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홍차-29화 (29/70)

제29화

개학날, 눈이 빨리 떠진 탓에 집에서 일찍 나왔다. 버스 좌석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비트 빠른 이디엠이 끝나고 나니 잔잔한 선율이 흘렀다. 음악을 듣는데 눈썹이 삐뚤어졌다.

“뭐야. 뭔 노래야, 이게.”

내 핸드폰으로 듣고 있는 건데도 처음 듣는 곡이 튀어나왔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재생되고 있는 음악을 확인했다. 가수 김성호. 제목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

“김성호가 누구야.”

체인스모커스 앨범 사이에 모르는 앨범 커버가 끼어 있었다. 확인해보니 발매 연도가 1994년이었다. 세상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보나 마나 핸드폰을 두고 자리를 비운 사이 아버지가 노래를 찾아 재생한 게 틀림없다. 이어폰에서 간지러운 가사가 흘러나왔다.

“아… 진짜….”

도저히 끝까지 들을 수 없어 음악을 넘기려는데 시야가 핸드폰에서 비껴 나가며 앞에 앉은 사람에게로 향했다.

누군가 핸드폰 전방 카메라를 켜서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건 뭐 자기 마음이긴 한데, 문제는 그 뒤에 내 얼굴이 걸렸다.

뭐야….

혹여 사진에 내가 찍힐까 머리를 슬쩍 옆으로 빼자 핸드폰의 방향이 살짝 틀어지며 나를 따라왔다.

얼레. 일부러 저러는 건가.

무표정한 얼굴로 앞 사람의 머리가 요리조리 움직이는 걸 봤다. 표정 연습인지 뭔지 눈을 크게 떴다가 가늘게 떴다가 안면근육을 제멋대로 움직이던 녀석의 눈이 나를 향한 것 같았다. 몇 초간 가만 멈춰 있던 녀석이 급하게 핸드폰을 내렸다.

― 이번 정류소는 수수고등학교입니다. 다음 정류소는 수수사거리입니다.

헛,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녀석이 후다닥 사람들을 뚫고 뒷문 앞으로 나갔다.

검은 머리가 동그란 게 꼭 콩알처럼 보였다.

알고 보니 전학생이었고, 우리 반으로 올 아이였다.

*

개학날이라 그런지 버스에 사람이 많았다. 이럴 때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키가 큰 거였다. 김찬영은 항상 다른 아이들 가방에 얼굴을 묻고 다녔으니까.

김찬영, 남윤수와는 방향이 달라 혼자 버스에 올랐다. 카드를 찍고 들어가 손잡이를 잡고 섰는데, 닫히려는 문을 두드리며 누군가 헐레벌떡 탔다. 그 숨소리가 얼마나 헉헉대던지,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갔다. 홍차연, 그 애였다.

버스를 꽉 채우고 있는 아이들 모습에 놀랐는지 입을 살짝 벌리더니 난감한 낯으로 바로 제 앞에 있는 기둥을 잡고 섰다. 하필 그게 내 앞이었다. 파고들어도 이쪽으로 파고들어 올 건 뭐람.

바로 아래에 있는 전학생의 머리통을 흘긋 내려다봤다.

참나, 정수리 한번 예쁘네.

바가지를 뒤집어쓴 것 같은 머리였다. 정수리에서부터 갈라진 머리가 차분하고 가지런했다.

버스가 조금 난폭하게 굴러갔다. 좌로 우로 사정없이 꺾어 돌아가는 차체에 서 있는 아이들의 중심이 엉망으로 무너졌다.

“아, 시발. 발 밟지 마라.”

“새끼야, 그럼 네가 밀지를 말든가.”

옆에서 1학년 명찰을 단 애들이 신경질적인 어조로 다툰다. 그 험한 소리를 뚫고 힘겨운 신음이 이따금씩 내 아래에서 들려왔다.

“아아악!”

버스가 커브를 돌자 두 손으로 기둥을 잡은 전학생의 몸이 사정없이 내게로 쏠렸다. 내 가슴에 제 뒤통수를 박아 넣은 거나 다름없었다.

바람막이에 제 머리를 한껏 비빈 전학생이 몸을 바로 세웠다. 정전기가 일어나 머리가 부스스하게 떴다.

그만 좀 밀었으면….

그 말이 턱 끝까지 올라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리가 났다. 서서 가는 건 상관없는데 앞에 있는 애가 영 마음에 안 들어 손잡이를 놓고 뒤로 들어갔다.

가방을 벗어 다리 위에 놓고 자리에 앉았다. 한산해진 버스 내부에 멀뚱멀뚱 서 있는 전학생이 보였다. 두리번거리더니 후다닥 달려와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나는 분명 보았다. 전학생이 빈자리를 보고 두 눈을 번뜩이는 것을.

고개를 돌리고 창밖을 내다보는데 작게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가서 먹어야지. 할머니는? 반찬? 그때 할머니가 준 거 아직 남았는데.”

전학생의 작은 음성이 어두운 풍경에 끼어들었다.

할머니랑 사나? 그런데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친구들 중에선 조부모가 무어냐, 부모와 친하게 지내는 애들도 별로 없었다. 다들 늦은 사춘기인지 뭔지 반항심에 잔뜩 취해 눈을 부라리고 큰소리를 치고 집을 나가기 일쑤였다.

나는 부모님이 바쁜 탓에 할머니 손에 컸다. 그게 아마 초등학교 때부터였을 것이다.

할머니가 해준 밥을 먹고 할머니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집에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인사시켜줄 수 있는 사람도 할머니뿐이었다. 나에겐 할머니가 전부였다.

그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건 내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였다. 할머니는 눈을 감기 전날, 병상 옆에서 누워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늦은 새벽, 졸음에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들어 올려 할머니를 보았다.

어둠 때문이었을까, 할머니의 얼굴이 건조해 보였다. 바싹 마른 나뭇잎처럼 느껴졌다. 잎맥처럼 주름의 선이 확연한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할머니의 마른 손이 내 손등을 덮었다.

석영아, 세상에 아름다운 건 많고 네 품은 크단다. 할머니가 먼저 가서 방도 닦고 꽃도 심고 맛있는 밥상도 차려놓을 테니, 아름다운 걸 잔뜩 품고 천천히, 천천히 오렴.

마치 본인의 죽음을 알기라도 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게 할머니가 내게 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히잉.”

갑자기 옆에서 울음이 터졌다. 방금 대체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자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을 두 손에 꼭 쥔 전학생이 보였다.

잔뜩 찌푸린 얼굴 아래로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다.

“헐.”

몇 분 전까지 혼자서 기둥 하나 잡고 고군분투하더니, 지금 저 두 눈에서 떨어지는 거 닭똥 같은 눈물 맞나.

잇새로 흐느끼는 소리를 흘리며 얼굴을 바쁘게 문질러 닦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어깨를 막 들썩이더니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산, 어묵, 흐으, 사 먹지.”

진동의자에 앉은 것처럼 전학생의 어깨가 요동쳤다. 옷소매로 눈물을 훔쳐 닦고 코를 훌쩍이는데, 그 소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버스를 울리는 듯했다. 킁킁하면서 자꾸 코를 먹는데 그 소리가 묘하게 신경 쓰였다.

그만 먹고 코 풀었으면….

다리 위에 둔 가방 안을 살폈다. 원체 손이든 옷이든 뭔가가 묻는 걸 싫어하는 탓에 휴대용 티슈와 물티슈가 온갖 가방에 쑤셔 넣어져 있었다. 이 가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휴대용 티슈를 꺼내 전학생이 앉아 있는 자리로 날렸다.

전학생이 앉아 있는 자리까지 날아가지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정확하게 착지했다. 고개를 돌린 전학생이 눈을 올려 나를 보았다. 벌게진 눈에 이슬이 맺힌 것처럼 눈물이 맺혀 있었다.

“…임석영?”

“야, 코 먹는 소리 진짜 듣기 싫거든?”

“어?”

“크르릉, 크르릉, 그 코 먹는 소리 듣기 싫다고.”

“아, 미안….”

“미안하면 그만 먹고 좀 풀어라. 그 정도 먹었으면 배불러서 저녁 안 먹어도 되겠네.”

“…고마워.”

작은 머리가 힘없이 돌아간다.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짠해졌다. 전학 와서 힘든가, 혹시 가족이 할머니밖에 없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친구 없으면, 내가 친구를 해줄까.

김찬영은 전학생이랑 잘 지낼 것 같고, 남윤수가 잘 지내려나, 뭐 그런 생각을 얼핏 했다.

*

얼핏, 얼핏 했었지. 성격이 모나지만 않으면 넷이 다녀도 되겠다, 그런 생각을. 전학생이 축구를 하다가 얼굴로 공을 들이받고 기절하기 전까지는.

공 차는 폼이 영 별로였지만 잘 뛰고 날아다니기에 자식, 좀 괜찮네, 생각한 것이 반나절이 되기도 전에 수상해졌다. 전학생이.

쌍코피를 흘리며 기절한 전학생을 업고 보건실로 향했다. 그런데,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뭐가, 뭐가 없어.

보건실 침대에 전학생을 눕히고 땀에 젖은 얼굴을 빤히 내려다봤다.

“아, 설마. 아니겠지….”

얼굴을 쓸어내리고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우선 보건실을 나섰다. 전학생의 피가 묻은 체육복이 영 찝찝해서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실로 가서 체육복을 벗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셔츠 단추를 잠그는데 끝종이 울렸다. 쉬는 시간이 된 거다.

엇, 시발. 보건실에 전학생 혼자 있는데. 셔츠 단추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교실을 달려 나갔다. 이게 이렇게 전력질주할 일인가 싶은 생각에 황당했지만 빠르게 보건실 문을 열어젖혔다.

커튼을 친 탓에 보건실 내부가 어둡다. 침대에 누워 있는 전학생만이 약 냄새로 범벅 된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문을 닫고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옆 침대에 걸터앉아 누워 있는 전학생을 보았다. 교복 재킷에 박힌 명찰을 눈으로 훑어 읽었다. 음, 하고 묘한 소리가 새어 나간다.

침대에서 일어나 전학생이 신고 있는 신발을 벗겼다. 침대에 신발 신고 올라가는 건 아니니까. 열감이 느껴지는 발이 작다.

“키가 작아서 그런가. 발이 작네.”

신발을 침대 옆에 내려놓으며 멈칫했다.

거기도, 그러니까 거기도 작아서… 안 느껴진 건가.

나도 모르게 심각해졌다. 왜일까. 왜, 왜 기분이 이상한 걸까.

저승사자라도 된 것처럼 가만 서서 전학생의 얼굴을 응시하는데 코피가 흘러 굳은 인중과 피투성이가 된 손이 보였다.

“아, 진짜. 뭐 이렇게 손이 많이 가?”

한쪽에 있는 카트에서 대충 처치할 만한 것들을 꺼냈다. 솜, 소독약, 연고. 솜에 소독약을 부은 뒤 물줄기처럼 두 콧구멍 아래로 길게 난 핏자국을 조심스레 닦았다. 빨갛게 물든 솜을 버리고 다시 새 솜에 소독약을 부었다.

조심스레 인중과 뺨, 턱을 닦는데 마주한 얼굴이 가까웠다. 전학생이 작게 내뱉은 숨이 내 손으로 닿는다.

꼿꼿하게 채워진 눈썹 아래, 새까만 속눈썹이 예뻤다. 그리고 두툼한 눈 밑 아래 점이 있었다. 그게 꼭 별을 박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눈 옆에 난 점은 눈물점이라 잘 운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전학생도 그렇게 눈물이 많은가. 얼굴에 묻은 피를 마저 닦아냈다.

숙였던 상체를 세우고 솜을 바꿨다. 전학생의 손가락 끄트머리를 잡아 올렸다. 벗겨진 살갗을 쓸어내는데 전학생이 작게 신음하며 눈썹을 꿈틀댔다. 그 바람에 동작을 멈추고 눈만 올렸다.

“읏….”

그러더니 잠잠해졌다.

“아픈가?”

손가락 끝에 연고를 작게 짜낸 뒤 상처가 난 부위에 살살 발랐다. 꺼내 온 것들을 다시 카트에 넣고 침대로 돌아왔다. 시작종이 울렸다. 쉬는 시간이 끝났으니 교실로 돌아가야 했다.

“야.”

전학생의 몸을 작게 흔들었다.

“아아… 조금만 더 잘게요….”

그러더니 혼잣말을 한다.

“어? 아니, 종 쳤는데. 있다가 올 거야, 그럼?”

대화가 되는 줄 알고 말을 걸어봤는데.

“만두 한 판 주세요….”

뚱딴지같은 대답이 넘어온다. 뭐야, 잠꼬대야?

“전학생.”

“왜 군만두를 주시죠…. 갈비만두 시켰는데….”

허, 하고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 세상모르고 자면서 혼잣말하는 애는 처음이다.

“야, 먼저 갈게.”

안 듣고 있는 걸 알면서도 말했다. 걸음을 돌려 나가려는데 뒤에서 또 뭐라고 중얼거린다.

“혼자 먹는 거 싫은데….”

걸어 나가다가 흘긋 뒤를 돌았다. 대체 뭔 꿈을 꾸는지, 혼자 만두집이라도 간 건가.

보건실 문고리를 잡았다. 잡긴 잡았는데, 이상하게 안 돌아갔다. 문고리가 안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 손이 안 움직이는 거였다.

혼자 두고 가자니 이상하게 찝찝하다. 문고리를 잡은 채 고개를 돌렸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전학생이 유달리 작아 보였다.

“아, 진짜 되게 신경 쓰이네.”

문고리를 놓고 걸음을 돌렸다. 침대에 달려 있는 커튼을 쳤다. 그러자 커튼에 전학생의 모습이 잘려나갔다.

빈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담임 수업인데 미친 짓이다, 생각하며 전학생이 누워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커튼을 보는 얼굴이 나도 모르게 조금 찌푸려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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