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려라 메일 (138)화 (138/144)

마탑을 혹사시켜 원하는 물품을 얻어 낸 황제는 아침부터 싱글벙글했다. 꼬박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메일은 정오가 조금 지나 찾아온 연인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맞이했다.

“축제요?”

“그래.”

“놀러 가자는 말이죠?”

“물론이지.”

나타난 연인은 사족을 전부 떼고 빠른 본론을 꺼냈다. 축제라는 말에 메일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그녀는 거리에서 열리는 축제를 구경해 본 적이 한 번 있었다.

아카데미 시절 필요할 물품을 사러 직접 광장에 나갔던 적이 있다. 그때가 마침 축제 시즌이었다. 용무가 우선이었으니 오래 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잠깐 둘러본 것만으로도 그때의 인상은 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메일은 살그머니 들떴다.

“재밌을까요?”

“즐길 거리가 다양하긴 할 거야.”

“반도 같이 가는 거죠?”

“그게 아니면 내가 말을 꺼낸 의미가 없지.”

“좋아요.”

설령 축제가 지루하고 재미없더라도 야외 데이트는 그 자체로 의의가 있었다. 메일이 흔쾌히 수락하자 황제가 기다렸다는 듯 준비해 온 것을 건넸다. 뚜껑이 없는 함에 담긴 것은 차례로 목걸이, 귀고리, 장갑이었다.

“어? 이게 뭐예요?”

“우선 목걸이.”

메일이 함을 받아들자 황제가 그 안에서 목걸이를 꺼내 메일의 목에 걸어주었다. 메일은 영문을 몰라 일단 멀뚱멀뚱 해주는 것을 받았다. 목 뒤로 팔을 둘러 걸어주느라 몸이 가깝게 붙었다가 떨어졌다. 가슴이 기분 좋게 설렜다.

“웬 선물 공세?”

“이 정도는 선물도 아니지. 원하면 드래곤 레어를 털어줄 수도 있어.”

“장난치지 말고요, 정말 웬 목걸이예요?”

황제는 씩 웃었다. 이어서 설명한다. 목걸이는 언젠가 텔리야가 달아주었던 브로치처럼 마법이 걸려 있는 물품이었다. 몸의 온도를 유지시켜 주는 목걸이라는 말에 메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른바 ‘남들은 추운데 나는 따뜻해’ 목걸이.”

“이름이 좀…… 아니, 그보다 그런 마법도 있어요?”

“그럼.”

“신기하네. 소소해 보여도 엄청 유용하잖아요.”

“끝이 아니야.”

황제가 이번엔 귀고리를 꺼냈다. 메일은 귀고리를 걸고 나서는 따로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귀고리의 효능은 귀에 거는 순간 나타났다.

“헉, 웬 다른 사람?”

귀고리를 걸자마자 메일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생김새가 변했다. 거울에 비치는 이목구비나 머리색이 미묘하게 평범했다.

“가면이나 가발보다는 이편이 편할 테니까. 즉 ‘옆에 세계 제일의 미녀가 있어도 아무도 몰라’ 귀고리.”

“이것도 이름이…… 아무튼 그건 그래요. 갑갑하지도 않고. 그럼 반도 이 귀고리를 하나요?”

“그래야지.”

“해봐요, 해봐요.”

메일이 괜히 기대가 돼서 재촉했다. 황제는 밥을 먹을 때도 숨을 쉴 때도 얼굴에서 빛을 내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라 평범해진 모습이 어쩐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눈을 반짝거리는 메일을 귀엽다는 듯 쳐다본 황제가 제 몫의 귀고리를 순순히 귀에 걸었다.

“……!”

마냥 신기한 기분으로 메일이 눈을 깜박였다. 마법의 효과는 황제에게도 예외가 아니라, 귀고리를 거는 순간 그 또한 메일처럼 묘하게 평범한 외양으로 변했다. 찬연하던 백금발이 볏짚 같은 황색이 된 것을 가만 보다 메일이 문득 파하하 웃었다.

“왜?”

“안 어울려요.”

“낯선가?”

“낯설기도 하고. 음, 눈동자는 그대로잖아요. 머리색이랑 얼굴은 평범해졌는데 눈이 너무 예뻐서요. 정말 안 어울린다.”

메일은 피식피식 웃었다. 하나하나 따져 보면 이목구비는 참 많이도 변했다. 눈은 작아졌으며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콧대는 어중간하게 낮아졌다. 턱은 뼈가 자란 듯 길어지고 조각처럼 근사하던 인중은 어디서 흔히 보던 모양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좌우 대칭이 완벽한 것은 그대로라 알 수 없는 호감이 느껴지니 평범하면서도 나름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낯설어진 내 남자의 외모에 메일은 배어나는 웃음을 고스란히 흘려보냈다.

“기분 묘하군. 난 원래 태어날 때부터 평범이랑은 거리가 멀던 사람인데.”

“어련하시겠어요.”

“자, 그럼 다음으로.”

황제가 다시 함 안으로 손을 넣었다. 목걸이와 귀고리를 꺼냈으니 함에는 이제 장갑만이 남았다. 씌워 주는 대로 얌전히 장갑을 손에 쓴 메일은 이내 어리둥절한 얼굴로 손을 앞뒤로 뒤집었다. 귀고리와 달리 이번엔 눈에 보이는 신체의 변화는 없었다.

“이건 설명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안 쓰는 물건 있나?”

“네?”

“뭐든.”

“글쎄요? 음, 잠깐만요.”

안 쓰는 물건이라 하니 마침 버리려던 것이 거처 안에 있기는 있었다. 메일이 칠이 벗겨진 작은 상자를 들고 나오자 황제가 재차 입을 열었다.

“힘을 줘 보겠나? 부술 수 있을 거야.”

“응? 네? 이걸요?”

“해봐.”

허무맹랑한 소리였지만 표정을 보니 장난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메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종이 상자도 아니고 이걸 어떻게 부숴. 어쨌든 해보라니까 해본다. 메일이 속는 셈치고 손에 힘을 주었다. 그때였다.

와지직.

“헉!”

“어때?”

“뭐야! 내가 부순 거예요? 정말?”

“정확히는 장갑의 힘이지.”

“……아하.”

이해했다. 메일은 처참한 몰골이 된 상자를 한쪽으로 치우고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목걸이도 귀고리도 신기했지만 장갑도 만만치 않았다. 난데없는 괴력을 안겨 주는 장갑이라니.

“이건 뭐라고 불러요?”

“‘치한은 살 가치가 없지’ 장갑.”

“……사람 패라고 준 거예요?”

“그럴 만한 놈을 만나면.”

“죽을 것 같은데요?”

“괜찮아, 살살 때리면 절반만 죽으니까.”

말인지 말 바퀸지 모르겠다. 그래도 메일은 굳이 장갑을 사양하지는 않았다. 과거의 경험으로 세상에는 주먹으로 응징해 주어야 하는 인간이 꽤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식이 안 통할 때는 사실 주먹만 한 것이 없었다.

목걸이에 귀고리, 장갑까지. 삼 종 세트를 몸에 지닌 메일이 재차 슬쩍 거울을 보았다. 낯선 외모의 여인이 거울 속에서 제 행동을 따라했다. 목걸이와 귀고리가 반짝였다.

“있잖아요, 반.”

“이야기해.”

“저 뭔가 전투력이 높아진 것 같아요.”

그런 기분이었다. 실제로 장갑의 효능을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황제는 픽 웃은 뒤 메일의 허리를 끌어당겨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순간 깜짝 놀라 황제의 어깨를 때릴 뻔했던 메일이 장갑의 존재를 의식하고 겨우 멈췄다.

“갑자기 뭐 하는 거예요?”

“전투력이 높아진 그대가 사랑스러워서.”

“나, 나 참. 하마터면 높아진 전투력으로 반을 때릴 뻔했거든요?”

“때려도 난 안 죽어.”

“그래도 상자를 부수는 괴력으로 때리고 싶지는 않다고요.”

“좋아. 그럼 이번엔 예고하고 하지. 그러니 때리지 마?”

그렇게 말한 황제가 도로 메일을 끌어당겼다. 한 팔은 메일의 허리를 감고, 다른 손으로는 메일의 손목을 휘어잡아 제 목에 걸쳤다. 그러고는 속삭인다.

“키스할 거야.”

대답을 하려고 입술을 벌렸으나 메일은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상대가 그새를 기다려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은커녕 내뱉던 숨까지 빼앗긴 메일은 곧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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