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홍차-4화 (4/70)
  • 제4화

    “그다음 체육인데.”

    책상에 엎드려 누운 채 억지로 눈을 감고 쉬는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내일은 이어폰 꼭 챙겨 와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책상이 흔들렸다. 누군가 발로 책상 다리를 툭툭 건드린 듯했다.

    “전학생, 체육이라고.”

    고개를 들자 옆에서 임석영이 체육복 상의에 두 팔을 끼워 넣고 있었다. 목둘레 밖으로 쏙, 머리가 튀어나온다.

    가만 앉아서 보고만 있자 임석영이 의자에 앉아 체육복 바지 밑단을 접어 올리며 눈을 올린다.

    “체육복 없어?”

    있을 리가 있나.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무릎을 탈탈 털고 일어난 임석영이 책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교실 뒷문으로 향했다.

    “따라와. 빌려줄게.”

    나한테 한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뒷문에 선 그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미동 없는 나를 확인하고는 문을 쿵쿵 두드린다.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쳐다보자 임석영이 고개를 기울여 복도를 가리켰다. 안 나오고 뭐 하냐는 듯.

    “아, 안 그래도 돼.”

    난 체육을 안 할 거거든.

    뒷말은 차마 못 했지만 네 호의 따위 필요 없다는 듯 굳건하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그러자 임석영이 뭐 알아서 하라는 양 더는 말하지 않고 갔다.

    교실을 둘러보았다. 다들 언제 나간 건지 남아 있는 학생이라곤 나 혼자였다. 체육이라니, 생각만으로 눈앞이 캄캄하다.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있어야지.

    내 시나리오는 ‘선생님, 제가 전학생이라 아직 체육복이 없습니다. 오늘은 저기 앉아서 구경할게요.’라고 말하면 선생님이 ‘아, 전학생이구나. 그래, 체육복이 없으면 저기 앉아서 그냥 구경해라.’ 하는 것이었다.

    “야, 전학생! 패스!”

    그런데 지금 내 발에 자꾸 차이는 거, 이거 축구공 맞냐고.

    나는 지금 골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비켜!”

    그것도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망할 놈의 승부욕.

    원래도 학교 다닐 때 몸 쓰는 건 잘했다. 대청소할 때도 무거운 교탁을 옮기는 사람은 나였다. 그렇게 뭔가를 옮기고 나면 기분이 홀가분했다.

    힘이 좋아서 그런지 체육 시간에도 늘 날아다녔다. 계주를 제일 잘했고 피구, 발야구 같은 공 던지고 차는 것도 곧잘 했다.

    그런데 우르르 몰려다니며 축구나 농구를 할 일은 없었다. 그냥 학교 남자애들이 운동장에서 공 차는 거 구경하는 정도였는데. 이렇게 재능이 있을 줄이야?

    “전학생!”

    나를 부르는 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비슷한 선상에서 달리고 있는 임석영이 손을 들고 까닥인다.

    “패스! 패스!”

    공 달라는 말에 주위를 살피고 빵 차올렸다. 공을 차올린 뒤, 뒤늦게 달려온 상대편 수비수 어깨에 거하게 치였다. 운동장 바닥으로 튕겨 나가듯 고꾸라졌다.

    “으억!”

    흩어지는 흙먼지에 콜록거리며 공을 살폈다. 축구도 해본 적 없는데 패스가 제대로 될까 싶었다.

    그런데 발야구로 홈런 여러 번 때린 실력이 여기서 나온 것인지, 애먼 곳으로 튀어갈까 걱정했던 공이 허공으로 붕 떠올라 임석영 머리 위로 낙하한다. 그 정확한 착지에 입이 벌어졌다.

    “오?”

    가슴으로 공을 튕겨 받은 임석영이 오른쪽 다리를 크게 휘둘러 공을 찼다. 빵, 하며 날아간 공이 상대편의 골문을 흔들었다.

    “와아!”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졌다. 그 소리에 괜히 가슴이 둥둥 뛴다.

    축구, 좀 재밌잖아? 이래서 축구에 환장하는 건가, 생각하며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

    어쩌다가 축구 대열에 합류한 탓에 교복 재킷도 벗지 못하고 뛰었다. 목 폴라까지 껴입고 있어 후덥지근했다.

    흙투성이가 된 교복을 탈탈 털었다. 손바닥이 천에 닿을 때마다 따끔거려 얼굴을 찌푸리고 뒤집어 보았다. 넘어지면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비볐는지 살갗이 말려 올라가 벗겨져 있었다.

    “아… 까졌네.”

    수비수 새끼, 어깨빵으로 사람을 쳐놓고 괜찮으냐고 묻지도 않네.

    손에 묻은 흙을 조심스레 털어내는데 뒤에서 누군가 목을 휘감으며 몸을 끌어안았다.

    “으어!”

    그 접촉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돌리자 땀에 젖은 임석영이 나를 봤다. 내 반응에 자기가 더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웃으며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놀라기는. 패스 잘했다고.”

    “아….”

    세차게 머리칼을 헤집은 손이 멀어졌다. 그래. 네 뜻은 잘 알겠고. 다가오지 마.

    두 손을 펴서 가슴 앞에 두고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임석영이 음? 하며 손목을 잡아 올린다.

    “뭐야, 다쳤냐?”

    “아, 패스하다가 넘어져서.”

    손을 뒤로 쑥 빼자 임석영이 별나다는 듯 무심하게 눈을 돌렸다. 그러더니 어깨를 잡아끌어 돌리고 운동장 계단 쪽을 향해 가볍게 등을 떠밀었다.

    “그럼 구경이나 해, 그냥.”

    아까는 팀 수가 안 맞는 게 어디 있냐고, 바락바락 악을 써가며 전학생 너도 뛰어, 하고 소리치던 놈이.

    진심인가 싶어 힐긋 눈을 돌렸다. 체육복 상의를 올려 얼굴을 문질러 닦은 임석영이 운동장 가운데로 뛰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뭐지? 아주 명령조가 입에 붙었네.”

    눈을 가늘게 뜨고 흘겨보다가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 야!”

    “피해, 새끼야!”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운동장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렸다. 왠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는데, 빡! 소리를 내며 축구공이 얼굴을 강타했다.

    후드득, 인중을 타고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는 것 같더니 눈앞이 빙글 돈다.

    “어, 왜 운동장이 거꾸로 뒤집혀….”

    *

    끔벅끔벅, 눈을 움직이자 하얀 천장과 불 꺼진 전등이 보인다.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대를 에워싸듯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미세하게 알코올 냄새가 나는 게 보건실인 것 같다.

    “기절한 건가.”

    너무 황당해 허, 하는 숨이 튀어나간다. 혹시나 누가 응급처치 하겠다고 교복이라도 벗겼을까 싶어 이불을 들추고 몸 여기저기를 살폈다. 셔츠 단추가 하나하나 잘 잠겨 있었다.

    “일어났냐.”

    불쑥, 커튼 너머로 튀어나온 음성에 눈이 동그래졌다. 뭐지. 두 손으로 이불을 움켜쥐고 목소리가 튀어나온 커튼을 노려보았다.

    “남자 새끼가, 코피 조금 쏟았다고 쓰러지냐.”

    상체를 일으키고 슬그머니 커튼을 젖혀 열었다. 옆 침대에 임석영이 교복을 입고 벌러덩 누워 있었다. 반만 걷은 커튼 사이로 눈이 마주친다.

    “네가 업고 왔어?”

    “그럼 뭐 안고 왔겠냐.”

    저, 저, 말 삐딱하게 하는 거 보소. 입술을 꾹 물고 꾸물거리다가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

    임석영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손에 난 상처를 살펴보았다. 상처 부위를 알코올로 닦아낸 듯 핏자국 없이 말끔했다. 손바닥이 반들반들한 게 연고를 얇게 펴 바른 것 같다. 보건 선생님이 처치해주고 나간 건가.

    “보건 선생님 안 계셔서 대충 했어.”

    “어?”

    임석영이 내 손을 눈짓한다.

    “아, 네가 했어?”

    “그럼 뭐 기절한 네가 했을까.”

    이거, 이거, 말 자꾸 삐딱하게 하지. 모나게 떠지려는 눈을 문지르며 표정을 갈무리했다.

    “고마워.”

    “표정은 안 그래 보이지만, 고마워한다고 생각할게.”

    눈을 문지르던 손이 멈칫했다. 좁아지려는 미간을 애써 반듯하게 폈다.

    침대에서 내려와 운동화에 발을 집어넣었다. 허리를 숙여 발뒤축을 꿰어 넣는데 머리 위에서 임석영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안 들어가는 게 좋을걸.”

    신발 안으로 손가락을 쿡쿡 찔러 넣다가 고개를 올렸다. 제 팔에 머리를 벤 임석영이 눈을 내려 나를 봤다.

    “담임 수업이거든. 수학 좋아해?”

    좋아할 리가. 작게 고개를 젓자 임석영이 담임은 막무가내로 번호 불러서 문제 풀어보라고 시킨다고 말했다.

    조용히 운동화에 넣었던 발을 빼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임석영이 있는 침대 쪽을 바라보고 앉은 터라 시선의 방향이 애매하게 느껴져 다리를 올려 누워버렸다. 보건실 안에 정적이 맴돈다.

    “아까 내가 너 울었던 이야기 애들한테 한 거, 실수한 건가?”

    임석영이 그렇게 물은 건 천장만 보고 있기가 어색해 등을 돌리고 자는 척을 할 때였다. 눈을 뜨고 깜박거렸다. 돌아볼 타이밍이 애매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는데 자? 하는 물음이 넘어왔다.

    “아, 아니.”

    그렇게 답하며 몸을 돌렸다.

    “우는 모습이 귀여워서 그랬던 건데 기분 나빴을 거 같아. 뭐, 장난으로 울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게 잘 아는 새끼가 공룡 흉내를 냈단 말인가.

    “기분 나빴다면 미안.”

    “아… 아니야.”

    예의상 아니라고 뱉은 말인데 임석영이 응,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 빠른 수긍에 미안하다는 말마저 의심이 들었다. 그냥 해본 소리인 것 같다.

    “전학 와서 힘들어?”

    다시 찾아온 정적에 몸을 뒤척이고 있을 때 임석영이 물었다. 거짓말하는 게 마음에 걸릴 뿐이지, 몸과 마음이 지치고 버티지 못할 정도로 힘든 건 아니었다.

    “아니…?”

    짧게 뱉은 말에 임석영이 아아, 하고 말았다. 그러곤 몇 분 뒤, 임석영이 대화를 잇듯 질문을 또 던졌다.

    “아, 그런데 너 아까 공 잘 차더라. 가끔 학교 끝나고 애들이랑 모여서 공 차는데. 같이 할래?”

    “아니….”

    멀뚱히 천장을 보다가 답했다. 임석영이 아, 하는 짧은 음성을 뱉었다. 그렇게 짧은 대화가 끝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임석영이 말을 붙인다.

    “너 급식 같이 먹을 친구는 있어?”

    “아니.”

    “그럼 같이 먹을래?”

    “아니.”

    “싫구나. 그런데 너 ‘아니’밖에 못 하냐?”

    이번에도 아니, 하고 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천장으로 향해 있던 고개를 비스듬히 내리자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임석영이 보인다.

    “전학생, 대답이 성의가 없네. 질문 그만할까?”

    대답을 요하듯 임석영이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아, 하고 목만 울리다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불편했구나. 그래.”

    임석영이 시선을 거두며 눈을 감았다. 훅 스쳐 간 그 눈길이 조금 차갑다.

    덜컥 긴장이 밀려왔다. 엮이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을 뿐인데, 성의 없어 보였던 건가. 아니야, 나는 괜찮아, 혼자가 편해, 라고 길게 풀어서 말해줄 걸 그랬나. 뒤늦게 후회가 밀려와 입술만 잘근잘근 물었다.

    “너 이름 뭐랬지?”

    끝종 소리에 덮고 있던 이불을 확 걷어냈을 때 임석영이 물었다. 한 손에 이불을 말아 쥐고 눈을 깜박였다. 비스듬히 상체를 세운 임석영이 내 명찰을 눈으로 훑는 게 보였다.

    그의 눈길이 향한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홍차연 이름 세 글자가 박혀 있는 명찰이 보인다.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홍차연인데.”

    남장을 하고 여기 있는 것 자체가 거짓이었지만, 내 입으로 남의 이름을 말하자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거짓으로 흘러나온 말에 절로 주눅이 든다.

    “그래?”

    임석영의 눈이 명찰을 지나 얼굴로 왔다. 괜스레 말끝에 붙은 물음표가 불길했다.

    “응.”

    마주 본 얼굴을 피하면 괜히 의심이라도 살까, 임석영의 눈을 또렷하게 바라보았다. 그가 마주 본 눈을 피하지 않다가 피식 웃으며 시선을 거둔다.

    뭐지. 왜 웃지. 어쩐지 임석영의 얼굴을 스친 조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교실로 돌아가는 거, 혼자 가기도 뭣하고 둘이 가기도 뭣한데, 그렇다고 혼자 뛰어갈 수도 없어서 운동화를 꿰어 신으며 말을 걸었다.

    “안 가?”

    “먼저 가. 오랜만에 힘썼더니 힘들다.”

    괜히 두 발이 공손하게 붙는다. 운동장에서 여기까지 기절한 나를 업고 왔으니, 그 무게가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차라리 들것을 이용하지. 왜 업었니.

    “그리고 누구한테 무시당한 거 같아서 마음이 조금 아프네.”

    침대에 퍽, 소리를 내며 퍼진 임석영이 눈동자만 움직여 나를 본다. 제가 말한 누군가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눈빛이었다. 나구나.

    “그럼 나는 먼저 갈게.”

    습관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 멈칫하고는 이마를 긁으며 뒤돌았다. 우리가 손 흔들며 인사할 사이는 아니잖아….

    발소리를 죽이며 보건실을 벗어났다. 문을 닫고는 참았던 한숨을 길게 뱉어냈다. 문고리를 잡은 채 약하게 머리를 박았다.

    “김누리… 미쳤다, 진짜.”

    얼굴이 절로 울상이 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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