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공작의 꾐에 넘어가 후작은 무대를 구상하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가 빈 황후의 자리를 들먹이며 황후 간택전을 열자고 주장한 것은 전부 무대에 세울 배우이자 희생양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과거 베일디온 공녀는 질투심으로 소피아를 죽였다. 그때의 상황을 재연하기에 간택전의 후보란 꽤나 적합한 대상이었다. 누명을 씌우기에도 제국인보다는 적당히 힘없는 왕국의 사람이 편했다.
간택전을 열고, 한동안 추이를 지켜보다 후보가 나름 추려졌을 때쯤 이젤린을 노출시킨다. 그리고 최종 희생양을 결정하여 그녀와 이젤린이 교류를 갖도록 만든 다음 이젤린을 황제의 눈앞에서 죽이는 것이 후작의-정확히는 공작의 머릿속에서 나온-계획이었다.
희생양은 만들어진 정황과 증거로 인해 변명의 여지없이 이젤린을 독살한 범인이 될 것이다. 어떤 독을 사용해야 하는지는 공작이 알려주었다.
이후 베일디온 공작은 가만히 기다렸다. 후작이 실패했다는 말이 들리면 바로 손을 털고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혹시 모르니 한동안 누이의 거처를 옮겨둘 준비도 마쳤다.
결과적으로 그럴 필요는 없었다. 후작은 실패하지 않았으니까.
찻잔에서 손을 뗀 공작이 재차 계획의 성공을 곱씹었다. 저절로 미소가 덧그려졌다.
“누이에게 전해. 이제 잠을 설칠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이야. 악몽을 꿀 까닭도 사라졌군.”
“전달하겠습니다.”
“후작에게서 다른 연락은 없었나?”
“도움을 받은 값을 하겠다는 연통이 있었습니다.”
“마침 잘됐군. 기회를 봐서 성내 북쪽의 첨탑을 열고 그 안에 있는 걸 모조리 지우라고 답장해. 불을 질러도 좋겠지. 어차피 황제는 지금 탑에 신경을 쓸 만한 상태가 아닐 테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당연하지만 말을 전할 때 내 존재는 드러나지 않도록 하게. 멍청한 후작이 그랬다고 해서 나까지 흔적을 남길 필요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명령을 하달한 뒤 목을 축이고 나자 잔이 비었다. 베일디온 공작은 몸을 일으켰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기분 탓인지 몸까지 한결 가뿐했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심복이 일어서서 양산을 챙겼다.
“탑을 지우고 나면 구태여 사용인을 갈아치울 필요도 없어지겠군. 누이가 기뻐하겠어.”
생일 선물을 이르게 안겨준 셈 칠까. 덧붙이며 공작이 하하 웃었다. 약간 삐뚠 치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웃음은 얼핏 보기에도 후련한 심경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그의 심복도 이 순간 눈치채지 못했다. 심어둔 연락책을 통해 얻어낸 정보가 어딘지 평소보다 묘하게 정교하고 정돈이 잘되어있었다는 사실을. 베일디온 공작은 그저 낙관으로 차서 웃으며 후원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