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홍차-56화 (56/70)
  • 제56화

    임석영과 함께 집을 나서 선착장으로 향했다. 철썩철썩, 갯바위를 때리는 파도 소리가 시원하게 울려 퍼진다. 하늘이 푸르고 하얀 구름이 크게 덩어리 지어 피어올랐다.

    선착장으로 가기 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갔다. 언덕에 임석영과 나란히 앉았다. 무릎을 모으고 앉아 바다와 하늘이 닿아 있는 수평선을 보았다. 임석영은 배를 타고 저 너머로 사라지겠지.

    “그런데 너 나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빨리도 묻는다.”

    임석영을 처음 봤을 때에는 경황이 없어 묻지 못했고, 냉수 한 잔 주겠다며 집에 임석영과 함께 갔다가 할머니를 마주친 이후로는 그 질문을 새카맣게 잊어버려 묻지 못했다.

    “말하자면 길어. 그 고난과 역경을 말하려면 일주일은 잡아야 돼. 듣고 싶으면 일주일간 내 옆에 붙어 있어.”

    일주일씩이나? 헛웃음이 터졌다. 실없이 웃으며 고개를 돌리자 나를 보고 있던 임석영과 바로 눈이 마주쳤다.

    임석영의 뒤로 갈매기가 부지런히 날개를 움직이며 날아간다. 언덕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이마를 덮고 있던 임석영의 앞머리가 흐트러지듯 나부낀다.

    “누리야.”

    “응?”

    “학교… 다시 다니는 건 어때?”

    말없이 임석영을 보았다. 잠시 말이 멈춘 우리 사이로 파도 소리가 밀려들었다. 어디에서부터 밀려왔을지 모를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치며 하얗게 부서졌다.

    “네 이름으로.”

    “…….”

    “알아봤는데 복학할 수 있대.”

    임석영을 보다가, 시선을 발끝으로 떨어트렸다. 두 손으로 발목을 잡고 문질렀다.

    학교에 다니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다닐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뿐이다.

    “네가, 싫은 게 아니라면.”

    임석영이 말을 고르는 듯 망설인다.

    “네 나이에 할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임석영의 손이 발목을 문지르는 내 손 위에 겹쳐졌다. 고개를 돌려 임석영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가는 눈매에 동그란 눈동자. 임석영의 두 눈이 깊게만 느껴진다. 편평한 들판도, 한없이 큰 바다도, 광활한 하늘도 임석영의 두 눈에 담겨 있는 것만 같다.

    빤히 보고 있는데 임석영이 난데없이 얼굴을 조금 붉히며 말을 뱉는다.

    “너랑 같이 학교 다니고 싶기도 하고.”

    “대학교?”

    내 물음에 임석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가 평범하게 생각하는 대학은 정말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데. 임석영과 함께 있으면 희망이란 글자가 너무나도 섣부르게 온다.

    “네가 가고 싶지 않다면 상관없는데, 그냥 생각해 보라고.”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그런 미래를 상상해본 적 없을 뿐이다. 임석영과 함께 다니는 대학교라. 그 풍경이 막연하기만 했다. 막연한데,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들떴다.

    임석영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하더니, 바람에 날린 머리칼을 조심스레 집어 귀 뒤로 넘겨주었다.

    “머리 많이 길었다.”

    “…그치. 빨리 기는 것 같아.”

    머리를 쓸어 넘기며 귀 아래로 내려온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선착장으로 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임석영이 타야 할 배였다. 임석영과 나의 시선이 동시에 선착장으로 돌아간다.

    “배 왔네.”

    “여기 들어올 때는 더럽게 안 오더니. 나갈 때는 뭐 이렇게 빨리 와.”

    투덜거리던 임석영이 두 팔을 벌려 내 몸을 끌어안았다. 임석영의 어깨에 턱을 댄 채 가만히 있자 아쉬움이 밀려든다.

    “헤어지기 싫다.”

    임석영이 말했다. 같은 마음이었던 모양이다.

    “또 만나면 되지.”

    “이럴 때는 어, 나도, 라고 하는 거야.”

    “그런 게 어디 있어.”

    내 답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임석영이 장난스럽게 귀를 물었다가 놨다. 그러곤 작게 속삭였다.

    “또 올게, 김누리.”

    “응.”

    “벽에다가 임석영 이름 쓰면서 나 잊지 말고 있어.”

    어이없는 말에 입술을 터트리며 가볍게 웃었다.

    “어라, 웃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너 우리 집 와볼래? 내 방 벽에 네 이름밖에 없어.”

    그 말에는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웃었다.

    “진짜인데. 왜 웃어.”

    “웃기잖아. 벽에 내 이름 쓰지도 않았으면서. 거짓말 잘도 하네.”

    임석영이 내 뒤통수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나 가지 말까?”

    “뭐래. 집에 가야지.”

    “네가 하루 더 있다 가라고 하면 그럴 수 있는데.”

    “부모님이 걱정하셔.”

    “왜. 집에 안 와서?”

    “그렇지.”

    “그렇게 잘 아는 애가.”

    “…뭐?”

    “집에 온다는 네가 안 와서, 내가 네 집 앞에서 새벽까지 덜덜 떨었던 건 진짜 비밀이다. 알았어?”

    “…응.”

    “너는 내 걱정 안 했냐.”

    “했지.”

    선착장에서 임석영의 번호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아 자꾸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났다.

    그날의 밤, 그날의 바다. 모든 게 선명하다.

    “금방 또 올게.”

    “응.”

    “여기 꼭 있어.”

    임석영의 목소리가 낮고 다정하다.

    “응. 어디 안 가고 있을게.”

    꼭 안겨 있는 품이 따뜻했다. 벗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

    임석영이 가고 다음 날, 밭에 가려고 일어나 일 바지에 티셔츠, 남방을 걸쳐 입고 밀짚모자를 쓰는데 할머니가 평상복을 입고 나왔다.

    “어? 오늘 밭에 안 가?”

    내 물음에 할머니가 약수통을 들고 흔들었다.

    “물 받으러 갈 거야.”

    할머니와 뒷산을 올랐다. 약수통을 들고 가는 우리의 목적지는 뒷산 중턱에 있는 약수터였다. 산이 낮아 힘들지는 않았지만, 할머니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빨리 걷는 탓에 점점 숨이 찼다.

    “아, 할머니, 좀, 천천히 가면 안 돼?”

    할머니가 손뼉을 앞뒤로 짝짝 소리가 나게 부딪치며 씩씩하게 걸었다.

    “이게 뭐가 힘들다고 천천히 가자는 겨. 얼른얼른 와.”

    할머니가 발을 더 빨리 굴렸다. 믿을 수 없는 체력이다.

    약수통을 손에 들고 헉헉거리며 할머니의 뒤를 쫓았다. 나보다 몇 미터 먼저 나아간 할머니가 약수터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산 중턱에 올랐을 때 나는 이미 몸이 녹아내리다 못해 땅에 붙은 사람처럼 기어가는 모양새였다.

    “와, 죽을 거 같아.”

    약수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벤치에 드러누웠다. 할머니가 혀를 차며 나를 봤다.

    “이게 뭐가 힘들다고.”

    “힘들어. 완전 힘들어.”

    “약수나 채워.”

    벤치에서 일어난 할머니가 근처에 있는 나무로 걸음을 옮겼다. 나무기둥에 등을 붙이고 서더니 툭툭, 등을 부딪쳤다.

    약수통 뚜껑을 돌려 열고 약수터로 가 약수를 받았다. 약수가 타다닥, 소리를 내며 통을 때리더니 어느 정도 물이 차자 그 소리가 안 들렸다.

    뚜껑을 돌려 닫고 약수통을 두 손으로 잡아 올리는데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절로 얼굴이 찌푸려지고 윽, 하는 신음이 새어 나갔다.

    낑낑거리며 약수통을 들고 벤치로 걸어갔다. 으으윽, 하는 소리를 흘리며 벤치 위에 약수통을 올렸다. 물이 묻은 손바닥을 바지춤에 문질러 닦으며 할머니를 보았다.

    나무 기둥에 등을 부딪치고 있던 할머니가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그게 뭐가 무겁다고 그렇게 인상을 써.”

    “할머니, 완전 무거워.”

    할머니가 한 손으로 약수통을 번쩍 들었다. 너무나 가볍게 올라간 약수통에 눈이 동그래졌다. 내가 들 때만 해도 쌀 한 포대 느낌이었는데.

    “누리야, 이것뿐만이 아니다.”

    할머니가 약수통을 내려놓더니 갑자기 풍차 돌리기를 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굴러가는 할머니를 보며 벌어진 입을 손으로 가렸다.

    “하, 할머니!”

    혹여 어디 다치기라도 했을까 걱정이 앞서 달려가자 할머니가 안전하게 착지를 하며 손바닥을 털었다.

    “하, 할머니, 할머니 괜찮아?”

    험한 산에서 풍차 돌리기라니. 혹여 어디 생채기가 난 곳은 없는지 살폈으나, 할머니는 태연하게 손바닥에 묻은 흙을 털며 나를 봤다.

    “누리야, 할미가 이렇게 건강해. 내가 봤을 때는 너보다 더 건강한 것 같어.”

    “아, 아니… 아니 풍차, 풍차 이건 나도 돌릴 줄 알아.”

    할머니가 호탕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풍차를 돌리라는 말이 아녀.”

    돌멩이 자국이 남은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 채 눈을 올렸다. 할머니가 넌지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할미 걱정 말고 이제 네 공부 하면서 살아.”

    “…어?”

    “너를 위해서 살라고. 할미 말고.”

    “나를 위해서 살고 있어.”

    “학교 관둔 건 너를 위해서가 아니었잖어.”

    할머니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내 손 위로 다른 한 손을 겹쳐 올렸다. 할머니의 거친 손이 내 손등을 매만진다.

    “여기서 감자 재배하는 게 누리 네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닐 거 아니냐.”

    갑자기 목이 꽉 메었다. 울먹이자 할머니가 웃음을 터트린다.

    “울긴 왜 울어?”

    “…아, 안 울거든?”

    할머니가 손을 올려 내 눈가를 문질렀다. 눈가로 닿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떴다. 할머니가 웃음기 섞인 얼굴로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도련님 대신해서 학교에 다닌 것도 다 할미 때문이잖아. 함께 사는 집을 갖고 싶어서.”

    “…….”

    “너는 너무 어려. 누군가를 배려하면서만 살기에는 네가 너로 살아온 시간이 너무 없어. 아직은 아니야. 너무 이르게 뭔가를 포기하면, 그걸 후회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삶이 끝나는 날까지 후회로 남는 거야. 할미는, 누리 너에게 후회로 남고 싶지 않아.”

    “…할무니.”

    목이 꽉 메어 흘러나온 목소리가 불안정하게 떨렸다. 할머니가 엷게 웃으며 내 손을 잡는다.

    “나는 여기서 감자 팔아다가 비엠따블유 타고 다닐 거니까. 걱정 말고 너는 네 인생 살아.”

    울상이 되어 울먹이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방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건가.

    “뭘 탄다고?”

    “비엠따블유.”

    BMW. 할머니 지금 그거 말하는 거 맞나.

    “할머니 면허도 없잖아.”

    “까짓것 따면 되지.”

    “초보가 그렇게 비싼 차를 어떻게 몰아.”

    “내가 운전을 왜 해. 기사 써야지.”

    “감자 팔아서?”

    “그래, 이 녀석아.”

    할머니가 손을 놓고 걸어가더니 약수통을 탁탁 두드렸다.

    “그만 내려가자.”

    걸음을 뗀 할머니가 성큼성큼 멀어졌다. 멍하니 있다가 벤치로 가 약수통을 들고 끙, 소리를 내며 할머니를 뒤따라갔다. 앞서가는 할머니가 손바닥을 앞뒤로 부딪치며 공기가 좋다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

    [차조고등학교 입학을 축하합니다!]

    교문 앞에 서서 현수막을 올려다봤다. 개학날, 신입생을 환영하는 문구였다. 고개를 숙여 옷차림을 살폈다. 회색 치마에 흰 셔츠, 회색 조끼, 다홍색 타이에 진회색 재킷. 한쪽 가슴에는 학교의 심벌마크가 금색 자수로 놓여 있다.

    손을 내려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다시 교복을 입게 될 줄은 몰랐는데.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교문을 들어서기 전,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석영원한사랑: 1학년 애들이 까불면 가만두지 마 특히 찝쩍거리는 애들은 더더욱 가만두면 안 된다 초장에 잡아야 돼]

    내 학교가 남녀공학이라는 사실에 공학은 없어져야 돼, 하고 혼자서 중얼거리던 임석영이었다. 뭐가 그렇게 걱정인지 아침부터 이 난리다.

    임석영의 메시지를 확인했는데도 새로 들어온 메시지가 많았다. 대화창을 나가 목록을 보았다. 너무 자주 울려서 알람을 꺼둔 임석영, 김찬영, 남윤수의 대화방에 읽지 않은 메시지가 100개가 넘었다.

    [남윤수: 오늘 김누리 학교 가는 날 아니냐]

    [김찬영: 너도 가는 날이거든]

    [남윤수: 가고 있거든 ㅠㅠ????? 버스에 사람 개 많음]

    [김찬영: 아무튼 다시 학교 다니게 된 거 축하해 누리야]

    [남윤수: 으 그게 무슨 축하할 일이냐 3년을 다녀야 되는데]

    [남윤수: 김누리 불행 시작]

    [남윤수: 중간고사랑 기말고사를 몇 번 더 봐야 되는 거냐]

    [석영원한사랑: 남윤수 저거 이 방에서 어떻게 내쫓을 방법 없냐]

    [석영원한사랑: 아 나랑 누리가 나가면 되겠군]

    [석영원한사랑: 나가자 누리야]

    [김찬영: 왜… 나가지 마]

    [남윤수: 나가봐라 다시 만들 거다]

    [남윤수: 전화하지 마 이 새끼야]

    [남윤수: 거절]

    [남윤수: 계속 거절할 거다]

    [남윤수: 카톡 좀 하게 전화 걸지 말라고]

    들어온 메시지를 읽다가 말았다.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내용이었다. 남윤수가 이모티콘을 남발하고, 임석영이 반격하고, 어느 순간부터 김찬영은 반응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걸음을 뗐다.

    내 나이 열아홉, 고등학생 1학년이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