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홍차-3화 (3/70)

제3화

정류장 옆에 있는 나무 기둥 앞에 멀뚱히 서 있다가, 들어온 버스의 번호를 확인하고는 헐레벌떡 뛰어 탔다. 여기서 유일하게 동네로 가는 버스였다.

- 학생입니다.

경쾌한 소리가 울리고, 밀고 들어갈 틈 없는 꽉 찬 버스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나를 마지막으로 태운 버스가 문을 닫고 느리게 출발했다. 학교에서 우르르 올라탄 아이들 때문에 버스가 만원이었다. 두리번거리다 운전석 뒤에 있는 기둥을 잡았다. 몇 정거장 지나면 조금 한산해지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으으윽!”

버스가 급커브를 돌 때마다 몸집 큰 아이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옆으로, 아주 마구잡이로 눌러댔다. 기둥 하나를 잡고 그걸 버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버스가 좌회전을 하고, 서 있는 아이들의 몸이 한데로 쏠리고, 그 쏠린 몸이 내 어깨를 누른다.

“아아악!”

세상에 쉬운 일이 이렇게 없어요.

이를 악물고 거대한 몸집들을 버티고 있을 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주머니 안에서 달달달 진동하는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할무니]

전화를 받는 동시에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했다. 앞문과 뒷문이 동시에 열리고, 절대 안 내릴 것 같던 아이들이 우르르 버스에서 하차했다.

슬쩍 몸을 돌리고 아이들이 휩쓸고 간 버스 내부를 훑었다. 빈자리가 눈에 들어와 후다닥 달려 앉았다. 가방을 무릎에 놓고 나서야 첫 인사를 뱉었다.

“응, 할머니.”

― 전화를 왜 이렇게 늦게 받어?

“그랬나. 왜 전화했어?”

― 일 끝났어?

학교를 자퇴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할머니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줄 알고 있었지만, 내가 하는 일은 중국집 배달이었다. 시급이 9천 원이었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탁수반점. 사장 이름이 김탁수였다. 처음엔 도보 배달을 했다. 철가방을 들고 가까운 거리의 배달지에 배달하는 거였다.

나름 만족스러운 알바였다. 옷에 기름 냄새가 배는 게 흠이었지만, 이 정도로 시급을 잘 쳐주는 곳이 없었다. 다만, 할머니가 개코라는 것이 살짝 마음에 걸렸다. 할머니는 오랜 세월 부엌에 붙어살아서 그런지 음식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았다. 알바 끝나고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이게 무슨 중국 요리 냄새야?” 하는 소리를 들었으니.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나는 할머니와 함께 홍차연네 집의 관리인 숙소에서 생활했었다. 알바가 끝난 밤마다 할머니와 마주쳐야 했으니, 오래가지 않아 중국집에서 일하는 것을 들키거나, 내가 그만두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무래도 반지하나 옥탑, 무엇이 되었든 싼 방을 얻어 나가야겠다고.

그러던 어느 날, 오토바이 배달을 하는 오빠와 가게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시급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천 원. 오토바이 배달 시급이 천 원 더 셌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도 있는데, 천 원은 티끌치고 내게 너무 컸다. 나는 바로 원동기 장치 자전거 면허를 취득했다. 사장은 흔쾌히 도보 배달에서 오토바이 배달로 위치를 변경해 주었다.

탁수반점 불로켓. 당시 그것이 내 별명이었다. 총알배달이 아니라 로켓배달이었다. 그냥 날아다녔다. 한 건이라도 내가 더 배달하고자.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잔액을 볼 때마다 흐뭇했다. 그렇게 나는 할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립했다.

할머니는 지금 내가 그 옥탑에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

“응. 지금 집에 가는 길.”

― 밥은?

“집에 가서 먹어야지. 할머니는?”

― 할미는 해 떨어지기 전에 진즉 먹었지. 집에 가기 전에 들렀다 가. 반찬 싸놨어.

“반찬? 그때 할머니가 준 거 아직 남았는데.”

― 오늘 누리 좋아하는 어묵 볶았어. 어묵도 할미가 직접 만들었다. 넉넉히 만들었으니까, 들렀다 가.

“…….”

― 왜 대답이 없어?

괜스레 목구멍이 꽉 막혔다. 엄마와 둘이 살 때도 할머니는 종종 홍차연 집의 음식들을 뒤로 빼서 우리에게 주었다. 남아서 버리라고 하는 음식인데도 눈치가 보이는지 그것들을 늘 조심스럽게 전달했다.

생수를 사기도 빠듯해서 물을 끓여 마셨던 엄마와 내가 소고기 미역국을 먹고, 갈비를 뜯고, 굴비를 구워 먹을 수 있었던 건 할머니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좋았는데, 음식이 나오는 통로를 알게 된 후로는 서글프기만 했다. 그 집 식구들이 먹지 않는 음식을 들고 나오는 할머니 심정은 오죽할까.

“…응. 옷 갈아입고 갈게.”

― 와서 전화혀.

“응, 할무니.”

뚝, 전화를 끊고 통화 시간이 깜박거리는 액정을 물끄러미 보았다. 코끝이 찡해지더니 눈물이 핑 돌았다. 점멸한 액정으로 뚝, 눈물이 떨어진다. 그게 무슨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안에서부터 파도처럼 울음이 몰려왔다.

꾹 다문 입술을 삐죽 내밀고 미간을 찌푸렸지만, 결국 눈물이 터졌다.

“히잉.”

고개를 푹 숙이고 바쁘게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그런데 자꾸 귀에 이명처럼 어묵~ 어묵~ 어묵~ 하는 소리가 울렸다.

어묵. 할머니가 그 주름진 손으로 홍차연 식구들 식탁에 올리려고 만들었을 어묵.

“…부산, 어묵, 흐으, 사 먹지.”

잇새로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가고 어깨가 들썩거렸다. 옷소매로 눈물을 훔쳐 닦고 코를 훌쩍였다. 무릎에 둔 가방 지퍼를 열어 휴대용 티슈를 찾았다. 필통, 노트가 전부였다.

훌쩍훌쩍, 소리를 내며 코를 먹고 가방 지퍼를 올리는데 비어 있는 옆자리로 툭, 무언가 날아든다.

속눈썹 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죽 흘러내렸다. 뜨겁게 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눈물의 방향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 의자에 같은 교복을 입은 남자애가 눈살을 찌푸리고, 되게 못 볼 것을 봤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임석영?”

“야, 코 먹는 소리 진짜 듣기 싫거든?”

“어?”

“크르릉, 크르릉, 그 코 먹는 소리 듣기 싫다고.”

“아, 미안….”

“미안하면 그만 먹고 좀 풀어라. 그 정도 먹었으면 배불러서 저녁 안 먹어도 되겠네.”

코 먹는 거랑 저녁이랑 뭔 상관이야.

“…고마워.”

옆에 있는 휴대용 티슈를 들고 팍팍 화장지를 뽑았다. 두툼하게 화장지를 겹쳐 들고 코를 풀었다.

크응, 하는 소리가 너무 컸나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치를 살폈다. 옆으로 굴러간 눈이 임석영과 마주친다.

나를 보는 임석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코 풀라고 할 때는 언제고, 푸니까 또 그 소리가 못마땅한 모양이다. 어느 장단에 맞추라고.

두 손으로 휴지를 잡은 채 코를 막고 있자, 임석영이 손을 들어 휘휘 저었다. 자기 쳐다보지 말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하라는 말인 것 같아 고개를 돌리고 흥흥 소리를 실컷 내며 코를 풀었다.

불편하게 막혀 있던 코가 뻥 뚫리니 괜히 숨통도 트이는 느낌이다. 서럽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여기.”

임석영 쪽으로 휴대용 티슈를 건넸다. 둘 다 창가 쪽에 붙어 앉아 있어 손을 내민다고 닿는 거리는 아니었다.

창밖을 보던 임석영이 고개를 돌려 내 손에 들려 있는 휴대용 티슈를 보았다.

“됐어. 너 가져.”

“아직 많이 남았는데.”

“필요 없어.”

뭐, 그럼 그러든가.

가방 지퍼를 열고 휴대용 티슈를 챙겨 넣었다. 지퍼를 쭉 끌어 올리고 힐긋 눈을 돌렸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 옆모습이 보였다.

정류장에 다다른 버스가 천천히 속도를 늦춰 정차했다. 가방을 챙겨 든 임석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뒷문 앞에 섰다.

문이 열리기 전, 임석영이 고개를 돌려 멀뚱히 앉아 있는 나를 보았다.

“내일 보자, 전학생.”

“어? 어, 그래.”

“울지 말고.”

어? 뒷문이 옆으로 밀려나며 열리고, 가방끈을 어깨에 걸친 임석영이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멍하니 있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벅저벅, 긴 다리로 길을 걸어가는 임석영의 뒷모습이 보였다. 모퉁이를 꺾어 들어가며 임석영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앞문과 뒷문을 모두 닫은 버스가 천천히 정류장을 벗어났다. 창밖에 두었던 시선을 거두고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손에는 코 푼 휴지 뭉치가 야구공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양아치만 우글거리는 학교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임석영 쟤는 좀 친절한 애일지도 모른다.

제발 그랬으면, 생각하며 휴지 뭉치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다음 날.

“부산, 어묵, 흐으으응, 사 먹지, 크으으으으응!”

임석영, 쟤는 좀 친절한 애일지도 모른다는 어제의 말을 취소한다.

“미친, 뒤에 크으응, 뭐냐고. 공룡이냐?”

“아 진짜 이렇게 코를 먹었다니까.”

아이들 눈을 피해 쓸 만한 화장실이 있는지 찾기 위해 학교를 돌아봤다. 그 결과 학반이 없는 4층이 가장 한적하고, 아이들 눈을 피해 화장실을 가기 좋아 보였다.

화장실 물색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복도 한쪽에서 친구들과 떠들고 있는 임석영을 발견했다. 저 공룡 이야기는 분명 내 이야기인 듯했다.

검은색 후드 티 입은 애의 어깨 위에 손을 얹은 채 깔깔 웃던 임석영이 사뭇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아, 근데 웃을 일이 아니야. 전학 와서 힘든가 봐.”

“미친, 지가 제일 많이 웃어놓고.”

임석영이 웃음을 싹 거둔 얼굴로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니, 그건 열심히 코 푼 거 생각나서 웃은 거고.”

그렇게 말하더니 또 웃긴지 키득거리며 웃는다. 저 새끼 뭐야, 이중인격이야?

“슬픈 일이 있었나 보지, 새끼야. 왜 남의 슬픔을 가지고 놀려.”

검은색 후드 티가 임석영의 배를 쿡 찌르자 그가 몸을 비틀며 한 걸음 물러났다.

“놀리기는. 걱정되니까 그렇지.”

“크으으으응! 이게 놀리는 거지. 아니라고?”

“아닌데. 그건 진짜 걔가 낸 소리인데. 야, 걔만 몰랐지 버스에 있던 사람들 다 쳐다봤어.”

“놀리는 거 맞네. 이거 은근 악랄한 새끼라니까.”

검은색 후드 티가 다른 아이와 눈을 맞추며 임석영에게 손가락질을 했고, 임석영이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웃었다.

“악랄은. 눈물 닦고 코 닦으라고 휴지도 줬는데.”

복도에 있는 애들한테 관심이 없는 건지, 내가 저들보다 키가 작아서 안 보이는 건지, 셋은 계속 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복도 한쪽에 서서 내가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교실로 가려면 저들을 지나쳐 가야 하는데, 괜히 지나가다가 눈에라도 들면 발목 붙잡힐까 봐 쉽게 걸음이 안 떨어졌다. 두 주먹만 불끈 쥐고 노려볼 뿐.

아마 눈에서 레이저가 나갔다면 저 셋의 목을 정확하게 그었을 것이다.

눈이 저절로 가늘어졌다. 야, 너희들, 사람을 바로 앞에 두고 그렇게 까기 있냐?

다른 층으로 돌아서 갈까, 고개를 팍 수그리고 갈까, 고민하던 중 무리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검은색 후드가 턱을 들어 나를 가리킨다.

“쟤잖아.”

갑자기 나를 콕 찍는 턱짓에 옆에 있던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삐딱하게 선 임석영이 “아….” 하고 목을 울렸다. 복도에 내가 있는 줄 몰랐는지 퍽 난감한 눈치다.

불퉁한 얼굴로 나를 보고 선 세 명의 명찰을 훑었다. 임석영 명찰엔 임석영 이름이, 검은색 후드 티 명찰엔 남윤수라는 이름이, 나머지 한 명의 명찰에는 김찬영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다.

“쟤가 부산 어묵 찾으면서 울었다고? 콧물도 안 나게 생겼는데.”

“야….”

임석영이 남윤수의 발을 툭 치며 눈치를 준다. 뒷말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눈치껏 닥쳐야 하는데 남윤수에겐 그런 눈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 사이에 끼기 싫었는지 김찬영이 조용히 복도를 가르며 교실로 들어갔다. 남윤수만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제 발을 건드린 임석영을 보았다. 임석영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시작종이 울린다.

“엇, 종 쳤다. 석영쓰, 이따 봐.”

임석영을 향해 손을 휘휘 흔든 남윤수가 앞에 있는 교실로 들어갔다. 자연스레 무리가 흩어지고 임석영 혼자 남았다.

괜스레 표정이 딱딱해졌다. 욕을 들은 것도 아닌데 은근 기분이 나빴다.

멈췄던 걸음을 뗐다.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임석영의 팔뚝을 쳤다. 지나가다가 부딪친 것처럼. 그러나 고의가 다분한 충돌이었다.

시선을 올리자 나를 내려다보는 눈이 보였다. 임석영이 눈썹을 올리며 나를 봤다. 지나가면서 억지로 저를 친 게 당황스러운 듯 보였다.

너 왜 내 이야기를 뒤에서 그렇게 해? 따져 물으려는데 버스에서 휴지를 건넨 임석영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일 보자, 전학생. 울지 말고.”

순간 기분이 나빠 어깨를 들이밀긴 했는데, 문득 떠오른 어제의 일에 감정이 누그러졌다.

아, 조금만 더 빨리 떠올랐으면 얼마나 좋아.

“미안. 복도가 좁아서….”

임석영이 한산한 복도를 둘러본다. 아무리 봐도 어깨를 부딪칠 정도는 아닌지 좁은가? 하며 고개를 갸웃한다.

“괜찮아.”

임석영이 제 팔을 툭툭 털어내며 나를 지나쳐 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