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부터도 믿기지 않는데 당연했다. 메일은 손을 들어 얼굴을 더듬었다. 눈물이 손끝을 적셨다. 입을 열자 허탈한 숨이 새어 나왔다.
전부 꿈이 아니었다.
꿈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되돌아왔을 뿐이다.
“말도 안 돼…….”
들어본 적도 없었다. 시간을 역행한다니. 그런 건 어느 고서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물음은 이제 와 아무 소용이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이었고, 대상 없는 질문을 끝없이 쏟아내 봤자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악몽을 꾸고 나면 늘 깨질 듯 아프던 머리가 이제는 멀쩡했다. 그간의 두통은 잊은 것을 기억해 내려는 과정에서 따라붙은 통증이었던 걸까.
메일은 양손을 들어 얼굴을 남김없이 감쌌다.
모르는 것이 나았다.
기억해 내지 못하는 편이 나았다.
아니, 알게 될 거라면 차라리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
“이게 뭐야…….”
마지막 순간이 생생했다. 정지된 장면 같던 그 순간. 극적으로 원수를 마주한 메일은 모든 원망을 그에게 쏟으며 눈을 감았다. 입 밖으로 흘리지 못한 유언은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반드시 겪은 것을 되갚아주겠다는 맹세였다.
그래, 황제는 그녀의 원수였다. 구원이 아니라 복수해야 할 대상이었다. 너무 늦게 기억해 낸.
‘이딴 거, 그냥 평생 떠오르지 말 것이지…….’
지나치게 늦게 알았다. 메일은 이제 와 황제를 원수로서 대할 수는 없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 진실을 파헤친 그녀는 이미 황제를 이해했다. 그의 뜻이 아니었다는걸.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동시에 사랑했다. 증오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순간 원대할 대상이 있다면 차라리 신이었다. 메일은 신이 미웠다. 원망스러웠다. 어쩌자고 제게 이제서 기억을 되돌려 주나. 이미 이해하고, 사랑하고, 어떻게 미워하고 싫어할 수도 없는데 왜 지금 와서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려주나.
입을 앙다물었는데도 손 틈으로 흐느낌이 샜다. 메일을 괴롭히는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죄책감.
그게 마음을 내리눌렀다.
메일은 황제를 용서했다. 사실 왕국을 짓밟은 것은 현재의 그가 아니었으니 그가 용서받고 말 것이 없기는 하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는 상대를 용서했고, 벗어난 비극을 없던 것으로 치부하여 지금의 그를 여전히 사랑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유모는?
아버지는?
아버지는 제국군에 맞서다 효수되었다. 유모는 저를 구하려다 죽었다. 그들도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포용하고 이해하여 제가 황제를 사랑하는 것을 용납해 줄 수 있을까.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였다. 메일은 날이 밝아올 때까지 그리 꼼짝하지 않고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