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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의 후회는 필요없다-116화 (117/120)

116화

제국 기사단.

이들은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검술을 가진 기사들로 이루어진 정예 기사단이다.

제국 기사단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황제 직속의 기관이었다. 이들은 평소에는 황제의 호위 업무를 수행하는데, 기사단이 황궁 밖으로 나오는 경우는 딱 두 가지였다.

황제가 황궁 밖으로 나와 그를 호위해야 하거나, 황명으로 반역자를 잡아들일 때.

첫 번째의 경우는 그다지 큰 관심거리는 아니었다. 제국 기사단을 실제로 볼 수 있기에 주목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두 번째의 경우는 완전히 달랐다.

황제의 기사단이 황제를 모시지 않고서 귀족가에 걸음했다는 것은 그 가문의 멸문을 의미했다.

제국에서 반역죄는 가장 엄중한 죄였기 때문이다.

반역 모의를 하면 삼대가 멸하여지고 귀족 연감에서 그 가문의 이름이 영영 지워진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예 사라지는 것이다.

제국 기사단에 잡혀가는 귀족은 사형을 당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완전히 죽게 된다.

그렇기에 귀족들 사이에서 제국 기사단은 사신(死神)처럼 여겨졌다.

다들 제국 기사단을 두려워하며, 이들이 자신의 저택에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황명을 받들어 두란테 아달베르토를 체포하러 왔다. 선황제 시해, 세골린데 왕족의 암살 사주, 백합 투기, 그리고 반역을 모의한 죄를 지었으며, 황제 폐하께서 직접 처분을 정하실 것이다.”

냉정한 기사단장의 음성에 두란테가 얼어붙었다. 아니라고 우기고 억울함을 호소해야 하는데, 머리와 다르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귀족으로서 제국 기사단에 품고 있는 공포심이 그의 몸을 마비시킨 것이다.

“나, 나는…….”

두란테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턱을 덜덜 떨었다. 조금 전 하인들에게 폭행을 당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공포가 그를 엄습해 왔다.

“잡아.”

기사단장이 명을 내리자 기사 둘이 두란테의 양팔을 잡고서 연행했다. 두란테는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서 힘없이 끌려갔다.

“아버지!”

줄리아는 기사들에게 잡혀가는 두란테를 향해 외쳤다. 그녀는 턱에 힘을 주고서 눈물을 흘리다가 기사단장에게 매달렸다.

“뭔가 오해가 있는 거예요! 아버지는 아무 죄가 없으세요! 황제 폐하께서 아버지를 얼마나 아끼시는데요!”

“황제 폐하께서?”

줄리아에게 발을 붙들린 기사단장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그는 눈썹을 추어올렸다가 부하에게 명을 내렸다.

“식솔들도 전부 체포해. 이 여자부터.”

“예!”

기사들이 줄리아를 붙들자, 그녀가 끌려가지 않기 위해 버티며 외쳤다.

“기사님!”

“황제 폐하께서 네 아버지를 아낀다니, 직접 가서 확인하면 되겠군.”

기사단장은 줄리아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의 대답에 줄리아는 입을 꾹 다물고서 눈물을 흘렸다.

두란테를 벗으로 가까이 두며 아껴 주었던 황제는 서거했다.

이제는 새로운 황제의 세상이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줄리아이지만 그녀도 이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만 새로운 황제의 세상이 더는 그들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을 뿐이다.

* * *

발레리오가 황위에 오르고서 공식적으로 처리한 첫 번째 일은 선황을 독살한 자를 잡는 일이었다.

수사는 마치 전부터 착수되었던 것처럼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지금, 알현실에는 용의자인 두란테가 잡혀 들어왔다. 밧줄로 포박된 두란테의 몰골에서는 기세가 등등했던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기름진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었고, 재킷과 셔츠는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해 셔츠 한쪽이 허리춤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사기꾼 새끼.”

알현실에 모여든 귀족들 사이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모두가 두란테에게 투자를 했거나, 그에게 원한을 갖고 있는 자들이었다.

“퉤!”

귀족 무리 사이에서 미켈레가 나와 두란테에게 침을 뱉었다. 얼굴에 침을 맞은 그가 미켈레를 노려보았다.

“감히…….”

두란테가 이를 갈며 말하자, 다른 귀족들이 그를 향해 소리를 쳤다.

“감히라니? 네놈이 뭐라고!”

“죽어!”

“너 때문에 우리 집안이 망하게 생겼어!”

“이 사기꾼아!”

쾅쾅.

“정숙하십시오! 폐하께서 들어오십니다.”

알현실의 문지기가 봉으로 바닥을 두어 번 치며 외치자, 귀족들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두란테는 입술을 짓씹으며 시선을 내렸다.

황제가 된 발레리오와 리카르도, 그리고 미라벨이 차례로 알현실에 입장하였다.

발레리오는 황좌에 앉고서 서늘한 시선으로 두란테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옆자리에 준비된 귀빈석에는 리카르도와 미라벨이 각각 자리했다.

두란테를 응시하는 그들의 시선 또한, 다른 귀족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분노, 경멸, 그리고 혐오.

두란테는 천하의 악인이었다. 제 뜻대로 선대 황제와 대공 부처를 조종한 것도 모자라, 후대에까지 더러운 손길을 뻗치려 한 그를 동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발레리오는 아달베르토가 가솔들 중 가장 앞에 꿇어앉은 두란테를 향해 서슬 퍼렇게 말했다.

“네 죄목은 기사단장에게 들었겠지.”

고개를 떨구고 있던 두란테는 황제의 음성에 움찔하였다. 발레리오는 그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두란테 아달베르토. 너는 선대 황제 폐하를 시해하고, 세골린데 왕족의 암살을 사주하였으며, 백합값을 올려 제국의 시장을 교란하는 투기를 조장하였다. 그리고 짐이 황위에 오르지 못하도록 역성혁명을 하려 하였지. 인정하는가.”

“아니요, 폐하. 이는 모함입니다.”

“모함이라고?”

“저는 선대 황제 폐하의 하나뿐인 벗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시해하다니요.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증인들을 데려와라.”

발레리오는 두란테의 말을 자르고서 서기관에게 명했다.

서기관이 옆의 기사에게 눈짓을 하자, 알현실 한편의 커튼이 젖혀지며 사내 둘이 나타났다.

그중 한 사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사내는 먼저 황제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발레리오는 그의 인사를 받아 주고서는 질문을 던졌다.

“다브 마치오, 자네는 선황제 폐하의 마지막을 지킨 주치의였지?”

“예, 그렇습니다.”

“선황제 폐하의 사인(死因)은 어떻게 되는가?”

발레리오의 질문에 주치의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독살입니다.”

주치의의 대답에 알현실이 술렁였다. 주치의는 손을 마주 잡고서는 말을 이었다.

“제가 선황제 폐하의 주치의가 되었을 때, 폐하께선 이미 독에 중독된 상태이셨습니다. 저는 해독을 하려 하였으나 두란테 백작, 아니 두란테가 제 가족들을 볼모로 잡아 협박을 하여…….”

“거짓말입니다!”

두란테는 주치의의 진술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반박에 신경 쓰지 않았다. 주치의는 두란테를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거짓말이라고? 당신 때문에 나의 노모께서 돌아가셨소. 아달베르토가의 지하 감옥에 갇혔을 때 폐병을 얻으셔서 말이오. 쓰레기 같은 작자 같으니. 퉤!”

주치의는 말을 마치고서 두란테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발레리오는 손을 들어 주치의를 저지하고서 입을 열었다.

“증언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전부 확인하였다. 두란테, 이에 반박할 자료가 있나?”

“…….”

“더 들을 것도 없겠군.”

발레리오는 차갑게 말하며 두란테의 나머지 죄목에 대하여 밝혔다.

리카르도가 잡았던 자객이 또 다른 증인으로 나서고, 귀족회에서 두란테와 합심하였던 미켈레가 역성혁명의 증인으로까지 나섰다.

모든 증거가 완벽하였다. 두란테에게는 도망칠 구석이 전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죄를 깔끔히 인정하여 감형을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황제 시해죄라는 어마어마한 죄에는 감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두란테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유언을 남기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두란테는 마지막까지도 치졸하고 더러운 수를 쓰려 들었다.

“제가 아니라 저 계집이 꾸민 일입니다!”

함께 잡혀 들어온 비앙카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 것이다.

그에게 지목받은 비앙카는 사색이 되었다.

두란테의 가족도, 귀족도 아닌 그녀까지 알현실로 끌려온 것에 이상하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허겁지겁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제가요? 저는 일개 하녀입니다. 어떻게 제가 그런 어마어마한 짓들을 하겠습니까!”

“네년이 나를 홀려서, 그렇게 해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미친놈!”

비앙카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는 두란테를 쏘아보다가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발레리오에게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폐하. 저는 두란테의 화풀이 대상이었어요. 제 온몸에 든 피멍이 그 증거입니다. 부디 가엾게 여겨 주시어요.”

“아무것도 모른다고?”

비앙카의 읍소에 미라벨이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의자의 팔걸이를 두드리며 날카롭게 말했다.

“넌 무고하다는 거냐?”

“저는 그냥 하녀라니까요?”

비앙카는 다소 호전적인 어투로 대꾸했다. 미라벨의 앞에 무릎을 꿇고, 죄인 취급을 받는 이 상황이 못마땅한 듯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공손한 어투로 말했다.

“왕녀님, 저 같은 미천한 하녀가 뭘 알고 무슨 일을 꾸미겠습니까. 부디 아량을 베풀어 주세요.”

“넌 네가 두란테의 식솔이라 잡혀 들어온 줄로만 아는가 보구나.”

미라벨은 고분고분한 척하는 비앙카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 그녀의 싸늘한 어투에 불길한 예감을 한 비앙카가 고개를 들었다.

왕녀의 눈동자에서 푸른 불길이 이는 듯하다 싶었을 때, 그녀가 말했다.

“너는 절도죄로 잡혀 온 거란다, 비앙카. 세골린데의 국보를 훔친 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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