다. 침범하듯 살결을 훑는 손길에 몸이 익숙하게 뒤틀렸다. 그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리웠던 몸이고, 밤마다 그를 미치게 만들던 행위였다.

“……이사님.”

“…….”

태욱은 그를 올려다보는 서영을 무시했다. 그녀의 눈빛을 읽고 싶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똑똑히 쳐다보고 느끼라 했지만 정작 그는 그녀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 담긴 동정심을 마주할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분함과 집어삼켜 버리고 싶은 소유욕이 그 자신을 더 깊은 절망으로 몰아붙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보다 더한 끝이 있다면 그곳은 지옥이겠지. 나는 너의 첫 번째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포기하지 못해 이리도 거머리처럼 달라붙으며 집착한다. 지독한 감정들만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서영이 그를 떠나 버린 이후론 늘 그런 순간들의 반복이었다. 버티기 위해선 생각하지 않는 방법밖엔 없었다.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걸 보여 주듯 그는 서영의 아래로 손을 내렸다. 뜯어내듯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벗기고 그의 것도 한꺼번에 벗어 던졌다. 그 짧은 순간에도 떨어지지 못하도록 다리를 눌러 몸을 단단히 붙잡았다.

뜨거운 두 몸이 닿자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오직 서로를 원하는 두 사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태욱은 떨림으로 쏟아지는 그녀의 심장 소리에 흥분이 일었다. 욕망은 거짓이 없었다. 휘발되어 사라지는 달콤한 약속처럼 허무함으로 남지 않았다. 그와 그녀가 함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급하게 서영의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의 고개가 저절로 꺾였다. 전보다 더 마른 몸을 붙잡고 다급하게 입술을 물었다. 깊게 파고들수록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이란 건 이미 경험했다. 그 달콤한 유혹에 이성 따윈 내던져 버린다. 몸이 들썩이며 서로의 달뜬 호흡만 난무할 뿐이었다. 태욱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처럼.

끝을 보고 쉴 틈도 주지 않았다. 서영이 자지러지듯 몸을 비튼 게 수십 번이었다. 마치 서서히 목을 조르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예전과 같으면서도 또 달랐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오직 몸의 반응에만 열중했다. 이것이 그녀를 향한 그의 그리움이라는 것처럼. 서영은 헐떡이면서도 태욱의 행동을 놓칠 수 없어 오롯이 바라보고 읽어 냈다. 그가 내린 벌이니 받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

“…….”

흐느끼면서도 신음은 뱉지 않았다. 서영은 또 그렇게 참아 내고 있었다. 그게 태욱의 가슴을 옥죄자 그는 고삐가 풀린 말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짐승이라도 되어 터뜨려 버리고 싶은 욕망이고, 끝내는 진심이었다. 괴롭히듯 못살게 굴수록 서영은 더 그에게 달라붙었다. 붉게 물든 눈으로 간절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 질식할 것 같은 눈동자를 보면서 안도하기도 했다. 저열하고도 비겁한 만족감이었다.

“그…… 그만.”

“…….”

“제……발.”

애원하는 눈빛에 또 마음이 약해지고 만다. 그가 이것에 아주 쥐약이라는 것을 깨닫고 처절하게 복기했으면서도 또 멍청하게 반복하고 만다. 모두가 그를 나쁜 놈이라고 하는데 한 사람만 아니라고 했다. 그게 그를 녹였고, 따뜻하게 품었다.

“왜 이런 걸 알려 줬어?”

태욱이 다짜고짜 물었다.

“…….”

어느새 그의 눈도 붉어져 있었다.

“이렇게 끝도 없는 걸.”

그게 사랑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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