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잔잔한 노래를 부른 건 우리 반뿐이었다. 대부분 랩을 하거나 춤을 췄다.
학교 부숴! 세상 부숴! 돈 빼고 다 좆까! 뭐 이런 식의 가사를 무대 위에서 부르는 학생들을 보며 선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손에 손잡고’를 부를 때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흔들던 5반 담임은 자기 반 아이들이 욕이 섞인 랩을 할 때 귀를 막았다. 그래서일까, 우리 반이 장기자랑 일등을 했다.
이기는 거 좋아하는 반장은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상품으로 도미노피자 쿠폰을 받았다. 쿠폰을 받아 온 반장이 내게 와 손바닥을 내밀었다. 멀뚱히 그 손을 보다가 짝, 소리가 나게 쳤다.
장기자랑이 끝난 뒤에는 뜬금없이 우울한 노래를 크게 틀고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마이크를 잡은 국사가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여러분의 집에 계신 부모님은! 여러분의 빈 방을 보며! 여러분을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구슬픈 노래에 가족 이야기가 더해지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미친 뭐냐, 하며 웃는 아이들도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슬리퍼 밖으로 튀어나온 발가락을 멍하니 보는데 등으로 손가락이 닿았다. 점을 찍은 듯 닿은 손가락이 글자로 이어졌다. 쭉쭉 이어지는 직선과 곡선을 느끼며 글자를 가늠했다.
울지 마.
가늠해본 글자는 그거였다. 고개를 숙인 채 뒤를 보았다. 분명 선생이 모두 눈을 감으라고 했는데, 눈을 뜬 임석영이 나를 보고 있었다.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렸다. 안 울어. 그렇게 말하자 임석영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모님에게 잘하자, 그런 메시지를 끝으로 레크리에이션이 끝났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저편에서 남윤수와 김찬영이 손을 흔들며 걸어왔다.
“야, 너 머리가 왜 그래?”
장기자랑에 쓰려다가 만 건지, 남윤수가 징그러운 모양새로 가발을 쓰고 있었다.
“나 어울려?”
“당장 벗어. 안 그러면 주먹 나간다.”
남윤수가 어깨 아래로 늘어진 머리카락을 넘기며 장발이나 해볼까, 하고 말했다.
“아니.”
김찬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단호한 거절에 남윤수가 입술을 삐죽였다.
둥그렇게 넷이 마주 보고 섰다. 아이들이 미련 없이 퇴장한 탓에 무대 앞이 한산했다. 가발을 쓴 남윤수의 얼굴이 조금은 우스워서 웃는 낯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데, 남윤수가 가발을 잡아 내리더니 갑자기 내 머리에 씌웠다.
손을 올려 쳐내려는데 남윤수가 한발 더 빨랐다. 앞에 선 남윤수의 눈이 동그래진다.
“헐?”
갑자기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내려온 느낌에 순간 얼었다. 김찬영과 눈이 마주쳤다가 임석영과 눈이 마주쳤다. 놀란 얼굴을 한 임석영이 늘어진 가발의 머리카락을 낚아채 갔다. 그 바람에 훅, 바람을 일으키며 가발이 벗겨졌다.
“야, 너, 누가, 누가 맘대로.”
임석영이 말을 더듬으며 손에 든 가발을 남윤수의 품으로 던졌다. 남윤수가 두 손으로 가발을 받은 채 동그랗게 뜬 눈을 깜박였다.
“와, 차연아. 너 머리 길러봐.”
“꺼져. 아무 말도 하지 마, 너.”
남윤수가 내게 말하고, 임석영이 남윤수에게 말했다.
“왜 아무 말도 하지 말래?”
“하지 마. 아무 말도.”
“아니, 야 찬영아, 너도 봤지? 홍차연 장발 개 잘 어울려!”
남윤수가 팔꿈치로 김찬영을 툭툭 쳤다. 김찬영이 멍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네가 쓴 것보다 낫긴 하다. 가자.”
김찬영이 걸음을 돌려 나아갔다.
“뭐야. 왜 다들 나를 무시하는 거 같지? 어엉?! 야, 김찬영 같이 가!”
남윤수가 가발을 흔들며 김찬영을 따라갔다. 짧은 시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멍하니 멀어지는 둘의 모습을 보다가 옆에 선 임석영을 올려다봤다.
“어울렸어?”
남윤수의 반응이 꽤 폭발적인 듯해 얼마나 괜찮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주먹을 쥐고 선 임석영이 바닥을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다.
왜 이러지. 내 말도 못 들은 것 같아 임석영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야.”
“…어? 어.”
임석영이 뒤늦게 반응을 보이더니 제 뺨을 감싸며 한 걸음 물러났다.
“하, 미친.”
“미친놈이라고?”
“아, 아니. 너한테 욕한 거 아니야.”
왜 저래.
임석영이 뺨을 감싼 손을 쭉 내려 얼굴을 늘어트렸다. 그러더니 흘긋 눈을 돌려 나를 본다.
“너….”
“어?”
“너무 예쁘다….”
손가락을 움직여 입을 가리더니 먼저 등을 돌리고 가버린다.
“나만 봐야 되는데. 남윤수 개새끼.”
2박 3일 일정이 끝이 났다. 오후가 되어서야 학교에 도착했다. 피곤한 탓에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 앞에서 담임이 인원수를 파악했고 종례를 했다.
임석영과 함께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나란히 앉아 이어폰을 나눠 꼈다. 내 엠피스리로 음악을 듣는데 이지연의 ‘난 사랑을 아직 몰라’가 나왔다. 음악을 듣는 임석영이 음? 으으음? 하더니 눈을 찌푸리고 나를 봤다.
“나는 사랑을 아직 몰라.”
임석영이 노래 가사를 말하듯 읊었다.
“왜?”
“이게 노래 가사였어?”
“응?”
무슨 말이지. 말을 조금 더 제대로 해줄래.
임석영이 허, 하고 헛숨을 뱉더니 세상에, 하며 이마를 짚었다. 머리를 쓸어 넘기고 혼자서 와, 하는 소리를 뱉더니 갑자기 두 손을 올려 내 뺨을 꼬집었다.
“어, 모, 모야.”
뺨이 늘어나 발음이 어눌하게 흘러나갔다.
“이게 노래였어. 나는 그것도 모르고.”
“으어?”
“진짜 기다렸는데.”
“어어?”
임석영의 두 손에 뺨이 잡힌 채 눈을 찌푸렸다.
“그래서 알아 몰라.”
“므얼?”
“사랑.”
아니, 갑자기 무슨 사랑이냐. 고개가 안 돌아가 눈동자를 굴렸다. 다행히 주위에 학교 애들은 없었는데, 옆에 앉은 할머니가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야, 이그, 놔줄래.”
손을 올려 임석영의 손가락을 잡았다. 뺨에서 떨어트리려는데 임석영이 손에 힘을 주고 안 놨다.
“따라 해봐.”
얼굴을 찌푸리고 임석영을 봤다. 임석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연다.
“석영아.”
“…….”
“따라 해봐.”
콧김을 뿜으며 따라 했다.
“석영아.”
임석영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사랑해.”
“…….”
임석영이 내 얼굴을 작게 흔들며 재촉했다. 가슴이 쿵 뛰었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시선을 돌렸다.
“어어, 안 따라 하지.”
“…….”
“어어?”
“석영아.”
임석영이 기대하는 얼굴로 나를 봤다.
“…사.”
용기를 쥐어 짜보았지만 도저히 남은 두 글자를 입 밖으로 뱉을 수 없어 다른 소리를 했다.
“죽을 사….”
녀석의 얼굴이 굳는다.
“사람 인….”
“…….”
손에 힘을 주고 임석영의 손을 잡아 떼어냈다.
“그 말은 내가 말하고 싶을 때 할 거야.”
임석영이 아쉽다는 얼굴로 나를 본다. 뾰로통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가, 순간 웃음이 터져 픽 웃었다. 이어폰을 꽂은 귀에서 여전히 이지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
아침부터 뭔가 이상했다.
교복 셔츠를 입고 단추를 끼우는데 배꼽 부근에 있는 단추 하나가 뚝 떨어져 나갔다. 너덜너덜하게 튀어나온 실밥을 보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단추를 주웠다. 시간이 없어 단추는 학교에 와서 꿰맸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바느질을 하는 나를 임석영이 턱을 괴고 쳐다봤다.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왔을 때 의자를 뒤로 빼다가 의자 다리에 정강이가 부딪쳐 멍이 들었다. 5교시 수업 도중 교과서를 넘기다가 손이 베었다.
오늘 진짜 왜 이러지. 아무리 생각해도 재수가 너무 없었다. 오늘의 운세라도 봐볼까 싶어 핸드폰을 꺼냈다. 인터넷 검색창에 오늘의 운세, 다섯 글자를 입력했을 뿐인데 핸드폰이 개수대로 떨어졌다. 임석영이 수도 레버를 돌리고 콸콸 쏟아지는 물에 손을 씻고 있을 때였다.
“뭐야!”
녀석이 다급하게 수도 레버를 잠갔지만 졸졸졸 물이 늦게 빠지는 개수대에 핸드폰이 반신욕을 하는 것처럼 몸을 담그고 있었다. 임석영이 젖은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제 교복에 문질러 닦았다.
“우선 전원을 꺼야 돼.”
버튼을 꾹 눌러 핸드폰을 종료시켰다. 꼼꼼하게 물기를 닦아낸 핸드폰을 울상이 된 내 손에 꼭 쥐여주었다.
“…멀쩡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임석영과 함께 핸드폰을 잡은 채 짧은 시간 기도를 했다. 물 먹은 핸드폰이 제발 고장 나지 않게 해달라고.
수학여행 이후로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줄어들었다. 반 아이들이 임석영과 내 이야기로 수군거리는 다른 반 애들을 진압하고 다니기도 했고, 수행 평가 기간이라 다들 바빠진 탓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소문이 잦아들었다. 신기하게도 더 이상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짧은 기도를 마치고, 임석영과 함께 운동장을 걸어 나갔다.
7교시 수업이 시작됐다. 교과서 여백에 그림을 그렸다. 그냥 동그라미 안에 눈 두 개 찍고 그 아래 선을 짧게 그었더니 사람 얼굴처럼 보였다. 그게 꼭 임석영 같아 혼자 웃었다.
낙서를 하고 있는데 책상 위로 쪽지가 날아왔다. 고개를 돌리자 임석영이 손에 든 연필을 돌리며 책상 위에 둔 쪽지를 눈짓했다. 반듯하게 접혀 있는 쪽지를 펼쳤다.
내일 우리 집 와
집, 우리 집. 그러니까, 임석영 집. 집이란 글자를 빤히 보다가 고개를 돌려 임석영을 봤다.
안 가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기분이 묘했다. 임석영이 손가락 사이에 연필을 끼우고 턱을 괸 채 나를 봤다. 그러곤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렸다. 적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연필을 쥐고 답장을 적었다.
왜?
접힌 자국을 따라 반으로 접은 쪽지를 임석영의 책상으로 넘기고, 얼마 안 있어 쪽지가 다시 내 책상으로 넘어왔다.
아빠 출장 엄마 여행
그러니까, 이것은 임석영 집이 빈다는 소리. 연필을 쥐고 쪽지를 가만 보다가 답을 적었다.
빈 집에서 뭐 하게….
쪽지를 확인한 임석영이 턱을 괸 채 피식 웃었다.
임석영이 웃는 낯을 하고서 답장을 적는 모습을 곁눈질로 보고 있는데 누군가 교실 앞문을 두드렸다. 똑똑, 하는 소리에 아이들도 수업 중인 선생도 모두 고개를 들었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교실 앞문이 열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이 반에 홍차연 학생 있나요?”
홍차연 이름에 문으로 향해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린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찾는 사람을 보았다.
“아버님이 오셔서, 잠깐만 밖으로….”
“아, 네. 차연이 나가봐라.”
수업 중이던 선생이 나를 보며 말했다. 연필을 쥔 손에 순간 땀이 쫙 배었다.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버지라니. 대체 무슨. 나를 보고 서 있는 선생을 보다가 옆을 보았다. 임석영이 의아한 얼굴로 쪽지를 손에 든 채 작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모르겠는데.”
“전학 그거야?”
글쎄.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전학 절차라면 다행이지만, 그 일이라면 아마 홍차연의 모친이 진행할 것이다. 홍 회장 몰래 이루어진 계약이니까. 다른 누가 홍차연의 부친 행세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이 시간에 나를 찾는 거지.
손에 밴 땀을 바지춤에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이 다시 수업을 시작했고, 아이들의 시선이 교과서로 향했다.
임석영만이 교실 뒷문을 열고 나가는 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봤다. 문을 지날 때 임석영이 손을 뻗어 내 손목을 잡았다. 내 불안을 읽기라도 했는지 손목을 잡은 채 내 얼굴을 응시했다.
별일이야 있을까. 엷게 웃은 뒤 걸음을 뗐다.
나를 찾아온 선생을 따라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창가 쪽에 검은색 슈트를 빼입은 남자 두 명이 보인다.
“어….”
순간 사색이 되어 다리에 힘이 빠져 넘어질 뻔했다. 한 명은 홍 회장이고, 한 명은 홍 회장의 비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