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홍차-23화 (23/70)
  • 제23화

    침대에 대자로 퍼져 천장을 바라봤다. 손이 간질간질했다. 전등 하나만 걸린 천장을 보며 눈썹을 꿈틀댔다. 자꾸 학교에서 들었던 임석영 인스타의 댓글 요정이 생각났다.

    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나랑 상관없다. 상관없는 일이다. 하나도 안 궁금하다. 희진이인지 뭔지, 알 게 뭐야.

    알 거 없긴 한데, 인스타는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잖아? 희진이 때문이 아니다.

    퍼뜩, 눈을 떴다. 동전 뒤집듯 몸을 돌렸다.

    에라, 모르겠다. 핸드폰을 들고 인스타그램을 설치했다. 계정을 만들었다. 아이디는 메일과 같은 rlasnfl1004로 했다.

    게시물 0, 팔로워 0, 필로잉 0.

    “뭐지.”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임석영을 검색했다. 수많은 임석영이 떴다. 몇 개 눌러봤는데 내가 아는 임석영은 안 나왔다.

    “아, 이래서 어떻게 찾아.”

    슥슥, 화면을 내리다가 작은 동그라미 안에 박힌 익숙한 사진을 발견했다.

    “어! 임석영 카톡 프로필 사진!”

    사진을 툭 누르자 계정 하나가 불려 나온다.

    게시물 17, 팔로워 213, 팔로잉 97.

    그 아래로 임석영이 올린 사진이 칸을 채우고 있었다.

    “헙.”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턱 막고 사진을 구경했다.

    임석영의 얼굴 위에 앉아 있는 강아지,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남윤수, 아이템 상자가 열려 있는 게임 화면, 앞치마를 목에 걸고 나란히 앉아 고기가 올라간 불판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임석영과 김찬영, 바닥에 쏟은 팝콘, 얼굴에 낙서가 된 채 자고 있는 남윤수.

    풉, 하고 웃음이 터졌다. 사계절의 임석영이 모두 들어 있었다. 그걸 보는 게 재미있었다.

    칸을 채우고 있는 사진 하나를 누르자 화면의 가로를 가득 채우며 사진이 커진다. 파란색 후드를 뒤집어쓴 임석영이 강아지풀을 인중에 올리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이 작을 때는 몰랐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귀엽네.”

    그렇게 말하며 화면을 내리자 사진 아래 있는 댓글이 보였다.

    [석영아 이거 진짜 너무 귀엽다ㅋㅋㅋㅋ]

    얼굴에 만연하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느낌이 딱 왔다. 이 아이가 댓글 요정인가. 몇 개의 사진을 더 눌러봤다. 같은 아이디가 댓글에 존재했다.

    [석영아 동창회 왜 안 왔어 ㅠㅠ?]

    [너 키가 더 큰 거 같다ㅋㅋ 옛날엔 내가 더 컸는데!]

    [치즈냥이네ㅋㅋ 귀엽당ㅋㅋ 츄르 사 온 너도 귀엽다ㅋㅋㅋ]

    대부분의 댓글이 귀엽다는 말로 끝났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남윤수 사진에서는 그 아이디를 찾을 수 없었다. 확실하다. 이 아이가 댓글 요정이다.

    아이디를 눌러 계정에 들어가 봤다. 인스타그램을 설치하는 건 한 시간 넘게 망설인 주제에 아이디를 발견하자마자 들어가는 것에는 거침이 없었다.

    “어, 얘… 그때 그 애다.”

    댓글 요정, 그러니까 어쩌면 임석영이 고백을 한 것일지도 모르는 희진이를 본 적이 있었다. 빈자리를 발견하고 신나서 들어가다가 그 옆에 앉아 있는 임석영을 발견하고 멈춰 섰던 버스 안에서.

    갑자기 임석영이 가방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어색하게 앉아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여자애를 곁눈질로 봤었다. 그게 희진이라니.

    그때도 느꼈지만 희진이라는 애는 정말이지 너무 예뻤다. 말간 피부에 큰 눈,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 그걸 보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울적해진다.

    “눈도 높네, 새끼.”

    괜히 툴툴거리며 뒤로 돌아갔다. 다시 임석영의 계정이 떴다. 그대로 종료할까 하다가 가장 최근에 올린 게시물을 눌러봤다.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있는 하늘이 청명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사진이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 네 생각이 났어]

    그 아래로 그의 친구들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헐? 님 연애함? 이럴 수가? 누가 생각이 났죠? 감성 무엇, 등의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 네 생각이 났다고?

    “참나….”

    투박하게 핸드폰을 껐다.

    세우고 있던 상체를 침대에 밀착시켰다. 베개를 끌어안고 흥, 하고 소리 냈다. 나도 모르게 나온 소리였다.

    흥은 무슨 흥?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대로 돌아누웠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고 잠을 청했다.

    시간이 계속 흘렀다. 이상하게 잠이 안 와서 끈질기게 눈만 감았다.

    잠이 옵니다. 잠이 듭니다.

    속절없이 밤이 깊어갔다.

    다음 날, 학교에 온 임석영이 어쩐지 이상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처음에는 댓글 요정이랑 뭐 잘되기라도 한 건가 싶어 괜히 뿔이 났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말없이 나를 보며 웃었다. 한두 번 웃고 마는 거면 기분 좋은 일이 있나 보다, 하고 넘기겠는데 너무 노골적으로 나를 보면서 웃었다.

    참다 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쏘아봤다. 턱을 괸 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임석영이 눈이 마주치자 입술을 붙인 채 길게 늘인다. 한쪽 뺨에 보조개가 파였다. 그 보조개가 조금 특별해 보여 아주 잠깐 시선을 뺏겼다가 다시 눈을 치켜떴다.

    “야, 너 뭔데 자꾸 나 보면서 실실 쪼개냐?”

    “응?”

    “아니, 왜 자꾸 웃냐고.”

    어제 잠을 설쳤다. 그 탓인지 눈이 조금 퀭했다. 설마 그게 웃긴가. 스멀스멀 임석영의 얼굴에 웃음이 퍼진다. 쟤 진짜 오늘 왜 저래.

    “콩알아.”

    “왜.”

    “어제 새벽에 잠도 안 자고 뭐 했어?”

    역시. 눈 밑이 검은 탓이다. 눈두덩을 문지르며 두껍게 잡힌 것 같은 쌍꺼풀을 꾹 눌렀다.

    “나, 나 어제, 일찍 잤는데?”

    “아아, 일찍 잤어어? 몇 시에?”

    답지 않게 말꼬리를 길게 늘인다. 뭔가 건조한 것 같은 얼굴을 매만지며 고개를 기울였다.

    “10시? 아무튼 일찍 잤어.”

    “아, 진짜? 난 어제 한숨도 못 잤잖아. 새벽에 누가 몇 개 있지도 않은 내 인스타 사진에 하트를 다 때려 박아서.”

    흠칫, 눈동자가 흔들렸다. 얼굴을 매만지던 손이 갈 길을 잃고 멈췄다.

    “아이디가 뭐더라? 영문이었는데. 단어는 아니니까 한글을 영문으로 쓴 거겠지? 알파벳 알로 시작했는데, 그게 아마 기역이지?”

    도르륵, 눈동자가 굴러갔다. 눈이 마주쳤다.

    “잠꼬대로 눌렀어?”

    “…….”

    “자면서 내 아이디도 찾고 사진도 구경하고 ‘좋아요’도 누르고? 뭐가 제일 좋았어? 궁금하네.”

    “야, 그게 아니라….”

    임석영이 턱을 괸 채 픽 웃는다.

    “친구 추가 하려다가 괜히 네 아이디 애들한테 뜰까 봐 안 했어.”

    얼굴이 뜨거워졌다. 도저히 얼굴을 들고 있을 수가 없어 책상에 엎드렸다. 아, 미친, 쪽팔려!

    옆에서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디 한글로 안 써봤으면 모를 뻔했어. 하트 테러 김천사.”

    머리를 감싼 두 팔 안에서 울상이 됐다.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천사 아니야….”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잘 안 들렸는지 임석영이 어? 하고 되묻는다.

    “천사, 아니라고…. 10월 4일이야….”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상체를 일으켰다. 손바닥을 살짝 내려 눈만 드러내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임석영이 보였다.

    “생일이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임석영이 말없이 시선을 내렸다. 다행히 이 이상 놀리지 않는 듯해 몸을 돌려 앉았다.

    서랍을 뒤적이고 있을 때 임석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진짜 특별한 날에 왔다. 천사 맞을지도 몰라.”

    낯간지러운 말에 얼굴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소리를.

    정작 말을 뱉은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아이디 하나 잘 만들었네, 하고 말을 이었다.

    *

    칠판 우측 상단부에 체력 신체 검사에 대한 안내문이 붙었다.

    오전 체력 신체 검사

    오후 체육 대회 예선

    점심 먹고 청소

    오전, 오후 수업이 없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신체검사 날을 두 손 모아 기다렸고, 드디어 당일이 되었다.

    김윤환은 진정한 종이 인형이 누구인지 가를 수 있는 날이 왔다며 아침부터 내 책상 앞에 서서 조잘조잘 떠들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말없이 듣기만 했다.

    “내가 너보다 키는 분명 커.”

    그렇구나.

    “몸무게도 더 나갈걸?”

    응. 그래.

    고개를 끄덕이지도, 대답하지도 않은 채 김윤환이 얼른 할 말을 다 끝내고 가버렸으면, 하는 심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그때 교실로 임석영이 들어왔다.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내 앞에 서 있는 김윤환을 빤히 쳐다봤다.

    “윤환아.”

    임석영 목소리에 김윤환이 뒤돌았다.

    “내가 진짜 분명하고 확실한 거 알려줄까?”

    그 말에 촉이 섰는지 김윤환이 아니, 하고 빠르게 답했다. 그러곤 뒤이어 무슨 말이라도 나올까 후다닥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윤환아? 어디 가? 어?”

    임석영이 다정한 말투로 멀어지는 김윤환을 불렀다. 자리로 돌아간 김윤환이 가운뎃손가락을 펴고 대화를 거부하자 윤환의 이름을 연신 외치던 임석영이 픽 웃으며 말았다.

    책상 위에 올려둔 가방에 그대로 머리를 대고 엎드려 누운 임석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는다.

    난 이상하게 네가 웃으면 불안하단 말이지.

    “홍차, 안녕.”

    “안녕.”

    “오늘 신체검사하는 날이네?”

    “응. 그러네.”

    오른손으로 머리를 받친 임석영이 물끄러미 나를 본다.

    “너 키가 몇인지 항상 궁금했어.”

    “키? 나 168 될걸?”

    “그렇게 크다고? 더 작을 줄 알았는데.”

    어깨를 으쓱였다.

    “시력은?”

    “몰라. 예전에 검사했을 때 1.5였는데. 떨어졌을 거 같아.”

    “좋네. 너 안경 쓸 일은 없겠다.”

    뭐, 그렇겠지, 하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몸무게도 물어보면 알려줘?”

    “아니. 안 알려줘.”

    칼 같은 대답에 임석영이 입술을 삐죽였다.

    “어차피 이따 다 볼 텐데.”

    “남의 검사 기록을 왜 봐.”

    “볼 건데? 나 오늘 너만 따라다닐 거야.”

    김윤환을 따라 가운뎃손가락을 올리자 임석영이 표정을 굳히며 우뚝 솟은 손가락을 쥐어 잡는다.

    “넌 나한테 궁금한 거 없냐.”

    임석영의 물음에 골똘히 생각해봤다. 궁금한 거. 궁금한 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건 없는데. 대답이 없자 임석영이 허, 하고 웃으며 섭섭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섭섭해지려고 그러네. 아니, 왜 궁금한 게 없어? 왜?”

    그럴 수도 있지. 뭐 성을 내고 그래.

    진동이 울렸는지 투덜거리던 임석영이 입을 다물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무언가를 확인하는 것 같더니 입술을 늘이며 웃는다.

    아마도 임석영의 핸드폰을 울린 게 메시지였는지 손가락이 움직이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대화를 계속 주고받는 것 같았다. 이제 이쪽에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집중하는데 그게 묘하게 신경이 쓰인다.

    누구랑 대화를 하기에 저렇게 해맑게 웃어.

    임석영을 보는 내 얼굴이 점점 불퉁해졌다.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신경질이 난 사람처럼 홱 몸을 돌아앉았다.

    까닥까닥 움직인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렸다. 힐끔, 옆을 보자 이제 아주 책상에 엎드려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아나, 진짜…. 이거 뭔데. 뭔데 이렇게 짜증이 나는데.

    알 수 없었다. 마음이 이상하게 삐뚤어졌다.

    탕탕, 하고 누군가 교실 앞문을 두드렸다. 고개를 들고 보자 복도에 선 채 상체만 들이민 담임이다.

    “자, 강당으로 이동한다!”

    그 말에 아이들이 의자를 뒤로 빼며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끄는 소리에 일순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툭, 누군가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고개를 올려다보자 임석영이 가자 홍차, 한다. 원래 같았으면 응, 하며 일어났을 텐데, 왠지 모르게 고운 소리가 안 나갔다. 어깨를 틀며 임석영의 손을 떨어트리고 말없이 교실을 나섰다.

    “어, 뭐야.”

    뒤에서 임석영의 의아하다는 목소리가 들렸으나 못 들은 척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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