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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홍차-70화 (완결) (70/70)
  • 특별 외전 6화

    곧바로 터미널로 가 고속버스를 탔다. 달리는 소리가 시끄러운 버스 안에서 멍하니 풍경을 봤다. 가슴이 조금 뛰었다.

    고속버스가 정차한 터미널은 작고 허름했다. 자판기 앞에서 기사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돌아보자 터미널 너머로 오래된 간판을 단 가게들이 보였고, 뜨거운 햇볕에 달구어진 아스팔트 도로가 하얗게 반짝였다.

    모자를 고쳐 쓰고 터미널 정문으로 나갔다. 정차된 두 대의 택시 중 앞에 있는 것에 올라탔다.

    “어디 가세요?”

    기사의 물음에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다.

    “선착장이요.”

    차가 좁은 길을 나아갔다. 얼마간 달렸을까. 창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한 손을 가슴 위에 얹었다. 아까부터 계속 가슴이 숨쉬기 곤란할 정도로 뛰었다.

    호흡을 고르다가 핸드폰을 꺼내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열었다. 장미 넝쿨 앞에 선 김누리의 사진이다. 보면 괜히 눈물이 나서 일부러 열어보지 않았는데.

    “아, 진짜 없기만 해봐.”

    힘없이 머리를 기대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배가 들어선 선착장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가를 때는 가슴이 조금 더 격하게 뛰었다. 햇볕이 부서져 반짝이는 물결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 들뜨는 것 같기도 했다. 알 수 없는 과거에 김누리도 이 배를 탔을까 생각하며 바다를 응시했다.

    선착장에 배가 멈췄다. 모자를 고쳐 쓰고 배에서 내렸다. 마음은 조급한데 처음 와본 곳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우선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 걸었다. 바다를 옆에 끼고 섬을 한 바퀴 도는 것보다 마을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집 사이사이를 걸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나이가 있었다. 또래로 보이는 애라도 있으면 혹시 김누리 아느냐고 묻겠는데, 어째 한 명을 못 만났다.

    “아, 더워.”

    골목을 나오자 슈퍼가 보인다.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저, 혹시.”

    거스름돈을 받으며 입을 떼자 슈퍼 주인이 부채질을 하며 눈을 올렸다.

    “제가 누구를 좀 찾고 있는데요. 제 또래 여자애고, 이 섬에 사는데.”

    팔락팔락, 부채질에 슈퍼 주인이 입고 있는 민소매 원피스가 흔들렸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걸음을 돌려 안쪽에 난 방으로 갔다.

    “이 섬에 사람이 한둘 사는 것도 아니고. 몰라요.”

    문턱에 걸터앉은 주인을 보다가 인사를 하고 슈퍼를 나왔다. 이제 막 정오가 지나 그런지 태양 빛이 강렬했다. 더위에 숨이 조금 막힐 정도였다.

    “선착장에 가서 물어보든가!”

    슈퍼 안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빼꼼 고개를 내민 주인이 부채를 흔들었다.

    “선착장으로 가보라고요!”

    빽, 소리를 지르는 게 왠지 그곳으로 안 가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 걸음을 뗐다. 선착장을 향해 걷는 길 옆으로 바다가 끝없이 이어졌다.

    파도치는 바다 위에 내려앉은 햇빛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밀려온 파도가 갯바위에서 하얗게 부서지고, 철썩이는 소리에 마음이 조금 설렜다. 누리가 머무는 공간의 일부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저, 여기 마을이 큰가요?”

    선착장에 서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겁나 작지요.”

    남자가 말뚝에 밧줄을 감으며 말했다.

    “아, 사람을 찾으려고 왔는데요. 혹시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남자가 흘긋 눈을 올려 나를 보더니, 저 앞을 턱짓했다.

    “저기 저 정자 가보시오. 여기 오래 산 노인들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소.”

    “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걸음을 돌렸다. 마을 초입에 정자가 보였다. 젊은 사람은 없고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다가가 말을 걸자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붙인 노인이 나를 돌아봤다.

    “사람을 찾으려고 하는데요.”

    “사람? 여기 마을이 작아서 내가 다 아는데. 누구 찾어?”

    “아…. 김누리라고. 열여덟 살이고요, 할머니랑 둘이 살고 있어요. 혹시 아세요?”

    노인이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 있는 다른 노인을 봤다.

    “자네 아는가?”

    “뭐라고?”

    “다시 설명해봐.”

    노인이 나를 보며 옆 사람을 가리켰다. 다시 말해보라는 뜻이었다.

    “할머니랑 둘이 살고 있는 여자애 혹시 아세요? 열여덟 살이고, 이름은 김누리인데요.”

    “뭐라고? 안 들려!”

    노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귀를 내밀었다.

    “누리요, 누리. 김누리! 키 요만해 가지고, 어린 여자애요. 몇 가구 없어서 물어보면 바로 알 거라던데?”

    “여기 마을에 사는 사람이 몇인데, 내가 다 알아?”

    노인이 버럭 화를 냈다. 순탄하게 흘러가나 했더니, 이렇게 또 길이 막히네.

    “저쪽에 가서 한번 물어봐.”

    처음 말을 걸었던 노인이 말했다.

    “어디요?”

    “저기, 저 선착장 사람들. 배 타고 드나드는 사람들 매일 보니까.”

    지금 거기서 여기를 안내받고 온 길이라는 걸 아마 노인은 모를 것이다.

    “아, 네. 감사합니다.”

    오늘 안에 김누리를 찾을 수 있을까.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

    그늘 하나 없이 부서지는 햇살에 바닷바람이 섞여 후덥지근했다. 모자를 벗자 머리칼에 바람이 스미며 조금 시원해진다. 하얀 구름이 듬성듬성 하늘을 채운 풍경을 바라봤다.

    바다의 수평선에 둘러싸인 것만 같은 이곳을 구석구석 뒤지고 다닐 생각에 더운 숨이 찼다. 햇빛에 금방 달구어진 머리를 쓸어 넘긴 뒤 모자를 고쳐 썼다.

    “아, 졸라 덥네. 진짜.”

    걸음을 선착장 쪽으로 돌렸다. 방송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마을회관의 위치나 그런 것들을 물을 생각이었다. 티셔츠를 잡아 팔랑팔랑 흔들며 걷는데 저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이쪽을 보며 서 있던 애가 다급하게 선 캡 챙을 내렸다. 얼마나 세게 챙을 쳤는지 가면을 쓴 것처럼 얼굴로 내려갔다.

    “어?”

    멈칫, 발이 섰다. 선 캡으로 얼굴을 가린 애가 어색한 발짓으로 몸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지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다.

    짧은 반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파 한 단을 안고 있었다. 곧게 뻗은 두 다리가 방향을 찾지 못하고 얼어 있는 게 보였다.

    저런 두 발을 본 적이 있다. 길바닥에 아이스크림을 쏟아붓고 서 있던 사람을.

    선 캡 뒤로 목덜미를 절반 덮은 머리카락이 둥그스름한 각을 잃고 반듯했다. 선착장으로 향하던 걸음을 돌려 그 애 앞에 섰다. 가슴이 미친 듯이 쿵쾅거린다. 호흡을 크게 하자 폐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숨이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검은색의 선 캡 챙을 톡톡 두드렸다.

    “여보세요.”

    파 한 단을 안은 두 팔이 더 꽉 조여드는 게 보였다. 그게 꼭 상대의 긴장을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김누리 씨.”

    “…….”

    “연락도 없이 사라지셔서 살아 있나 확인하러 왔는데요.”

    침묵이 흘렀다.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매미가 울고, 그 가운데서 나는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격하게 뛰는 심장에 손끝이 조금 저렸다. 이가 얼얼하게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확인한 게 없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상대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 애가 쓴 선 캡의 챙을 들어 올렸다. 검게 얼굴을 가리고 있던 챙이 올라가자 등 뒤로 내리쬐는 햇볕이 김누리의 얼굴로 쏟아졌다.

    하얗고 말간 얼굴이 바닥을 향해 있었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얼굴 좀 보여주면 안 될까.”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김누리의 동그란 눈동자를 마주치게 되면, 참지 못하고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바닥을 향해 있던 얼굴이 천천히 올라왔다. 고개를 든 김누리가, 나를 봤다. 동그란 두 눈이 별을 박은 것처럼 반짝인다.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다. 김누리가 울상을 하고서 입술을 꾹 물었다.

    “네가 드니까 파도 꽃 같다.”

    내 말에 김누리가 픽, 웃음을 터트리며 눈을 접었다. 고여 있던 눈물이 떨어졌다. 손을 올려 김누리의 눈가에 번진 눈물을 훔쳐 닦았다.

    “너는 왜 울어.”

    김누리가 말했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깊은 곳에서부터 감정이 요동쳤다. 좋은데, 너무 좋은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눈을 마주하는 순간이, 담담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순간이 너무 그리웠던 탓이다.

    “나보고 버리면 죽여 버린다고 할 때는 언제고, 나를 버려, 왜.”

    “내가 언제 너를 버렸어….”

    “버린 거지.”

    그 말을 뱉는데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우는 날이 많았다.

    이 방에 김누리가 다녀간 게 잘못이라고, 침대에 앉아 아령을 들었던 김누리를 탓했다. 망했다고, 내 기억은 다 망했다고 생각하며 울었다. 어디를 가도 김누리의 흔적이 묻어 있어서 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워할 수도 없어서 힘든 나날이었다.

    “임석영 우네.”

    “안 울어.”

    “우는데?”

    눈가를 벅벅 문질러 닦던 손을 내려 김누리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놨다. 아! 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누리를 끌어안았다. 작고 뜨거운 몸이 내 품에 쏙 들어온다.

    “이건 우는 것도 아니야. 너 그렇게 가고 나서는 밤마다 존나 울었어.”

    “…내가 뭐라고 밤마다 우냐.”

    김누리가 내 등을 토닥였다. 일정한 박자를 가지고 움직이는 손길에서 안정감이 왔다. 김누리의 어깨에 내 얼굴을 깊게 묻었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게 내리쬐는 햇볕 때문인지, 꼭 붙어 있는 누리의 몸 때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누리로 인해 뜨거워진 나 때문일 수도 있겠다. 분명한 건, 누리를 생각하면 할수록 자꾸 내 마음이 뜨거워진다는 거였다.

    바다를 등지고 선 지금, 내 바다는 김누리다. 나는 네 안에서 항해하고, 부서져도 네 안에서 부서질 거야. 이렇게 네 안에 콱 파묻혀 버리고 싶다.

    누리의 어깨를 더 꽉 안으며 눈물이 차오르는 눈을 꾹 눌렀다.

    나는 이제 절대로 김누리 너를 잃지 않을 거야.

    갯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시원하게 귓가를 울렸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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