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려라 메일 (135)화 (135/144)

입술이 닿았다. 말캉한 감촉이 선연하게 전해졌다. 그러고서 반테르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기다렸다. 마치 밀어내고 싶으면 지금이라고 알려주듯.

그러나 리엘라는 밀어내지 않았다. 표정을 찡그리거나 피하듯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다만 눈을 감아 긴 속눈썹으로 눈 아래 그림자를 만들었을 뿐이다.

알고 그런 건지, 모르고 그러는 건지. 그건 모종의 허락 같았다. 이내 반테르는 턱 끝에서 손을 떼고 리엘라의 뒷머리를 손으로 받쳤다. 매끄러운 금발이 손가락 사이에 부드럽게 감겼다.

입술이 더욱 진하게 맞물렸다. 고개를 옆으로 젖히고 맞닿는 면적을 늘렸다. 곧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입술 사이를 벌려 안으로 침범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침입이라기보다는 꼭 초대받은 손님이 방문하듯 굴었다.

이어 열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제 체온을 전해 주고, 또 상대의 체온을 빼앗아 왔다.

달았다.

미각을 괴롭히는 단맛이 아니라 정신을 아릿하게 만드는 감미였다. 마음이 달떠 심장이 멋대로 요란하게 두근거렸다.

눈을 감고 입맞춤에 집중하는 반테르의 속눈썹 끝이 잘게 떨렸다. 입술을 통한 열기가 머리까지 전해진 듯 어지러웠다. 사춘기 소년 때도 느껴본 적이 없는 깊은 갈증이 그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하아.”

입맞춤은 길지 않았다. 곧 반테르가 입술을 떼고 간격을 벌렸다. 요령을 알 리 없는 리엘라가 숨찬 기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

뒷머리에서 천천히 손을 거둔 반테르가 감은 눈을 뜨고 리엘라를 응시했다. 맞대고 체온을 나눈 시간이 얼마나 되었다고, 입술에 닿는 찬바람이 낯설었다.

리엘라는 그보다 조금 느리게 눈을 떴다. 그러고 나서는 손을 들어 제 입술을 가만 매만졌다. 반테르는 이때 숨을 죽였다. 긴장으로 저절로 몸이 굳었다. 극형이냐 무죄냐, 극단적인 판결을 앞둔 죄인의 심정이 문득 이런 것일까 싶었다.

그렇게 자기 입술을 매만진 리엘라가 곧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신기하다는 듯 말한다.

“반테르.”

“……예, 공주님.”

“진짜가 됐어.”

“예?”

“반테르가 진짜 운명의 상대가 됐어.”

“그게 무슨…….”

그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반테르는 말을 멈췄다. 꽤 선명한 기억이었다. 리엘라를 처음 만난 날, 마법이 걸린 검집을 만지고는 운명의 전기가 통했다 철석같이 믿던 그녀에게 메일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 공주님도 이미 알고 계시죠? 진짜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전기만 통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걸.’

‘응? 그럼?’

있다 보면 갑자기 가슴이 쾅쾅 뛰고, 숨이 턱 막히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는 거. 그런데 그런 느낌이 기다려도 계속 찾아오지 않는다면 뭘까요? 전기는 통했는데 느낌이 안 온다면?’

‘……실수?’

‘바로 그거예요. 그러면 운명의 신이 실수를 한 거죠!’

제 운명의 상대가 반테르라 생각하고 낙담해 있던 리엘라를 달래기 위한 임기응변이었다. 메일은 시간이 지나도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그건 신이 실수해서 운명의 상대를 잘못 지정해 준 거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리엘라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래서 반테르가 이후 ‘가짜’ 운명의 상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진짜가 됐다고 말한다.

진짜 운명의 상대가 되었다고.

“공주님, 그 말은…….”

“가슴이 엄청 두근거려.”

“…….”

“얼굴도 빨개지고. 보이지는 않지만 빨개졌을 거야. 그렇지?”

리엘라의 얼굴 또한 석양에 물들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어슴푸레 홍조가 보였다. 반테르는 제가 들은 것, 그리고 제 눈에 보이는 것을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도로 떠올려 되새기고 눈을 깜박이거나 비비기도 했다.

몇 번을 반복해도 잘못 들은 것도, 잘못 본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꿈도 아니다.

“……!”

리엘라보다 반테르의 얼굴이 훨씬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손등으로 급히 제 얼굴을 가렸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당황스러울 만큼 시끄러웠다. 터질 것 같았다.

그리 허둥지둥하는 반테르를 보며 해사하게 웃은 리엘라가 쐐기를 박았다.

“반테르.”

“…….”

“좋아해.”

“……!”

“우리 이제 서로 좋아하네. 그치?”

반테르는 기어이 벌떡 일어섰다. 일어서서 난간이나 테이블 대용으로 제 키만 한 나무를 찾았다. 그러곤 나무에 쾅쾅 자기 이마를 찧었다. 메일이 봤으면 기겁했을 행위를 마치고 자리로 귀환한 그는 이마가 벌게진 채로 심호흡을 했다. 그리 숨을 고르곤 말한다.

“공주님.”

“응?”

“키스…… 한 번 더 하게 해주세요.”

이어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리엘라는 보기보다 적극적이라 말로 대답하는 대신 반테르의 옷깃을 잡고 끌어당겼다.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가 점차 어두워졌다. 마치 자리를 피해 주듯, 그날의 해는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서산 너머로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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