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전학생은 대체로 조용하게 학교를 다녔다. 딱히 그에게 친하게 지내자고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고, 전학생도 다른 아이들과 굳이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았다.
식곤증이 있는지 5교시마다 상모를 돌리며 잤다. 채점된 쪽지 시험지를 곁눈질해 보면 장마도 그런 장마가 없었다. 공부와는 영 거리가 멀어 보였다.
가끔 선생이 내준 숙제도 체크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딱히 나서서 알려주지는 않았다. 보건실에서 자꾸 내 말을 ‘아니’로 잘라먹던 것에 대해 뒤끝이 남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학교가 끝나고 걸음이 닿은 정류장에서 울고 있는 전학생을 발견했다. 신발도 없이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꼴에 같은 반이라고 마음이 쓰였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그 어깨가 너무 작아 보인 탓이다.
“그런데 너 뭐 누구한테 원수졌냐? 자전거 안장 도둑맞은 애들은 봤어도 신발 도둑맞은 애는 처음 봐서.”
“아, 그게….”
“누군데?”
옆에 선 전학생을 훑어 내렸다. 흐트러진 매무새가 누군가 괴롭힌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는 길에 가방을 두 개 둘러메고 지나가는 강은호를 봤단 말이지.
전학생이 아무 말 없이 눈만 끔벅였다.
“도둑질한 새끼 누군지 몰라?”
“응. 알면 진작 신고해서 콩밥 먹였지.”
강은호. 그 빤한 이름을 말하지 않고 둘러대는 모습이 작년의 김찬영을 보는 것 같았다.
“뭐, 그렇다 치자.”
미친놈이, 겁대가리 없이 남의 가방이랑 신발을 훔쳐 갈 건 뭐야.
그래서 강은호의 교실을 찾아갔다. 문 가까이에 붙어 있던 몇몇 아이들이 돌아보고,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만화책을 읽고 있던 강은호가 한 박자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강은호의 앞자리에 몸을 돌리고 앉아 그의 타이를 잡아 머리를 가까이 당겼다. 교실 입장에서부터 의자 착석, 타이를 잡아당기는 것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빠른 전개였다.
“켁! 가, 갑자기 뭐야?”
“우리 반 애 가방은 이미 팔아먹었냐?”
“뭐?”
손에 쥔 타이를 더 낮은 곳으로 잡아당기자, 몸을 뒤로 빼던 강은호가 저항하지 못하고 딸려 왔다.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발도 큰 게, 뭐 한다고 신발까지 들고 가?”
“나 아니거든? 큭, 안 놔?”
강은호가 얼굴을 찌푸리며 멱살을 잡았다. 한 손에는 강은호의 타이를,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내 멱살을 잡은 강은호의 손목을 잡았다. 힘을 꾹 주어 그 손목을 비틀자 강은호가 소리를 내지르며 몸을 구부린다.
“아니, 적어도 도둑질을 하려면 몰래 해야지, 대놓고 그렇게 뺏어 가는 건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냐?”
“네가 뭔 상관이야, 시발! 네 일도 아닌데 왜 지랄이냐고!”
그 말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학생이 친한 친구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전학생은 같은 반 학생이었고,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아서. 왠지 촉이 그랬다. 딱한 사정이 있을 것만 같은.
할머니와 그렇게 다정하게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 마음 따뜻한 사람. 그게 내 생각이었다. 나도 할머니 손에 자랐으니, 어떤 동질감이 느껴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네가 네 것도 아닌 걸 막 뺏어 가기에, 나도 내 일 아니지만 상관 좀 한다. 왜?”
“존나, 걔가 뭐 네 짱친이라도 되냐?”
“되면 안 건드리게? 그럼 뭐 그렇게 지내고.”
잡고 있던 타이를 놓자 강은호의 몸이 확 뒤로 넘어간다. 흐트러진 타이를 정리해주며 강은호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착하게 살자, 은호야.”
“야, 시발, 진짜. 나 아니라니까?”
“뭐, 아니라면 미안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강은호의 어깨를 두드리고 교실을 벗어났다. 교실에서 강은호가 뭘 봐! 시발, 하며 신경질적으로 내지르는 소리가 울렸다.
“맞네. 강은호.”
*
혀 위에 둔 사탕을 굴리며 핸드폰의 사진첩을 열었다. 가장 최근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동영상을 열고 재생 버튼을 누르자 동관 옥상이 나온다.
나란히 이어 붙인 책상 위에 전학생이 누워서 발을 까닥이고 있다. 음흐훔, 하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그 소리에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던 남윤수가 웃음을 터트린다.
― 아, 씨. 웃겨서 불도 못 붙이겠네.
착, 소리를 내며 라이터를 굴린 김찬영이 불을 붙여준다. 흩어지는 연기에 아, 진짜, 하는 불만스러운 내 목소리가 울리고 카메라의 위치가 바뀐다. 화면의 위치가 더 낮아지고, 전학생의 노랫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 걔지? 화장실에서 봤던.
― 응.
― 야, 찬영아, 이거 노래 제목 뭐지?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 모르겠는데.
― 하긴. 뭔 가사가 들려야 추측을 해보지.
전학생의 흥얼거림이 극에 달하고.
― 아, 이거 그거 아니야? ‘왕자는 외로워’인가.
김찬영의 말에 남윤수가 아, 맞네, 맞네, 하며 수긍했다. 그러나 뒤이어 흘러나온 가사는 ‘공주는 외로워’다. 화면에 나오지 않는 남윤수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 미친, ‘공주는 외로워’잖아.
― 이게 언제 적 노래야. 외롭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김찬영이 딱 잘라 답했다.
― 쟤 우리 있는 거 모르는 거 같지?
남윤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책상 위에 누워 있던 전학생이 퍼뜩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 놀란 얼굴이 정면에 담겼다.
툭, 손가락이 핸드폰 액정에 닿았다. 재생되던 동영상이 정지했다.
“진짜, 어떻게 이런 노래를 불러?”
황당하다고 생각하며 눈가를 문질렀다.
단정하게 내려온 머리, 동그란 눈매, 하얀 피부, 동그랗게 뜬 눈. 놀란 표정이 꽤나 인상적이었는데.
진짜, 뭐 이런 애가 있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핸드폰 액정이 까매진다. 빛이 사라진 액정에 내 얼굴이 비쳤다. 일순 얼굴이 굳는다.
뭔데 웃고 있어?
자존심이 상하게도 웃고 있었다. 저 어이없는 전학생의 열창에.
“왜 웃냐고.”
방에 혼자 있는데도 뭔가 멋쩍어져 발에 걸리는 이불을 쳐냈다.
침대에 모로 누워 연락처에서 전학생의 이름을 찾았다. 프로필 사진은 없고 이름은 ‘^^’로 설정되어 있었다.
“안 어울리게 웃음 이모티콘?”
대화창을 열고 옥상에서 찍은 동영상을 전송했다. 단체 대화방에 안 읽은 메시지들의 숫자가 세 자리 이상으로 떠 있었다.
“아, 진짜 이거 어떻게 못 나가냐.”
특히 남윤수, 김찬영과 함께 있는 방이 그랬다. 남윤수 혼자 말이 너무 많았다. 나가면 다시 초대되고 나가면 다시 초대됐다. 밀린 메시지를 대충 넘겨 읽다가 반응이 없어 다시 ‘^^’ 님의 대화창을 열어봤다.
“읽씹?”
동영상을 확인했는데 답장이 없다. 짤막하게 메시지를 작성해서 보냈다.
[옥상가왕]
대화창을 들여다보고 있는지 내가 보낸 메시지를 전학생이 바로 읽었다. 조금 있다가 답장이 들어왔다.
[지워라]
말투가 답지 않게 강압적으로 느껴져 툭 웃음이 터졌다.
[지게 지고 오면]
전송을 누르고 몸을 뒤집어 베개 위에 턱을 올렸다. 손을 까닥이며 기다리자 곧바로 핸드폰이 진동한다.
[지게나 사주고 말해]
픽, 웃음이 났다.
[접수]
그렇게 보내자 더 이상 핸드폰이 울리지 않았다.
*
남윤수를 만나러 가는 길, 놀이터로 가는 길목에서 급하게 비닐봉투를 얼굴에 뒤집어쓰는 사람을 봤다. 앞이 안 보이는지 가만히 서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전학생인 것 같았다.
그냥 지나쳐 가려는데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아이스크림이 보였다. 지나가며 곁눈질했다. 봉투를 뒤집어쓴 인간이 부팅이 안 된 로봇처럼 움직임이 없다.
허리를 숙여 아이스크림을 주웠다. 후드 원피스 아래로 드러난 두 다리가 매끄러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걸어봤다. 끈질기게 말을 붙였더니 목소리가 넘어왔다. 저 스스로는 변조한답시고 목소리를 얇게 올렸는데, 말투가 전학생과 비슷했다.
“버리는 사람,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거 아니잖아요. 먹든 버리든 그건 가져오신 분이 알아서 하세요. 불법 투기 하지 마시고.”
봉투를 쓴 머리가 위아래로 크게 움직인다. 머리를 끄덕거리는 그 모양새가, 전학생이다.
아이스크림을 건네주고 걸음을 옮겼다. 저만치에 서서 나를 기다리던 남윤수가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봤다.
“그냥 반상회에도 나가지 그러냐? 자기 사는 아파트라고 아끼는 거 봐.”
남윤수가 혀를 찼다. 무의식적으로 걸어 나가다가 멈춰 섰다. 그러자 몇 발자국 앞서간 남윤수가 뒤늦게 멈칫 서서 나를 돌아본다.
“뭐야? 왜 그래?”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근에 이렇게 눈을 크게 떠본 적이 있던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남윤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저도 눈을 크게 뜨며 왜! 왜 그러는데! 하고 소리쳤다.
“세상에.”
“왜! 뭐가!”
“와 씨.”
“뭐, 뭔데! 씨, 무섭게 왜 그러냐?”
내 초점이 어딘가 엇나갔는지, 남윤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내 어깨를 툭 친다.
“야, 무섭게 그러지 마!”
어깨가 크게 흔들렸는데도 정신이 돌아올 줄을 몰랐다. 그러니까, 방금 그거, 원피스 입고 비닐봉투 뒤집어쓴 사람, 전학생이잖아?
입을 막고 뒤를 살폈다. 봉투를 뒤집어쓰고 있던 전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옷 때문이 아니었다. 옷에 성별이 어디 있어. 그런데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촉 같은 거. 뭔가 날 선 느낌이 전학생을 본 순간 나를 훅 치고 지나갔다.
아니, 그런데, 그럴 수가 있어? 우리 학교는 남고인데?
“아아! 새끼야! 그만하라고!”
남윤수가 옆에서 징징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다음 날, 학교를 가는데 기분이 묘했다. 아, 뭐지. 뭐 두고 왔나.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어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하지 않았는데, 교실에서 전학생을 보자마자 이유를 알았다.
너, 그러니까 네가 찝찝한 거야. 네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시선이 갔다. 수업을 듣다가 흘긋 눈이 돌아가고, 복도 한쪽에서 애들이랑 놀고 있다가도 저편에서 걸어오는 전학생이 보이면 시선이 끈질기게 붙었다.
급식을 먹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면 구석에 박혀서 식판에 얼굴을 파묻고 밥 먹는 데 열중한 전학생이 보였다. 웃긴 건, 그중에 몇 번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전학생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망갔다.
“홍차연, 다음 문단 읽어보자.”
상모를 돌리며 자던 전학생이 몸을 움찔 떨며 일어났다. 선생이 교과서를 가리켰다.
“어어, 네.”
내내 졸았는데 읽어야 할 문단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 어, 어디지, 하며 눈알 굴리는 게 보였다.
손을 내밀어 읽어야 할 곳을 짚어주자 전학생이 고, 고맙다, 하며 책상을 슬그머니 옆으로 이동했다. 내 손이 뻗어도 닿을 수 없게 멀찍이 떨어지는 모습이 황당했다.
청소 시간, 쓰레기를 들고 나가는 전학생과 교실 뒷문에서 마주쳤다. 내가 왼쪽으로 이동하면 전학생도 왼쪽으로 왔고, 길이 막혀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전학생도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일부러는 아니고, 서로 타이밍이 그렇게 떨어졌다.
“야, 그냥 네가 먼저.”
지나가, 라고 말하려는데 앞문으로 가버린다.
“허?”
어이가 없어서 쓰레기봉투를 들고 복도를 뛰어가는 전학생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혼자서 복도를 후다닥 뛰어가더니 어느 지점에 서서 힐끔 뒤를 돌아본다. 내가 계속 저를 보고 있자 티가 나게 놀라하며 달려갔다.
“대놓고 피하네. 저러면 누가 봐도 원피스가 본인이잖아.”
절레절레, 고개가 돌아갔다. 그런데 웃음이 났다. 그 모습이 뭐랄까, 재미있었다.
“아, 쟤 진짜 뭘까.”
그럴수록 전학생이 궁금해진다.
*
길 저편으로 전학생과 햄토리가 함께 멀어졌다. 전학생 특유의 걸음걸이가 있었다. 가볍고도 재빠른 모양.
교문에 서서 남윤수와 김찬영을 기다리는데, 검은색 정장을 입은 웬 남자가 전학생의 뒤를 쫓았다. 가로수 뒤에 자꾸 몸을 숨겼다가 따라가고 숨겼다가 따라가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미행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남윤수에게 보낼 메시지를 적다가 전학생이 사라진 길을 쭉 좇았다.
“뭐 저렇게 대놓고 따라가?”
주머니에 핸드폰을 찔러 넣고 빠르게 따라붙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