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홍차-5화 (5/70)
  • 제5화

    교실에 들어가자 누군가 어! 전학생! 하며 달려오더니 내 머리를 잡고 구석구석 살폈다.

    “야, 머리 괜찮냐?”

    “어? 어. 괜찮은데.”

    “아이씨,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나 진짜 너 어떻게 되는 줄 알았잖아! 내가, 어? 내가 이거, 이거 힘이 장난이 아니거든.”

    아마도 내게 공을 날린 녀석인가 보다. 멀쩡한 모습을 확인해서 마음이 놓였는지, 갑자기 내 앞에서 혼자 무릎을 세우며 제 킥을 자랑한다. 이름을 몰라 명찰을 보니 김태욱이었다.

    “그렇더라. 머리 쪼개지는 줄 알았어.”

    그 말에 김태욱이 그치! 장난 아니지! 하며 웃는다.

    “불꽃 슛이었는데, 하필 그걸 네가 맞았네. 그나저나 머리 말고 다른 데는, 뭐, 괜찮냐?”

    “다른 데?”

    “너 석영이 체육복에 피칠갑 해놨잖아. 걔가 옷에 뭐 묻는 거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거든.”

    김태욱이 교실 뒤를 눈짓한다. 가리키는 곳을 보니 쓰레기통에 처박힌 체육복이 보였다. 지저분하게 피가 묻은 게, 누가 봐도 내 흔적이었다.

    “체육복 버리고 보건실 간다기에 너한테 쌍욕 하러 가는 줄 알았는데?”

    사나운 눈초리를 받기는 했어도, 쌍욕은 안 들었는데. 욕하러 온 거였나.

    “그런데 왜 걔가 나를 업고 갔어?”

    코피 흘리며 쓰러졌는데, 피가 묻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게 싫으면 안 업으면 됐을 텐데.

    김태욱이 턱을 긁적이며 나를 본다.

    “아, 그게.”

    김태욱이 눈을 어색하게 굴렸다. 대답을 망설이는 듯 보였는데, 갑자기 누군가 튀어나오며 답을 대신했다.

    “이 새끼가 업고는 못 갈 거 같다고 네 겨드랑이에 팔 끼우고 질질 끌었거든. 너 진짜 끌려가는 모습 장관이었어. 신발 한쪽 벗겨지고, 가다가 또 한쪽 벗겨지고. 난 너 공에 맞은 거 아니고 처형당한 줄 알았잖아. 보다 못한 석영이가 그냥 업은 거지.”

    김태욱보다 키가 작은 애가 툭, 그의 허벅지를 때리며 말을 잇는다.

    “불꽃 슛 쏘고 허벅지 힘이 다 풀렸다나, 뭐라… 아악!”

    끼어든 애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김태욱이 헤드록을 걸었다. 악! 우악! 꺅! 같은 소리를 내며 둘이 교실 구석을 향해 멀어졌다.

    그러는 사이 시작종이 울렸다. 자리에 앉아 비어 있는 옆자리를 보았다. 보건실에 남은 임석영은 정말로 수업에 안 들어올 모양이었다.

    교과서를 꺼내다가 쓰레기통을 곁눈질했다. 한쪽 소매가 쓰레기통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누구한테 무시당한 거 같아서 마음이 조금 아프네.”

    아, 이거. 마음이 몹시 불편해진다. 계속 ‘아니’라고 답하면서 벽 세우지 말고 그냥 좋게 대답해줄걸.

    뭔가 좋지 않게 굴러가는 상황에 입술을 만지작거리다가 각질을 떼어냈다. 깊게 뜯어졌는지 알알한 통증이 입술로 퍼졌다.

    아, 하고 멍하니 숨을 뱉고 있을 때 교실 앞문이 열렸다. 조금 소란스럽던 교실이 일순 조용해진다.

    “저기 석영이 자리 아니야? 석영이 어디 갔어?”

    선생의 질문에 아이들의 시선이 임석영의 자리가 아닌 내게로 향한다. 대답할 사람이 나라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아, 아파서 보건실에….”

    그 말에 대각선에 앉은 김태욱의 눈썹이 찌푸려진다. 임석영이 아프다고? 대꾸할 말이 없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임석영 없이 수업이 시작됐다. 정말이지, 마음이 불편하다 못해 가시밭이다.

    *

    달칵달칵, 볼펜 단추를 눌러 촉을 뺐다가 넣었다가를 반복했다.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불안의 증거였다.

    보건실에서 돌아온 임석영은 딱히 제 체육복을 버린 것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는 체육복이 신경 쓰이는 건 나뿐인가.

    단순한 무표정인데, 그게 왜 이렇게 손에 박힌 가시처럼 신경이 쓰이는지. 괜히 오늘따라 안 웃는 것 같고, 기분이 나빠 보이고, 그게 나 때문인 것 같고 그랬다.

    “야.”

    옆에서 난 목소리에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입술이 바짝 마르는데, 임석영이 내 볼펜을 가리킨다.

    “그거 안 하면 안 되겠냐.”

    “어?”

    “볼펜 좀 가만 놔두면 안 되겠냐고.”

    아, 하며 볼펜을 바로 내려놨다. 다른 데 정신이 팔려서 달칵거리는 소리가 큰 줄도 몰랐다.

    임석영이 시선을 다시 제 책상으로 옮겼다. 소리 신경 쓰이니까 조용히 해라. 그냥 그런 말이었는데, 내 귀에는 ‘업기 싫어 죽겠는 거, 아무도 안 업어서 내가 했더니, 말이나 걸지 말라고 하고. 내가 서러워서 살겠나.’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아, 나 피해망상 있나 봐….

    책상 아래로 내린 손을 꼼지락거렸다. 아무래도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 덜 불편하지 싶어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매점으로 향했다. 그냥 고맙다고 말만 하기에는 임석영 말처럼 성의가 없어 보여 뭐라도 하나 건네줄 생각이었다.

    매점을 기웃거리다가 컵 커피를 샀다. 교실로 가는 길, 누군가 뒤에서 등을 툭 친다. 돌아보자 남윤수가 다짜고짜 품으로 뭔가를 밀어 넣었다.

    “어, 뭐, 뭐야?”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묻자 남윤수가 말한다.

    “아, 이거 석영이한테 좀 전해줘. 나 이동 수업이라.”

    어깨를 두드린 남윤수가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허, 하며 입이 벌어졌다. 한 손에는 컵 커피, 다른 손에는 문학 기출문제집을 든 채였다.

    교실 뒷문을 들어서자 자리에 엎드려 누워 있는 임석영이 보였다. 너른 등판을 보자 갑자기 긴장이 올라왔다. 하필 왜 누워 있냐. 눈 좀 뜨고 있지.

    쭈뼛거리며 다가가 그의 등을 쿡 찔렀다. 쭉 뻗은 오른쪽 팔에 올려져 있던 머리가 스르륵 움직인다. 느리게 올라간 눈꺼풀에 검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눈이 마주쳤다. 임석영이 말없이 나를 올려다봤다.

    “아, 이거.”

    양손에 든 것을 동시에 내려놨다. 임석영의 눈이 제 책상에 내려온 것으로 향한다.

    “뭐야?”

    임석영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남윤수가 너한테 전해달래.”

    손가락을 곧게 세워 눈 안쪽 언저리를 누르는 임석영이 응, 하고 답했다.

    아, 이게 아닌데. 졸지에 커피도 남윤수가 전해준 게 됐다. 이건 내가 너에게 주는 거다, 고마웠다, 그런 말을 꺼내야 되는데 좀처럼 입이 안 떨어졌다.

    고개를 뒤로 젖혀 목을 좌우로 꺾던 임석영이 흘긋 눈을 돌려 나를 본다.

    “왜? 또 할 말 있어?”

    “어? 아, 아니.”

    아니지. 아닌 게 아니지.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아, 그, 커피….”

    “너 마실래?”

    “어?”

    내가 너 주는 건데. 임석영이 커피를 내게 건넨다. 동시에 시작종이 울렸다. 경쾌한 소리를 뚫고 나직하게 뱉은 임석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카페인 들어간 거 못 마시거든. 이 새끼는 알고 있으면서 왜 줬지.”

    “…….”

    임석영이 얼른 받아 가라는 듯 커피를 붕붕 흔든다.

    “…고마워. 잘 마실게.”

    조용히 그것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멍했다. 일이 안 풀리려면 이렇게 안 풀릴 수도 있구나.

    고개가 푹, 힘없이 수그러들었다.

    업어줘서 고마웠다는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그렇게 학교가 끝났다. 성의 있어 보이려고 산 커피는 결국 내 가방으로 들어갔다.

    *

    정류장으로 가는 걸음에 괜히 힘이 빠진다. 멍하니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가 들어온 버스에 올라탔다. 사람이 북적거리지 않아 좋았다. 임석영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빈자리를 발견하고는 눈에 불을 켜고 들어갔다. 자리에 앉기 전, 그 옆에 앉아 있는 임석영을 보고 우뚝 멈춰 섰다. 다리가 부러지지 않는 한 이 자리에 앉을 수 없으리라.

    내가 요란하게 걸어오기라도 했는지, 창밖을 보던 임석영이 내 쪽을 돌아본다. 눈이 마주칠까 싶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위치를 바꾸는 것도 이상해서 손잡이를 잡고 먼 곳을 보았다. 창밖 어딘가를.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췄고 삑, 삑, 카드 찍는 소리가 났다.

    “어? 석영이 아니야?”

    임석영이 내 팔을 잡아 빈자리로 확 끌어당긴 것은 누군가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겨진 모양새로 착석했다.

    자세를 고치며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그사이 방금 버스에 올라탄 듯 보이는 여학생 한 명이 옆으로 와 섰다.

    “석영아, 안녕? 진짜 오랜만이다.”

    “응. 안녕.”

    짧게 손을 흔든 임석영이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더니 바로 귀에 꽂았다. 너무나 칼 같은 대화의 종료였다.

    입술을 말아 물고서 흘긋 눈을 올리자 민망한 듯 웃는 여자애의 얼굴이 보였다. 얘는 인사한 사람 무안하게 이러냐. 괜히 내가 다 민망하네.

    보아하니 임석영과 아는 사이인 것 같아 자리를 비켜 주려는데 창문에 시선을 두고 있던 임석영이 내 가방을 꽉 잡아 내린다. 눈이 뭐 뒤통수에라도 달린 거야?

    느리게 고개를 돌리더니 몸을 살짝 기울여 온다. 임석영의 어깨가 내 어깨에 툭 부딪쳤다. 머리가 가깝게 붙었다. 임석영이 낮게 말한다.

    “그냥 앉아서 가.”

    눈만 깜박이자 임석영이 이번엔 눈을 맞추며 응? 하고 묻는다.

    “어… 그래.”

    그제야 임석영이 숙였던 상체를 물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갈 곳 잃은 시선이 앞에 있는 좌석으로 뚫어지게 박혔다.

    [↓바보]

    좌석 시트에 낙서가 되어 있었다. 그 화살표를 공연히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화살촉이 나를 향해 있는 것 같아 미세하게 몸을 틀었다. 역시나, 쓸데없었다.

    자리에 앉아 가는 내내 바보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나를 향해 있었다.

    *

    급식을 먹고 동관 옥상으로 향했다. 지금 교실에 들어가 봤자 닭싸움을 한답시고 난장판일 게 뻔했다.

    무슨 닭싸움이 2학년 1반 공식 지정 종목이라도 되는지 하루도 빼먹는 날이 없었다. 쉬는 시간, 자리를 가만히 지키고 앉아 있으면 꼭 두어 번은 내 자리로 닭이 날아들었다. 닭이 날아올 때마다 책상과 함께 바닥으로 엎어지던 나는 전학 며칠 만에 2학년 1반의 공식 종이 인형이 되었다.

    옥상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확 트인 학교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4층으로 화장실을 다니던 중 문득 4층 위로 이어진 계단이 궁금해 올라갔다가 이곳을 발견했다.

    옥상 한쪽에 안 쓰는 책걸상들이 쌓여 있었고 2학년만 쓰는 동관 건물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피신처로 제격이었다.

    급식을 먹고 나온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걸음을 돌렸다. 아무렇게나 쌓여 있던 책걸상을 분리해서 책상 네 개를 나란히 붙였다. 대충 손으로 먼지를 쓸어 닦고 책상 위에 드러누웠다.

    주머니에서 엠피스리를 꺼내 돌돌 말아둔 이어폰 선을 풀었다. 몇 년 전, 할머니 친구가 놓고 간 엠피스리였는데 주인이 필요 없다고 하는 바람에 할머니 것이 되었고, 할머니가 필요 없다고 하여 내 것이 되었다.

    음악 목록을 뒤져 김자옥의 ‘공주는 외로워’를 재생했다.

    드러누워 바라본 하늘이 맑아 그런지 경쾌한 노래가 당겼다. 볼륨을 키우고 눈을 감았다. 트럼펫 비슷한 소리가 귀를 때린다.

    전주가 끝나자 김자옥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발을 까닥거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배 위에 올려둔 손도 까닥거렸다. 박자에 맞춰 고개도 좌우로 움직였다.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도 가사를 제대로 몰랐다. 몇몇 부분의 가사만 정확했다. 그건 자신 있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라는 뜻이었다.

    모르는 가사는 늘 그렇듯 대충 발음을 뭉개며 음만 흥얼거린다. 음악에 취한다는 게 이런 것인가.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 오전 내내 고통스러웠던 마음이 맑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절로 어깨가 움직인다.

    “누가, 누가 알아줄까~ 훠어오~ 혼자라는 외로움을~.”

    절정에 다다르고,

    “예쁜! 나는! 공주라 외로워~.”

    공기 반 소리 반을 힘차게 내뱉었다. 까닥까닥 발을 흔들고 있는데 어디선가 담배 태우는 냄새가 났다. 입을 다물고 냄새를 맡는 데 집중했다.

    담배 연기가 흘러드는 게 맞았다. 코를 킁킁거리다가 눈을 떴다. 변함없이 맑은 하늘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귀에 꽂아둔 이어폰 한쪽을 잡아 뺐다.

    “쟤 우리 있는 거 모르는 거 같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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