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홍차-27화 (27/70)

제27화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담배를 쥐었던 손에서 불쾌한 냄새가 났다. 손을 내리고 살펴보는데 통증이 느껴졌다. 불씨를 그대로 잡은 탓에 손바닥에 빨갛게 상처가 남았다.

불난 데 기름 붓는다고. 안 그래도 속상하던 차에 마주친 강은호가 기분을 완전히 엉망으로 뒤흔들어 놨다.

손바닥이 홧홧한 통증으로 지끈거린다. 속이 토할 것처럼 울렁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화장실 바닥에 그대로 엎드려 울었다. 방금 내게 일어난 일이 너무 거짓말 같아서, 황당해서,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서러웠다.

저번에는 강은호의 교복을 내가 더럽혀서, 실수인 걸 그 아이가 용납하지 못해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내가 한 일이라고는 화장실 문을 연 것뿐이었다. 이게 꼭 벌처럼 느껴졌다.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한, 남을 속이는 것에 대한.

홍차연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불의에 제대로 대응하고 고발하지 못하는 것도 거짓에 대한 대가처럼 느껴졌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 그런 걸 쉽게 얻을 줄 알았니. 누가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다. 네 인생은 늘 이렇게 어두울 거야. 절대 행복해지지 마렴. 그렇게.

차마 교실로 돌아갈 수 없어 4층 화장실에 숨었다. 화장실 칸 안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무릎을 모으고 앉았다. 이게 무슨 청승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 있고 싶었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숨을 골랐다. 너무 운 탓에 계속 문질러 닦은 눈가가 열기로 홧홧했다.

뒤늦게 체육 대회가 생각났다. 끝났을까.

시간을 확인하려고 바지 주머니를 뒤지다가 주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손을 내렸다. 하필 내가 받은 바지에만 주머니가 없었다. 어떻게 반 아이들 다 같이 산 바지인데 나한테만 불량품이 왔다.

아까는 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하며 별생각 없이 핸드폰을 사물함에 넣어뒀는데. 그게 지금에 와서는 이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왜 내 바지만 불량이었을까.

손을 뻗어 휴지를 잡았다. 돌돌 말아 뜯은 뒤 코를 풀었다. 강은호 개새끼, 생각하며 휴지통에 휴지를 버리는데 쾅,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눈이 동그래졌다.

쾅쾅대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화장실 칸막이 문을 하나씩 열고 있는 것 같았다.

문짝이 부서져 나가는 소리에 잔뜩 긴장이 됐다. 뭐지. 강은호인가. 이 미친놈이 1절로 끝내기 아쉬워서 2절을 하려고 왔나.

기어코 내가 들어가 있는 칸막이의 문이 흔들린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숨을 죽이고 문을 올려다봤다.

“혹시 여기 있냐.”

거친 숨소리가 넘어왔다. 아는 목소리다.

“…임석영?”

“하….”

길게 내뱉는 한숨 소리가 들렸다.

“뭐 해. 거기서.”

“일 봐….”

“나와. 빨리.”

“아, 아직 멀었어.”

“아닌 거 알아.”

“아니야, 맞아….”

“장난해? 너 두 시간 가까이 자리 비웠어. 여기 이렇게 짱 박혀 있으면서 전화도 안 받고 어디 간다고 애들한테 말도 안 하고. 진짜… 왜 그러냐.”

“…미안.”

“됐고, 빨리 나와. 반장도 너 찾으러 갔어.”

“먼저 가. 나도 곧 갈게.”

“문 부순다.”

“….”

“진짜 부숴.”

꼴깍 침이 넘어갔다. 옷자락을 끌어 올려 얼굴을 닦았다. 이대로 나가도 되는 걸까. 누가 봐도 운 얼굴일 텐데.

조심스레 잠금을 풀었다. 잠금을 풀자마자 벌컥 문이 열렸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눈을 올렸다. 너무 빨리 문이 열려서 고개를 숙일 틈도 없었다.

눈이 마주쳤다. 거친 숨을 뱉던 임석영의 얼굴이 일순 굳는다.

“울었어?”

“아, 아니. 안 울었는데.”

임석영의 말에 급하게 손을 올려 얼굴을 가렸다.

“그런데 눈이 왜….”

말을 잇던 임석영의 목소리가 거기서 뚝 끊겼다. 내 손을 임석영이 낚아채듯 잡아당긴다.

“뭐야? 손 왜 이래?”

임석영이 잡은 손을 뒤집어 바닥을 올렸다.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에 화상 자국이 남았다.

“왜 이러냐고.”

손을 뒤로 빼려고 하자 임석영이 손목을 잡아 올리며 가까이 당긴다.

“누가 그랬어?”

임석영은 자꾸 사납게 묻고, 이상하게 입이 안 벌어졌다. 임석영의 입에서 숨이 샌다. 손목을 꼭 쥐어 잡은 채 숨을 고르더니 힘을 주어 말을 잇는다.

“말을 해야 알지. 누구야? 학교 다 뒤질까? 네가 말 안 해도 나가서 개지랄 떨면 10분 안에 찾아.”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런 상황은 생각지도 않았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내가 답답한지 임석영이 한숨을 뱉는다.

“강은호야? 걔가 그랬어? 대답 안 하면 그 새끼한테 가서 물어본다.”

“….”

임석영이 걸음을 돌리는 탓에 급하게 녀석의 옷자락을 쥐어 잡았다.

“아니, 가서 뭐 어쩌게.”

금방이라도 강은호를 찾아가 따져 물을 듯한 기세에 우선 붙잡고 본 건데.

“…맞네, 시발.”

임석영의 목소리가 사나워진다. 석영아, 하고 부르는 것과 동시에 임석영이 화장실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발소리가 빠르게 멀어진다.

사나운 눈을 하고서 내뿜던 기운이 험하고 무서웠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손이 떨렸다.

몇 초간 멍하니 임석영이 사라진 곳을 보다가 걸음을 빨리했다.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복도를 빨리 걷다가 이내 달렸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임석영을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두 다리를 빠르게 굴렸다. 복도에도 계단에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아까 강은호가 있었던 2층 화장실로 향했다. 아무도 없다.

열었던 화장실 문을 닫고 나와 복도를 뛰었다. 텅 빈 교실이 기차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달리는 건데, 교실이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활짝 열려 있는 창문 너머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목소리와 호각 소리가 한데 섞였다.

뒷문이 열려 있는 교실로 발을 들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소리에 심장이 빨리 뛰었다. 창문에 다가설수록 웅얼거리는 소리가 점차 커진다.

“야, 좀 말려봐!”

“미친… 저걸 어떻게 말리냐고.”

창문 앞에 서서 운동장을 내려다봤다. 개수대 근처에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핫도그 슈트를 입은 아이들과 태권도 도복을 입은 아이들, 꿀벌 머리띠를 한 아이들과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어수선하게 얽혀 있다.

설마, 하는 생각에 심장이 요동쳤다.

교실을 뛰어나갔다. 계단을 빠르게 밟고 내려가 운동장으로 나갔다. 교실에서 들었던 소란스러운 소리가 더 선명해졌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아이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뛰어온 남윤수가 보였다. 모여 있는 아이들을 파고들어 중심으로 들어갔다. 흙먼지가 부옇게 이는 그 중심에서 남윤수가 누군가를 두 팔로 감싸 끌어당겼다.

“당장 그만 안 둬!”

선생이 소리를 치며 뛰어왔다. 그의 등장에 몰려 있던 아이들이 몇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아이들이 거리를 벌리며 흩어지자 그들 모습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두 사람이 드러난다. 만신창이로 얼굴이 터진 강은호가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울고 있었다.

“흐… 시발…. 뭐, 뭘 봐, 새끼들아!”

강은호가 입고 있는 옷이 흙투성이가 됐다. 입술이 터지고 코에서부터 뺨으로 흘러간 피에 얼굴이 더러웠다. 피를 흘린 건지 뱉은 건지 바닥에 붉은 선혈이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누구의 피가 묻었는지 모를 임석영의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 떠는 주먹과 다르게 표정은 무서우리만치 차분했다. 그의 눈빛이 맹렬히 강은호를 갈겼다.

선생의 눈치를 보던 남윤수가 두 팔로 감싸고 있던 임석영의 몸을 조심스레 놓았다.

큰 보폭으로 걸음을 옮긴 선생이 임석영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손바닥으로 임석영의 머리를 그대로 후려쳤다.

머리를 치는 힘에 한 걸음 옆으로 밀려난 임석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강은호를 노려본다. 그 끈질긴 시선에 선생이 임석영의 머리를 한 대 더 후려쳤다.

“뭔데 석영이만 때리냐….”

앞에 선 애들이 선생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를 죽이고 구시렁거렸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다리에 자꾸 힘이 풀려 서 있기가 힘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도저히 마주할 수 없어서 고개를 숙였다.

“따라와라. 강은호 너도 따라와.”

내려다본 바닥으로 지나가는 선생의 발이 보였다.

어떤 절망이 안에서 싹텄다. 왜 이런 일이 생겼지. 그 시발점에 내가 있는 것 같았다. 이 학교 안에서 나는 작은 점에 불과하고, 그 작은 점은 허구인데. 현실에 없는 나를 위해 임석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의미했어야 했는데, 의미를 가진 게 잘못된 건가.

푹 고개를 숙여 내린 시야로 선생을 따라가는 임석영의 발이 보였다.

스멀스멀 올라온 울음이 목구멍에서 막혔다. 입술을 말아 물고 고개를 들었다. 멀어지는 그의 등이 보였다.

끝난 싸움판에 아이들이 하나둘 제자리로 돌아갔다.

*

아까 그렇게 선생에게 불려 간 이후로 임석영이 코빼기도 안 비쳤다.

“반장, 임석영 아직도 선생님한테 붙잡혀 있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던 반장이 핸드폰을 내리며 나를 본다.

“아니. 선생님 돌아오셨어. 같이 갔던 걔도 왔는데 얘는 왜 안 오지? 전화도 안 받아. 우리 축구 나가야 되는데.”

임석영에게 전화를 걸고 있던 모양이었다. 반장은 왜 체육 에이스 임석영이 안 오냐며 발을 동동 굴렸다. 축구, 계주 모두 임석영이 나가기로 되어 있는데 임석영 없이 시작할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반장이 난처한 얼굴로 운동장을 크게 훑었다. 운동장에 있었으면 진즉 발견됐겠지.

“차연아, 석영이 좀 찾아볼래?”

반장이 눈을 휘어 내리며 어깨를 늘어트린다. 임석영 한 명 없을 뿐인데 엄청나게 곤란한 상황이 된 것처럼 굴었다.

“축구에 석영이 없으면 안 돼. 이다음이 우린데. 그래도 네가 석영이랑 제일 친하니까.”

그 말이 꼭 너 때문에 사라졌으니 책임지고 찾아오라는 것처럼 들렸다.

“응. 내가 찾아볼게.”

내 답에 반장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반장이 후다닥 체육 선생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종이 한 장을 팔랑팔랑 흔들며 뭐라 말을 하고 있는 게 체육 대회에 목숨 건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보였다.

교실, 매점, 만득이를 먹으러 갔던 후문을 모두 돌았다. 조금 뛰었다고 땀이 삐질 났다. 금방 찾을 수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어려웠다. 아까 화장실에 들어왔을 때 가쁘게 숨을 내뱉던 임석영이 생각났다. 그 호흡을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임석영이 걷던 길을 그대로 따라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체육복 소매로 이마를 문질러 닦고 고개를 올렸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맑고, 그 아래 우뚝 솟은 동관 건물이 보인다.

“옥상 너만 쓰냐? 올 수도 있지.”

‘공주는 외로워’를 듣고 있을 때 옥상에서 마주쳤던 임석영이 떠올랐다.

“혹시 저기 있나.”

재빠르게 동관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그냥 걸어도 되는데, 쓸데없이 열정적이던 반장의 모습이 생각나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랐다.

사실 반장은 핑계고 내 마음이 급했다. 화장실에서 그렇게 나가버린 이후로 화가 잔뜩 나 보이던 임석영을 빨리 찾고 싶었다. 2층부터 숨이 차더니 4층에 다다라서는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녹슨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푸른 하늘과 함께 옥상의 판판한 바닥이 드러났다.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난간에 아무도 없어 걸음을 돌리는데 책걸상을 쌓아둔 곳에 누워 있는 사람이 보였다. 부서지는 햇빛이 눈이 부신지 한 팔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내 발 밑에서부터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의자 위에 누워 있는 아이를 덮었다.

다리가 얼마나 긴 건지, 의자 세 개를 붙여 눕고도 다리가 남아 바닥으로 내려왔다. 제 얼굴 위로 드리운 그늘을 느꼈는지 임석영이 얼굴을 가리고 있는 팔을 내렸다.

“…….”

이어폰을 귀에 꽂은 임석영과 눈이 마주쳤다.

“야, 임석영.”

내 입이 움직이는 걸 봤을 텐데, 할 말 없다는 듯 다시 눈 위로 팔을 올린다.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임석영의 귀에 있는 이어폰 한쪽을 뺐다.

“축구 우리 반 차례래. 너 데려오라는데.”

임석영이 내가 뺏어 든 이어폰을 낚아채 간다.

“안 해.”

다시 귀에 이어폰을 꽂으려고 하기에 그 손을 덥석 잡았다.

“반장이 너 꼭 있어야 된대.”

눈을 덮고 있던 팔이 내려온다. 임석영의 매끄러운 눈매가 드러난다. 그늘에 덮인 임석영의 두 눈이 내 얼굴에 박히고, 그늘과 함께 검게 잠긴 눈동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안 한다고.”

“…….”

등으로 내리꽂히는 햇살은 뜨거운데, 마주한 임석영의 얼굴은 차갑기만 하다. 그 서늘함에 입이 다물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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