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요?”
“응.”
“……좋아한다는 게 뭐게요?”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가슴이 아팠다가 안 아팠다가 하는 거.”
헉. 메일은 믿을 수 없어서 제 입을 가렸다. 리엘라는 의외로 평범하게 사랑을 해본 것 같았다. 연애인지, 짝사랑인지 그런 것까지는 몰라도. 로즈는 입을 가린 메일보다 더 믿을 수 없었는지 도중에 끼어들었다.
“공주님, 혹시 그때 궁의는 만나 보셨습니까? 조울증과 심장병이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그게 뭐야?”
“공주님.”
메일이 심각하게 리엘라를 불렀다. 리엘라가 해본 게 정말 사랑이라면 그녀는 그 분야(?)에 있어서는 메일보다 인생 선배라는 말이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메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럼, 혹시 그때 전기가 통하셨던 거예요?”
“아니. 운명의 상대는 열다섯 살 생일이 지나야 만날 수 있잖아.”
“……전기 이론에 그런 구체적인 설정이 있었다니…….”
황당해하던 메일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리엘라의 말에는 정보가 있었다. 그녀의 사랑은 적어도 열다섯 살 이전이었다. 불신을 제치고 궁금증이 솟아오른 메일이 그에 대해 질문했다.
“그럼 몇 살 때 만나셨어요?”
“뭐를?”
“좋아하는 사람이요.”
“음……. 열세 살.”
리엘라가 뱉어놓은 나이는 퍽 어렸다. 열셋. 열셋이라. 메일은 그맘때의 리엘라를 상상해 보았다. 지금 리엘라가 열여덟이니 다섯 살이나 더 어리다.
메일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공주님의 나이을 걷어내다가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 방문한 궁중 화가의 작업실에서 그 나이 때 리엘라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랬지, 참.
리엘라는 열세 살에도 예뻤다. 천사처럼.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메일은 딱히 열셋이라는 나이를 이유로 리엘라의 경험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세 살이면 또 모를까. 애초 유명한 명작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도 열네 살이다. 그녀는 열네 살에 죽음까지 불사르는 사랑을 했다.
기억을 더듬는지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리엘라가 대답했다.
“그냥 알았어.”
“그냥이요?”
“내가 보석 반지를 떨어뜨렸는데, 그걸 주워줬거든. 근데 보석 반지를 들고 있는 걔의 얼굴이 내 반지보다 예뻐 보였어. 그때 그냥 알게 됐어.”
메일은 동작을 멈췄다. 리엘라의 말을 듣는 순간 그림처럼 펼쳐진 장면이 있었다. 달이 뜬 정원, 바일렛, 그리고 그 사람.
눈이 마주쳤을 때.
맞다. 사랑을 알게 되는 건 그런 거다. 싫어도 강제로 알게 되고 말지.
메일은 리엘라를 빤히 쳐다보며 공감하다가 문득 소리 내 웃어버렸다. 리엘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정말 상상도.
“……흠흠. 실은 저도…….”
그때 로즈가 슬그머니 대화에 참여했다. 파괴신의 얼굴이 답지 않게 살짝 붉었다.
“저도 한때는 힘과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힘과 스피드를 동시에 사랑하며 과연 양다리를 걸쳐도 되는 건가 고민하던 때도 있었죠. 거기에 지구력이 추가되자 삼파전이 시작되었고요.”
시작이 어딘가 이상했지만 로즈다웠다. 메일이 하하 웃은 뒤 다음이야기를 독촉했다.
“그런데 다르더군요. 힘, 스피드, 지구력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크흠, 신경 쓰는 것은 확실히 다른 기분이었습니다.”
“어떻게 다른데?”
“공주님은 아시지 않습니까. 공주님이 열세 살 때 느끼셨던 바로 그 기분입니다.”
“그럼 힘 어쩌고는 가짜 사랑이야?”
“사랑의 종류가 다른 거죠.”
메일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로즈는 어쩐지 지나간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는 사람 같지 않았다. 마침 목격한 것도 있는 마당이다. 메일이 슬쩍 찔러보듯 물었다.
“로즈. 혹시 오늘 저녁에 뭐 해요?”
로즈에게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침묵을 지켰으나 대신 얼굴이 전보다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주 새빨갛지는 않아도 평소의 혈색과 비교하면 확실히 붉었다.
어머나. 메일은 이번엔 눈을 비비지는 않고 대신 입을 가렸다.
“난 오늘 저녁에 저녁밥 먹을 거야.”
눈치 없는 리엘라가 당연한 소리를 하며 끼어들었다. 빨갛게 익은 얼굴로 눈 둘 곳 모르던 로즈가 그에 이때다 싶었는지 ‘공주님의 저녁 식사 메뉴’로 얼른 화제를 돌렸다.
메일은 그 모습을 황당히 쳐다보다가 이내 괜스레 웃음이 나서 푸하하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