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홍차-9화 (9/70)
  • 제9화

    학교에서 온종일 임석영의 눈치만 살폈다. 하필 옆자리일 건 뭐람.

    수업을 듣다가, 급식을 먹다가, 복도를 지나가다가, 힐긋 눈을 돌리면 그중에 반은 눈이 마주쳤다. 턱을 괴고 있는 임석영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고, 복도 창틀에 기대고 있는 임석영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고, 젓가락을 입에 물고 있는 임석영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돌리고 도망갔다. 나 너 보고 놀랐다! 하고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수준이었다. 태연하게 행동하고 싶은데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가, 쉽지가 않다.

    진짜 나를 본 건가. 두 다리 훌렁 드러내고 원피스 입은 나를 본 거냔 말이다.

    “하….”

    한숨을 뱉으며 책상에 엎드렸다.

    똑똑, 누군가 책상을 두드렸다. 고개를 들고 보자 임석영이다. 마주칠 때마다 놀란 탓에 이번에도 흠칫 어깨를 떨었다.

    무슨 일이지. 꼴깍, 침이 넘어간다.

    “가자.”

    어디를. 어디를 가는데. 옥상으로 따라와, 그건가.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 아니. 안 갈래.”

    “왜?”

    그야, 네가 가자고 하니까.

    “어디 가자고 하는 줄은 알고?”

    어딘지는 몰라도 사람 없는 으슥한, 협박하기 좋은 그런 장소가 아닐까 생각했다.

    임석영이 의자를 뒤로 쭉 잡아끌었다. 무슨 힘이 그리 좋은지, 질질 끄는 대로 끌려갔다.

    “어, 뭐, 뭐야?”

    픽, 웃음을 터트린 임석영이 내 책상 위에 있는 교과서를 챙겨 들고 눈을 맞췄다.

    “그냥 가지?”

    그 미소가 정말이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본 거야 안 본 거야. 머릿속에서 저울이 미친 듯 기우는 것을 반복했다.

    “이동 수업인데.”

    “아….”

    임석영이 그만 일어나라는 듯 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봤다.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괜히 애먼 책상만 정리하다가 임석영에게 옷깃을 잡혔다.

    “행동 엄청 굼뜨네.”

    “굼, 굼떠? 아니, 수업 갈 준비 하려고 그런 건데?”

    위로 끌어 올리는 힘에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석영이 옷깃을 놓고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수작 그만 부려. 네 교과서 나한테 있으니까.”

    내가 언제 수작을 부렸다고 그러십니까. 그저 너와 함께 가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입술을 말아 물고 고분고분 임석영의 말을 따랐다.

    의자를 책상 아래 집어넣고 임석영의 뒤를 쫓았다. 이유를 들자면 첫째로 임석영이 내 교과서를 가져갔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이동수업을 어디서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임석영의 걸음이 후문에서 멈췄다. 후문 담 너머로 얼굴을 길게 빼고 포장마차 사장님을 불렀다.

    “사장님, 만득이 두 개요!”

    후문 맞은편에는 분식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후문이 닫혀 있어 포장마차에 가려면 담을 넘어야 했는데, 담을 넘다가 걸리면 운동장행이었다. 오리걸음 한 바퀴.

    그래서 아이들은 담에 다닥다닥 붙어 사장님을 호출했고, 결국 포장마차 사장님은 배달을 시작했다. 담을 사이에 두고 주문을 받고, 계산된 건의 분식을 직접 배달해주는 방식이었다.

    이동 수업 간다기에 말없이 따라왔는데. 만득이 두 개라니.

    “이동 수업이라며.”

    “응.”

    “그게 포장마차는 아닐 거 아니야.”

    “당연하지.”

    내 미간은 의문으로 점점 좁아지는데, 임석영은 표정 변화 없이 주머니를 뒤졌다.

    얘 진짜 뭐지?

    만득이 핫도그가 하나에 2천 원이었다. 임석영이 주머니에서 5천 원 한 장을 꺼내 담 너머에 선 사장님에게 건네고 잔돈과 핫도그 두 개를 받아 들었다.

    겉에 바른 설탕과 케첩에 군침이 돌았다. 그 영롱한 빛깔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고정됐다. 임석영이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안 데려왔으면 어쩔 뻔.”

    임석영이 손에 든 핫도그 하나를 건네며 말한다.

    “오늘부터 내 분식집 메이트 해라.”

    “엉?”

    무슨 소리인 줄 모르겠으나, 우선 건네는 핫도그를 받아 든 뒤 눈을 올렸다. 그러자 임석영이 몸을 돌리며 손에 든 핫도그를 흔들었다.

    “내 친구들은 분식 안 먹거든.”

    동관 건물 뒤, 좁은 틈에 쪼그려 앉아 핫도그를 먹었다.

    유유자적 핫도그를 들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다가 저편에서 야, 이놈의 쉐끼들아! 하고 소리를 지르는 선생과 마주쳤다. 둘 다 입에 핫도그를 문 채 얼었고, 임석영이 재빠르게 먼저 튀었다. 그리고 그 뒤를 눈치 빠르게 따라 쫓았다.

    그렇게 달려서 몸을 숨긴 게 동관 뒤, 담벼락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이었다.

    “다 먹고 가야 돼. 입 싹 닦고.”

    입에 든 것을 꾹꾹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먹으려고 많이 씹어 넣은 탓에 볼이 빵빵했다. 두 손으로 막대를 잡고 입을 오물거리자, 이미 핫도그 하나를 해치운 임석영이 소리 없이 웃었다.

    그 상태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임석영이 입술을 꾹 힘주어 다물고 웃음을 참는 게 보였다. 왜 웃어? 묻고 싶었지만 아직 입을 벌릴 때가 아닌 것 같아 입에 든 것을 빠르게 씹었다. 그러자 못 참겠다는 듯 임석영이 소리 내 웃는다.

    “야, 너 열여덟 살 맞냐.”

    맞는데. 그 대답을 하기 위해 입에 든 것을 꿀꺽 삼키는 찰나 입가로 임석영의 손이 올라왔다.

    “뭐 이렇게 다 묻히고 먹어.”

    임석영이 웃는 얼굴로 입가를 쓱 문질러 닦았다.

    설탕 알갱이가 입술 위에서 구르고 있는 느낌이 났다. 입술에 닿은 손가락의 감촉이 이상했다.

    눈만 동그랗게 뜨고 코앞에서 슥슥 움직이는 그의 손과 집중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설탕 알갱이 하나 안 붙은 임석영의 입술이 붉고 도톰했다.

    “안 먹은 것처럼 입 싹 닦고 가야 된다니까.”

    눈을 끔벅이다가 고개를 뒤로 뺐다. 뭐지. 방금 엄청 다정해 보였어.

    “아, 묻었어?”

    “닦았어.”

    “응.”

    손등으로 입술을 쓸어 닦고 남은 핫도그를 입에 욱여넣었다. 이걸 빨리 먹어야 여기를 벗어나지 싶어서.

    “야, 콩알.”

    임석영의 말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 있는 거라고는 나랑 임석영 둘뿐인데.

    “어딜 봐. 너 말이야.”

    “나?”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리켰다. 뭔가 말을 하려는 것 같았는데, 콩알도 못 알아먹는 나에게 말할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 됐다, 하며 말을 마무리했다. 뭐지.

    임석영이 내 손에 든 빈 막대를 가져갔다.

    “가자.”

    뭐. 또 어디를 가는데. 분식집 도장 깨기인가. 핫도그 깼으니까 뭐 또 다른 거 먹으러 가자 그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자 임석영이 엷게 웃으며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수업 가자고.”

    *

    며칠 만에 에코백이 더러워졌다. 화장실에 갔다 온 사이에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애들이 밟고 다닌 게 결정적이었다.

    교실 바닥이 더러운 건지, 애들 슬리퍼 밑창이 더러운 건지, 햄토리 얼굴이 연탄에 맞기라도 한 듯 참혹했다. 가방 안에 든 것을 탈탈 털어 비우고 에코백을 손빨래했다.

    거뭇하게 변한 햄토리 얼굴에 빨랫비누를 묻혀 빡빡 비비고 찬물에 헹궜다. 역시나 손이 빨갛게 얼어붙었다. 세탁기가 있었으나 찌든 때 빼는 데에는 손이 최고다.

    힘주어 비틀어 짠 에코백을 탈탈 흔들어 물기를 털어냈다. 이불을 널어 빈 공간이 없는 건조대를 지나쳐 베란다 문을 열었다. 햇볕 잘 드는 베란다 난간에 에코백을 걸어두었다.

    “날씨 좋다.”

    올려다본 하늘이 맑았다. 푸르른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올라 흘러가는 구름이 목화솜 같다. 바람이 잔잔한 게 날아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크르릉, 쾅쾅, 하늘이 무겁게 울리는 소리에 번뜩 눈을 떴다.

    빨래 널고 집 청소하고 라면 하나 끓여 먹고 배불러서 바닥에 드러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 깜빡 졸았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뜨고 본 집 안이 어두컴컴했다. 어둑한 사위, 빗소리가 가득하다.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비 오네.”

    잠깐만, 뭐가 온다고?

    뒤늦게 상체를 일으켜 베란다를 돌아보았다. 활짝 열린 베란다 문틈으로 빗줄기가 쏟아져 들어오고, 쏟아져 들어온 비에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바람이 얼마나 불어댔는지 이불을 널어두었던 건조대는 힘없이 쓰러져 있고, 베란다 난간은 비에 축축하게 젖은 채 휑했다.

    후다닥 베란다로 달려가 문을 닫았다. 타다닥, 빗줄기가 유리를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아무것도 없는 난간 위를 내려다보았다.

    “…내 에코백.”

    갑자기 지구 멸망 하루 전날처럼 변해버린 하늘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

    교실. 의자를 뒤로 빼고 앉아 쇼핑백을 가방 걸이에 걸었다.

    쇼핑백 하단에 ‘황금 빵집’이라는 상호가 궁서체로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상호 위에는 제빵 장인 김황금의 얼굴이 동그란 금테 안에 들어가 있었다. 바게트를 들고 미소 지은 채.

    임석영의 눈이 내 등과 손을 옮겨 가며 훑었다. 아무리 봐도 김황금의 얼굴이 박힌 쇼핑백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두 다리를 책상 밖으로 빼고 앉아 쇼핑백을 응시했다.

    “설마.”

    “뭐가?”

    자연스레 쇼핑백에서 필통을 꺼내자 임석영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벌린다.

    “진짜 오늘 그거 들고 등교했다고?”

    “응.”

    아무렇지 않게 답했지만 부끄러웠다. 얼굴이 빨개지는 느낌에 임석영을 마주 보지 않은 채 쇼핑백에서 주섬주섬 노트와 메모지를 꺼냈다.

    “세상에. 거기서 노트가 왜 나와.”

    “…….”

    “너 닮은 햄토리는 어디 가고?”

    “어제 비바람에 날아갔어.”

    그게 나를 닮은 햄토리인 줄은 모르겠으나, 어젯밤 비바람에 휩쓸려 간 에코백에 햄토리가 그려져 있긴 했으니 같은 가방이 맞을 것이다.

    “다른 가방 없어?”

    “…….”

    “없구나.”

    대답이 없는 걸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임석영이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뭐 하러 필통이랑 노트를 만날 들고 왔다 갔다 하냐. 그냥 학교에 놓고 다녀.”

    “내 마음이거든….”

    “설마 그것도 누가 훔쳐 갈까 봐?”

    아무런 말이 없자 임석영이 코끝으로 웃는다.

    뭔데 아침부터 자꾸 시비야. 뾰족하게 뜬 눈으로 흘겨보자 녀석이 턱을 괴며 나를 보았다.

    “너 책이랑 슬리퍼도 사물함에 넣고 다니잖아. 다른 거 넣을 자리도 없겠다.”

    그만 말 시키라는 듯 고개를 세차게 돌리고 필통을 열었다.

    대단해, 전학생, 하며 얄밉게 빈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입술을 삐죽이며 연필을 꺼내 들었다.

    “야, 저 아저씨가 계속 나 노려봐.”

    “…….”

    “내일도 설마 이거 들고 학교 와?”

    “…….”

    “아, 너무 무서운데.”

    가방 걸이가 오른쪽에 있었다. 쇼핑백 양면에 제빵 장인의 얼굴이 박혀 있어 김황금의 얼굴이 임석영을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바게트 들고 미소 짓고 있는 건데, 뭐가 무섭다는 건지.

    턱을 괴고 있던 임석영이 몸을 일으켜 교실 뒤쪽으로 걸어갔다. 사물함을 향해 걸어가는 임석영을 가는 눈으로 흘겨보며 구시렁거렸다.

    “뭔 상관이야, 진짜. 분식집 메이트 하나 봐라.”

    흘기던 눈을 홱 거두고 노트를 폈다. 메모가 된 페이지를 휙휙 넘기며 백지를 찾는데, 자리로 돌아온 임석영이 책상 위에 체육복을 비롯한 잡다한 짐들을 늘어놓았다.

    교과서를 서랍에 쑤셔 넣고 자리가 없어 들어가지 못한 교과서는 책상 옆 빈 공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잘 접어서 단정하게 포갠 체육복은 바닥에 내려둔 교과서 위에 둔다.

    뜬금없고도 이상한 정리에 그가 하는 짓을 힐끔거렸다. 정돈을 마친 임석영이 내 쪽을 바라본 채 의자에 앉았다.

    “사물함 내 거 써.”

    “어?”

    임석영이 뒤쪽 사물함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내 거 사물함 네가 쓰라고.”

    “왜?”

    “내일도 네가 그거 들고 오는 게 싫어.”

    “어, 아니, 그래도. 그럼 너는?”

    “난 안 써도 돼.”

    녀석이 책상 옆에 차곡차곡 쌓은 교과서를 가리킨다.

    “누가 훔쳐 가면 어쩌려고?”

    “훔쳐 가라고 해. 잡히면 죽는 거야.”

    죽인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무표정하게 뱉더니 몸을 돌려 앉았다.

    교실 앞문이 열리고 선생이 들어오면서, 바닥에 있는 교과서와 임석영을 번갈아 보던 시선도 정면으로 돌아갔다.

    왜 또 잘해주는 건지 의아했다. 불친절하거나, 친절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해라, 임석영아.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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