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려라 메일 (139)화 (139/144)

“크으, 대단하십니다! 손님의 안목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군요. 놀랍습니다! 고르셔도 딱 그것을 고르시다니, 과연 남다르시군요!”

‘아니, 그래서 뭐냐고.’

메일이 가리킨 것은 웬 구슬이었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에 속은 불투명했다. 상인은 쓸데없는 찬사를 그로부터 일 분쯤 더 늘어놓은 후에야 마침내 설명을 꺼냈다.

“이건 마녀의 구슬입니다.”

“마녀?”

소개가 거창했다. 메일은 순간 스쳐 지나가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혹시 일 분 동안 구슬에 대해 지어낸 결과가 저거 아니야?

상인은 일단 겉보기에는 당당했다. 그는 콧수염을 씰룩거리며 물 흐르듯 말을 이었다.

“마녀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사악한 족속이지요. 동시에 요망한 종족이기도 합니다. 마녀들은 마법을 쓰지 않습니다. 대신 주술을 사용하죠. 아주 괴이하고, 신비로운 주술을요.”

메일은 마녀를 만나 본 적이 있었다. 어릴 적 부친이 어린아이의 소양을 길러야 한다며 강제로 읽어주었던 동화책에서 말이다. 그녀가 아는 마녀는 솥에 갖은 식물 친구들을 던져 넣고 개구리 앞다리와 함께 끓여 버리는 잔악무도한 여자였다.

“마녀는 악마의 선택을 받은 여자들입니다. 그래서 악마처럼 주술을 쓸 수 있지만, 그들과 달리 인간인 만큼 매개가 필요하죠. 그 매개가 바로…….”

“이 구슬이다?”

“그렇습니다.”

황제가 끼어들었다. 그의 태도는 상인의 열띤 설명에도 별 감응을 받지 못한 듯 심드렁했다. 책에서나 나올 법한 마녀 이야기가 말이 안 되는 것은 둘째 치고, 애초 생일 선물로 말하는 병아리가 진상되는 마당에 마녀의 구슬이 진짜라고 한들 새삼 신기하게 느껴질 리 없었다. 그건 메일도 비슷했다. 메일은 애초 미신이나 환상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음, 이거 만져 봐도 되죠?”

“물론입니다.”

상인이 손을 삭삭 비볐다. 메일은 흥미가 생겨서가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구슬을 손에 쥐었다. 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말한다.

“얼만가요?”

“3…… 5골드만 주시면 됩니다! 제가 경매에서 고가로 어렵게 낙찰받아 온 물건이지만, 손님께서 가치를 알아보셨으니 특별히 아주 저렴하게 넘겨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그 구슬의 경매 낙찰가가 4골드 95실버…….”

“1실버면 되죠?”

“예?”

“구슬 값, 1실버면 되잖아요. 그렇죠?”

참고로 골드는 금화고 실버는 동이 섞인 은화다. 1골드는 100실버의 가치가 있다. 즉 상인이 부른 5골드와 메일이 입에 올린 1실버는 500배의 차이가 났다. 당연히 상인이 턱이 빠져라 입을 벌렸다.

“무, 무슨 소리십니까? 얼마요? 이, 일 실버?”

“네, 1실버.”

“허…… 지금 저랑 장난하자는 겁니까?”

상인이 금방 표정을 바꿔 눈을 사납게 떴다. 그럴 만한 반응이었다. 그가 아무리 바가지를 씌우려 했어도 구슬의 원가가 1실버보단 비쌀 것이다. 재료값만 따져도 그보단 더 된다. 그러나 메일은 날강도 같은 말을 해놓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메일이 말했다.

“제가 말 같지도 않은 억지로 행패를 부리는 것 같나요?”

“잘 알면……!”

“그럼 치안대를 불러 주세요.”

“뭐, 뭐요?”

“치안대 병사가 보는 앞에서 거래를 한다면 제가 이걸 5골드에 살게요. 그게 아니라면 1실버 이상은 못 드리고요.”

“…….”

“부를까요?”

상인은 우물쭈물했다. 언제 눈을 치떴냐는 듯 표정도 바꾸고 대번에 소심해진 태도를 보였다. ‘치안대’ 한 마디에 퍽 극적인 변화였다. 사실 상황만 따지고 보면 움츠러들어야 할 건 그가 아니라 메일인데도 말이다.

결국 상인은 1실버만 받고 순순히 구슬을 넘겼다. 구슬은 받아 든 메일은 더 이상 상인에게 볼일이 없었다. 멀어지는 가판대에서 얼핏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까지 잠자코 구경만 하던 황제가 물었다.

“왜 그런 거지?”

“왜 구태여 이 구슬을 1실버라는 대폭 할인가를 불러가며 샀냐고요?”

“그래.”

“음…… 일단, 이거 정말 귀한 것 같아요. 육안으로 봐서는 재료가 뭔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아까 힘껏 힘을 줬는데도 금조차 안 갔거든요.”

메일은 지금 황제에게 받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다시 말해 어지간한 광물쯤은 으스러뜨릴 수 있다는 소리다. 성을 나오면서 혹시 몰라 대리석으로 시험해 보기도 했으니 틀림없었다. 구슬의 강도는 유별난 수준이었다.

“마녀 운운한 건 거짓말로 치더라도 꽤 값이 나가는 물건 같은데, 이런 걸 굳이 저런 노점에서 팔 이유가 없잖아요? 한껏 올려 부른 5골드도 사실 구슬의 진짜 값어치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것 같고요.”

“그럼?”

“네, 그래서 장물이 아닌가 싶었어요.”

메일이 담담히 말했다. 그리고 그건 치안대가 언급되자 죄 지은 사람처럼 굴던 상인의 자세로 어느 정도 증명이 되었다. 무엇이든 찔리는 구석이 있다는 말이니까. 정말 훔친 것이라면 장물만 취급하는 가게에 넘기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사실 그런 가게도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상인은 꽤 아무나처럼 보였다.

“참고로 1실버는 마녀 이야기를 지어내느라 고생한 값이에요.”

메일이 씩 웃으며 덧붙였다. 황제가 픽 마주 웃었다. 그는 손을 뻗어 짐을 건네받듯 구슬을 옮겨 받았다. 슬쩍 힘을 줘보자 메일의 말처럼 꽤 단단했다. 하려고만 하면 돌도 박살 낼 수 있는 황제였으나-전적도 있었다-구슬을 깨뜨리는 건 그보다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확실히 평범한 구슬은 아닌 것 같군.”

“그렇죠?”

“그래서, 굳이 장물을 구입한 이유는?”

단순히 귀해 보여서 산 것은 아닐 것이다. 애초 아무리 귀하고 값비싼 것이든 식물이 아닌 이상 메일의 욕심을 자극할 수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메일은 ‘탐이 나서’ 같은 것과는 한참이나 먼 대답을 내놓았다.

“장물이니까!”

“장물이니까?”

“주인이 있을 거 아녜요?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야죠.”

메일의 주장은 지당하고 정의로웠다. 얼핏 듣기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나 황제는 묘한 낌새를 감지했다.

“그럼 치안대에 가져다주면 되겠군. 지금 병사를…….”

“잠깐!”

“흐음?”

“병사가 꿀꺽하면 어쩌죠?”

“꽤 염세적인걸.”

“사실 그건 농담이구요, 직접 찾아주고 싶어요.”

“왜?”

메일은 작게 헛기침을 했다. 여기서부턴 개인적인 욕망이었다.

“궁금해서요.”

“궁금하다고?”

“그 구슬 말이에요, 그냥 장식품인 것 같지는 않잖아요? 재료도 궁금하지만 그보다는 쓰임새가 더 궁금해요. 주인을 만나면 알 수 있을 테니까…….”

메일이 스스럽게 웃었다. 그러니까 감히 괴력 장갑에도 버티는 이 특이한 구슬이 과연 어디에 쓰이는 건지 꼭 봐야겠다는 소리였다. 황제는 메일이 보인 호기심에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런 걸 궁금해하는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한 건 비밀이었다.

“한데 어떻게 찾아줄 거지?”

“그건……! 사실 이제부터 생각해 보려던 참이에요.”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그리하여 때아닌 구슬 주인 찾기가 막을 올렸다. 과연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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