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홍차-11화 (11/70)

제11화

점심시간, 급식실에 홀로 앉아 있는데 임석영이 친구 두 명을 끌고 나타났다. 나타난 것까지는 괜찮은데 식판을 놓고 앉았다. 내 옆에.

“식판 한 손으로 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누가 보면 팔이라도 떨어져 나간 줄 알겠네.”

남윤수가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 앉았고,

“너였구나.”

하고 말하며 김찬영이 남윤수의 옆에 앉았다. 아니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왜 또 너희들인데?

입에 잔뜩 욱여넣은 밥 때문에 부풀어 오른 볼을 하고서 의아한 얼굴로 임석영을 보자, 그가 묵묵히 내 손에 젓가락을 쥐어준다.

놓치지 말고 꼭 잡으라는 듯, 손가락 하나하나 자리까지 잡아주며. 왜, 뭔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인데.

어머니, 한 수저라도 뜨셔야죠. 그래야 살 거 아닙니까. 예?

병으로 인하여 몸이 쇠약해진 어머니의 식사를 챙기는 아들, 그런 거.

입에 든 것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나 젓가락 있는데.”

“이건 내 젓가락이야.”

“…뭔 소리야.”

임석영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데, 답이 앞자리에서 날아온다.

“이 새끼, 손가락 삔 게 너 때문이라며?”

그걸 그새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니?

“넌 재수 옴팡지게 없는 거야. 하필 걸려도 저런 악랄한 놈한테 걸려서.”

말없이 쳐다보자 남윤수가 손에 든 숟가락으로 나를 콕 찍어 가리킨다.

“오늘부터 그릇에다 물 떠다 놓고 임석영 깁스 풀게 해달라고 비는 게 좋을 거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왜 그릇에다 물 떠다 놓고 기도까지 해야 하는데.

못마땅한 얼굴로 남윤수를 보는데, 젓가락 쥔 손을 임석영이 툭툭 건드린다. 돌아보자 왼손으로 어설프게 쥔 숟가락을 내밀고 있었다.

“왜.”

“어묵볶음.”

“뭐?”

“어묵볶음 올려달라고.”

황당한 소리를 참 당당하게도 하네.

굳은 얼굴로 임석영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묵묵히 밥만 먹던 김찬영이 내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너 셔틀 된 거야.”

“어?”

“임석영 오른팔 셔틀, 그거 된 거라고.”

제가 왜요?

내가 그런 걸 할 것 같으냐? 하는 성난 얼굴로 홱 시선을 돌리자 임석영이 고개를 기울이며 오른손을 들었다.

“누구 때문?”

꽉 맞붙은 이가 갈리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숟가락은 내가 들잖아. 입에 넣어주는 건 징그러워서.”

임석영이 능청스러운 태도로 식판을 탁탁 두드렸다.

“어묵볶음이요.”

“…….”

“반찬 기다리다 밤새겠다.”

그렇게 임석영 오른팔 셔틀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셔틀의 종류는 다양했다. 점심을 먹을 때는 젓가락질을 대신 했고, 수업 시간에는 노트 정리를 대신 했다. 게임 아이템 수집해야 한다며 임석영 대신 핸드폰 게임도 했다.

아니, 그거, 그거 누르라고, 그거! 하고 옆에서 임석영이 귀가 따갑도록 소리를 질러대서 결국 보다 못한 김찬영이 대신 해줬다.

“아이템 먹었다.”

“야, 찬영아, 진짜 고맙다.”

아이템 먹지도 못하고 자꾸 죽는다고 싫은 소리를 하도 들은 탓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김찬영의 손을 잡고 감사 인사를 하자 그가 손을 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임석영이 됐어, 이제 게임은 안 할 거야, 하며 핸드폰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아이템 먹으래서 먹었더니 별 꼴이네. 혼자서 쿵쿵거리며 멀어지는 임석영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말도 안 되는 걸 오른손 못 쓴다고 시킬 때마다 적당히 해라, 하고 이를 악물고 말하면 임석영이 손 깁스를 확인시켜 줬다. 병원비 청구는 안 하잖아, 하며 마치 자신이 나를 배려한다는 양 말을 할 때면 꿀밤을 세 대 먹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가장 충격적인 건 양치였다. 목덜미를 잡고 개수대로 끌고 가더니 내 손에 칫솔을 쥐여줬다.

“진심으로 거절한다.”

“안 돼. 양치는 진짜 해야 돼.”

“왼손으로 해, 그냥.”

들고 있던 칫솔을 임석영의 왼손에 쥐여주려고 건네자 임석영이 손을 덜덜 떨었다.

“못 한다고. 내가 할 수 있으면 했지. 너를 왜 데려왔겠어?”

이거, 진짜 도망갈 수도 없고.

눈을 치켜뜨고 노려보자 임석영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양치질을 독촉했다.

“나 양치 못 해서 임플란트 하게 되면 어떡해?”

여기서 치과 치료가 왜 나와?

눈을 모나게 뜨고 쏘아보자 임석영이 나도 싫다, 나도, 하며 치약을 내밀었다.

아, 진짜. 태어나서 다른 사람의 이를 닦아주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입술을 말아 물고 칫솔에 치약을 한 움큼 짰다.

“야, 치약을 뭐 그렇게 많이.”

임석영이 한 소리를 하기에 눈을 뾰족하게 올려 뜨자 큼, 하며 입을 다물었다. 칫솔을 한 손에 들고 손을 까닥였다. 그 뜻을 알아먹었는지 임석영이 상체를 숙여 자세를 낮췄다.

“안 징그럽냐. 나 같으면 그냥 어설퍼도 혼자 닦겠다.”

임석영의 어금니로 칫솔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입을 벌린 임석영이 으어어, 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뱉기에 알았으니까 닥치라고 했더니 순순히 목소리를 죽였다.

아래쪽 어금니, 위쪽 어금니, 위치를 옮겨가며 닦았다. 박박 움직였다가 피라도 날까, 열불이 나는 마음과는 다르게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구석구석 칫솔질을 하다가 시선을 옮겼다. 입에서 조금 더 올라간 위치에서 임석영과 시선이 부딪쳤다.

계속 나를 보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러운 마주침이었다. 순간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입 안에 칫솔을 놓은 채 가만히 있자 눈을 깜박거리던 임석영이 입을 다물고 씩 웃었다.

입가에 거품을 묻힌 채 숙였던 상체를 세운 임석영이 왼손으로 칫솔을 잡았다. 입에 머금은 거품을 개수대에 뱉더니 웃는 낯을 하고서 나를 내려다봤다.

“안 되겠다. 내가 닦을게.”

전혀 어색할 것 없는 칫솔질에 주먹을 쥐고 임석영의 팔뚝을 퍽, 소리가 나게 때렸다. 입에 칫솔을 문 임석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봤다.

“닦을 수 있으면서.”

부들거리며 노려보자 임석영이 픽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야. 네가 힘들어 보여서 어렵지만 그냥 내가 해보는 거야.”

“죽을래?”

“안 믿네.”

임석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시원하게 칫솔질을 했다. 너 같으면 믿겠냐? 원래 세상에는 믿을 사람 하나 없는 건데, 그중 제일은 너다,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학교가 끝났다. 학교를 벗어나면 셔틀도 끝나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앞서가던 임석영이 오른쪽 팔을 덜렁거리며 걸었다. 손가락 삐어서 지지대 받치고 붕대 감은 건데, 왜 팔을 못 쓰는 척해.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뒤에서 바라본 그의 어깨와 등이 말끔했다. 왜냐하면 내가 녀석의 가방을 들었기 때문이다.

팔로 들 수 있는 모든 걸 나에게 떠넘길 생각인 건가.

“야, 가방은 어깨에 메는 거잖아. 인간적으로 네가 들어라.”

“엇, 버스 왔다. 홍차, 뛰어!”

정류장으로 17번 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몇 미터 남은 거리를 임석영이 뛰었다. 어깨에는 임석영의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쇼핑백을 들고 후다닥 그를 따라 달렸다.

카드를 찍고 돌아서자 먼저 자리에 앉은 임석영이 손을 번쩍 들고 흔들었다.

“홍차!”

남윤수의 말을 따라 집에 가자마자 그릇에 물 떠다 놓고 기도드리리라.

임석영의 얼굴을 불만스럽게 바라보며 들어갔다. 그의 옆자리, 그리고 앞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럼 내가 앉을 자리는 어디? 당연 앞자리지. 임석영의 가방을 어깨에 멘 채 자리에 앉았다.

야, 왜 거기 앉아, 하며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주머니에서 엠피스리를 꺼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뭐 듣는데.”

상체를 앞당긴 임석영이 귀에 꽂은 이어폰 한쪽을 빼더니 자신의 귀에 쏙 꽂아 넣었다.

아, 뭐냐고…. 저리 가라고….

눈을 가늘게 뜨고 흘겨보는데, 임석영의 얼굴이 흠칫 굳는다. 재생 바를 앞당겨 노래 구간을 되돌렸다.

- 어젯밤에 난 네가 미워졌어. 어젯밤에 난 네가 싫어졌어.

다음 가사가 나오기 전, 노래 구간을 되돌렸다.

- 어젯밤에 난 네가 미워졌어. 어젯밤에 난 네가 싫어졌어.

그리고 다시 되돌리자, 가사가 반복됐다.

― 어젯밤에 난 네가 미워졌어. 어젯밤에 난 네가 싫어졌어.

반복되는 가사에 임석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구간 반복하는 이유는?”

“고장 났나.”

“네 엄지가 부리나케 움직이던데?”

“그런 적 없는데.”

“아, 그래?”

“응.”

상체를 당긴 임석영이 의자 등받이에 팔을 대고 있는 탓에 고개를 돌리고 마주 본 얼굴의 거리가 이상하게 가까웠다. 임석영 귀로 이어진 이어폰 줄을 잡아당기자 그의 귀에 걸려 있던 이어폰이 툭 떨어진다.

“전학생, 나에 대한 네 감상 잘 들었고.”

이어폰을 올려 잡고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등 뒤로 임석영의 음성이 이어진다.

“친구 미워하고 그러면 안 돼.”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였다고.

“나만 좋아하면 서럽지.”

그러시는 겁니까.

*

카톡.

이른 시간부터 핸드폰이 울리기에 이불을 더듬어 찾아 들었다.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밀어 올려 확인한 핸드폰에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 오른팔 전화번호 맞습니까?]

임석영이다.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느낌에 한숨을 뱉다가 프로필 사진을 눌러보았다.

파란색 후드 티를 입고 있었다. 야외 화단에 앉아 있었고, 반만 올린 후드 지퍼 위로 흰색 털에 검은색 털이 섞인 강아지가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강아지와 임석영, 둘 다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아지가 귀여웠고, 웃고 있는 임석영도 귀여웠다.

카톡, 알람이 울린다.

[네가 진짜 내 오른팔이 맞나 고민하고 있다면 맞으니 답장을 해도 좋다]

뭔데 답장을 보내라 마라 하는 거지.

괜히 괘씸한 생각이 들어 키패드를 두드리다가 입력한 내용을 전부 지우고 화면을 껐다. 이불 위에 핸드폰을 놓고 눈을 감았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벨소리가 울린다. 눈을 뜨고 확인한 핸드폰 액정에 ‘내 번호 지워줬으면 좋겠는 애’가 떠 있었다.

“여보세요?”

― 야, 읽고 씹기 있냐?

“왜.”

― 한 손으로 공들여 써서 보낸 건데, 씹으면 너무 서럽다.

“무슨 일인데?”

― 네가 필기한 노트, 혹시 그 가방 안에 있어?

“노트? 잠깐만.”

침대에서 벗어나 방구석에 놓아둔 가방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어제, 임석영의 가방 셔틀을 했는데 하차 벨을 누른 임석영이 가방 달라는 말도 안 하고 문 앞에 섰다. 야, 가방, 하고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서 주자 너 써, 하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왜? 그럼 너는? 하고 묻자 나는 너와 다르게 가방이 졸라 많아서, 라는 말을 남기고는 하차해 버렸다.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있다가 잽싸게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야! 월요일에 줄게! 그러자 임석영이 붕대 감은 손을 휘휘 흔들며 그래 봤자 네가 다시 들고 가게 될 거다, 하며 멀어졌다. 쇼핑백 들고 온 게 어지간히 짠해 보였나 보다.

지퍼를 열고 가방 안을 살폈다. 너무 가벼워서 아무것도 안 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노트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어, 가방에 있다.”

― 왜 내 노트를 마음대로 가져가시는지?

당황스럽네. 막무가내로 가방 던져놓고 갈 때는 언제고.

“내가 언제 가져갔어. 네가 버리고 갔지.”

― 그 노트는 안 버렸어.

“월요일에 가져갈게.”

― 안 돼. 공부해야 돼.

“월요일에 하면 되겠네.”

― 바보냐? 월요일에 쪽지 시험 보는데?

당황스러운 쪽지 시험 소식에 멍하니 손에 든 노트를 바라보았다. 같은 반에서 같이 수업 들었는데, 왜 너는 알고 있는 사실을 나는 모르는 것일까.

― 눈 뜨고 잘 때부터 알아봤다.

심지어 제가 눈을 뜨고 잤다고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말문이 막혔다.

― 가져다줘. 주소 보내줄게.

“…뭐, 뭐라고?”

― 노트 가지고 오라고.

“뭐, 어, 어디로?”

― 어디겠냐.

어딘데!

― 우리 집이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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