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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의 후회는 필요없다-74화 (75/120)
  • 74화

    “샤를 왕자님?”

    나시르는 연신 기침을 하는 샤를을 알아보고서 당황했다.

    샤를은 대답도 못 하고서 요란하게 기침을 했다. 나시르는 기침을 하는 왕자를 향해 급히 다가갔다.

    “왜 여기에 계십니까? 가주님은요?”

    “주찌이가…… 엣…… 츄!”

    나시르에게 설명을 하려던 아이가 다시금 크게 기침을 했다. 나시르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아이의 코에 갖다 대어 주었다.

    “여기에 킁, 하십시오. 킁.”

    “킁.”

    “더 세게요.”

    “크응!”

    “잘하셨습니다.”

    나시르는 샤를의 콧물을 야무지게 훔치고서 다시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아직도 훌쩍거리는 아이를 걱정 어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감기에 걸리신 건가?’

    리카르도가 제정신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 레나토는 예전처럼 완벽히 정비되지 않고 있었다.

    복도 모퉁이마다 기사가 배치되었지만, 그건 마수로부터 세골린데 일행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

    리카르도가 저택을 완벽히 관리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복도가 싸늘하니 추운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샤를 왕자는 얼마 전에 고열을 앓았다. 그러니 이렇게 추운 곳을 쏘다니면 좋지 않다.

    나시르는 급한 대로 망토를 벗어 아이에게 입혀 주었다. 그는 어깨가 두 배는 되는 어른의 옷을 걸친 아이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가주님께서 주치의를 만나고 계십니까? 진료를 꾸준히 받으시나 봅니다.”

    “웅. 샤를은 루째랑 방으로 가라고 했는데. 루째가 업써요.”

    “그러셨군요.”

    나시르는 진중하게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대화하는 상대가 한참은 어린데도 그의 태도는 정중하기 짝이 없었다. 나시르는 몸을 일으켜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혼자서 돌아다니시면 위험합니다.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녜.”

    샤를은 손을 들어 나시르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나시르의 무릎까지 오는 키 때문에 손을 한껏 위로 올려야 겨우 그에게 닿았다.

    나시르는 자신을 잡으려고 깡충깡충 뛰는 샤를을 보고선 한쪽 무릎을 굽혔다.

    “업히시겠습니까?”

    “녜.”

    샤를은 발그레해진 얼굴로 고개를 까닥였다. 아이가 손가락을 꼬물대는 모습에 나시르의 가슴이 간질거렸다. 그가 몸을 틀고서 등을 보이자, 샤를이 바로 올라탔다.

    나시르는 샤를이 덮고 있는 망토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잘 여며 준 뒤 다시 일어섰다. 나시르에게 업힌 샤를은 코를 훌쩍이다가 종알거렸다.

    “루째 걱정돼여.”

    “일단 방으로 가셔서 찾으시지요. 종을 흔들어 루체를 불러 달라고 하시면 될 겁니다.”

    “……루째?”

    “네?”

    샤를을 달래며 말하던 나시르는 등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깜박였다. 그가 고개를 틀자, 작은 손이 어딘가를 가리키는 것이 보였다.

    “조기, 루째!”

    “자, 잠깐만요, 왕자님!”

    루체를 발견한 샤를이 나시르의 어깨를 잡고서 마구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나시르는 가려던 곳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중심을 잡지 않으면 샤를을 떨굴 수 있다.

    그래서 나시르는 마치 샤를에게 조종당하는 인형처럼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쪼기, 쪼기! 루째!”

    나시르는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샤를이 이끄는 곳으로 갔다.

    루체가 대체 어디 있다는 건지, 시야가 회전해서인지는 몰라도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았다.

    나시르는 식은땀을 흘리며 뛰듯이 걸었다. 늘 이성적인 그에게 아마도 생애 최고일 난관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와, 왕자님. 잡아당기지 마십시오. 찾아 드릴 테니까요!”

    “루째!”

    “왕자님!”

    나시르는 카타리나 부인이 손주에 대한 얘기를 할 때마다 반쯤 흘려들은 걸 절실히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의 주의를 돌리는 법이라도 알아 둘 걸 그랬다.

    주변에 아이라고는 하나도 없기에, 나시르는 샤를의 행동에 속수무책이었다. 아이를 여태 귀빈으로만 대했기에 더더욱 난감하기만 했다.

    “어……?”

    루체에 꽂혀 외치던 샤를이 불현듯 멍한 소리를 냈다. 그를 업은 채로 정신없이 달려온 나시르는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평소에 에치오가 샌님이라고 놀리곤 했는데, 체력이 순식간에 닳는 걸 보니 무시할 게 아니었다.

    “샤를 왕자님. 허억. 여, 여기가 어디…….”

    호흡을 고르고서 샤를과 함께 당도한 곳을 둘러보던 나시르의 눈매가 굳었다.

    사방이 붉었다.

    벽지도, 바닥도, 창문틀까지도.

    붉은 방이다.

    저도 모르는 새에 붉은 방에 들어와 버린 나시르가 당황하며 재빨리 몸을 돌렸다.

    아이의 호기심이 이 공간에 꽂혀선 안 됐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만은.

    “여기는 왜 다 빨개여?”

    “……녹색 방으로 가시죠. 루체는 제가 찾아 드리겠습니다.”

    나시르는 딱딱한 어조로 말하며 샤를의 질문을 막았다.

    ‘복도부터 막아 놓았어야 했는데.’

    샤를이 뒤를 돌아보려 하자, 나시르는 망토를 올려 아이의 시야를 가렸다. 샤를이 꿍얼거렸지만 초조해진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언젠가, 리카르도가 붉은 방에 도끼를 들고 들어왔었다.

    아르밀라의 장례식을 치르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장례식 때 목숨을 끊으려 했던 그는 회복하자마자 도끼로 붉은 방을 부쉈다.

    리카르도는 벽이 파이게 도끼질을 하고, 액자를 부수고, 커튼을 찢으며 울부짖었다.

    이딴 방 따위 진작 없앴어야 했다고.

    아르밀라를 여기에 가두질 말았어야 했다고.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포효하던 가주의 모습에 사용인들은 모두 벌벌 떨었다.

    그 이후로 붉은 방은 표면적인 관리를 할 때 빼고는 사람이 아예 드나들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도 불길한 곳으로 여겨졌지만, 지금같이 아예 없는 곳처럼 취급하지는 않았다.

    누구도 붉은 방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불가피하게 말해야 할 때는 ‘그곳’이라 칭했다.

    가주가 자살을 시도한 그곳.

    대공비가 감금당했던 그곳.

    붉은 방은, 그야말로 불행의 응집체 같은 곳이었다.

    새로 들어온 사용인들 중에는 비토레가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걸 아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나시르조차도 아예 잊고 지냈던 곳인데.

    “샤를 왕자님, 저랑 약속 하나 하시겠습니까?”

    “무슨 약쏙?”

    “아까 본 걸 비밀로 하는 겁니다. 왕자님과 저 사이의 비밀인 거예요.”

    “왜여?”

    “그건…….”

    어느새 녹색 방 앞에 온 나시르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바닥에 내려 준 뒤 몸을 돌렸다.

    샤를과 마주 본 나시르는 목을 가다듬고서 입을 열었다.

    “그 방에는 아주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왕자님께서 그 방 얘기를 하면, 가주님께서 슬퍼할 겁니다.”

    “늑때 삼쵼이?”

    “네. 그러니 늑대 삼촌한테 절대로 말하지 마세요.”

    나시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중하게 말했다. 샤를은 커다란 푸른 눈을 천천히 깜박였다. 나시르는 초조해하며 아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약쏙.”

    이내, 샤를이 새끼손가락을 나시르에게 쑥 내밀었다.

    나시르가 얼떨떨하게 그 손을 바라보자, 샤를이 야무지게 말했다.

    “늑때 삼쵼한테 절때 말 안 할게여. 약쏙!”

    “약속.”

    나시르는 빙긋이 웃으며 아이와 손가락을 걸었다. 나시르와 약속을 한 샤를이 그의 목을 꼬옥 끌어안았다.

    “나시르도 슬프지 마세요.”

    “네? 저는…….”

    당황한 나시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아이의 포옹을 받았다. 샤를은 나시르를 끌어안은 채 속삭였다.

    “아까 너무너무 슬픈 표정 해써.”

    “제가 그랬습니까?”

    “웅.”

    나시르는 샤를의 대답에 자신의 턱을 천천히 쓸었다.

    아카데미 졸업 후, 나시르는 바로 비토레가의 보좌관이 되었다.

    지금껏 냉정한 보좌관의 역할에만 치중해 있던 그는 자신의 감정을 돌보는 데에는 소홀했다.

    그래서 붉은 방이 자신에게도 아픈 기억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리카르도를 잃을 뻔하고, 아르밀라를 가둬야만 했던.

    붉은 방은 비극이 벌어지는 모든 과정을 나시르가 직접 목도해야만 했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공간이었다.

    “……몰랐습니다.”

    나시르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아이의 따끈한 체온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샤를 왕자님?”

    나시르의 뒤에서 걸음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루체의 음성이 들려왔다.

    “루째!”

    나시르는 샤를의 외침을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청소용 유니폼을 입은 루체가 숨을 할딱이고 있었다. 루체는 몸을 숙여 샤를과 눈높이를 맞추고서 입을 열었다.

    “왕자님 모시러 가야 하는 거, 깜박했어요. 루체 잘못했어요.”

    “내가 모셔 왔으니 됐어.”

    쩔쩔매는 루체의 옷차림을 살피던 나시르가 덤덤히 말했다.

    대충 일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 것 같았다.

    리카르도가 자결을 시도했을 때, 루체가 아니었으면 그를 제때 발견하지 못했을 거라고 의원이 말했다.

    그 이후로 루체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붉은 방을 관리하고 있었다.

    청소용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걸 보아 하니, 붉은 방에 갔다 온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샤를이 붉은 방 쪽에 루체가 있다고 외쳤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청소 도구를 가지러 오가는 걸 본 모양이었다.

    길이 엇갈려 서로 만나진 못했지만.

    나시르는 옅은 한숨을 쉬고서 샤를에게 입힌 망토를 잘 여며 주었다.

    “기침을 하시니까, 따뜻하게 해 드려.”

    “네.”

    “그리고 망토는…….”

    나시르가 루체에게 마저 지시를 내리려던 때였다. 굳게 닫혀 있던 녹색 방의 문이 열리고, 안에서부터 환한 빛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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