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눈에 보이게 시비를 걸어올 인물은 아니야.’
모르아도라고 본인을 소개한 공주는 무늬만 왕족이 아닌 듯 표정이나 말투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티가 났다.
특히 표정. 그녀의 웃는 얼굴은 아까부터 일순간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필경 속내를 숨기는 것에 능숙할 유형이다.
외모 되고, 배경 되고, 하는 양을 보니 머리도 되고. 이런 사람이 먼저 경계해서 말을 걸 정도면 오늘 리엘라가 확실히 예쁘긴 엄청 예쁜 모양이다. 메일은 내심 뿌듯해졌다. 장신구를 골라준 효과가 있군.
“전 되도록 선의의 경쟁을 하고 싶답니다. 물론 그렇게 하게 두느냐는 제국의 뜻이겠지만요.”
모르아도 공주가 눈가를 곱게 접으며 말했다. 메일은 뭐라 대꾸하는 대신 미소로 먼저 화답했다.
제국의 뜻이라. 후작은 조금 전 후보들을 절반씩 줄이겠다고 예고했다. 그리고 그건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무조건 절반 이상을 떨어뜨리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절반을 맞춰서 남기겠다는 뜻인지. 후자라면 떨어진 이들에게도 기회가 생긴다. 남은 이들 중 누군가를 끌어내려 결원을 만든다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게 가능할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후작은 자진 탈락을 허용하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공주의 발언은 다시 말해 이런 뜻이었다.
합격자의 자리를 뺏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너를 그냥 놔두겠지만, 만약 제국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면 넌0 절대 나보다 오래 제국에 남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메일은 미소를 유지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공주님 무섭네.
“저도 마지막까지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같은 생각이네요. 호호.”
소리 내 웃은 공주가 이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인사만 나누겠다더니 정말 그럴 의향이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물러선 채로 가볍게 목례를 했다.
“짧은 인사였지만 즐거웠답니다. 그대에게 헤메라의 가호가 함께하길.”
메일은 그에 마주 눈인사를 하며 쓴웃음을 삼켰다. 헤메라. 그녀는 낮의 여신이었다. 해가 지고도 한참이 지난 이 시각에 헤메라의 가호를 운운하는 작별 인사라니.
얼핏 들으면 무지로 인한 실수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저건 해석하자면 돌려서 건네는 욕이었다.
헤메라의 가호가 닿는 낮이 오기 전까지 봉변이나 당하라고. 그러니까 가는 길에 불행이 함께하길 바란다는 뜻이다.
메일은 전에 사교 파티에서 영애들끼리 저렇게 아닌 척 욕을 하는 걸 몇 번 목격한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었다.
리엘라는 상대의 돌려 까는 인사를 들은 뒤 미간을 팍 찡그렸다.
“뭐야? 쟤 지금 나더러 길 헤매라고 한 거야?”
“…….”
메일은 잠깐 말을 잃었다. 그 헤메라는 당연히 그 헤매라가 아니지만 어째 아주 틀렸다 하기에도 애매한 발언이었다. 리엘라를 빤히 바라보던 메일은 곧 픽 웃으면서 그녀를 입구로 이끌었다. 아니에요, 공주님. 이만 가요.
그런 메일과 리엘라의 뒤를 로즈가 우직하게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