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삭.
“꺄아아악!”
“저, 저게 뭐야!”
“저건……!”
일 났다. 몸을 일으켜 리엘라의 시야를 가린 메일이 난감하게 상황을 주시했다. 입구가 열린 주머니에서 쏟아진 것은 시체였다.
바로 벌레 시체. 절지동물 친구 여럿이 죽은 채로 나자빠졌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쏟아진 것은 죽은 벌레가 다였다. 그러나 그 사이로 ‘튀어나온’ 것이 있었다.
누군가가 사색이 되어 외쳤다.
“바, 바 선생!”
바 선생.
태초에 지닌 풍채가 너무도 흉악하며 만인이 선생이라 부르기로 합의한 절지류가 있었다.
흉악한데 왜 선생이라 칭하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륙에는 지금은 사라진 나라들 중 ‘잉국’이라는 곳이 있었다.
잉국은 매우 넓고 비옥한 영토를 지닌 제국이었는데, 야만인들이 침략하여 세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민들의 성정이 포악하고 급했다. 그에 대륙 사람들은 그 나라 국민들을 ‘잉국 신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왜냐? 제발 부탁이니 신사 좀 되라고.
야만인처럼 굴지 말고 부디 신사 좀 되어달라는 뜻에서 그런 호칭이 생겼다. 바 선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생김새가 지나치게 혐오스러우니 제발 점잖고 교양 있는 벌레가 되어달라고 말이다.
말의 힘인지 잉국의 후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로 신사가 되었다. 야만족이란 말은 옛말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힘은 바 선생에게까진 통하지 않은 모양이다.
점잖지도 않고, 교양도 없는 바 선생이 힘차게 바닥을 기었다.
“꺄아악!”
“누, 누가 좀!”
“히익!”
우당탕.
바 선생의 미친 질주 본능은 대단했다. 파괴력 또한 발군이었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족족 비명이 터지고 의자가 나동그라졌다. 한 영애는 손수건을 꺼내 엉엉 울기까지 했다.
지켜보는 메일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잡아야 하는데.’
간택전의 후보인 여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식당에서 근무하던 남자인 사용인들까지 저마다 하얗게 질려 어쩌지를 못 했다.
그만큼 바 선생은 공포의 존재였다. 긴 더듬이, 광택이 흐르는 등, 강인한 다리까지 그 무엇 하나 흉악하지 않은 것이 없다.
더군다나 대왕 바 선생이다. 대왕 바 선생은 크기가 큰 만큼 혐오감도 배를 달렸다. 모 기사는 대왕 바 선생을 잡느니 차라리 몬스터를 베는 것이 낫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결국 메일이 나서야 했다. 메일은 이 중에서 아마도 가장 바 선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애초 그녀는 절지동물들과 꽤나 친한 편이었다.
정원 덕후의 첫 번째 조건, 벌레들을 꺼리지 말 것.
정원은 따지고 보면 하나의 작은 숲이다. 나무가 있고 꽃이 있으니 당연히 곤충과 벌레가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런 곳을 거닐고, 뒹굴고, 손수 손질하고 가꾸다 보면 맨손으로 벌레를 잡는 것쯤은 별것 아닌 일이 된다. 벌레 잡기에 레벨이 있다면 메일은 단연코 만렙이었다.
랭커 메일이 나설 결심을 마쳤다. 양손을 걷어붙인다. 출격하기 전 리엘라에게 눈을 감고 있거나 음식만 보고 있으라고 신신당부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때 바 선생이 새로운 묘기를 선보였다.
“으아악!”
“날았다!”
흉악의 대명사 바 선생의 절대 비기, 날기. 바 선생이 선보인 필살기에 여기저기서 경악에 찬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심약한 사용인은 결국 누군지도 모르는 영애와 함께 울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메일이 얼른 몸을 날렸다.
“꺄악! 살려줘!”
바 선생은 무작위로 비행하다 대뜸 목표물을 하나 정해선 날아들었다. 반만 땋고 반은 늘어뜨린 주황색 머리가 인상적인 영애였다. 과연 그녀는 이대로 제물이 되고 말 것인가?
가혹한 영애의 운명에 모두가 눈을 부릅뜨는 가운데, 바람처럼 움직인 메일이 얼른 팔을 뻗었다.
턱!
“……?”
“……!”
“……?!”
순간 침묵이 모든 것을 대변했다. 메일은 양손으로 포획한 것이 도망가지 않도록 꼼꼼히 감싸 쥐었다.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한마음으로 경악했다.
“자, 잡았다.”
“잡았어.”
“바 선생을 잡았어!”
“와아아!”
경악은 곧 환호로 변했다. 메일은 영웅이었다. 특히 분홍색 머리의 영애는 감격해서 눈물까지 글썽였다. 하나둘씩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금방 갈채가 되었다.
메일은 함성과 박수갈채 속에서 머쓱하게 웃은 뒤 곧장 오르밀에게로 다가갔다. 손 안에는 여전히 바 선생이 있었다.
“페튼 영애.”
오르밀은 처음 메일이 저를 불렀다는 것조차 바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에 빠져 있었다. 인자하게 웃은 메일이 간격을 한 발짝 더 좁혔다.
“아무리 산책을 시키고 싶어도 말이에요. 애완동물은 잘 관리해야죠. 다음부턴 주의하도록 해요.”
“뭐……?”
“자, 돌려드릴게요.”
메일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다. 오르밀은 되만큼도 주지 못했지만 돌아온 것은 말보다 컸다. 펄떡거리는 강한 심장의 소유자 바 선생이 오르밀의 옷 사이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물론 살아 있는 상태였다.
“……!”
비명도 충격이 적당해야 지르는 것이다. 그럴 만한 정신머리가 남아 있다는 거니까. 등으로 느껴지는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감촉에 오르밀이 결국 눈을 까뒤집었다.
털썩.
메일이 기절하는 꼴을 볼 거라고 희희낙락했던 오르밀은 그렇게 본인이 정신을 잃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에이미가 어쩌지도 못 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잠시 후, 소란을 듣고 뒤늦게 달려온 병사들이 오르밀의 옷을 탈출해 다시 질주하기 시작하려던 바 선생을 용감무쌍하게 처리했다.
이른 저녁, 예고 없이 벌어졌던 바 선생 소동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