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을 원하는 나에게-33화 (33/75)

11. 여름이 시작되는 밤 (3)

현관으로 들어선 뒤 신발을 벗기도 전에 태욱이 입맞춤을 퍼부었다. 서영을 거의 안다시피 붙잡고서 집어삼키듯 밀어붙이는 키스는 누군가 심장을 꽉 붙잡고 놓지 않는 것처럼 막막하고 버거웠다. 답답해. 조금만, 천천히. 서영이 그를 밀어 내면 태욱은 몸을 더 밀착시키며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으윽.”

결국이 서영은 태욱의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아픔보단 그녀의 행동이 어이없다는 듯 태욱이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뒷감당할 자신 있느냐고 묻는 듯한 그의 사나운 눈빛에 서영은 쪽, 하고 입을 맞췄다. 태욱은 돌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서영에게선 작은 웃음이 샜다.

“웃지 마. 경고야.”

태욱이 무서운 얼굴을 그려도 서영은 과감히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얼마나 마셨어?”

그가 묻자, 서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술도 안 먹고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

그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자 그녀는 두 팔을 벌려 그를 끌어안았다.

“나…… 행복해요.”

“안아 달라는 게 이런 뜻이었어?”

태욱이 심각하게 묻자 서영은 또 웃음이 터졌다. 그의 품 안으로 더 가까이 파고들었다. 쿵쿵쿵. 그녀의 귓가에 그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어릴 적 그녀의 버릇이었다. 아빠든 엄마든…… 동생이든. 그녀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끌어안고 그 사람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살아 있다. 안도하고 안심했다.

“윤서영.”

그가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서영은 그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고개를 들었다. 태욱의 표정이 굳어지는 게 보였다. 그러곤 그녀를 혼내듯 입을 일자로 다물면서도 다정한 손길로 눈가를 훔쳐 주었다. 언제 울었던 걸까. 주책이었다. 서영은 민망해 웃었다.

“차라리 술 마신 걸로 해요.”

“주사든, 습관이든. 이건 내가 감당을 못 할 것 같은데.”

이번에 그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마음이 어떻든, 우는 건 안 돼.”

“네.”

서영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눈물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잘 울지 않아 부모님을 걱정하게 만들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연애는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들었다. 서영은 그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입꼬리를 올려 웃음을 만들어 냈다.

“내가 분위기 깼죠?”

그녀가 묻자 그가 서영을 풀어 주며 대답했다.

“시작도 안 했는데 무슨 분위기?”

태욱은 서영을 번쩍 안아 들었다.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가 서영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신고 있던 신발을 한 짝씩 벗기고는 현관에 가져다 놓았다. 서두르지 않는 그의 동작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가 겉옷을 벗고 시계를 풀어 식탁 위에 내려놓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아랫배가 조여들었다.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콘돔 박스가 나왔다. 태욱이 서영이 있는 쪽을 바라보자 저절로 숨이 멈췄다.

“담배 사다가. ……앞에 있던 어린놈이 사길래.”

오해 말라는 변명 같아서 서영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후하. 그가 큰 숨을 몰아쉬고 그녀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웃음은 사라지고, 긴장감에 입이 바짝 말랐다. 침대에 자리를 잡고 앉은 그가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겁나면 더 기다려 줄 수 있어.”

그의 말에 서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거짓말이었어.”

웃음이 터지고, 태욱과의 시선이 더 가까워졌다.

“아프면 말하고.”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말해도 안 멈추면 때려.”

네. 서영이 웃으며 대답하자 그가 몸을 내려 입술을 포갰다. 뜨거운 숨이 섞이다 그의 혀가 들어온 순간 농밀한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혀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집요한 키스는 태욱의 성격과도 닮았다.

그가 그녀가 내쉬는 숨까지 모조리 삼켰다. 헐떡이는 몸을 부여잡는 손의 뜨거운 기운만으로도 전부가 녹아 버릴 것 같은 애무는 단숨에 온몸을 달궜다. 귓가를 비비던 손길이 자연스럽게 서영의 블라우스 안으로 들어와 급하게 살결을 훑었다. 이번엔 멈추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 주듯 그가 살덩이를 꽉 움켜잡았다.

“아…… 아파.”

“미안.”

허리가 들린 채 서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태욱은 사과했지만 손을 빼진 못했다. 곧 뜨겁고 큰 손이 보드라운 살결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서영은 발끝이 곱아들고, 온몸에 아득하고 야릇한 기운이 퍼졌다. 저절로 벌어진 입 속에서 작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손길이 더욱 거칠어져 시선을 들어 올리자 눈이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태욱은 욕망이 일렁이는 눈길로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었다. 서영은 그의 손길에 뒤흔들리는 몸이 부끄러워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태욱이 그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낮게 불렀다.

“윤서영.”

“…….”

“나 봐.”

싫다고 고개를 흔들자 그가 입술을 찾았다. 깊게 빨리는 느낌이 더 버거웠다. 어느 쪽이든 감각이 전부 요동치는 건 똑같았다. 어느새 블라우스가 벗겨지고 속옷마저 날아가 버렸다. 얼굴을 아래로 내린 그가 맨살에 입술을 대자 서영은 신음을 삼키며 시트를 움켜잡았다. 그가 입을 놀릴수록 숨이 턱턱 막히고 온몸의 피가 머리끝까지 한꺼번에 몰리는 것만 같았다.

“하읏. ……그만.”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이 기분이 온전히 싫은 것도 아니었다. 태욱의 손이 살결을 스칠 때마다 그라서 다행이었고, 그였기에 겁이 났다. 몸이 달뜬 서영이 반쯤 눈을 감은 채 버거운 신음을 흘리며 태욱을 보자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반쯤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단추를 풀다 만 와이셔츠를 거칠게 벗어 침대 아래로 던졌다.

태욱의 나체가 드러나자 서영은 채널을 잘못 틀어 성인영화라도 본 사람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닿았고 곧이어 작은 한숨 소리도 들려왔다.

“얼굴은 그렇게 쳐다봤으면서…….”

태욱이 서영을 끌어안은 채 속삭였다.

“이거 보여 주려고 뒷산을 그렇게 뛰었는데.”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서영은 태욱의 이런 점이 좋았다. 심각해지다가도 금세 분위기를 가볍게 전환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진지하게 변할 때면 멋대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위험한 남자였지만 빠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서영이 용기 내 그의 상체를 천천히 손으로 훑었다. 그녀의 손이 닿는 순간 단단한 근육들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하……. 사람을 미치게 하지.”

태욱은 두 팔로 침대를 짚으며 자신의 밑에 누워 있는 서영을 내려다봤다.

“우아, 운동 엄청 하셨다아.”

이 와중에 칭찬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여자가 그의 몸을 더듬거리며 만지고 있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작은 손이 느껴지자, 또다시 그의 가슴 안쪽 어딘가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미 단단하게 크기를 키운 살덩이가 요동치듯 움찔거렸다. 살려 달라는 아우성 같기도 했다.

태욱은 바지 주머니에서 콘돔을 꺼내 준비를 마쳤다. 서영을 배려해 급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그의 한계를 벗어난 상황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아래 속옷이 태욱의 손에 끌려 내려가자 서영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눈을 번쩍 뜨고 그를 바라봤다.

“천천히 할게.”

거짓말이었다.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 욕망을 막지 못했다. 당연한 듯 서영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미칠 지경인 건 태욱도 마찬가지였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때문에 허벅지 근육이 빠듯했다.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살려 달라 애원하듯 바라보는 게 그를 더 자극한다는 걸 왜 모를까. 태욱은 피멍 들 각오로 서영을 더 깊게 끌어안았다.

“하아…….”

짧게 끊기는 신음을 내뱉은 서영이 몸을 떨었다. 그때부터였다. 태욱은 그녀에게 더 깊이 파고들며 거칠게 몸을 움직였다. 그로 인해 서영의 몸이 위쪽으로 떠밀렸다. 침대 헤드에 머리라도 박을까 봐 태욱은 그녀의 머리를 감싸 안으려 몸을 숙이며 입을 맞췄다. 서영은 아래로 꺼지고, 위로 날아오르는 것 같은 자신의 몸을 감당하기 어려운 듯 태욱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때려. 할퀴어도 괜찮아.”

입술을 떨어뜨린 태욱이 서영을 내려다보며 지시했다. 자신을 때리라고 명령하는 그가 더 미운지 서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곤 팔로 자신의 눈가를 가렸다. 아무래도 또 울음을 터뜨리려는 것 같았다. 괜히 우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했나. 태욱은 그 말을 했던 게 후회되었다. 서영이 우는 게 싫었지만 이렇게 숨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시로 변하는 감정의 파고를 감당하기 어려운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누군가에게 물어본다고 한들 정답을 알 수 있을까. 태욱은 서영의 팔을 잡아 내리고 그녀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자신의 입술로 훔쳤다.

“간지러……워.”

혀로 눈가를 핥는 것이 더 고문이었다. 서영은 울면서 또 웃어 버렸다.

“빨리……. 빨리, 끝내 줘요…….”

태욱과 결합된 느낌이 낯설어 서영은 그에게 눈을 맞추고 매달리듯 말했다. 이렇게 막막하고 터질 것 같은 감각일 줄은 몰랐다. 누군가 함부로 그녀의 가슴 안에 불을 붙인 후 기름을 쏟아붓고 부채질까지 하는 것만 같았다. 그가 그녀의 안으로 깊이 들어왔을 땐 감당할 수 없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껴야 했다. 모두 다 채우지 못하면 하나도 남지 않을 것만 같은 무서운 불안이, 결국엔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행위였다.

“그러니까…….”

태욱은 움직임을 더 빨리했다.

“함부로 안아 달라는 말…… 하는 거 아니야.”

입술이 짓이기듯 빨렸다. 그의 손길에 몸의 감각이 점차 사라져 갔다. 무아지경이라는 말만 떠올릴 뿐이었다.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 두려워 서영은 태욱의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윤서영.”

그가 탁하게 젖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신음을 참아 내느라 서영은 대답할 수 없었다.

“윤서영.”

화가 난 듯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부른 태욱이 시선을 맞춰 왔다. 울지 마. 그의 눈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미안해. 사과하듯이 태욱이 서영의 뺨을 어루만졌다. 사랑해. 마지막엔 그렇게 말했을까. 아직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 막막하고 끝없이 내려앉는 감정이 무엇인지 둘 다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 태욱도 서영도 서로를 바라보며 헐떡일 뿐,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살을 부비고 느껴야만 하는, 그들만의 여름 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