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딜트는 그럼 실제로 존재하는 보석입니까?”
“아마도. 특산석이라는 것도 아주 거짓말은 아니에요. 백 년쯤 전에는 왕가 소유의 광산에서 검정색 원석이 생산되었다고 책에서 읽은 적이 있거든요. 이름이 오딜트라는 건 조금 불명확한 기억이지만.”
“그렇군요.”
벨티에 왕국은 제국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왕국이다. 관심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뻔뻔하게 뻥을 칠 수 있었다.
모르아도 공주가 정말로 감정사를 불렀다면 큰일이 날 뻔했지만, 메일은 당시 피차 거짓말을 하는 중인 그녀가 결코 그런 선택을 할 리 없다고 확신했다. 결과적으로 들어맞았다.
리엘라는 못 들어본 보석에 흥미가 생겼던 것뿐인지 금방 김이 샌 얼굴로 머리핀을 내려놓았다.
“흑수정은 나도 알아.”
“맞아요. 의외로 보석에 대해선 박식하시죠.”
“그런데 메일 아가씨.”
로즈는 메일을 비제아트 공녀님이 아닌 메일 아가씨라고 칭했다. 새삼스럽지만 거리감이 없다 싶은 지칭이었다. 그녀는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계속 표정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제 기분 탓입니까?”
메일은 그에 쓰게 웃었다.
로즈는 날카로웠다. 그건 기분 탓이 아니다. 메일의 표정은 아까부터, 정확히는 함을 손에 넣은 후부터 계속 어두웠다. 가능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티가 나고 말았나 보다. 메일은 뭐라 대답해 주는 대신 그저 고개를 저었다.
털어놓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사정이기도 했지만, 그런 걸 넘어서 이건.
이건 너무.
‘최악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메일은 핀을 잃어버리던 날을 기억했다. 그날은 그녀에게도 인상 깊은 날이었다. 제국에 처음 도착한 날이었고, 별궁과 본궁을 처음 방문한 날이었으며, 샛길로 통한 정원을 처음 발견한 날이기도 하면서…….
선배님을 처음으로 마주쳤던 날이니까.
그리고 그게 문제였다. 메일은 그날 선배님을 만났다. 그러고선 핀을 흘렸는데 그게 이제와 황제의 함 안에서 발견되었다. 왜? 왜 하필? 메일은 차라리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아니면 함을 열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든가.
억지 가정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날 메일은 핀을 떨어뜨렸고, 정원이든 복도에서든 마침 지나가던 황제가 그것을 주웠으며, 뒤에 숫자가 새겨져 있는 걸로 보아 귀중품 같으니 주인을 생각해서 소중히 보관해 두었다. 끝.
그러나 그런 것에 납득하기엔 너무 늦었다. 여태 감정에 눌려 있었던 이성이 결국, 이 지경이 되어서도 저를 핍박하겠냐며 고개를 디밀었기 때문이다.
메일은 더 이상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눈 가리고 아웅 할 수도,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잡아뗄 수도 없었다.
메일은 알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손에 잡힐 듯 명백해서, 그렇게.
‘이 정원이 누구의 거라고 생각하지?’
‘황제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한 가지 말해주지. 무엇이든.’
‘그래도 되는 사이니까.’
‘같이 있었다는 뜻이야.’
어떻게 모른다고 할 수가 있을까.
메일은 본래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 특히 사람을 구분할 때 실수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오르밀의 거처에서 지나가듯 본 시녀의 인상착의를 기억했고, 먼발치서 한번 구경했던 반테르를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얼굴뿐만이 아니다. 머리 길이, 목소리, 키, 체격, 어깨의 넓이나 몸의 비율, 보폭 등.
한 명의 사람에게는 수많은 단서가 있었다. 이목구비는, 머리색이나 눈 색은…… 실은 극히 일부의 조건일 뿐이다.
그러니 그런 걸 가린다고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소홀하게 눈에 담은 사람이 아니었다.
분명, 그랬다.
그럼 이만큼이나 명확한데 그동안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건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메일은 이번에 깨달았다. 감정은 이성의 위에 설 수 있었다. 그 위에 서서, 알기 싫을 뿐인 것을 알지 못하는 거라고 속일 수가 있었다. 외면하고 있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이라고 눈가림할 수 있었다.
결국 나중에 그것이 언젠가 밝혀졌을 때, 피하던 것을 기어이 마주했을 때 스스로가 입게 될 상처는 전혀 생각도 않고서.
감정은 그만큼이나 대책이 없었다.
“아가씨, 표정이 역시 영 안 좋으십니다. 몸이라도 안 좋으신 건…….”
“응? 메일이 왜?”
“공주님, 메일 아가씨께서…….”
‘내 탓이네.’
메일은 빛바래지도 않는 못된 기억을 더듬었다. 언제였을까. 사실 의심 정도는 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감정이 앞에 선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아마 시작은 그저 단순한 이유였을지도.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는 해도 되지만 그가 황제라면 곤란해지는 말이나 태도가 몇 가지 있었으니까.
그렇게 단지 난처해지기 싫어서 모른 척을 시작했던 건지도 모른다. 어차피 상대가 속이려고 드는 것, 그에 맞장구를 치는 것쯤이야 뭐 어떠냐고 가벼이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응? 메일?”
“아, 아가씨!”
“손등에 물 묻었어.”
“공주님, 묻은 게 아니라…… 아니, 묻은 게 아닌 건 아니지만…… 아, 아니.”
“어? 물이 자꾸 떨어지는데?”
결국 좋아하게 될 줄도 모르고. 미련하게.
“아, 아가씨…….”
메일은 과거 시간을 돌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땐 부끄러움이 원인이었다. 그때도 나름 간절하게 그것을 원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에 비교하면 그건 얼마나 하찮고 가벼운 바람이었는지. 메일은 결국 아이처럼 울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