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쿠르릉, 하고 하늘이 무겁게 울린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지 오래였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서 오후 일정이 연기되었다.
시간표대로 수업이 진행됐다. 진도를 나가는 선생도 있었고 자습을 주는 선생도 있었다. 예정에 없던 일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어느 누구도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날씨 탓인지 분위기가 우중충했다.
그중 제일은 나와 임석영이었다. 그렇게 느껴졌다. 이쪽만 유난히 어둡고 흐렸다. 기류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까 그렇게 교실을 뛰어나간 이후로 임석영과 한 마디 말도 섞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서로를 피했다. 시선을 주지도 않으니 대화를 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야, 차연아, 저거 네 교복이지?”
쉬는 시간, 창가 자리에 앉은 애가 와서 물었다. 창가에 널어둔 교복에서 떨어진 물방울로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어, 내가 닦을게. 미안.”
청소도구함에서 밀걸레를 빼 들고 뒷자리로 가 바닥을 닦았다. 물기를 머금은 밀걸레가 질척거렸다.
“그런데 뭐 한다고 교복을 다 빨았냐?”
책상에 걸터앉아 있던 김윤환이 과자를 먹으며 묻는다. 셔츠면 셔츠, 바지면 바지, 더러운 게 묻어서 빨래를 했다면 그 개수가 하나여야 보통인데 내가 창가에 빨아서 널어둔 것은 셔츠, 바지, 조끼, 전부였다.
“비 맞았어? 아니, 근데 이거 비 내리기 전부터 널어져 있지 않았나?”
고개를 갸웃한 김윤환이 과자봉지를 뒤집어 입에 털어 넣는다.
“날이 구려서 하나도 안 말랐네.”
김윤환의 옆에 있던 김태욱이 바지 밑단을 잡으며 말했다.
“응. 어차피 안 마를 거 같아.”
밀걸레를 벽에 세워두고 널어둔 교복을 걷었다.
“왜, 그래도 그냥 널어놔.”
“아니야. 해도 없는데, 뭐.”
누군가 교복 셔츠를 더 높은 곳으로 옮겨두었다. 손이 안 닿아 까치발을 하자 옆에 있던 김태욱이 손을 뻗어 소매를 잡아당겨 준다.
“엇, 고마워.”
덜 마른 교복을 가방 안에 대충 쑤셔 넣었다. 책상 위에 가방을 놓고 지퍼를 올리는데 임석영의 모습이 시야에 걸렸다. 쳐다보지 않은 채 가방을 내리고 밀걸레를 챙겨 교실을 나섰다.
그렇게 어색하게 오후를 버티다가 학교가 끝났다.
가방을 메고 곧장 교실을 나왔다. 운동화를 들고 계단을 내려와 현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빗줄기가 매섭게 바닥으로 꽂혔다. 솨아, 하고 쏟아지는 빗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울린다.
우산이 없다. 하필이면 이럴 때.
멍하니 현관에 서서 비 내리는 것을 보았다.
“야, 우산 없어?”
고개를 돌리자 어디서 주워 온 듯한 우산을 펼치는 김윤환이 보였다.
“야, 시발, 우산살이 찌그러졌잖아.”
김윤환의 옆에 매미처럼 딱 붙어 서 있던 김태욱이 불평한다. 그러자 정은솔이 김윤환의 팔을 더 꽉 잡는다. 셋이서 함께 너덜너덜해진 우산을 쓰고 갈 모양인 듯했다.
“우산 없으면 이거 써. 정은솔이 쓰려고 챙겨뒀던 건데.”
김윤환이 무언가를 내민다. 플라스틱으로 된 화분 물받침대다. 그것을 내 손에 건네주고는 셋이서 몸을 꼭 붙인 채 우산 하나를 쓰고 멀어졌다.
한숨이 길게 이어졌다. 구린 날씨가 꼭 내 기분 같다. 물 먹은 교복 때문에 가방도 무거웠다.
“왜 비가 오고 난리야.”
괜히 투덜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만지작거리던 물받침대를 머리 위에 올렸다. 그대로 현관을 빠져나가려는데 덥석 가방이 잡혔다. 앞으로 나가려던 몸이 뒤로 이끌렸다. 설마 임석영인가, 하고 돌아본 곳에 김찬영이 서 있다.
“그거 쓰고 가게?”
“어?”
김찬영의 교실은 복도 끝이라 반대쪽 현관을 주로 이용했다. 왜 여기에 있지.
혹시나 싶어 김찬영의 뒤를 살폈다. 남윤수와 함께 우리 반에 들른 건가 했는데 남윤수도 임석영도 보이지 않는다.
“아, 애들은 교실에 있어. 친구 만난다고 그래서.”
“아… 너는 안 가?”
“나는 모르는 애라.”
그래, 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서로 뭔가 틀어진 것 같아 내 기분은 습한 날씨처럼 찝찝한데, 임석영은 친구를 만나러 간다니. 그게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괜히 심술이 난다.
불퉁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이고 있자 김찬영이 우산을 편다.
“정류장까지 씌워줄까?”
“어? 어, 근데 너는 방향이 다르잖아.”
“정류장까진데, 뭐.”
시선을 내려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물받침대를 쓰고 가는 게 최선은 아니지 않나.
발을 내디뎌 김찬영의 우산 안으로 들어갔다. 키가 엇비슷했으나 김찬영이 살짝 더 컸다. 눈을 올리자 시선이 부딪쳤다.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있어 그런지 거리가 생각보다 가깝다. 나를 보는 김찬영의 눈이 평소와 다르게 조금 놀란 듯 보였다.
“왜?”
“아, 아니야.”
김찬영이 고개를 돌린다.
현관을 벗어나 교문을 향해 걸었다. 둘 다 체육복을 입고 하교하는 모양새가 조금 웃기긴 했으나 음습한 날씨에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주머니에서 꺼내 보자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저장된 임석영의 이름을 보다가 그대로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허벅지를 간질이며 진동하다 뚝 멈췄다. 다시 진동하지는 않았다.
집에 와서 창문을 열고 멍하니 밖을 내다봤다. 비가 그쳐서 그런지 피부에 닿는 공기가 시원하다. 들이쉰 숨에 비 냄새가 섞였다.
핸드폰을 꺼내 통화 목록을 열었다. 학교를 벗어날 때 들어온 전화를 마지막으로 임석영은 연락이 없었다. 유난히 밤이 길게 느껴졌다. 긴 시간을 버티며 내가 하는 거라고는 오늘의 일을 상기하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왜 사소한 일로 이렇게 다투어야 했나.
시간이 지나자 사건의 발단은 너무나 작고, 거기에 끼얹은 우리의 감정만 쓸데없이 큰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그랬다. 그러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내 이름을 내뱉던 임석영을 생각하면 심기가 뒤틀렸다.
“그건 진짜 아니지 않나.”
바람 빠지듯 숨이 흘러나갔다.
어두컴컴한 밤 속에서 군데군데 아파트 조명이 빛났다. 몇 미터만 걸어가면 임석영 집인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창문을 닫았다. 옷깃에 스미던 찬 공기가 창문에 잘려 나갔다.
침대에 모로 누워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밤이 깊어가다 보면 날이 밝을 터였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빛이 퍼지는 전등을 보다가, 팔을 올려 눈을 가렸다. 마음이 안 좋았다.
*
소나기가 내렸던 날 못 했던 체육 대회 예선을 어제 했다. 그렇게 일정이 하루씩 밀려 오늘이 체육 대회였다.
교실에 앉아 있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불편하게 임석영의 옆에 있지 않아도 되니까.
말다툼을 했던 날, 인사도 없이 헤어지긴 했지만 학교에서 마주치면 어영부영 말을 섞고 풀어지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임석영이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나를 보지도, 말을 붙이지도 않았다. 저쪽에서 이렇게 나오자 황당해서 오기가 생겼다.
대체 지가 뭘 잘했다고 저래?
화가 난 상대는 임석영 하나였으나 임석영과 말을 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남윤수, 김찬영과도 말할 일이 없게 됐다. 오가다 마주치면 어, 안녕, 하고 짧게 인사할 뿐.
체육 대회는 그야말로 욕이 난무하는 전쟁터 같았다. 줄다리기를 하는데 영차 대신 시발을 외치지를 않나, 씨름을 하는데 몸싸움을 하지를 않나, 칼과 창만 안 들었지 싸우러 나온 애들 같았다.
내가 참여하는 거라고는 단체 종목뿐이었다. 줄다리기. 그런데 임석영은 안 나가는 종목이 없었다. 축구, 계주, 하다못해 이인삼각도 나간다고 그랬다. 대단한 놈이다.
갑작스레 소나기가 내렸던 날 이후로 급격하게 날이 더워졌다. 땡볕 아래 앉아 있는 게 영 곤욕스러웠다. 그리고 우리 반이 출전하기라도 하면 응원을 해야 했는데, 출전하는 사람 속에 꼭 임석영이 있었다. 임석영을 응원해줄 기분이 아니었다.
계단에 가만 앉아 있다가 슬그머니 일어났다. 줄다리기도 끝났겠다, 더 이상 참여할 것도 없어 교실에 들어가 있을 생각이었다.
화장실 가는 척 동관으로 들어가려는데 반장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차연아, 어디 가?”
“어? 아, 나….”
반장은 매사에 열정적인 아이로 단합되지 않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아까도 한 아이가 응원 봉을 장난으로 터트렸다가 반장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너 이거 하나에 얼마인 줄 아니? 이게 며칠이 걸려서 우리에게 온 줄은 알아? 아직 남은 경기가 많은데 이걸 벌써 망가트려?
응원 봉을 터트린 아이는 귀에서 피가 나는 것 같다며 도망가려다가 반장에게 붙잡혀 몇 분 더 우리가 다 함께 응원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들어야 했다.
지금 내가 교실에 들어가서 쉬려는 걸 안다면, 이제 내 귀에서 피가 나겠지.
“나 잠깐 화장실. 배가 아파서.”
“응. 그런데 너 이거 떨어졌네.”
반장이 제 뺨에 붙은 스티커를 가리켰다. 반장은 사과의 완성은 홍조라며 뺨에 빨간색 스티커를 붙였다. 그냥 동그란 스티커였는데 두 뺨에 붙이고 나면 꼴이 조금 우스워졌다. 사과 머리까지는 어떻게 하겠는데, 스티커는 도저히 붙일 수가 없어서 줄다리기가 끝나고 땀을 닦으며 몰래 뜯었다.
들고 있던 박스를 내려놓은 반장이 주머니에서 스티커 한 뭉치를 꺼낸다.
세상에, 너 그걸 주머니에 넣고 다녔니? 놀란 얼굴로 보자 반장이 스티커 두 개를 뜯어 정성스레 내 뺨에 붙여주었다.
“또 떨어지면 말해. 스티커 50장 샀어.”
“…응.”
반장이 허리를 숙여 박스를 들었다. 그러고는 사라졌다. 스티커를 50장이나 샀구나, 생각하며 뺨에 붙은 스티커를 떼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다들 운동장에 나가 있어 그런지 건물이 조용했다. 계단을 오르며 핥은 입술에서 흙 맛이 났다. 얼마나 흙먼지가 많이 인 건지, 땀 흘리고 씻지 않은 손도 찝찝했다.
교실을 지나 복도를 쭉 걸어 화장실로 들어갔다. 손만 씻을 생각으로 들어간 화장실이 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그 순간 열지 말아야 할 문을 열었음을 알았다.
다시 닫고 나가려는데 앞에 선 남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이야, 볼따구에 그건 뭐냐?”
벽에 등을 붙이고 삐딱하게 선 강은호가 담배를 문 채 웃는다.
말없이 문을 닫으려고 하자 야, 하는 낮은 음성이 발을 붙잡았다. 뒤로 물러나다가 고개를 들자 강은호가 인상을 쓰며 손을 까닥였다.
“문을 열었으면 들어와야지, 새끼야.”
“…아니, 나가려던 참이었어.”
“시발?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나가?”
“….”
“들어오라고.”
강은호가 제 앞으로 오라는 듯 손짓했다.
미친, 무슨 왕이세요?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개냐.
움직임이 없자 강은호가 참나, 하고 웃으며 제 발로 걸어온다.
“화장실은 왜 왔어? 한 대 피우게?”
“아니.”
“피워.”
“나 담배 안 피워.”
“피우라고.”
강은호가 담배 한 개를 들고 시비조로 말했다. 그의 굵은 손가락 사이에 잡힌 담배를 보다가 고개를 올렸다. 무표정한 얼굴이 사납다.
“네 친구들 다 피우잖아. 안 가르쳐주든? 자, 손에 들고.”
손에 힘을 주고 버팅기자 거센 악력이 느껴졌다.
“받으라고.”
돌아 버리겠네. 난처하다는 얼굴로 서 있자 강은호가 턱을 움켜쥐며 힘을 주었다. 절로 벌어진 입술 사이에 담배를 밀어 넣었다.
“물어.”
버둥거리며 몸을 비틀자 그 움직임에 검은 재가 가루처럼 흩날렸다.
급하게 손을 올려 입에 물린 것을 잡아 뺐다. 연기가 입 안으로 밀려들었다. 숨을 토해내듯 기침이 쏟아진다.
“야, 네 것도 아닌 걸 막 버리네. 싸가지 없이.”
부러진 채 바닥으로 떨어진 담배를 강은호가 발로 밟아 비벼 끈다. 제 발끝을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올려 나를 본다.
“아, 나는 왜 이유 없이 네가 싫지?”
그렇게 말하며 강은호가 화장실을 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