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홍차-38화 (38/70)

제38화

분리수거를 하고 돌아가는 길, 동관 앞에 강은호의 무리가 삐딱하게 서 있는 게 보였다.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데 그게 왜 이렇게 불량하게 보이는지 모를 일이다.

기다란 강은호의 눈이 매섭게 내게로 꽂힌다. 그게 꼭 뱀 같기도 하고, 미친 독수리 같기도 하다. 내 목을 물어뜯겠다는 듯 보는 것만 같아서 눈을 깔고 벽에 붙어 가는데, 역시나 내 이름이 호명된다.

염병,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어, 하고 생각하는데 목소리가 저 위에서 울렸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자 동관 2층 창문 밖으로 임석영이 상체를 길게 뺀 채 손을 흔들고 있다.

“뛰어와. 반장이 햄버거 쏨.”

해, 햄버거?

텅 빈 플라스틱 바구니를 흔들며 걸음을 빨리했다. 강은호 옆을 지나갈 때 그가 몸을 크게 움직이는 바람에 흠칫 몸을 떨었지만 가는 길을 막거나 건들지는 않았다.

후다닥 계단을 오르자 교실 앞에 서 있는 임석영과 마주쳤다. 손에는 햄버거 두 개가 있고, 그중 하나를 내게 내민다. 아이들은 의자가 있는데도 책상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한 손에 바구니를, 한 손에 햄버거를 들고 교실로 들어서자 교탁 앞에 서 있는 반장과 눈이 마주쳤다.

“반장, 잘 먹을게.”

손에 든 햄버거를 흔들자 반장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반장은 원래 표정이 없다. 무표정하지만 아마 지금 매우 만족하는 상태일 것이다. 반 아이들이 좋아하고 있으니까.

교실 뒤쪽에 바구니를 놓고 자리에 앉았다. 햄버거 포장을 뜯으려고 하는데 임석영이 내 의자를 제 쪽으로 잡아 끌어당겼다. 아래에 바퀴가 달린 것도 아닌데 너무 자연스럽게 끌려가는 모양새에 눈이 동그래졌다.

“다른 애들도 다 친구랑 같이 먹잖아.”

임석영이 다른 아이들을 눈짓했다. 고개를 돌리고 보자 다들 삼삼오오 모여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슬쩍 의자를 뒤로 밀어 뺐다.

“애들 있는 곳에서 이런 거 하지 마.”

“이런 거?”

“막 자꾸 네 옆에 나 앉히려고 하고, 끌어당기고, 그런 거.”

“왜? 이게 이상해?”

“이상하지. 완전 이상하지.”

임석영이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다.

“전에도 말했는데 네가 안 들은 거야. 이제 진짜 하지 마.”

학교에서의 일이 홍차연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모님을 만나고 온 날,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홍차연에게 물어보았다. 학교에 사람이라도 심어놨냐? 그 물음에 돌아온 답은 ‘ㅋㅋ’이었다. 전보다 더 행동거지에 신경이 쓰였다.

“뭐, 그래.”

임석영이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강은호 그 새끼가 뭐라고 했어? 아까 밖에 서 있던데.”

햄버거 포장을 벗기는데 임석영이 한 손으로 콜라 캔을 따며 물었다.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도 안 했어, 하고 말했는데 입 안에 욱여넣은 게 생각보다 많아 웅얼거리게 됐다.

“아응망도앙해써?”

임석영이 제가 들은 대로 따라 한다. 입에 든 것을 꾹꾹 씹으며 노려보자 아웅망도 안 했구나, 하며 콜라 캔을 내 책상에 놓았다.

“학주가 걔 한 번만 더 사고 치면 강제 전학 시킨다고 으름장을 놨대. 자기도 강전은 싫으니까 이제 안 괴롭힐 거야.”

그런 일이 있었군.

햄버거를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눈을 올렸다. 뭐라 말을 덧붙이려던 임석영이 벌린 입을 다문다. 자연스레 손을 들어 내 입가를 쓱 문질러 닦았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임석영의 엄지에 햄버거 소스가 묻었다. 놀란 얼굴로 엄지가 움직이는 방향을 보았다. 아무렇지 않게 제 입으로 가져가기에 팍, 그의 의자 다리를 때려 밀었다.

의자가 뒤로 밀려나며 임석영의 몸이 조금 흔들렸다. 손을 올린 채 임석영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본다.

“뭐야, 왜?”

“휴지 없어? 휴지로 닦아.”

급하게 교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누가 보기라도 했을까 봐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없으니까 그렇지.”

한 손에 햄버거를 든 채 교실 앞으로 갔다. 교탁 위에 배달 봉투에 섞여 온 휴지가 있었다. 몇 장 주워 들고 후다닥 자리로 돌아가 임석영 책상 위에 올렸다.

깜박거리는 임석영의 눈을 보고 있자니, 얘는 지금 뭐가 잘못되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내가 아까 한 말 허투루 들었어? 이런 거 하지 말라고 말한 지 5분도 안 됐는데.”

“친구끼리 뭐 어때. 먹다 뭐 묻으면 닦아줄 수도 있지. 그게 이상해?”

“그게, 나는 좀 불편해. 그러니까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마.”

장난스럽게 시작된 대화가 조금 딱딱하게 끝났다. 임석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갑자기 의자를 끌어가 멀어진 나를 본다.

“네가 불편하다고 하니까 안 하겠는데.”

임석영이 다 먹지도 않은 햄버거를 포장지로 덮더니 책상 한쪽으로 밀어버린다.

“애매한 거 알지? 네가 말한 거.”

갑자기 굳어진 분위기 때문일까.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속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가만 내 얼굴을 응시하던 임석영이 말없이 시선을 거뒀다. 실수를 한 것처럼 마음이 불편해졌다.

속이 답답한데도 햄버거를 남김없이 입으로 밀어 넣었다. 처음에는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갑갑하더니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가슴을 팡팡 때리고 싶은 게 체기가 있는 듯했다.

마주 잡은 두 손이 찼다. 체한 게 확실했다. 끝종이 울리자마자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냈다. 이어폰 선을 길게 잡고 왼쪽 엄지에 돌돌 말았다. 남은 손으로 명찰 핀을 눌렀다.

“너 뭐 해?”

임석영이 그렇게 물은 건 내가 명찰 핀으로 손톱 아래를 찌르려고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한 손에 안전핀의 바늘을 잡고 임석영을 보았다.

“아, 체증이 있어서.”

“그럼 보건실을 가야지, 왜 그러고 있어?”

종종 급하게 먹은 음식이 얹히곤 했다. 그럴 때면 실로 엄지를 묶고 바늘로 손을 땄는데, 신기하게도 체기가 뚫렸다. 보건실을 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임석영이 내 손에서 명찰을 뺏어 간다.

“보건실 갔다 와.”

그의 시선이 내 손으로 향한다. 이어폰으로 조여 묶은 모양새가 이제 와 부끄러워져 슬그머니 손을 책상 아래로 내렸다. 툭, 이어폰이 손을 따라 떨어진다.

“너 얼굴 안 좋아. 선생님한테는 내가 말할게.”

피가 안 통하는 엄지가 찌릿했다. 감각이 없는 엄지를 손에 쥔 채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

수군거리는 소리가 뭔가를 갉아먹는 소리처럼 귀를 파고들었다. 어두운 교실 안, 습한 공기가 훅 끼쳤다.

욕설 같은 수다가 소음으로 번졌다. 어두운 곳에서 하나둘 눈이 생겨났다. 화살처럼 나에게 향한 눈이 자꾸만 나를 공포에 질리게 한다.

너랑 임석영이랑 그런 사이지? 어?

습한 목소리가 목을 휘감았다. 숨이 막혔다.

무서워.

엉엉 울면서 눈을 감았다. 그런데도 시야가 훤했다. 나를 보는 눈이 안 사라진다.

“누리야.”

눈가를 매만지는 손길에 눈이 떠졌다. 눈을 몇 번 깜박이자 나를 내려다보는 눈과 마주쳤다.

“꿈꿨어?”

임석영의 목소리가 작고 낮게 울렸다. 보건실에 와서 소화제를 먹고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까무룩 잠이 든 모양이었다.

꿈이었구나.

무의식적으로 임석영이 매만진 눈가를 쓱 문질렀다. 속눈썹을 스친 손에 물기가 묻어났다. 침대 앞에 의자를 두고 앉은 임석영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생님 안 계셔. 아무도 없는데. 이것도 불편해?”

방금 한 행동에 내가 또 무어라 말할세라 임석영이 먼저 말을 뱉는다.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임석영이 내 앞머리를 쓸어 넘긴다. 그의 손길에 머리칼이 이마를 덮었다가 쓸려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눈을 끔벅이며 머리 위로 드리운 얼굴을 보았다. 그의 얼굴이 뒤집혀 보였다. 아까의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평온하기만 했다.

“울어서 놀랐어. 나쁜 꿈이라도 꿨어?”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보건실 안으로 아득하게 밀려들었다. 햇빛이 커튼 틈새로 새어드는 보건실은 어둡고, 고요하기만 하다.

꿈의 연장선에 선 듯 가슴이 계속 두근거렸다. 불쾌하고 갑갑했다. 칼처럼 파고들던 목소리들이 꿈이 달아난 후에도 남아 있었다. 마치 몸 여기저기에 상흔이라도 남긴 것처럼.

그 느낌이, 곧 눈물이 터질 것 같아 도망가고 싶던 심정이 여전했다.

“아니. 나쁘기보다는… 무서운 꿈이었어.”

앞머리를 쓸어 넘기던 손이 이마에서 잠시 멈춘다.

꿈에서 마주한 것. 그건 논란이었다. 중심에 나와 임석영이 있는. 그것은 정확히 나의 두려움이자 공포다.

단순한 친구가 아니기에 느끼는 두려움. 아이들의 시선이 걱정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괜한 오해가 걷잡을 수 없이 일을 키우게 될까 봐. 소문이 무성해지다 못해 숲을 이룰까 봐. 그 숲 안에 임석영이 갇히게 될까 봐.

그럼 변명 한 마디 못 하고 임석영은 남자 좋아하는 놈이 되는 거고, 도마 위에 오른 임석영과 나는 난처한 낯을 하고서 비밀을 숨기려다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겠지.

그건 싫은데.

“석영아, 아까 교실에서… 미안해.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서서 그랬나 봐.”

그런데 나는 어쩔 수가 없다. 남윤수의 말대로 기침처럼 숨겨지지 않는 것일까 봐. 우리가 아무것도 숨기고 있지 않은 것일까 봐.

“석영아.”

나지막이 부른 이름에 눈이 마주친다. 임석영의 눈에 설핏 긴장감이 스친다.

“나를 좋아해주는 건 고마운데….”

적당한 말이 안 떠올라 잠시 침묵했다. 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지금의 나는 네 마음을 받아줄 수도, 네게 마음을 줄 수도 없어.”

뚫어져라 내 얼굴을 응시하던 임석영이 이마 위에 올려두고 있던 손을 거두어갔다. 잠시 정적이 밀려들었다.

고개를 숙인 임석영이 눈가를 문질렀다. 그의 길고 곧은 손가락이 눈언저리를 배회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무언가를 고심하는 듯 입술을 몇 번 말아 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마음을 달라는 거 아니야. 그냥 내 감정을 따라간 거지.”

임석영이 우울한 낯으로 나를 본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거, 그것마저 불편한 거야?”

낮게 상체를 숙인 임석영이 매트리스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다. 마주 보는 얼굴의 거리가 좁혀졌다.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는 눈이 흘러내리는 머리칼과 이마를 훑고 지나간다.

“지금이 아니면 뭐가 좀 달라져?”

“어?”

“지금의 너는 내 마음을 못 받아준다며. 지금이 아닌 다른 날에는 뭐가 조금 달라지냐고.”

빤히 시선이 닿았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꾹 물었다. 이상하게 대답이 바로 안 튀어나갔다. 그게 꼭 마음의 허용 같아서. 부끄러워졌다.

“대답 안 하네.”

불만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던 임석영이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트리다가 손을 내려 눈을 가렸다.

눈을 덮은 그 손바닥이 너무 따뜻해서 순간 얼었다. 손바닥에서부터 손가락까지 그 모양새가 느껴졌다. 가볍게 눈가를 덮은 손이 묵직하다.

“네가 뭘 두려워하는 줄 알아. 어렵겠지만, 네 선 안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내가 노력할게. 네가 꿈에서라도 안 울었으면 좋겠어.”

임석영의 목소리가 귀에 감긴다.

“너 울리는 새끼는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만약 그게 나면, 네가 나 가만두지 마.”

자신감 넘치는 말투에 웃음이 났다.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내가 잘할 거니까.”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애써 잡았다. 잘할 거라니. 대체 뭘.

눈가로 임석영의 체온이 스며드는 듯 옮겨 왔다.

“이제 이 손 좀 치우지.”

무심하게 던진 말에 대답이 없었다. 눈가를 덮은 손바닥 아래에서 눈꺼풀을 움직였으나 좀처럼 떠지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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