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홍차-20화 (20/70)

제20화

동네가 달라 배달을 갈 수 없는 거리였다.

“고객님, 거기까지는 배달을 못 가는데요.”

― 어? 진짜요?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수신 번호를 확인했다.

― 배달 안 해줘요?

“네. 가까운 중국집으로 전화하세요.”

― 아, 그럼 저 못 먹는 거예요?

눈썹이 꿈틀 올라간다. 싸한 기운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수신 번호에 찍힌 번호를 틱틱 눌렀다.

― 진짜 안 해줘요? 짬뽕 먹고 싶은데.

[ㅇㅅㅇ]

번호 열한 자리를 누르자 저장된 번호가 떴다. 일순 표정이 굳었다.

“야, 임석영.”

내 말에 상대가 입을 다문다.

“짬뽕이고 나발이고 장난 전화 하면 가만 안 둔다.”

― 무서워.

“끊어.”

― 아, 잠깐만. 알바 몇 시에 끝나?

그건 왜 묻지. 괜히 불길한 마음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그걸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임석영이 빠르게 말을 잇는다.

― 집에 혼자 가기 심심해서 그래. 몇 시에 끝나는데?

“9시.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는 여기서 바로 집에 갈 거야.”

“누리야! 단무지 꺼내 와라.”

탁수 사장님은 목청이 좋았다. 그냥 좋게 불러도 다 알아듣는데, 유독 김누리! 누리! 누리야! 이렇게 이름을 부를 때만 복식 호흡을 했다.

주방을 향해 네! 하고 답한 뒤 수화기를 고쳐 잡았다.

“나 일해야 돼. 끊는다.”

― 응. 이따.

임석영이 뒤에 뭐라 말을 붙이는 것 같았는데 끊어버렸다. 이, 뭐라 했는데. 뭐 중요한 말은 아니었겠지.

주방에 있던 탁수 사장님이 빼꼼 얼굴을 내밀고 나를 본다.

“단무지.”

“아, 네!”

탁수 사장님에게 단무지를 건네고 핸드폰을 들었다. 계산대에 있는 박하사탕 세 알을 입에 집어넣고 구석에 앉았다. 중요한 말이면 따로 메시지를 보내겠지 싶어 살펴보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같이 가자는 말은 아니었겠지?”

사탕을 굴리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9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탈취제를 몸에 착착 뿌리고 퇴근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 뒤 두리번거렸다.

거리가 괜스레 어둡고 조용하게 느껴졌다. 한두 명 길을 지나고 있을 뿐 임석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장님, 저 들어가요!”

뒤돌아 인사를 하자 탁수 사장님이 돌아보지도 않은 채 손을 번쩍 들고 흔들었다. 마감하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허공을 휘휘 젓는 사장님의 손에 꾸벅 인사를 하고 문밖으로 나왔다.

기름 냄새와 탈취제 냄새가 섞여 알 수 없는 냄새가 나를 휘감으며 따라왔다. 한쪽 팔을 들어 코에 대고 킁킁거렸다. 라벤더 향이 났다가 기름 냄새가 나고, 양파 냄새가 났다가 라벤더 향이 났다. 들쑥날쑥한 냄새에 탈취제 뿌린 것을 금방 후회했다. 라벤더 향이 섞여 더 이상한 냄새가 된 느낌이었다.

소매에 하관을 파묻고 킁킁거리며 이불 가게를 지나가는데 건물 사이에 누군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걸어가면서 흘긋 눈을 돌렸다. 옆에 누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돌아간 시선이었는데, 두 눈에 임석영이 들어왔다.

“어? 뭐야?”

벽에 어깨를 기대고 삐딱하게 서 있던 임석영이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빼 내 팔목을 잡았다. 그대로 잡아당기더니 내가 하관을 파묻고 있던 소매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뭔데 그렇게 킁킁거려.”

놀라서 팔을 뒤로 빼고 한 걸음 물러섰다. 음? 하고 소리 낸 임석영이 한 걸음 다가온다.

“왜. 오지 마.”

한 걸음 다시 물러났다.

“왜?”

“안전거리 확보 모르냐.”

안 그래도 옷이며 머리에 밴 냄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이럴 때 곁에 누가 다가오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눈을 부릅뜨고 이 이상 가까이 다가서지 말 것을 경고했다.

얼레? 하고 소리 낸 임석영이 한 걸음 다가와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난 그런 거 없어.”

그리고 그대로 어깨를 잡아끌며 걸음을 뗐다.

“차도 없는데 안전거리는 무슨.”

주춤거리며 몸을 옆으로 뺐다.

“아니, 옷에 냄새 배서 그래.”

꿈틀거리며 몸을 빼려고 하자 임석영이 머리에 코를 묻고 냄새를 맡는다.

“안 나는데?”

어깨를 감은 팔에 힘을 주며 몸을 당긴 임석영이 고개를 내려 눈을 맞춘다.

“아무 냄새도 안 나. 나 코 막혔어.”

코맹맹이 소리도 안 나는데, 거짓말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자세를 고쳤다. 더 이상 옆으로 물러나지 않는 게 마음에 드는 듯 임석영이 후드를 뒤집어쓴 머리를 쓰다듬는다.

길을 따라 쭉 걸었더니 버스 정류장이 나타났다. 걸음을 멈추고 서서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을 확인하는데 임석영이 앞을 가리고 서며 시야를 가린다.

“다음 정류장에서 탈래?”

“어?”

“좀 걷자. 여기 벚꽃 길인데.”

임석영이 정류장 너머로 펼쳐진 길을 눈짓했다. 도로를 따라 쭉 이어진 길에 벚나무가 줄줄이 심어져 있다. 만개한 꽃이 길을, 하늘을, 풍경을 수놓은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버스 차창 밖으로, 베란다 문 밖으로, 학교를 오갈 때만 눈에 담았지 진득하게 꽃을 본다는 느낌은 없었다.

“꽃 냄새 좋잖아.”

임석영이 나를 설득하겠다는 듯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는 척했다.

“코 막혔다며.”

“아. 맞아.”

그리고 빠르게 그 척을 철수한다.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사줄게.”

“좋아.”

김누리 사용법을 터득한 것인가. 먹을 것으로 유인하다니. 성큼성큼 걸어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자 임석영이 픽 웃으며 붙어 섰다.

“야, 먹을 거 사준다고 그렇게 냉큼 따라가고 그러면 안 돼.”

아이스크림 사줄 테니 다음 정류장까지 걸어가자고 말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물론 나는 되는데.”

황당하다는 얼굴로 보자 임석영이 왜 그렇게 보냐는 얼굴로 마주 본다.

“네 비밀 아는 거 나뿐이잖아. 그래 안 그래.”

“아, 물론 그건 그런데….”

“그러니까 나는 따라와도 돼.”

묘하게 설득력이 있단 말이지. 흠, 하며 눈을 돌렸다.

길을 따라 쭉 걷자 상가가 즐비한 길목이 끝났다. 큰 도로로 이어진 길에 분홍빛 길이 끝을 알 수 없게 펼쳐졌다. 가로등 빛이 벚나무 위에 걸리고, 살랑살랑 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 잎이 바람에 실려 날아갔다. 손톱만 한 꽃잎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풍경이 아름답다.

“걷기를 잘했지?”

“응. 너무 좋다.”

고개를 올리고 머리 위를 지나쳐 가는 벚나무를 하나하나 보았다. 바람이 불어 벚꽃 잎이 날릴 때면 손을 뻗어 잎 하나를 손에 쥐려고 버둥거렸으나 손바닥 위에 떨어지는 것은 없었다.

거리는 조용하고 가로등 빛이 쏟아지는 길 위엔 떨어진 꽃잎이 쌓였다. 운치 있는 풍경에 괜히 마음까지 동요됐다.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인다.

“예쁘다.”

달빛 그윽한 밤 풍경 안으로 임석영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니까.”

고개의 방향을 살짝 틀어 임석영의 얼굴을 보았다.

벚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나를 보고 있었다. 표정 없이 마주친 얼굴이 풍경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벚꽃 잎을 너무 오래 눈에 담은 탓에 정말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는 것인가.

산뜻하고 맑은 얼굴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진짜 예….”

말을 잇던 임석영이 순간 입을 다문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쓸었다. 두 손으로 제 뺨을 탁탁 소리가 나게 때린다.

뜬금없는 행동에 눈을 찌푸렸다. 왜 저래. 예쁘면 좋은 거지.

“야, 왜 그래.”

혹시 얼굴에 뭐라도 붙었나 싶어 까치발을 하고 들여다보자 임석영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한 발짝 떨어졌다.

“안전거리 확보 몰라?”

그러더니 아까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차도 없는데 그런 게 필요하냐고 할 때는 언제고. 순 다 자기 마음대로지. 괜히 얼굴을 쏘아보고는 걸음을 돌렸다.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걷다가 바람이 불어 꽃잎이 날리면 급하게 손을 빼고 손바닥을 폈다. 역시나 손바닥 위에 내려앉는 꽃잎은 없었다.

“그냥 주워.”

임석영이 그렇게 말한 건 다음 정류장에 다다랐을 때였다.

허리를 숙인 임석영이 바닥에 떨어진 꽃을 주웠다. 내게로 손이 다가오더니 뒤집어쓴 후드의 틈을 살짝 벌려 손에 든 꽃을 한쪽 귀에 꽂아주었다.

가만 눈을 올려 보자 임석영이 후드 끈을 조여 묶은 뒤 두 뺨을 감싸 잡고 눈을 맞췄다.

“야, 진짜 이상해.”

눈을 돌려 뺨을 감싼 임석영의 손을 보다가 임석영의 얼굴을 보았다.

“뭐가?”

무표정한 얼굴이 골똘한 상념에 잠긴 듯 깊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임석영을 보았다. 임석영이 뺨 위에 올린 손에 힘을 주었다. 그 바람에 입술이 뺨을 누르는 힘에 밀려 동그랗게 오므라진다.

“으, 느, 므르그.”

뭐라 말을 하고 싶은데 입술 모양이 일그러져 발음이 뭉개졌다.

“예쁘잖아.”

눈만 깜박이며 임석영을 보았다. 주어 없이 예쁘다니. 그렇게 말하면 네가 말하는 게 벚꽃인지 나인지 정확하지가 않잖아. 그런 장난은 하는 거 아니다. 그렇게 사람 놀리는 거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임석영을 보는데,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검은 눈동자가 맑고 깊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옷에 밴 탈취제 냄새가 코를 스치고 가고, 그럴 때마다 내 신경은 곤두선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마주 보고 선 임석영의 머리칼이 흐트러진다. 임석영의 머리칼이 나풀거리고, 그 위로 벚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진 꽃잎들이 우수수 흩날린다.

모든 게 아름다운 순간. 시간이 멈추고 세상의 모든 언어가 사라진 것 같다.

말없이 눈만 깜박이자 뺨에서 손을 떨어트린 임석영이 머리를 가볍게 누른다.

“진짜… 예쁘단 말이야.”

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임석영의 향이 내게로 쏟아진다. 기분 좋은 비누 향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 그러는 건지 내 앞에 있는 임석영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

“야, 중간고사도 끝났는데 게임 조지자!”

남윤수는 이 말을 점심시간부터 했다. 시험이 끝난 기념이라는 이상한 이유가 붙었다.

소문에 의하면 남윤수는 중간고사를 제대로 말아먹었다. 수학은 3번으로 첫 문제부터 마지막 문제까지 찍었다나. 제대로 한 것도 없는 거 같은데 대체 무슨 기념을 한다는 건지.

말아먹은 기념? 하고 물었다가 남윤수가 나에게 헤드록을 걸었고, 피시방 가는 길까지 끌고 왔다.

힐러가 어쩌고저쩌고, 탱커가 어쩌고저쩌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남윤수의 입에서 쏟아졌다. 임석영도 게임을 즐겨 하는지 야, 아이템 레벨이 넌 너무 구리잖아, 하며 맞받아쳤다.

아무런 말이 없기에 김찬영은 게임을 즐기지 않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김찬영 레벨이 제일 높았다. 이해를 못 해서 듣고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가소로워서 대답을 안 하는 거였다.

“야, 차연이 너는 뭐야?”

“나? 나, 나는 중수.”

“중수? 뜬금없이 뭔 중수?”

“테트리스, 중수….”

남윤수가 손절하듯 어깨에 얹었던 손을 탁 뗀다.

중학교 때 컴퓨터 시간만 되면 수업 진도는 안 따라가고 몰래 게임을 했다. 처음엔 지뢰 찾기로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조금 더 과감해져서 테트리스를 했다.

나는 무슨 게임을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같이 걸어가고 있는데 저 앞으로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사이 거리가 가까워졌다.

느낌표가 나를 후려쳤다.

임석영 뒤로 숨으려는데 상대편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눈이 마주친 재민이 웃는 얼굴로 손을 들었다.

손을 든다는 것은, 인사를 한다는 것. 인사를 한다는 건, 내 이름을 부른다는 것. 재민은 늘 누리야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재민의 입이 벌어지고,

“어! 형!”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내 입에서 크게 튀어나온 소리에 아이들의 걸음이 멈췄다. 아이들이 나와 시선을 같이한다. 거기에 재민이 서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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