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최선이라는 것처럼 (2)
“어디가 아프세요?”
약사의 질문에 서영은 말문이 막혔다. 다짜고짜 이곳으로 들어왔지만 머릿속의 회로가 막힌 것만 같았다. 약은 그녀가 먹어야 될 것처럼 가슴이 자꾸만 내려앉듯 먹먹해졌다.
“그냥…… 감기랑, 몸살…… 아, 체했을 때 먹는 것도요. 피로회복제도 있으면 주세요.”
두서없이 쏟아 낸 말에 약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인이 먹을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해한다며 약사는 상비약을 이것저것 챙겨 넣어 주었다.
태욱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확인할 때만 해도 서영의 입가에선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었다. 아침에 급한 일이 있어 통화를 할 수 없다는 그의 문자를 받은 이후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출근을 하고, 오전 업무를 마무리하는 동안에도 서영은 계속 핸드폰만 내려다봤다.
태욱은 공식적으로 외근 상태였다. 얼마나 바쁘기에 전화조차 못 하는 걸까.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곧 그가 밥 먹는 시간조차 아껴 가며 업무를 보는 책임감 강한 팀장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서영은 자신 또한 정신을 차리고 할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반성했다. 그렇게 태욱의 생각을 잊고 일에 빠져 있을 즈음,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퇴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우르르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서영은 핸드폰을 들고 뛰어나가듯 비상구 계단 쪽으로 향했다. 차오르는 숨을 다스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곧장 태욱의 목소리가 들릴 줄 알았는데 아무 말이 없었다. 서영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태욱은 목이 잠긴 듯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나…… 아픈 것 같아.’
심장이 저 아래에 떨어져 내리는 건 당연했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도 묻지 않은 채 서영은 그가 있는 곳만 물었다. 오피스텔이라는 말에 알았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조각이었다. 가방에 핸드폰 넣고 무작정 뛰어나가다 그 오피스텔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지선을 찾았고, 지선은 훈재에게 물어 주소를 알려 주었다.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서영은 회사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퇴근길이라 도로는 막혔고, 그녀의 마음도 막막해졌다. 그녀가 태욱을 지켜본 5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병가를 쓴 적이 없었다.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일만 하던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모두들 그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심각하게 의심하기도 했었다. 서영도 마찬가지였다. 저렇게 무리를 하면 언젠가 크게 아플 텐데. 책상에 서류 더미를 쌓아 둔 채 하루 종일 미간을 찌푸리고 앉아 있는 태욱을 보면서 그녀는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다.
하지만 강태욱은 어느 누구보다 강했고, 끝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 냈으며, 아픈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처럼 살았다. 강한 사람은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서영은 태욱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남자가 아프다는데, 왜 그녀의 목이 자꾸 메는 걸까. 아플 수도 있지. 유난스러운 걱정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그동안 그도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녀 앞에서만큼은 나사를 푼 채 해맑게 웃었고, 심장이 누구보다 쿵쿵쿵 세차게 뛰었으며,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보고 싶다며 바보 같은 말을 읊조리지 않았던가.
서영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았다. 약국에서 약을 챙겨 나온 후 곧장 그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경비가 생각보다 까다로워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까지 쉽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의 집 앞에 섰다.
벨을 눌러 놓고 숨을 골랐다. 왜 이제껏 이곳에 올 생각조차 못 했는지 후회가 들기도 했다. 늘 그가 와 줬고, 그를 기다렸다. 그게 최선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건 일방적일 때 그 효력을 다해 버린다고 했다. 서영은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그를 더 사랑하지 못해 미안해져 버렸다.
철컥.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태욱이 보였다.
“어서 와…….”
창백한 얼굴을 하고도 그가 웃었다. 지금 웃음이 나오는 걸까. 서영은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넥타이도 제대로 풀지 못한 슈트 차림이었다.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기절하듯 잠들었던 걸까. 헝클어진 그의 머리카락을 보자 또 한 번 울컥, 하고 심장이 요동쳤다.
“아프면 병원을…….”
가자는 말을 하기도 전에 서영은 그의 품에 안겼다.
“화내지…… 마.”
그가 그녀를 더욱 꽉 안으며 애원하듯 부탁했다. 안고 있는 몸에서도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서영은 끝내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 그렇게 이유도 모른 채 그에게 사과하듯 끌어안은 태욱의 몸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한참을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서영은 신발조차 벗지 못했지만 그에게서 몸을 뗄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병원에 데려가는 게 이성적이었지만 그러자고 말하면 태욱을 놓아야만 할 것 같아 모른 척하고 만다.
그를 더 꽉 안으려다 손에 쥐고 있던 봉지를 떨어뜨렸다. 요란한 소리에 태욱이 아래를 바라봤다. 몸을 숙여 약 봉투를 집어 든 그가 안에 든 내용물을 보곤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뭘…… 이렇게 많이 샀어?”
“어디가 아픈지 몰라서. 물어본다는 게, 혹시 잘까 봐. 암튼, 열은 나는 것 같으니까 해열제 먹어요. 아, 밥은? 아무것도 안 먹은 거면 뭐라도 먹어야 해요. 빈속에 약 먹으면…….”
다시 약 봉투가 바닥에 떨어지고 태욱이 서영을 안았다.
“내 약, 여기 있잖아.”
태욱이 낯간지러운 말을 꺼냈다. 서영은 어이가 없어 웃어 버렸다. 아무래도 크게 아픈 건 아닌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것에 감사했다. 서영은 다시 태욱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쿵쿵쿵. 여전히 세차게 울렸다.
해열제를 먹자 열은 금방 내렸다. 서영은 자신의 이마와 태욱의 이마에 번갈아 손을 대 보며 온도를 체크했다. 태욱은 그런 서영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웃기만 했다. 그래도 몸이 아픈 건 맞는지 얼른 누우라고 말하자 그는 곧장 침대에 자리를 잡았고, 그녀가 금방 만든 흰죽을 한 그릇 비운 뒤 약을 먹고 잠들었다.
서영은 잠든 태욱의 곁을 지켰다. 그녀가 아플 때 어머니가 해 줬던 것처럼 얼음물에 담근 수건을 가져와 그의 이마를 닦았다. 태욱은 약에 취해 잠들어 있으면서도 꿈을 꾸는지 여러 번 심각하게 표정이 변했다. 누군가 꿈속에서 그를 괴롭히는 것일까. 서영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무턱대고 미웠다.
그가 철인처럼 잠이 없었던 이유를 이제야 할 것 같기도 했다. 그녀도 그날의 꿈을 꾸면 며칠은 침대에 눕지도 못했다. 잠드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었다. 다행히 홀로 납골당을 다녀오고 나면 한동안은 괴로운 꿈을 꾸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태욱을 좋아하고 나서부터는 단 한 번도 악몽을 꾼 적이 없었다. 그걸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서영은 감사한 마음에 그의 이마를 닦고 또 닦아 냈다. 미지근해져 버린 수건을 다시 차가운 물에 적셔 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태욱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만해도 괜찮아.”
그는 언제부턴가 눈을 뜨고 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잠에 취한 눈이 감겼다 다시 떠지기를 반복했다. 서영은 일부러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하던 대로 태욱의 열을 내리기 위해서만 애썼다. 태욱은 평소보다 힘이 빠진 눈빛으로 서영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럼 이제 밥 먹어요. 혹시 모르니까 약 하나 더…….”
기어이 일어선 서영을 침대로 끌어들인 건 태욱이었다.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품에 서영을 꽉 끌어안았다. 태욱의 표정을 볼 수 없는 상태로 몸이 붙잡힌 서영은 포기하듯 그와 손가락을 얽어 손을 잡았다. 열은 내렸으니 이 정도의 휴식은 누려도 될 것 같았다.
“꿈…… 자주 꿔요?”
서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태욱이 작게 ‘응’이라 대답했다. 서영은 안쓰러움을 어쩌지 못하고 그의 커다란 손만 쓸어 낼 뿐이었다.
“나도…… 그랬어요. 근데 팀장님 좋아하고 나서부턴 꿈을 꾸지 않게 됐어요. 되게 신기하죠?”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밝게 말하는 서영이 고마워 태욱의 입가엔 미소가 머금어졌다.
“나도 너 만나고…… 잘 자잖아.”
“근데 왜 아파요?”
“…….”
그가 아픈 게 꼭 서영 자신 때문인 것 같은지 묻는 목소리에 울음기가 묻어났다. 태욱은 서영의 몸을 더 당겨 와 안았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옅은 체취가 막혀 있던 가슴을 뚫어 주며 숨을 크게 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어머니가 절에 들어가셨어.”
태욱은 덤덤하게 상황을 전했다.
“응? 아, 자주 가시네요. 오늘 거기 데려다드린 거예요?”
“이제…… 안 내려오실 거야.”
그의 말에 서영의 움직임이 굳어지듯 멈추었다. 무슨 뜻일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 뭐라 물어야 할지 몰라 서영은 잠깐 동안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른 몸을 돌려 태욱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팀장님.”
“모르겠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어쩌면, 내가 원하는 걸 갖는 것도, 지키는 방법도 모르는 게 아닐까…… 그 생각을 했어.”
서영이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고는 태욱의 뺨을 쓸었다.
“팀장님…… 잘못 아니에요. 그건, 확실해요.”
덮어놓고 그의 편을 들어 주는 서영의 말에 태욱은 웃음이 났다.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위로일지도 몰랐다. 그는 따뜻해진 마음으로 그녀를 안으며 머리를 쓸어 주었다.
“그래. 괜찮을 거야.”
그가 주문처럼 말했다. 무슨 마음일지 그녀가 가장 잘 알았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지금 그를 괴롭히는 중일 테다.
몸을 돌려 태욱을 마주 안고 눈을 감자 그날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운동회가 있던 날이었다. 동생도 같이 가겠다며 떼를 부렸다. 서영은 온전히 부모님을 독차지하고픈 욕심에 못마땅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늘 양보하기만 했었기에 그날따라 감정이 터져 버린 것이다. 결국 어머니가 나서서 해결점을 찾은 게 현장 학습이었다. 그날은 동생이 가야 할 날이 아니었다. 다른 반 아이들 틈에서도 해맑게 웃으며 차에 오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리고 동생은 영영 되돌아오지 못했다.
“윤서영.”
태욱이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울었던 걸까.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서영은 평소처럼 애써 웃으려 했다. 그러자 태욱의 얼굴은 더 심각하게 가라앉았다.
“울어도 돼.”
그의 말에도 서영은 괜찮다며 웃었다. 소중한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는 일. 그것에 관한 거라면 이미 그녀는 모든 걸 터득한 도인이나 다름없었다. 그 어떤 것에도 욕심부리지 않았다. 그저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살았다. 서영이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태욱은 더 이상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기어이 주방으로 들어선 그녀는 그를 위한 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태욱은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 침대에서 내려와 서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책상 위에는 여러 서류들이 뒤엉킨 채 놓여 있었다. 그는 그 속에서 하나를 찾아 들었다.
터널 사고에 대한 진실. 그것을 알아낼 의무가 그에게 있었으나 쉽게 마주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 서류 안에 실무 책임자로서 필체를 남긴 한 사람 때문일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말해 주듯 증거물은 사건이 일어난 이후 다시 조작한 흔적들로 혼란스럽게 덧씌워져 있었다. 그가 추적해 간 실무 자료 속에 남겨진 이름들은 모두 큰아버지인 인국을 가리켰으나 최종 결정자로 남은 이름은 손인주, 태욱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어떤 사건 하나가 그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터널 공사가 진행될 당시 벌어졌던 인사 사고였다. 그 처리 과정이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 회사의 입장도 이해는 되었지만 유가족의 입을 막은 저급한 행동들이 사고 이후의 뒷마무리를 더 찜찜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 모든 걸 책임지고 결정한 사람이 아버지 인주라는 것에 태욱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서류를 내려놓고 사진 한 장을 들어 올렸다. 공사 현장에서 실무자들과 함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활짝 웃는 그는 분명 태욱이 그리워한 사람이 맞았다. 이 선한 웃음 뒤에 도대체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 걸까.
공사 현장의 사고, 아버지의 자살, 그리고 5년 뒤 벌어진 터널 사고까지. 과거에 숨겨진 진실이 서서히 그의 숨을 조르는 것만 같았다. 멈췄던 두통이 또다시 몰려왔다.
그때 서영이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태욱은 조용히 서류들을 정리해 서랍 안에 넣은 뒤 서재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