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홍차-2화 (2/70)
  • 제2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임석영이다. 파란색 바람막이. 아까 화장실에서 마주친 놈.

    나도 모르게 잘생긴 남자를 볼 때의 김누리가 되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줄래?”

    그만 보랄 때는 언제고 시선을 돌리자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안 들리는 척 다른 곳만 응시했다.

    애들 머리 스타일을 한 세 명 살펴봤을까, 갑자기 의자가 움직였다. 놀라서 돌아보니, 임석영이 다리를 뻗어 내 의자 다리에 발을 걸고 끌어당긴 거였다. 뭔 다리가 이렇게 길어.

    “돌려주라고.”

    “어?”

    영문을 몰라 눈만 끔벅이자 남자애가 내 손을 눈짓했다.

    “아.”

    뒤늦게 알아차리고 가방을 내밀었다. 남자애가 가방을 낚아채 가져가자 손이 휑하니 비었다. 임석영 자리가 이 자리구나. 하필 내 옆자리네.

    발을 굴려 의자를 자리로 끌고 가면서 힐긋 그의 얼굴을 보았다. 햇빛을 받은 얼굴이 거친 데 없이 매끄러웠다. 잘생겼네.

    자세를 고쳐 앉고 가방에서 필통과 노트를 꺼냈다. 습관적으로 노트 겉면에 ‘김누리’를 적었다가 아차 싶어 실선을 죽죽 그어 이름을 지우고 ‘홍차연’을 적었다.

    잊지 말자. 홍차연. 나는, 나는 홍차연.

    조회 시간, 노트에 얼굴을 파묻고는 주절주절 주문을 외웠다. 제발 들어 먹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악! 새끼야, 입 닫고 웃어. 침 튀잖아.”

    “등신아, 네가 머리를 웃기게 잘랐잖아. 꽁지 머리 뭐냐고. 그걸로 서예 하게?”

    “꺼져. 유행이야.”

    “송대관이냐. 뭐만 하면 유행이래.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쉬는 시간,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교실 뒤에서 송대관 노래가 울려 퍼졌다.

    머리를 바짝 깎은 애가 구수하게 유행가를 열창하는 중이었다. 삐딱하게 의자에 앉은 아이들이 명창이 따로 없다며 웃었다.

    가만히 앉아서 대화하는 걸 듣고만 있는데도 누가 시비를 거는 것처럼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차지게 오가는 대화에 눈동자만 어색하게 굴리다가 책상에 엎드려 누웠다.

    신이시여, 정녕 이것을 몇 달이나 해야 한다고요?

    구부린 두 팔 안에 얼굴을 파묻고 울상을 지었다. 등교 한 시간 만에 때려치우고 싶어질 줄은 몰랐다.

    “하….”

    깊은 한숨을 내뱉은 순간, 우당탕 소리가 들리더니 빡, 무언가 등을 내리누른다. 그 무게에 책상이 밀리고 의자에서 나가떨어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픈 것도 아픈 건데,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럽다.

    바닥에 엎어진 채 돌아보니, 저들끼리 닭싸움을 하다가 튕겨 나간 한 놈이 내 쪽으로 쓰러진 것 같았다. 옆에서 나와 같은 모양새로 드러누운 놈이 혼자 정신 나간 것처럼 웃고 있었다. 활자로 그 웃음을 기록하자면 ‘ㅋㅋㅋㅋㅋ’의 무한 반복 정도 되려나.

    “악, 김윤환 미친 새끼, 겁나 쉽게 날아가네.”

    “종이 인형인 줄.”

    웃음이 안 끊겼다. 그 사이에서 나만 멍청하게 책상 다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의 방향이 그랬다. 머리가 여전히 바닥에 붙어 있었다.

    “종이 인형 새끼야, 너 때문에 전학생 나가리 됐잖아.”

    “엇, 야, 미안하다.”

    정신 나간 것처럼 웃던 놈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괜찮냐?”

    “…어, 괜찮아.”

    일어나 넘어진 책상을 세우고 떨어진 필기구와 교과서를 주웠다. 무릎이 시큰했다. 제대로 바닥에 처박았다.

    학교 다닐 때는 앞자리가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은 격하게 앞자리로 가고 싶다. 왜 애들은 쉬는 시간에 교실 뒤에서 노는 걸까. 복도가 더 넓잖아. 복도로 나가 새끼들아, 하는 말이 턱 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삼켰다.

    뒤에선 다른 닭들이 출전해 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눈을 돌려 벽에 붙은 시계를 확인했다.

    쉬는 시간 3분 지난 거 진짜냐. 입에서 한숨이 길게 흘러나왔다.

    *

    점심시간, 식판을 들고 아무도 없는 빈자리에 앉았다.

    “급식 얼마 만이냐.”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죽을 맛이었는데, 식판 가득 채워진 일용할 양식을 보자니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숟가락을 들고 밥을 한 숟가락 크게 퍼서 입에 넣었다.

    “내가 좋아하는 어묵볶음.”

    음음, 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묵볶음을 집어 먹었다.

    탁, 탁, 탁, 식판 놓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열심히 밥 먹는 데 열중하고 있는데 웬 무리들이 식판을 놓았다. 옆으로 앞으로 비어 있던 테이블에 검은 무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아, 미친. 어묵볶음 겁나 자주 나와.”

    힐긋, 아이들의 얼굴을 살피는데 괜히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무슨 고등학생 얼굴이 저렇게 험악해. 얼른 식판 비우고 나가야지, 생각하며 밥 먹는 속도를 높였다.

    여유롭게 앉아 후식까지 먹을 수 없어 바나나는 주머니에 넣고 식판을 정리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 손에 챙겨 들고 식판을 들었다.

    테이블 사이를 빠져나가는데 내디딘 발이 쭉 밀려나며 중심이 뒤로 무너졌다.

    “어?”

    시야가 정면에서 천장으로 이동했다. 안 돼, 라는 생각이 무색하게도 두 발이 헛돌며 몸이 뒤로 기울었다. 손에서 떨어져 나간 식판이 쨍,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얼마 안 남긴 반찬들이 정처 없이 흩어졌다.

    내 몸은 급식실 바닥, 테이블 사이에 천장을 바라본 채 뻗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아으….”

    얼굴을 찌푸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슬리퍼 밑창에 바나나 껍질이 붙어 있다.

    어떤 새끼가 흘리고 갔어. 바닥도 못 짚고 고꾸라진 탓에 엉덩이뼈가 부서진 느낌이었다. 팔꿈치를 바닥에 제대로 처박았는지 어깨에서부터 팔 전체가 시큰거린다.

    “시발, 뒈지고 싶어서 환장했나.”

    내 몸도 못 추스르고 앓는 소리를 내고 있는데, 천장을 가리며 험악한 얼굴 하나가 튀어나온다.

    “식판 반납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왜 여기서 절을 하고 지랄이냐고.”

    “…예?”

    “다 튀었잖아, 새끼야!”

    잔뜩 찌푸렸던 얼굴을 대충 펴고, 위에서 곧 발이라도 내리꽂을 것처럼 눈알을 굴리고 있는 남자의 교복을 훑었다. 왼쪽 옷소매에 김칫국물이 점점이 물들어 있었다.

    “어, 어떡하지. 죄송합니다.”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켜 옷소매를 쓱쓱 닦자 덥석 멱살이 잡혔다. 몸이 크게 흔들리더니 들어 올리는 힘에 절로 까치발이 들린다. 발꿈치는 바닥에서 떨어지고, 꼿꼿하게 편 발가락을 허둥지둥 바닥에 붙였다.

    “그게 손으로 닦는다고 닦이냐? 더 번졌잖아!”

    “억, 저기, 윽.”

    “야, 장난하냐? 어?”

    두툼한 주먹에 옷깃이 빨려가듯 잡혀 목이 조였다. 컥컥하는 숨이 불안정하게 튀어나가고, 그만 놓으라고 하고 싶은데 목이 막혀 얼굴만 찌푸려졌다.

    비스듬히 고개를 꺾어 내린 남자애가 더러워진 소매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그러더니 소매에서 얼굴을 확 떨어트리고 인상을 썼다.

    “아, 미친! 냄새나서 이걸 어떻게 입고 있냐고.”

    “체육복 있어?”

    남자의 옆에 있던 친구가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얼굴을 험악하게 구기며 제 친구를 돌아본다.

    “체육복 입고 집에 가라고? 내가 너냐?”

    그 말에 친구가 입을 다문다. 뭐야, 이게. 친구 맞나.

    “짜증 나네, 진짜.”

    남자애의 눈이 멱살 아래를 훑고 지나간다.

    “야, 이거라도 벗어.”

    “예…?”

    “셔츠 바꾸자고.”

    급식실에서 옷을 벗으라니, 황당하기 그지없어 눈만 끔벅였다. 덩치가 곰 같은 녀석이 나와 셔츠를 바꿔 입는다는 발상부터가 터무니없다. 야수 콘셉트, 이런 걸 원하는 건가? 셔츠 갈가리 찢어지는, 그런.

    “사람 말 무시하냐?”

    “아니, 그게 아니고….”

    앞뒤로 몸이 흔들렸다. 허둥대며 두 다리를 움직였다. 숨 막힌다고. 놓고 말하라고.

    옷깃을 움켜쥔 주먹을 두 손으로 탁탁 때리는데 어디선가 숟가락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숟가락이 앞에 선 남자애의 머리통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딱! 하는 소리가 맑게 울리자 남자애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진다.

    “시발, 어떤 미친 새끼가.”

    남자애가 홱 고개를 돌리고 숟가락 던진 놈을 찾았다. 시야를 막고 있던 머리가 비스듬히 돌아가며 옆 테이블이 드러났다.

    남자애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거기에 임석영이 앉아 있었다. 오전에 화장실에서 보았던 회색 후드 티, 남색 맨투맨과 함께였다.

    “밥 먹는데 되게 요란하네.”

    임석영이 퍽 짜증 난다는 얼굴로 말을 뱉었다. 남자애가 멱살을 놓고 임석영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꽉 막혔던 숨이 트이자 기침이 연달아 쏟아진다.

    “야, 임석영.”

    “왜?”

    “네가 던졌냐?”

    “뭐를.”

    “숟가락, 새끼야!”

    “아니?”

    쭈글쭈글해진 옷깃을 매만지며 험악한 분위기가 옮겨 간 테이블을 보았다. 남자애가 임석영의 식판을 요리조리 살폈다.

    “그럼 네 숟가락 어디 있냐? 어?”

    “젓가락만 가져왔는데?”

    임석영이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남자애를 올려다보았다.

    “장난하냐?”

    “내가 너 같은 새끼랑 장난을 왜 해. 장난은 친구끼리나 하는 거지. 너 나랑 친하냐?”

    그 말에 남자애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시발, 진짜.”

    상체를 움직여 고개를 내민 임석영이 남자애의 옷소매를 살폈다.

    “별것도 아닌 걸로 난리네. 빨아 입어라, 이 정도는.”

    옷소매에서 시선을 거둔 임석영이 부들거리며 서 있는 남자애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쳐다보았다.

    “빨아 입기 싫으면 버리고 새로 사든가.”

    분위기가 살벌했다. 어떻게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있던 그의 친구들이 식판을 챙겨 들고 남자애를 급식실 밖으로 이끌었다.

    “야, 은호야, 나가자.”

    “아, 놓으라고!”

    남자애가, 그러니까 이름이 은호라는 녀석이 신경질적으로 제 팔을 잡은 손을 떨쳐냈다.

    뭐, 이거 놔! 야, 임석영! 옥상으로 따라와! 그런 말을 하려고 저러나 싶었는데 “아아, 네가 참아.” 하며 다시 제 팔을 잡는 친구들에게 순순히 팔을 내어주었다.

    그러더니 울분에 찬 듯 괴성을 내지르며 잘만 놓여 있는 의자를 발로 쾅쾅 찼다. 보아하니 임석영한테는 깜냥이 안 되어서 저러는 것 같은데, 내 멱살은 잘도 잡았겠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야, 너 몇 학년이냐.”

    친구들에게 억지로 끌려 나가던 녀석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올려다보자 녀석이 무릎을 굽혀 앉으며 내 어깨를 밀어 올린다.

    “뭐야, 같네. 홍차연? 너는 학교생활 존나 고될 줄 알아라.”

    “…….”

    날 선 눈이 표독하기 그지없었다. 나를 죽어라 흘기던 녀석은 친구들과 함께 급식실을 벗어났다.

    별안간에 당한 일로 심장이 벌렁거렸다. 바닥에 떨어진 식판과 수저를 주워 들었다.

    이 학교 왜 이래. 왜 다 양아치뿐이야. 괜히 서러운 마음이 들어 코끝이 찡해졌다. 홍차연 이름표만 안 달고 있었어도…. 망나니 새끼에게 망나니라는 말 한 마디 못 하는 처지가 못내 서럽다.

    입술을 댓 발 내밀고 울음을 꾹 삼키는데 임석영과 눈이 마주쳤다. 뭐,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임석영이 먼저 눈을 돌린다.

    테이블 위에 식판을 놓고 화장지를 뜯었다. 아이들이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양념이 튄 바닥을 그대로 두고 갈 수는 없었다.

    한 것도 없이 험난한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내 멱살을 거머쥔 건 처음이었다.

    “심심하냐? 갑자기 강은호한테 숟가락은 왜 던져, 미친놈아.”

    쪼그려 앉아 바닥에 흩뿌려진 양념을 닦던 손이 멈칫했다.

    “누가 던졌다고 그래. 미끄러진 건데.”

    “미끄러져? 미친, 활 쏘듯 조준해서 날리더만.”

    “어어? 남윤수, 사람 막 모함하네.”

    “모함? 웃기고 있네. 쓸데없이 시비 걸지 마. 괜히 또 싸움 날라.”

    “응. 알았으니까 숟가락 좀.”

    “싫은데.”

    “찬영아, 숟가락.”

    “없어.”

    드르륵, 의자를 끄는 소리에 눈을 올렸다.

    “어디 가.”

    “숟가락 가지러 간다.”

    배식대로 몸을 돌린 임석영과 눈이 마주쳤다. 잽싸게 눈을 내리깔고 바닥을 문질렀다. 멀어지는 그의 발이 보인다.

    빨갛게 물든 화장지를 들고 일어났다. 배식대를 향해 걸어가는 임석영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치. 남자애들은 대부분 저렇게 키가 크지. 내가 너무 작아서 만만한 건가.

    갑작스레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만 이러란 법이 없었다. 이렇게 종종 멱살 잡히고 위협받을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다. 사모님한테 죄송하다고, 못 하겠다고 말해볼까. 어깨가 축 처진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 그 집이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닥을 닦은 화장지와 식판, 수저를 챙겨 들고 힘없이 퇴식대로 향했다.

    “할무니….”

    우울한 음성을 흘리며.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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