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홍차-53화 (53/70)
  • 제53화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온 건 보라색으로 물들던 하늘이 완전한 어둠에 잠긴 후였다. 말없이 집으로 들어간 할머니는 방 안을 살펴보더니 구석에 박혀 있는 이민 가방을 꺼냈다.

    “할머니, 뭐 하려고?”

    할머니가 무표정한 얼굴로 가방 지퍼를 열고 그 안에 내 물건을 쓸어 담기 시작한다. 거침없는 손짓에 당황한 채 서서 보기만 하다가 달려가 할머니의 팔을 잡았다.

    “할머니, 뭐 하는 거야? 어? 갑자기 짐은 왜.”

    할머니의 손짓이 멈췄다.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나를 본다. 실망과 분노가 섞인 표정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회장님 댁 일 관뒀다.”

    “…어?”

    “개 같은 집구석. 감히 누구 손녀한테.”

    할머니가 심한 욕을 삼키는 듯 입술을 굳게 다물고 숨을 내뱉었다. 멈췄던 손을 움직여 다시 물건을 옮겨 담으며 입을 연다.

    “같이 내려가.”

    “어디를 가…?”

    “어디긴 어디야. 집에 가지.”

    “여기가 내 집이잖아.”

    내 말에 할머니가 서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여기 남아 있고 싶으냐, 그런 얼굴이었다.

    할머니는 홍 회장 집 내부에 있는 관리인 숙소에서 살았으니, 일을 그만뒀다는 건 거처를 잃었다는 말과 같았다. 홍차연 대신 학교생활을 몇 달을 했는데, 홍차연 모친이 준다는 집은 어떻게 된 건지, 이 와중에 그게 가장 궁금하고 걱정됐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전원을 아무리 눌러도 핸드폰이 안 켜졌다. 임석영과 함께 고장 나지 말라고 기도도 했는데, 안 통한 모양이다.

    “누리야.”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가슴속으로 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에 목이 메었다.

    “나는 못 가. 할머니. 여기가 내 집이고 친구들도 다 여기 있어.”

    “어떤 친구. 도련님 흉내 내면서 만난 친구들?”

    “…아니야. 내 친구들이야.”

    “걔들은 네가 누구인지도 모르잖아!”

    “아, 아니야. 흐으, 아니라고.”

    “정신 차려.”

    울음에 목이 꽉 막혀 터질 것만 같다.

    “사모님이 너에게 약속했다는 그 집은, 받아서는 안 되는 거야.”

    할머니의 말에 고개를 떨어트렸다. 내가 사모님과 약속한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집은 몸과 같은 거다. 네가 깃드는 곳이야. 그런 불순한 의도로 넘겨받은 집에 네가 터 잡고 살게 할 수 없다.”

    “…할머니.”

    그건 그냥 집이 아니야. 여기저기서 얻어터지고 버티면서 기다린 집이야. 그 집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웠단 말이야.

    입술을 꾹 물고 울먹이자 할머니가 내 손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회장님 댁은 지금 난장판이 됐어. 누구 돈으로 누구 집을 사주냐며. 그 집에서 아직 성인이 되지도 않은 너를 두려워하기나 할 것 같어? 안중에도 없다고. 할미는 네가 그 사람들을 마주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져.”

    할머니의 목소리가 힘없이 떨린다.

    “할미랑 같이 시골로 가자.”

    “…….”

    “길을 잘못 들었으면 돌아서 나와야지.”

    할머니의 거친 피부가 손등을 따갑게 쓸었다.

    “아무것도 욕심내지 말고 우선 가. 할미랑 같이 가. 나중 일은 그다음에 생각하자.”

    할머니의 손이 다시 분주히 움직였다. 내 옷가지를 가방 안에 넣는 할머니의 얼굴이 단호했다.

    문 앞에서 말없이 기다리던 재민이 반도 못 채운 가방을 대신해서 들었다.

    “저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가방을 든 재민이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대충 집을 훑은 할머니가 부동산에는 자신이 말해 놓겠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해가 넘어간 하늘이 어두웠다. 옥상을 밝히는 전구로 날벌레들이 모여들었다. 은은하게 흩어지는 빛 속에서 우울한 얼굴로 할머니를 보았다.

    “꼭 가야 돼?”

    나를 보는 할머니의 얼굴이 엄해졌다. 시선을 떨어트리고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친구한테 인사도 못 했어. 인사만 하고 올게. 인사만. 잠깐만 보고 오는 것도 안 돼? 어?”

    말없이 나를 보던 할머니가 내 손목을 잡는다.

    “나중에. 나중에 해. 심장이 떨려서 여기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

    할머니가 가슴을 두드리며 한숨을 뱉었다.

    “오늘 보기로 했단 말이야…. 기다릴 거야, 분명.”

    “왜 너를 기다리는 할미 생각은 안 해….”

    “…….”

    “도저히, 지금 여기 있을 수가 없단 말이야.”

    할머니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래서 더 이상 어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걸음을 돌린 할머니가 손목을 잡아당기며 계단으로 향한다. 할머니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는데 얼굴이 점점 울상이 됐다.

    임석영 생각에 가슴이 뛰다가도, 앞에 선 할머니를 보면 마음이 낮게 꺼졌다. 할머니도 임석영도 내게 너무 소중해서, 마음이 자꾸 고장 난 시소처럼 기울었다.

    할머니가 먼저 재민의 차에 올라탔다. 문 앞에 서서 망설이고 있는데, 창문 너머로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한 번 터진 울음이 좀처럼 멈추지 않는지, 할머니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울었다. 그 모습을 차 밖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홍 회장의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할머니가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홍 회장이 할머니에게 모진 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원래 남의 기분 따위 생각 안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할머니가 그 사람들 앞에서 받았을 모욕을 생각하자 가슴이 꽉 막혀왔다.

    좀처럼 발이 안 떨어졌다. 할머니를 보면서도 창문으로 임석영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그럴수록 내가 참 못된 애처럼 느껴졌다.

    밖에 서서 기다리던 재민이 내 어깨를 두드린다. 고개를 돌리고 보자 조수석 문을 열어준다.

    “탁수 사장님한테는 내가 잘 말할게. 곧 방학이니까 내가 대신 해도 되고.”

    재민이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다시 와서 만날 수 있겠지?”

    석영이를 떠올리며 한 말이었다. 주어는 없었지만 아마 재민도 그 뜻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아까 그 친구?”

    재민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재민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다.

    “당연히 만날 수 있지.”

    재민이 말했다. 그 말에 이상하게 조금 안심이 됐다. 정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탓일지도 모른다.

    힘없이 웃은 뒤 조수석에 탔다. 탁, 소리를 내며 차 문이 닫히고, 차체를 돌아온 재민이 운전석에 올라탔다.

    나 이렇게 가도 되는 건가.

    다리 위에 올린 가방을 꼭 쥐었다. 뜬금없이 나를 향해 이 가방을 던져 날리던 임석영이 떠올랐다. 그날 받은 건 어쩌면 가방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느리게 나아간 차에 점점 속도가 붙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밤풍경을 보는데 마음이 좀처럼 진정이 안 됐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어두운 밤풍경 속에서, 임석영에 대한 생각이 하늘에 뜬 달처럼 멀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따라왔다. 석영이가 너무 보고 싶다고, 어두운 풍경을 보며 계속 생각했다.

    *

    재민이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걸 할머니가 극구 사양했다. 결국 터미널에서 내려 재민과 인사를 나눴다. 바리바리 싸 온 짐을 버스 트렁크에 넣고 할머니와 버스에 올라탔다. 목적지로 가는 막차였다.

    할머니의 고향은 이리도라는 섬이다. 동해 바다 어딘가에 점 찍어진 작은 섬. 할머니가 살던 집은 사람이 살지 않은 지 몇 달이 됐다고 했다. 육지에서 섬으로 넘어온 여자가 월세를 내고 살다가 올해 초 이직을 하면서 나갔단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었지만 값이 너무 싸서 할머니는 그 집을 팔지도 못하고 그냥 가지고 있었다. 부동산에 내놔도 사는 사람이 없다나.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이 그곳이다.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렸다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여정이었다. 야반도주를 하는 심경이 이러할까. 새카만 밤이 먹먹하기만 했다.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항구로 왔다. 할머니는 오는 내내 울더니 지쳤는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첫 배를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 있다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전원 버튼을 꾹 눌렀으나 액정에 불빛 하나 스치지 않는다.

    검은 액정에 내 얼굴이 비쳤다. 아무런 표정도 없는데, 그 낯이 괜히 우울하게 보였다.

    여객 터미널 안으로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밀려든다. 켜지지 않은 핸드폰이 열어볼 수 없는 편지처럼 느껴졌다. 차갑고 딱딱한 그 물건을 손에 꼭 쥐고서 여객 터미널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문득 임석영의 번호라도 외우고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객 터미널 구석에 있는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넣고 번호를 고민했다. 자신 있게 누른 번호는 010이 전부였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번호를 눌러보았다. 정확하지 않다는 걸 알았으나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다.

    ―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묵직한 여자 목소리가 넘어왔다.

    “…혹시, 석영이 번호 맞나요?”

    ― 아닙니다.

    뚝, 전화가 끊겼다.

    주머니를 뒤져 동전 하나를 더 넣었다. 아까 눌렀던 번호에서 뒷자리의 번호 하나를 바꾸어 눌렀다.

    ― 네. 김민우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넘어오고, 모르는 이름에 수화기를 잡은 채 고개를 떨어트렸다.

    “죄송합니다. 전화를 잘못 걸었어요.”

    ― 네. 알겠습니다.

    짧은 통화가 끝이 났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동전이 하나 잡혔다. 주머니에 남은 동전의 전부였다. 동전을 꺼내 투입구에 넣었다. 망설이다가 내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 전원이 꺼져 있어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가오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삐, 하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임석영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면 이런 소리를 들었겠구나. 아무 소리가 안 들리는 수화기를 붙잡고 알 수 없는 그 너머를 상상했다. 나와 같은 음성을 들었을 임석영을 떠올리며.

    “석영아….”

    전할 수 없는 말인 줄 알면서도.

    “나 오늘 못 가.”

    부디 전해지기를 바라며 말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어렴풋이 떠오른 숫자들을 조합해볼 수 없을 정도로 기억이 불확실했다. 내가 얼마나 그런 것들에 무관심했는지, 임석영에 대해 아는 게 없는지 실감이 났다.

    “오늘따라 밤이 기네.”

    해가 뜨지 않는 밤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문득 임석영은 어떤 밤을 보내고 있을지 걱정이 됐다.

    같은 하늘을 보고 있으려나. 아파트 주변의 풍경이 하나씩 떠올랐다. 아늑하게만 느껴지는 그 풍경이 내가 앉아 있는 여객 터미널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된 게 홍차연의 명찰을 떼자마자 나를 품은 배경이 바뀌었다.

    맞아. 항상 이랬는데.

    옥탑에서 듣던 사람들의 싸우는 소리, 지저분하게 얽힌 전신줄, 무심코 바라본 창밖에서 마주치는 시선들.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보았다. 불편한 자세로 몸을 웅크린 채 자고 있다. 할머니가 어디에 있는지만 알았지, 그곳에서 어떤 풍경을 보는가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서 있는 곳, 그 위치에서 보는 것, 보고 느끼는 것, 그러면서 어떤 심정이 되는지.

    고개를 숙이고 무릎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은 나의 두 손을 보았다. 버스를 타고 오는 길, 불안한 마음에 자꾸만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더니 손톱 주변 껍질이 일어나 있었다. 거스러미를 잡아 툭 떼어내자 피가 비친다.

    생각해보면 임석영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임석영의 시야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담기는지. 걔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좋아하는지.

    “집으로 올 거지?”

    임석영이 했던 마지막 말이 이명처럼 남았다. 집, 집이라는 한 글자에 너무나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걸음을 옮겨 창문 앞에 섰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검기만 하다. 어둠의 경계에서 사라져버린 바다의 수평선을 찾다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를 내려다보는 하늘이 너무 커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얼마나 많은 일들에 무력한지 깨닫게 된다.

    우리는 아직 어리고, 덜 자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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