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려라 메일 (84)화 (84/144)

리엘라는 반테르를 만났을 때 통했던 전기-마법이지만-를 이젠 완전히 신의 실수라고 인식한 것 같았다. 메일은 들은 단어를 머리로 인지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네? 그 사람이요?”

메일이 놀란 표정 그대로 로즈를 돌아보았다. 로즈가 고개를 끄덕여 확인을 도왔다.

“맞습니다. 반테르 폰 모하임 공자님.”

“정말로 모하임 경이 길 안내를? 어쩌다가요?”

“내가 찾아갔거든.”

“……네? 왜요?”

“네가 자고 있었잖아.”

메일은 이 순간 갈피를 잃었다. 뭐에 더 큰 충격을 받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주님이 무려 잠든 저를 배려했다는-리엘라는 본래 필요하면 새벽에도 아무렇지 않게 남을 깨우는 사람이었다-것?

아니면 본의 아니게 눈을 뗀 사이 반테르를 찾아가 굉장한 민폐를 끼쳤다는 것? 아님 그날 정원에 반테르가 함께 있었으니 그를 통하면 길을 알 수 있을 거라는 논리적인 추론을 해냈다는 것?

충격 포인트가 너무 많았다. 메일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현기증이…….”

“감기야?”

리엘라는 몇 달 전쯤 감기를 크게 앓고 난 뒤 상대가 조금만 몸이 안 좋은 티를 내면 무조건 감기냐고 묻곤 했다. 메일은 침대 기둥을 짚고 바로 섰다.

“아니에요. 다음부턴 공주님, 그냥 저를 깨워 주세요.”

“왜? 자는데 깨우면 짜증 나잖아.”

그걸 알면서 리엘라는 여태 남을 잘만 깨워 왔다. 메일은 물끄러미 그런 리엘라를 바라보았다. 특별 대우는 감동이지만 그렇다고 민폐를 또 끼치게 둘 순 없었다.

분명 업무 도중이었을 텐데 그리로 찾아가다니. 심지어 상대는 그걸 무시하지도 않고 친절히 길 안내를 해줬다. 낯을 들기가 힘들었다.

“저는 짜증이 안 나요. 특이체질이거든요. 그러니 꼭 깨우세요.”

“그래?”

“꼭이에요. 굳이 낮이 아니라 밤이어도…….”

“아, 근데 은색 실 뭉치 말이야.”

리엘라는 하고 싶은 얘기가 생기면 불쑥 꺼내고 본다. 메일은 부디 리엘라가 제 당부를 한 귀로 흘리지 않았기를 바라며 바뀐 주제에 응수했다.

“실 뭉치 영애가 왜요?”

“나를 보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했는데.”

“이상한 소리?”

“뭐라고 했더라?”

리엘라의 작은 머리통이 갸웃했다. 로즈가 익숙하게 끼어들었다.

“‘당신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당신?”

“예. 정원 안에서 공주님과 마주치자마자 그렇게 묻더군요. 당신이냐고, 당신이 맞냐고.”

“갑자기 그랬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알 수가 없는 질문이네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는데요?”

이에 대해선 리엘라가 답했다. 그건 기억이 나는 모양이었다.

“맞다고 했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공주 리엘라 맞다고.”

“…….”

“왜?”

“실 뭉치 영애는 뭐라던가요?”

“그냥 가던데?”

로즈가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상대는 그 말을 듣고는 표정을 괴상하게 찡그렸다가, 곧 반테르를 의식한 듯-눈치를 살피듯 굴었다고-얼굴을 웃는 낯으로 바꾼 뒤 정원에서 퇴장했다고 한다. 확실히 리엘라의 표현처럼 다소 이상하기는 했다.

“왜 그랬을까요?”

“모르겠습니다. 뭘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는데.”

“내가 나 맞다고 해줬는데?”

리엘라가 무구하게 말했다. 마치 제가 그걸 찾아준 게 아니냐는 듯한 태도였다. 메일은 뭔진 몰라도 상대가 찾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공주 리엘라’는 아니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 그러고 보니…….’

메일은 문득 지난 기억 중 하나를 떠올렸다. 은발의 영애는 전에 제게도 뭔가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번처럼 뜬구름 잡는 질문은 아니었지만.

언제였더라, 그러니까 분명 도서관에서.

‘혹 알고 계시거나 들으신 것이 있나요? 폐하께서…… 달리 신경 쓰시는 후보에 대해.’

그래. 그렇게 이야기했지. 가려는 사람을 붙잡아 후보냐고 물은 뒤에 저렇게…….

‘어?’

메일이 생각에 빠져 아래로 내리깔았던 눈을 반짝 떴다.

‘폐하께서 달리 신경 쓰시는 후보에 대해 아시나요?’

‘당신인가요?’

시점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나란히 놓고 보니 연관성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진다고 봐도 좋은 질문이었다. 뜻밖의 발견에 메일이 이채를 띠었다.

‘그럼 그 당신이라는 게…….’

그녀가 무얼 찾고 있었던 건지 짐작이 된다. 억측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나 납득은 바로 이어지지 못했다. 새로 생겨난 의문은 바로 ‘왜?’다.

‘왜 찾아다니는 거지? 다른 후보의 부탁을 받고 움직인 거라 보기에도 좀…….’

“아가씨, 무슨 일 있으십니까?”

로즈는 기민한 편이다. 그녀가 메일의 달라진 안색을 감지하고 말을 걸었다. 그에 메일이 물속에 담갔던 얼굴을 들 듯 퐁당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메일은 고개를 저었다. 고민에도 실상 우선순위가 있다. 지금은 환락가에 가게 될 일만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골이 아픈 상황이었다. 여기서 더 생각할 거리를 늘려보았자 좋을 것이 없었다.

메일은 이젤린에 대한 의문을 일단 뒷전으로 미뤄놓았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