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문을 열고 가만 서 있는 남자를 노려보던 임석영이 내 앞을 가로막고 서며 시야를 가렸다.
“저 사람 꼴을 봐. 누가 봐도 수상하잖아. 내가 너를 그냥 보내줄 것 같냐.”
엄한 목소리에 괜히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홍차연 집에 가는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홍차연?”
나와 마주 보고 서 있던 임석영이 몸을 틀어 기사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같이 갈까?”
“미쳤냐.”
아, 진짜, 걱정되는데, 하고 낮은 목소리를 흘린 임석영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더니 옆으로 물러나 섰다.
“전화해.”
걸음을 떼기 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기사가 내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게 보였다. 돌아보지 않았지만 분명 임석영을 보고 있을 터였다.
차 안으로 몸을 넣고 올라타자 남자가 몸을 돌려 문을 닫았다. 차체를 쭉 돈 남자가 운전석 문을 열고 탔다. 주차에 놓여 있던 기어를 움직이며 룸미러로 나를 보았다.
“친구가 생긴 모양이구나.”
이 이야기는 분명 사모님 귀에 흘러 들어갈 게 뻔했다.
“…친구 아닌데요.”
룸미러로 나를 들여다보던 기사가 시선을 돌리고 운전대를 잡았다. 부드럽게 차가 나아갔다. 움직이는 창밖 풍경 속에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서 있는 임석영이 보였다.
홍차연의 몸이 완전히 회복된 걸까. 그래서 이제 학교생활을 그만해도 된다는 말을 하려고 나를 부른 걸까. 그런 기대를 하며 무릎 위에 둔 손을 마주 잡았다.
집을 배회하면서 돌아다니지 않는 한, 홍차연 집 안에서 할머니를 마주칠 확률은 적었다. 할머니는 대부분 부엌에 머물렀고, 식재료를 다듬거나 식사 준비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관리인 숙소에 머물렀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여 기사가 준비한 후드를 교복 위에 입었다. 할머니는 개코지만 눈썰미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마주친다 하더라도 내가 입고 있는 게 교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심스레 계단을 올랐다. 금방 화단에 물을 줬는지 잔디가 젖어 있다. 정원을 지나 현관으로 향하다가 얼굴이 굳었다. 정원 한쪽에 마련된 파라솔 아래에서 홍차연이 철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정확히 왼쪽 무릎 위를 누르며 내려온 오른쪽 다리, 책을 팔랑 넘기는 손. 두 다리, 두 팔, 그러니까 사지가 멀쩡했다. 바닥 돌을 밟고 가던 걸음을 돌렸다. 잔디를 짓밟으며 그늘 안에 있는 홍차연 앞에 섰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책을 보던 홍차연이 느리게 시선을 올렸다. 하얀 피부가 파리하게 느껴졌지만 분홍빛 입술이며 또렷한 눈동자가 그가 다 나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만 내 얼굴을 올려다보던 홍차연이 느지막이 웃는다.
“나로 사는 건 어때? 재미있어?”
재미있겠냐.
말없이 쳐다보자 홍차연이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다리 위에 내려놓았다. 팔꿈치를 팔걸이 위에 대고 턱을 괴더니 고개를 기울여 나를 응시한다. 그 눈빛이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이 꼴을 하고 있는 나를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야, 다 나았으면 이제 네가 다녀. 학교.”
“왜? 재미없어?”
“…넌 학교를 재미로 다녀? 내가 지금 재미있자고 이거 해?”
“나는 재미있던데.”
차분하게 뱉는 말에 웃음이 섞여 있었다.
“너 학교에서 학교 폭력 피해자로 진술했다며?”
놀랐다. 집 안에 처박혀 있던 홍차연이 대체 집 밖의, 것도 학교에서의 일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자 홍차연이 쿡쿡대며 웃는다.
“조용히 출석이나 하라고 보내놨더니, 그런 일에 나설 줄은 몰랐네. 너를 때린 쪽이 강은호? 임석영? 아, 아니지. 임석영이 강은호를 때렸다고 했나. 둘 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주먹이 먼저 나가는 걸 보니 망나니 같은 새끼들인가 봐.”
“…그런 거 아니거든.”
주먹을 쥐었다. 세상 여유로운 표정의 홍차연을 때릴 수가 없어서, 주먹만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서, 네 마음대로 친구 사귀니까 좋아?”
웃는 얼굴이 조금 야위어서 그런지 야박해 보였다.
“너 겁도 없다. 네 정체 들통 안 나려면 무서워서라도 쥐 죽은 듯 다녀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다리 위에 놓았던 책을 다시 집어 올린 홍차연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내 이름 달고 다니는 거면 닥치고 조용히 다녀.”
다녀? 다녀? 끝난 게 아니고 계속 내가 다녀?
“무슨 소리야. 이제 네가 다니면 되잖아.”
내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홍차연이 책장을 넘겼다.
“아버지가 7월은 되어야 들어오신다고 하네.”
“그런데?”
불길한 예감이 치솟는다.
“학기가 애매하게 껴서, 조금 더 쉬려고.”
“장난쳐?”
눈을 올린 홍차연이 싱긋 웃는다.
“들어가 봐. 기다리시겠다.”
“사모님한테 안 할 거라고 말할 거야. 네 이름으로 네가 다녀. 학교.”
“곤란한데.”
홍차연이 느긋하게 안경을 고쳐 쓴다.
“너도 들어가면 곤란해질걸?”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계속 입술을 늘여 웃는지. 망할 놈의 새끼. 진짜 이 짓을 그만두고야 말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짐은 사모님과 마주한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기다란 거실 탁자 위에 각봉투가 있었다. 각봉투 위에는 흰 종이가 있고, 그 종이에는 지그시 누른 도장이 인주의 붉은 빛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이 서류는, 부동산 매매 계약서. 그걸 보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홍차연 말처럼, 정말 곤란해졌다.
“전학 절차를 조금 천천히 밟으려고 해. 방학하기 전에는 끝날 거야. 별일 없지?”
“…네.”
“이 서류는 전학 절차 밟는 날 정리하도록 하자.”
“그런데 부쩍 날이 더워져서 애들도 하복 입고… 더 끌면 걸릴 거 같은데….”
“그건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나를 보며 웃는 얼굴이 가식적이다. 걸리는 것도 내 책임이니 알아서 처신 잘하라 이건가. 할 말이 없다.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가 집까지 바래다준다는 걸 거절하고 홍차연의 집을 나왔다.
홍차연이 앉아 있던 철제 의자엔 아무도 없다. 대화가 얼마나 속전속결로 끝났는지, 아직도 잔디가 투명한 물방울을 매단 채 젖어 있다. 해가 조금 더 기울었을 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홍시가 터진 듯 붉게 물든 하늘에 괜히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하늘이 얼마나 넓고 크면 노을이 이렇게 사정없이 흩어진 채 물드는 걸까. 여기서 내가 느끼는 먹먹함은 얼마나 사소할까. 노을을 머리 위에 두고 밤을 기다리는 나는 얼마나 나약한가.
오늘은 달이 어제보다 더 밝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둡게 물든 하늘 너머에서, 모든 이의 마음이 모이는 섬처럼 빛났으면 좋겠다고.
발치의 돌멩이를 차며 걸었다. 오른쪽으로 굴러가면 오른쪽으로 걸어가 돌멩이를 차고, 그게 왼쪽으로 굴러가면 왼쪽으로 걸어가 돌멩이를 찼다.
작고 각진 돌멩이를 발로 차며 걷다 멈추고 걷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캐노피 아래에 앉아 있는 임석영이 보였다.
“어?”
발 앞에 돌멩이를 두고 멈춰 서자, 내가 걸어오는 꼴을 계속 보고 있었던 듯 임석영이 나를 응시했다. 눈을 깜박거리다가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어 웃자, 임석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일어난다.
가만 서 있는 내게로 임석영이 다가왔다. 걸음을 멈춘 임석영이 발 앞의 돌멩이를 꾹 밟는다. 임석영의 신발 아래로 돌멩이가 모습을 감췄다.
“전화하라고 했잖아.”
“아, 집에 와서 하려고 했지.”
“아주 나는 네 안중에 있지도 않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던 임석영이 손을 올리더니 이마를 덮고 있는 앞머리를 반으로 가르며 머리를 매만졌다.
“그 집에서 뭐래. 이제 걔가 학교 다닐 거래?”
아, 그게, 하고 말을 잇다가 고개를 숙였다.
“너 이제 학교 안 나와도 되는 거야?”
임석영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 새끼 대체 전치 몇 주냐. 아직도 안 나았어?”
“…….”
“이상한 집구석이네.”
돌멩이를 감춘 임석영의 신발을 말없이 내려다보자 임석영의 큰 손이 머리 위로 무겁게 올라왔다. 머리 위로 느껴지는 그 무게감에 이상하게 코끝이 찡해졌다.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 임석영이 괜찮아, 하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런 느낌이 들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임석영의 신발 앞코와 내 신발 앞코가 마주 보고 있는 것을 보다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홍차연의 입에서 임석영의 이름이 나왔다. 임석영과 강은호의 일을 알고 있다는 건 학교에 제 명찰을 달고 다니는 내 모습을 어떤 방법으로 전해 듣고 있다는 거다. 학교 아이들에게 거짓말하고 있는 것도 곤욕인데, 이제 학교에서의 내 모습을 감시하고 있을 홍차연의 눈도 신경을 써야 하다니. 사는 거 왜 이렇게 힘들까, 같은, 나이에 맞지 않는 소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집이 뭐라고, 하다가도 평생 살 수 없을 것 같은 집값을 생각하면 버텨야지 싶고, 죄의식에 시달리다가도 아이들과 웃고 떠들 때면 즐거웠다.
‘인생….’
언제 어디에서 나를 보고 있을지 모를 그 집의 눈을 생각하면 학교에서 행동에 더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싶다.
임석영이 나를 바라봤다.
“그 집에서 무슨 소리 들었어?”
“개 같은 소리지, 뭐.”
임석영의 말에 가볍게 대꾸하고는 고개를 올렸다.
오늘 사모님에게 애초에 계약 조건은 홍차연의 몸이 회복될 때까지라고 했으니, 이제 그만하겠다고, 그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할 일을 했고 아파트를 달라!
계약서 한 장에 눈이 멀어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나왔다는 것을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돈에 눈멀고 아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파트고 뭐고 이런 식으로 학업을 이어가는 홍차연 이름에 먹칠을 하고 싶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이런 제안을 수락한 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겠지.
하늘에 희미하게 뜬 달이 보였다. 달이 선명하지 않고 흐렸다. 순간 우울한 낯이 됐는지, 임석영이 목을 길게 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흐린 달이 차던 시야에 임석영의 얼굴이 밀려든다.
“아, 따라갈 걸 그랬다. 그 집 주소 뭐냐. 벨튀라도 해야겠네.”
소심한 복수극을 꿈꾸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좀 걸을래?”
내 표정을 살피듯 얼굴을 훑어 내린 임석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임석영과 천천히 길을 걸었다. 아파트 단지 안을 크게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문득 떠오른 상념에 입을 열었다.
“석영아, 반 애들이 나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을까?”
“반 애들 누구.”
“그냥 애들 다.”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런데 나는, 걔들이 알고 있는 홍차연이 아니잖아.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배신감 같은 거… 느끼겠지?”
임석영이 음, 하며 대답을 미룬다.
“거짓말하면서 남 속이는 거 진짜 너무 힘들다. 그 누구와도 안 친해졌으면 덜 힘들었을 거 같은데.”
자꾸 오늘 홍차연이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 맴도는 소리가 속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처음엔 무조건 들키지 말자, 그 생각뿐이었는데. 초조함만 가득하던 내 안에 어느 순간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스스럼없이 나를 대해주는 아이들이 너무 따뜻해서, 그렇게 자꾸 내 영역 안으로 발을 들여서, 그런데 아이들이 알고 있는 나는 홍차연이 아니라서, 나 스스로가 거북했다.
뭐랄까. 고추장이 케첩인 척 맥도날드에 입고된 것 같달까. 휘핑크림인 척 카페모카에 올라간 마요네즈. 아메리카노인 척하는 까나리. 그런 거.
“왜. 애들한테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맞지. 이렇게 친해질 줄은 몰랐어. 어차피 나중에 전학 가면 끝이긴 한데. 뭐랄까, 그냥 마음이 그래.”
“우리에겐 사과라는 게 있잖아.”
눈을 돌려 임석영을 보았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임석영이 말을 이었다.
“친구라면 아마 이해하게 될 거야.”
임석영의 말에 감동 비슷한 걸 받아버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여운을 느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