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 선 에이미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가씨, 저 에이미예요.”
“…….”
“들어가겠습니다.”
대답 대신 침묵이 자리했으나 에이미는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주인의 침묵은 대체로 거절보다는 허락을 의미했다.
그녀는 전에 그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가 매질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시키신 일……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누운 채로 오르밀이 고개를 까딱였다. 얼굴에는 반죽 비슷한 팩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말을 아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침대 가까이 다가간 에이미가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입을 열었다.
“방금 엑트라 후작 영애의 시녀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이간질을 목적으로 말을 흘렸다고 하는데…….”
엑트라 후작 영애의 시녀들은 에나, 비나, 시나, 디나 이 네 사람을 말한다.
전날 이 넷에게 의뢰 아닌 의뢰를 했던 에이미는 그것을 고스란히 오르밀에게 보고했다.
오르밀은 사소한 것까지 전달받길 원했다. 매질이 싫고 무서운 에이미는 당연히 그런 주인의 성정에 맞춰 움직였다.
계속 이야기하라는 뜻으로 오르밀이 손가락 끝을 까딱거렸다.
“공주에게 비제아트 공녀에 대한 험담을 소문인 척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이걸로 둘의 사이가 얼마나 멀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고립을…….”
“고립시키면?”
“네?”
오르밀이 상체를 일으켰다. 미끄러지는 팩을 손으로 잡아 뜯어 한쪽으로 던진 그녀가 이어 말했다.
“고립시키면 뭐? 그래서, 그 계집애가 공주와 사이가 멀어지고 나면 엉엉 울기라도 한다니?”
“그건…….”
에이미는 우물쭈물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이간질은 일견 별거 아니게 보일지 몰라도 생각보다 잔인한 짓이었다.
사람은 때로 물리적인 아픔보다 정신적인 고통에 더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나 오르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걸 원해. 내 눈에 들어오는 거. 응? 그년이 지금 바로 기겁하고 질질 짰으면 좋겠단 말이야!”
“…….”
“차라리 얼른 가서 뺨이라도 후려칠까? 어? 그게 낫겠지? 이간질이고 뭐고, 좀 더 즉각적이고 눈에 보이는 걸 가지고 와.”
“잘못했어요. 명심하겠습니다.”
에이미는 납작 엎드렸다. 맞기 전에 미리 수그리는 것이다. 다행히 오르밀은 지금 매를 들 기분까진 아닌 듯 뭔가를 던지거나 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그녀는 이마를 바닥에 댄 제 시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에이미.”
“네.”
“이간질 따위 말고, 그래, 그것들이 또 어떤 것들을 알려주던?”
오르밀은 에이미더러 사람을 괴롭힐 만한 갖은 방법을 알아오라고 했다. 그리고 에이미는 그것을 다른 이에게 소정의 대가를 지불하며 물어보았다. 주인이 원하는 것을 알아들은 에이미가 얼른 말을 쏟아냈다.
“제게 다양한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비교적 간단한 방법부터 사람을 이용하는 것까지…….”
에나를 비롯한 시녀들이 가르쳐 준 행위들은 유치하다면 유치한 것도 있고, 너무하다면 너무한 것도 있었다.
전해 듣는 오르밀의 표정이 흥미롭게 변했다. 에이미는 주인 아가씨의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오늘은 맞지 않아도 되겠구나.
엎드린 에이미의 눈꺼풀이 미약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