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보통 학습을 한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빈도가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
몇 년이 더 흐르자 영애들이 정원을 이용하며 황제에게 접근하는 일은 월례 행사에도 못 낄 정도로 드문 일이 되었다. 하루 일과 같던 것이 어쩌다 가끔 발생하는 히든 이벤트 수준으로 전락한 것이다. 로하이덴은 아주 흡족했다.
물론 ‘드물다’와 ‘아예 없다’가 동의어는 아니다. 어쩌다 한 번이지만 여전히 정원을 좋아하는 척하며 그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영애가 나타나긴 나타났다. 그래서 로하이덴은 정원에서 불청객을 발견하던 순간 이렇게 생각했다.
오랜만이네. 아, 그래도 짜증 난다.
‘단순히 구경을 목적으로 들어왔다는 소린가.’
로하이덴은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 목소리에 냉소를 낙낙하게 담았으니 찔리는 바가 있다면 알아서 티를 낼 것이다. 하나 상대방은 일말의 주춤거리는 기색도 없이 응수했다.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나요?’
표정이나 어조가 어찌나 무구한지 로하이덴은 하마터면 되레 무안해질 뻔했다.
순간 그러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상식적으로 정원은 본래 구경을 하러 들어오는 곳이 맞긴 했다. 여태 그가 워낙 상식 밖의 일만 겪어서 그렇지.
‘……정말로 모르는 건지.’
‘네?’
‘아니면 연기가 제법인 건지.’
하나 지금껏 그만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영애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로하이덴은 쉽게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어디 한두 번 당했어야지. 거의 십 년을 시달린 남자의 불신은 뿌리가 깊었다.
‘제가 이곳에 무단으로 침입을 한 거라면 그에 대해선 사과드리겠습니다.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초행이라 잘 몰랐거든요. 원하신다면 더 머무르지 않고 나가겠습니다.’
그런데 반복해서 진심이 느껴진다면 그땐 어찌해야 하나. 말을 나눌수록 로하이덴의 심경이 긴가민가해지기 시작했다.
저게 정말로 연기라면 그녀는 제국 제일의 연기 대상을 수상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감쪽같았다.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믿고 싶어질 정도로.
‘이 정원이 누구의 거라고 생각하지?’
결국 로하이덴은 자기 입으로 그 얘길 꺼냈다. 여기 황제가 자주 찾아. 바로 그 정원이라고. 솔직히 너도 황제를 노리고 온 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
‘못 믿겠는데요.’
그리고 외려 거짓말쟁이 취급을 당했다.
그때 로하이덴이 느꼈던 신선한 충격을 열거하자면 단어를 수백 개쯤 동원하더라도 모자랄 것이다. 그는 누가 뒤에서 머리통을 휘갈긴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야, 쟤 안 믿는다는데? 황제가 이런 데를 왜 오냐는데? 저거 완전 진심 같은데?
‘다음 사람은 꼭 속일 수 있길 바랄게요. 파이팅!’
그렇다는데?
황제와의 로맨스에 눈이 뒤집혀 가증스런 연기에 열과 혼을 쏟는 상대만 만나왔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황제가 자주 찾는다는데 뻥이라니, 낚시라니. 보통은 모르고 들어왔더라도 혹할 만한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제라는데! 그것도 미혼에 젊고 잘생긴!
‘아, 그리고 덧붙이자면 낚시의 떡밥 자체가 좀 한정적이에요. 폐하께서 여길 자주 오신다거나 하는 건, 폐하께 개인적인 용무가 있거나 용안을 반드시 뵙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나 유혹적인 주제 아닐까요? 세상에는 황제 폐하를 뵙는 것보다 새싹에 물 주는 것을 더 소중한 기회로 여기는 사람도 있답니다.’
상대는 아주 거침없었다. 새싹보다 못한 취급을 당했다. 대단히 새로웠다.
“큭.”
입구에 다다른 로하이덴이 흘러나온 웃음을 삼켰다. 오늘 아침을 떠올리니 싫어도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꽃한테 말을 걸고 있었지. 본인의 주장처럼 정원을 사랑하는 것이 꽤나 남다른 모양이었다. 남달라도 너무 남다르긴 하지만.
“며칠 정도는 유흥이 되려나.”
그리 중얼거리며 로하이덴은 정원 안으로 발을 들였다. 정오의 햇살이 그의 백금발에 부딪혀 화사하게 부서졌다. 단정하게 자리 잡은 입매가 확연히 곡선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