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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의 후회는 필요없다-19화 (20/120)
  • 19화

    신부의 치맛자락은 나비의 날개처럼 여리고 얇았다. 리카르도는 서슴없이 아르밀라의 치마를 걷어 내고서 그녀의 종아리에 입을 맞췄다.

    촉, 촉, 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피부에 닿는 동안 아르밀라는 시트를 움켜쥐었다.

    아는 것이 없으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아르밀라는 그저 리카르도에게 몸을 맡기고만 있었다.

    “아, 안 돼요……!”

    그러나 리카르도의 얼굴이 말도 안 되는 곳에 자리 잡았을 때, 아르밀라는 그를 밀어 내고 말았다. 이게 무슨 망측한 일이란 말인가.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전하, 제발!”

    아르밀라는 다리를 바동대며 리카르도를 떨어뜨리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힘을 줘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거침없었다.

    “흣!”

    리카르도를 밀어 내려던 아르밀라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신음했다.

    아르밀라의 여린 신음이 검은 방을 가득 채웠다. 시트를 움켜잡은 하얀 손에는 바짝 힘이 들어갔다.

    아르밀라는 숨을 헐떡였다. 머리가 마구 이지러지고 세상이 뒤죽박죽되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허리가 잘게 떨리자, 리카르도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흥분에 젖은 아르밀라를 건조한 눈으로 관찰하듯 보았다.

    “이쯤이면 됐겠지.”

    “……네?”

    리카르도에게 제대로 물어볼 새도 없었다. 아르밀라는 여태껏 느껴 본 적 없는 생소한 감각에 눈을 부릅떴다.

    아팠다.

    눈물이 절로 날 정도로.

    “그만, 그만하세요.”

    아르밀라는 울먹이며 리카르도의 두꺼운 팔뚝을 부여잡았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애원에도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멈추기는커녕 손가락의 개수를 늘려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아르밀라는 비명을 질렀다.

    리카르도는 아르밀라의 반응에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릿함은 순식간에 짜릿함으로 변해 아르밀라의 전신을 감쌌다.

    아르밀라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리카르도에게 호소했다.

    “이, 이상해요. 이상해…….”

    “이제 시작할 거다.”

    리카르도는 형식적으로 고지하고서 상체를 일으켰다. 영문을 알지 못하는 아르밀라는 훌쩍이며 리카르도를 바라보았다.

    초야라는 게 이런 건 줄 몰랐다.

    아르밀라는 아프기만 하고, 리카르도는 전혀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런 행위로 그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이런 식이라면 리카르도가 1년 뒤에 아르밀라를 내친다 해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뭔가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아르밀라는 리카르도가 남은 옷가지를 벗어 내자 그동안의 상념을 깡그리 잊고 말았다.

    “후으…….”

    초야가 시작되고 내내 이성적이기만 했던 리카르도의 눈동자에 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리카르도가 아르밀라의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허벅지에 닿은 손이 뜨거웠다. 리카르도는 차갑기만 한 줄 알았는데, 지금 그는 아르밀라를 태울 수 있을 만큼 뜨거웠다.

    “조금 아플 거다.”

    리카르도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르밀라가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아르밀라에게 몸을 밀착하기 시작했다.

    “아……!”

    아르밀라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아르밀라는 초야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서 그의 단단한 가슴을 밀어 냈다. 그녀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저, 전하. 너무, 너무 힘들어요. 제발!”

    “참아.”

    리카르도는 깊게 숨을 내쉬고서 말했다. 한마디 말도 겨우 하는 것인 양, 여유가 없어 보였다.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리카르도의 손이 아르밀라의 머리 양옆을 내리눌렀다. 그가 이를 악물고, 그녀를 조금 더 깊이 끌어안았다.

    “……아르밀라.”

    “흐윽, 네, 네…….”

    “괜찮다고 하지 않았던가?”

    훌쩍이던 아르밀라는 리카르도의 지적에 흠칫했다. 그녀는 울먹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리카르도는 말없이 아르밀라를 응시하다가 그녀에게 완벽히 제 몸을 겹쳤다.

    그 순간, 아르밀라의 비명이 길게 검은 밤을 갈랐다.

    * * *

    밤이 너무 길었다.

    너무 힘들었다.

    리카르도는 그녀를 안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아르밀라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안은 이후부터 이성의 끈을 놓은 것처럼 마구 탐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아르밀라의 몸 안에서 뜨거운 흥분의 불길이 피어올랐다.

    그가 자신을 품에 안을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온몸이 간지럽고 짜릿해져 왔다.

    이런 쾌락이, 진짜 초야구나.

    아르밀라는 낯선 감각에 놀라면서도 감탄했다.

    그리고 리카르도도 이 밤을 즐기고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흣!”

    리카르도는 좀처럼 초야를 끝내지 않았다.

    하지만 벌써 네 번이 넘지 않았나.

    이제 초야는 더 이상 밤이 아니었다. 검은 방이 새벽의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지 제법 되었다.

    그러니 리카르도와의 행위에 아르밀라가 지쳐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초반 두 번까지는 리카르도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를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행위가 거듭되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버거워졌다. 아르밀라는 자신을 빈틈없이 끌어안는 리카르도에게 사정했다.

    “제발, 그만…… 흣!”

    “이번까지만.”

    리카르도는 몇 번째인지도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아르밀라의 애원을 묵살했다.

    아르밀라는 힘없이 그의 아래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온몸에 넘실대는 쾌락에 몸부림쳤다.

    그렇게 두 사람의 초야는 다음 날 아침까지 길게 이어졌다.

    * * *

    챙그랑!

    “누가 결혼을 해?”

    두란테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그에게 소식을 전한 집사가 주인의 분노에 머리를 조아렸다.

    “비토레 대공께서…….”

    콰직!

    화를 못 이긴 두란테의 발길질이 집무실의 책상으로 향했다. 집사는 제게 불똥이 튀기 전에 재빨리 집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아달베르토가에서 살아남는 법을 진작에 터득한 자다운 행동이었다.

    “결국 그 계집이랑 그렇게 된 건가.”

    두란테는 책상을 내리치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는 레나토에서 보았던 아르밀라의 얼굴을 떠올렸다.

    대공이 산에서 주워 왔다는 계집.

    생긴 것이야 멀쩡했지만 그 안에 흐르는 피는 천하디천할 계집이다.

    거지일지, 무엇일지도 모르는 계집을 매일같이 끼고돈다더니 급기야 결혼까지 하다니.

    “이대로 있을 순 없지.”

    두란테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주먹을 쥐고서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리카르도는 모르겠지만 요즘 황제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 이럴 때일수록 그가 치고 올라와야 하는데. 계집한테 홀딱 넘어가서 결혼까지 해 버리다니.

    어떻게 해서든 그 결혼을 무효로 해야 한다. 그리고 리카르도의 옆자리에, 두란테의 딸을 데려다 놓아야만 한다.

    리카르도를 황제로 추존하고 나면 자신이 황후의 아버지가 되도록.

    이 얼마나 달콤한 권력인가.

    두란테는 입맛을 다셨다.

    리카르도는 발레리오와 달리 정치에 관심도 없고 성가신 외척도 없다.

    그러니 그만큼 적절한 인물이 없다.

    리카르도를 황위에 앉혀 두기만 하면 두란테는 제국을 손에 쥐고 주무를 수 있을 터.

    단, 그러기 위해선 리카르도가 두란테의 딸과 혼인해야만 한다. 그래야 리카르도를 옹립하는 게 그에게 득이 될 터이니.

    두란테는 철저하게 당사자들의 의사를 무시한 계획을 멋대로 세우고 있었다.

    그런 건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건 두란테가 얼마만큼의 권력과 얼마만큼의 부를 손에 거머쥘 수 있느냐일 뿐.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책상 위의 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채비를 해라. 황제 폐하를 알현하러 갈 것이니.”

    두란테는 재빠르게 등장한 집사에게 거만하게 명했다. 그의 얼굴에 불길한 기운의 미소가 번졌다.

    * * *

    아르밀라의 얼굴로 환한 아침 햇살이 쏟아졌다.

    날이 밝았다. 하지만 그녀는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온몸이 욱신거렸기 때문이다. 마치 간밤에 커다란 바윗돌에 짓눌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으…….”

    무심코 신음을 흘리던 아르밀라는 자신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형편없이 갈라진 목소리가 흡사 노파 같았다. 그녀는 혹시나 리카르도가 이 목소리를 들었나 싶어 반사적으로 옆을 보았다.

    그러나 아르밀라의 옆은 텅 비어 있었다.

    ‘먼저 나가셨구나.’

    아르밀라는 씁쓸한 표정으로 빈자리를 매만졌다. 온기 한 점 남지 않은 자리를 어루만지던 그녀의 심경이 더할 나위 없이 복잡했다.

    아르밀라는 대공비가 되었다.

    하지만 대공비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공비의 임무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귀족도 아닌 그녀가 잘해 나갈 수 있을까.

    그것을 가르쳐 줄 한 사람, 아르밀라의 남편은 무정하기 짝이 없었다. 넌지시 그녀가 물었을 때, 그는 ‘너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라고만 했다.

    그렇지만 말이 그렇지. 정말로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아르미라 님?”

    심란한 마음으로 방을 둘러보고 있던 아르밀라의 귀에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으, 응.”

    아르밀라가 이불로 황급히 몸을 가리자, 문이 열리고 순진한 소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헤헤, 아르미라 님.”

    물이 든 대야를 가지고 온 루체가 활짝 웃었다. 루체는 물을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침대로 걸어왔다. 장미유를 띄운 대야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아르미라 님이 깨어나는 거 기다리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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