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홍차-42화 (42/70)

제42화

“잠깐 어깨 좀 잡을게.”

어정쩡하게 자세를 잡던 김찬영이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 위에 손을 조심스레 올렸다. 뒤로 내려앉는 무게가 느껴졌다. 배달 오토바이에 철가방만 태워봤지, 사람을 태운 것은 처음이다.

“가, 갈게.”

이게 뭐라고 괜히 긴장이 되네.

출발하려다 말고 뒤를 살폈다. 김찬영이 뒤에 앉기는 앉았는데 어디를 잡고 있는 느낌이 안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찬영의 두 손이 갈 곳을 못 찾고 허공에 떠 있다.

“그러고 가게?”

김찬영이 멀뚱히 나를 본다.

“그럼?”

“아니, 손 그러고 갈 거야? 어디 안 잡아?”

잠시 고민하는 듯 주위를 살핀 김찬영이 두 손을 제 허벅지 위에 올린다. 나도 모르게 허, 하고 웃었다. 커브 돌다가 날아갈 일 있나.

“내 옷 잡아.”

“어?”

“옷, 여기 잡으라고.”

손을 뒤로 뻗어 허리 부근의 옷을 잡아 흔들었다.

“그냥 가면 안 돼?”

“보험 많이 들었으면 그렇게 가.”

“…….”

김찬영이 조용히 옷자락을 잡았다. 그러더니 뒤에서 넌지시 말했다.

“너 임석영이랑 말투가 되게 비슷해졌다.”

그 말에 순간 당황했다. 아, 아니, 아닐걸? 안 그럴걸? 하고 말을 흐리며 출발했다.

쌩, 하고 도로를 가로지르는 우리에게로 바람이 들이닥쳤다. 파다다닥, 소리를 내며 옷자락이 펄럭거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갑자기 옷이 훅 뒤로 당겨지는 느낌에 눈을 내렸다. 뒤에서 김찬영이 힘주어 잡아당기는지, 옷이 배에 붙다 못해 파고들었다.

신호에 걸려 정지했다. 뒤를 돌아보자 김찬영이 눈물을 훔쳐 닦다 멈칫한다. 그러곤 그렁그렁 눈물을 매단 채 말한다.

“바람이, 자꾸 눈에 들어가서.”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고개를 돌려 신호등을 보았다.

“천천히 좀 달려.”

뒤에서 김찬영이 말했다. 아직 적신호에 머물러 있는 신호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리고 그냥 허리 잡아도 돼.”

“아니야. 괜찮아.”

신호가 바뀌었다. 옷자락을 구명줄처럼 쥐어 잡고 있는 김찬영의 손을 잡아 앞으로 당겼다. 그러곤 바로 출발했다.

탁수반점 앞에서 오토바이를 세웠다. 헬멧에 바이저가 안 달려 있어 바람을 한껏 맞은 김찬영이 촉촉하게 젖은 눈을 하고 헬멧을 돌려줬다.

“여기서 기다릴게.”

헬멧을 받아 들고 김찬영을 보았다. 생채기를 달고 있으니 괜히 마음이 짠했다. 왜 김찬영만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은지 알 수가 없다.

“들어와.”

의자 안에 헬멧을 넣고 걸음을 돌렸다. 김찬영이 아니, 나는, 하고 말했지만 다 듣지 않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공간이 바뀌며 김찬영의 음성이 잘려 나갔다.

철가방을 놓고 주방으로 뛰어 들어가 사장님! 제 이름 부르지 마세요! 아셨죠? 네? 내 이름 부르지 마요! 하고 사장님의 입을 단속했다.

“뭐라는 거야, 갑자기. 네 사장 잠깐 은행 갔다 올 거니까 주문 오면 전화나 해, 인마.”

자동차 키를 챙겨 든 사장님이 코를 꼬집고는 가게를 나섰다. 가게 문이 한 번 열렸다가 닫혔다. 김찬영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려는 건가.

연고가 어디 있더라. 서랍 안에 든 물건을 뒤적이고 있을 때 가게 문이 열렸다. 김찬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조금 난감하다는 듯 나를 보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자, 여기.”

입구 앞에 어색하게 서서 가게 내부를 둘러보는 김찬영에게 연고를 건넸다. 김찬영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너 얼굴 말이야. 덧나기 전에 바르라고.”

“아.”

의중을 파악했는지 김찬영이 고개를 슬쩍 내리며 연고를 받았다. 연고 뚜껑을 돌돌 돌려 열다가 흘긋 눈을 올려 나를 본다. 제 모습을 정면으로 보고 있는 게 싫었는지 옆으로 몸을 틀고 손가락 끝에 연고를 짰다.

연고를 덜어낸 손가락을 굽히지 않은 채 뚜껑을 돌려 닫은 김찬영이 조심스레 제 얼굴로 손가락을 올렸다. 그러더니 왼쪽, 오른쪽을 오가며 머뭇거렸다. 상처의 위치를 모르는 것 같다.

“여기.”

손을 올려 내 오른쪽 뺨을 찍었다. 마주 보고 있어 위치에 대한 감을 잠시 잃었는지, 김찬영의 손이 왼쪽으로 옮겨 갔다.

“아, 아니.”

거리를 두고 서서 보다가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김찬영의 손목을 잡았다. 김찬영의 눈이 동그래졌다.

“거기가 아니고, 여기야.”

왼쪽으로 올라간 김찬영의 손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고마워.”

김찬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하고 답하며 목을 쓸었다. 손목 잡은 게 별것도 아닌데, 괜히 어색한 공기가 맴도는 것 같다.

김찬영이 생채기가 난 곳에 연고를 발랐다. 건드리는 게 아픈지 이따금씩 눈을 찡그렸다.

“이 동네 학교랑 먼데. 강은호가 너 만난다고 여기까지 온 거야?”

녀석이 말없이 눈을 돌렸다. 얼굴을 가린 손이 생각 외로 컸다.

“수탈 원정대도 아니고. 걔도 참 부지런하다.”

“수탈 원정대?”

김찬영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돈 강제로 뺏어 갔잖아.”

이제야 내 말뜻을 이해한 듯 아, 하고 목소리를 흘린 김찬영이 한 박자 늦게 헛웃음을 지었다.

“빌려 간 거야.”

퍽이나 주겠다, 그 새끼가, 하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뱉지 않았다. 김찬영도 아는 얼굴이었다. 빌려 간 게 아니라 뺏어 간 거라는 걸.

연고 때문에 반들반들해진 손가락을 김찬영이 내려다봤다. 아, 닦을 거 줘야지. 뒤돌아 화장지를 뜯었다. 김찬영에게 건네주기 위해 몸을 돌리자 반대쪽 손바닥에 손가락을 문지르는 김찬영이 보였다.

화장지 좀 달라고 하면 줬을 텐데. 그 말을 안 하고 저렇게 닦네.

벗어둔 후드 집업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잔고를 살폈다. 현재 지갑의 잔고 만 원. 집에는 버스 카드 찍고 가면 되니까, 현금 없다고 무슨 일 나지는 않겠지.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김찬영에게 내밀었다.

“고마워. 내일 학교에서 꼭….”

아마도 줄게, 였을 뒷말이 툭 끊어져 나갔다. 내가 내밀었던 지폐를 다시 거뒀기 때문이다. 김찬영이 아무것도 잡지 못한 손을 허공에 두고 나를 보았다.

“강은호한테 돈 빌려주지 마.”

김찬영이 말없이 나를 본다.

“그렇게 사람 때리면서 돈을 빌려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만하고 줘.”

김찬영이 손을 내밀었다. 휑한 손바닥이 감찬영과 내 사이에 놓이고, 물끄러미 그 손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지폐를 건넸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 나가려는 김찬영을 불렀다. 문고리에 손을 올린 김찬영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너는 억울하지도 않아? 이유 없이 괴롭힘 당하는 건데?”

김찬영이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시선을 떨어트렸다.

“너도 학기 초에 걔한테 가방 뺏기지 않았어?”

“그건….”

“너도 시끄러워지는 거 싫으니까 그냥 준 거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문고리를 잡은 김찬영의 손가락이 구부러진다.

“걔가 뒤끝이 좀 길어서 그렇지. 이러다 또 잠잠해질 거야.”

김찬영이 시선을 거두며 문을 밀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학교에서 보자.”

그러곤 가게 밖으로 나갔다. 크게 반동하며 흔들리던 문이 이내 잠잠해졌다.

괜히 마음이 이상했다. 왜 김찬영의 이런 어두운 면을 자꾸 내가 발견하게 되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윤수와 임석영도 알고 있나. 알고 있었다면 비밀로 해달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겠지.

김찬영이 놓고 간 연고를 손에 쥐었다. 연고를 짜면서 손가락으로 누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움푹 파인 곳을 매만지다가 흔들림이 멈춘 가게 문을 보았다.

김찬영의 말이 맞다.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가방을 그냥 주었다. 나는 내가 홍차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그랬다지만, 김찬영은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강은호랑 임석영이 싸우면 임석영이 이길 거 같은데…. 친구에게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여튼… 강은호 그 새끼가 제일 나빠.”

서랍에 연고를 넣으며 혼자 구시렁거렸다.

“나쁜 새끼. 오늘 밤에 가위나 눌려라.”

나름의 저주를 퍼부으면서.

*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어둡고 흐리더니 퇴근하고 버스를 타자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렸다.

“아… 비 오네.”

물끄러미 창밖을 응시했다. 어두운 풍경이 빗물에 젖었다. 창문에 들러붙은 듯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보았다. 창문이 우는 건지 풍경이 우는 건지 모를 모습이다.

비가 내리는 새카만 밤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조금 음울한 기분이 되었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빗줄기가 내리꽂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마치 세상이 빗소리에 잠기는 듯한 기분이 들고는 했다.

솨, 하는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으면 깊은 곳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던 우울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나와 함께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봤다.

좋았던 기억이나 꿈 따위의 것들이 빗줄기로 지워지는 어두운 밤. 이런 밤을 맞닥뜨릴 때마다 나는 닿을 수 없는 곳의 풍경을 상상하게 됐는데, 그 풍경 속에는 늘 엄마가 있었다.

단지 연락이 닿지 않은 곳, 안부를 물을 수 없는 곳에 엄마가 있다고 위안을 삼다가도 문득 내 세계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슬픔에 무너지곤 했다.

창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초점을 옮기자 창문에 비친 내가 보였다. 표정 없는 얼굴이 슬픔도 잊은 사람 같다.

이번 정류장을 알리는 안내 방송에 하차 벨을 눌렀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둥을 잡았다. 버스가 속도를 늦추며 정류장에 진입하고, 정차했다. 빗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 문이 열리고, 후다닥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정류장으로 뛰어내리다가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밟았다. 튀어 오른 빗물에 바지가 젖었다.

“아! 진짜!”

젖은 곳을 대충 털어내는데 바보냐, 하고 말하는 목소리가 빗속에서 들렸다. 허리를 숙인 채 고개를 들자 우산을 든 임석영이 보인다.

“어? 뭐야, 이 시간에 어디 가?”

“너 마중 나왔지. 우산 없을 거 같아서 혹시나 하고 기다렸는데. 진짜 없네.”

한 걸음 다가온 임석영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걸음이 옮겨 가고, 임석영의 머리 위로 드리운 우산 아래에서 멈췄다. 몸이 가깝게 붙었다.

버스에서 내려 정류장으로 들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 후드 집업이 젖었다. 임석영의 눈이 빗물로 물든 후드를 훑는 게 보였다.

“나 기다린 거야? 언제 올 줄 알고?”

“너 알바 9시에 끝나잖아.”

“야, 핸드폰 뒀다가 어디다 써. 연락을 하지.”

“했는데 네가 안 받았어.”

그랬나. 핸드폰을 꺼내 확인할까 하다가 말았다. 빗소리가 커서 듣지 못했나 보다.

임석영이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연락한 것도 모르는 주제에 핸드폰 뒀다가 어디다 쓰냐고 목소리를 높인 나를 나무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멀뚱히 임석영을 올려다봤다. 장난스럽게 웃는 눈에 온기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빗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이상하게 아까의 우울한 마음을 밀어내는 듯 가슴이 뛰었다.

“가자.”

임석영이 한 팔을 들어 어깨를 감쌌다. 멍하니 끌려가다가 현재 위치가 동네라는 것을 깨닫고 후드 끈을 꽉 조여 묶었다. 눈만 동그랗게 드러내고 임석영과 나란히 걸었다. 빗물에 신발이 젖어 가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석영아.”

우산을 든 임석영이 고개를 내려다본다.

“비 냄새 좋다.”

내 말이 조금 싱거웠는지 임석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가만 보면 갈비만두나 비 냄새가 좋아한다는 말은 잘 하면서, 나 좋다는 말은 안 해.”

가만히 정면을 응시하는 임석영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랬었나. 좋다, 그 단어가 헬륨가스를 주입한 것처럼 마음속에 두둥실 떠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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