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더럽게 닮았네.”
카메라를 켜고 핸드폰을 똑바로 든 채 얼굴을 살폈다. 왼쪽으로 돌려도, 오른쪽으로 돌려도 화면에 담긴 얼굴은 홍차연과 비슷했다.
특히 눈 밑의 점. 얼굴은 그렇다 쳐도 점까지 같은 위치에 있는 게 소름 돋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홍차연을 보며 느꼈다.
홍차연. 열여덟 살. 할머니가 일하는 홍 회장 댁의 차남이자 골칫덩어리.
홍차연과 나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할머니 심부름으로 그의 집을 찾았을 때, 나를 본 홍차연의 모친이 남편을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생김새 외에는 닮은 구석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는 잘사는 집의 둘째 아들로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해 온갖 약을 달고 다녔으며, 모친을 비롯해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보살핌을 정성껏 받아왔다.
그에 반해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외동으로 태어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거다, 하면 가리지 않고 먹었고 보살펴주는 사람이라고는 외할머니 한 분뿐이었다. 아빠란 작자는 내가 돌을 넘기기도 전에 집을 나갔고, 엄마는 중학교 3학년 때 숨을 거뒀다.
할머니가 홍 회장의 집에서 오래 일한 탓인지, 그의 가족들이 엄마의 장례식장을 찾아왔다.
나는 그날 홍차연을 처음 보았다. 울다 그치기를 반복한 탓에 붉게 부어오른 눈으로 마주한 홍차연은, 정말이지 나와 너무 비슷했다. 그 아이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차연이와 닮아서 마음이 많이 가는데, 네가 우니 마음이 안 좋구나.”
홍차연의 모친이 나를 토닥여주며 한 말이었다. 그 때문인지 할머니는 오랫동안 홍 회장네 집에서 부엌을 지켰다. 딱히 수입이 없는 집안이라는 걸 알았는지, 할머니의 일자리를 유지시켜 주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혹시 병이 들면 해고라도 당할까 봐 건강을 나보다 더 세심하게 챙겼다. 그런 할머니가 힘들게 버는 돈으로 공부하는 것도 사치 같아서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게 작년이었다.
그랬는데,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거, 교복 맞냐고.
그러니까, 홍차연이 헬멧도 없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불구가 되지도 않았는데, 회복이 더뎠다. 애가 의식이 왔다 갔다 한다나.
가장 큰 문제는 개학이 코앞이라는 거였다. 홍 회장은 해외 지사에 나가 있었고, 국내에 들어오려면 몇 달은 더 있어야 한다고 했다.
홍 회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개근이었다. 개근상을 못 받으면 몽둥이행이었다. 야구방망이부터 골프채까지 주르륵 늘어놓고, 홍차연이 매를 직접 고르도록 했다. 대체 개근상이 뭐라고. 이런 개그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눈 밖에 난 홍차연이 더 찬밥 신세가 될까 걱정이었던 사모님이 할머니 몰래 나를 불렀고, 홍차연의 몸이 회복될 때까지 학교에 대신 나가줄 것을 부탁했다.
“사모님, 저는 여자인데요….”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있으면 뭐든 해볼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걸 간과했다. 그리고 그 돈의 위력은 나에게도 먹혀들었다.
“할머니 모시고 살 수 있게, 내가 아파트 정도는 마련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개 콜. 하마터면 그렇게 답할 뻔했다.
“…집에서 다니면 할머니한테 걸릴 거예요. 동네에서 홍차연 친구 마주칠 수도 있고.”
“학교 근처로 살 만한 곳을 구해줄게.”
그렇게 계약이 성사되었다. 사모님의 친척 중에 학교 이사장이 있었고, 열여덟 홍차연은 그곳으로 전학 절차를 밟았다. 위장 전입에 위장 전학이었다.
철두철미한 그녀답게 구두로 끝내지 않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몇 가지 조건이 걸려 있었다.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이 계약이 송두리째 무효가 되는 항목이었다. 그 대상은 홍 회장, 학교 친구들, 홍차연의 지인들이었다.
어제, 교복을 비롯해 이것저것 챙겨주러 온 사모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정말이지, 머리까지 이렇게 자르니 영락없는 차연이야.”
뭐라 할 말이 없어 어색하게 웃기만 했는데, 오늘 교복까지 입고 나오니 닮기는 정말 더럽게 닮았다.
얼굴을 요리조리 살피며 표정 연습을 했다. 그러다 핸드폰 화면 속에서 내가 아닌 다른 얼굴을 보았다. 내 어깨 너머의 남자가 인상을 쓰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 그냥 잠깐 이쪽을 본 건가, 했는데 잠깐이 아니었다. 대놓고 노려보고 있다. 순간 화면 속에서 눈이 마주친 것 같아 잽싸게 핸드폰을 내렸다.
― 이번 정류소는 수수고등학교입니다. 다음 정류소는 수수사거리입니다.
민망하던 차에 내릴 때가 되었다. 벌떡 일어나 사람들을 뚫고 뒷문 앞에 섰다. 나이스 타이밍, 하고 혼잣말했다.
학교 건물은 총 세 개였다. 본관, 동관, 별관.
두리번거리다 본관 현관으로 들어갔다. 현관 옆에 학교 안내도가 붙어 있었다. 배정받은 학반이 1반이었다.
“동관 2층이네.”
본관을 나와 동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교무실로 가다가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두근거린 탓에 화장실로 노선을 틀었다.
집에서 나오기 전, 단정하게 자른 바가지 머리, 어차피 작은 가슴이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가슴에 두른 압박 붕대, 튀어나오지 않은 목울대를 가리기 위해 챙겨 입은 검은색 목 폴라, 전부 확인했다.
마른 몸 때문에 괜히 흠이라도 잡힐까 봐 교복도 두 치수나 크게 맞췄다. 바지는 헐렁했고 재킷 어깨는 과하게 남아돌았다.
교복을 어벙하게 맞춰 입은 것만 빼면, 거울에 비추어 본 모습은 나름 홍차연과 비슷했다. 그런데 막상 교실 진입을 코앞에 두니 누가 봐도 여자일 것 같고 걸릴 것 같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난리였다.
얼굴, 교복, 가슴을 재확인하고자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두 눈이 동그래졌다.
회색 후드 티, 남색 맨투맨 티를 교복 셔츠 위에 입은 남자애 두 명이 화장실 끄트머리에 달린 창문 앞에 붙어 서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었다. 희끄무레한 연기가 자욱했다.
“아, 시발 깜짝아! 선생인 줄 알았잖아!”
회색 후드 티를 입은 애가 펄쩍 뛰며 말했다. 내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서 놀란 듯했다.
“아, 미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 서 있었다. 퇴장, 아무래도 퇴장해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교복에 냄새 밴다고. 좀 나가서 피워라, 진짜.”
불쑥,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파란색 바람막이 후드를 올려 쓴 머리가 튀어나왔다. 쾅, 하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봤다. 옷매무새를 정리한 남자애가 눈을 맞추며 세면대 쪽으로 걸어온다.
“어?”
나도 모르게 소리가 튀어나가 뒤늦게 입을 턱 막았다. 오늘 버스 안에서, 핸드폰 화면으로 눈이 마주쳤던 그 사람이다. 알아본 건지 아닌 건지, 바람막이를 입은 애가 못마땅하게 묻는다.
“왜 그렇게 봐?”
그 못마땅한 표정에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가만 얼어 있던 몸을 뒤늦게 움직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화장실인 줄 알고.”
“맞아.”
“예?”
“화장실 맞다고. 볼일 봐.”
돌아서 나가려는데 발목이 잡혔다. 아, 그렇지. 내 말은 여자 화장실인 줄 알았다, 그 말이었는데. 미친, 나 지금 남학생이지. 그제야 이상한 변명을 지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
돌아서 나가려던 걸음을 다시 돌려 세면대 앞에 섰다. 대충 손만 씻고 나가야지, 생각하며 수도 레버를 올렸다.
솨, 세면대를 향해 물이 쏟아진다. 손등, 손바닥, 손가락 사이를 비벼 씻으며 힐긋, 눈을 올렸다.
아무 생각 없이 시선을 옮긴 거울에서 남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수도 레버를 내리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2학년이네?”
“네? 아, 네.”
“전학?”
“…네.”
“몇 반인데?”
겁나 꼬치꼬치 캐묻네.
“1반이요.”
오? 소리를 내며 남자가 반색했다. 물기를 털지도 않은 채 후다닥 나가려는데 야, 하는 짧고 굵은 목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문손잡이를 잡은 채 울상을 지었다.
뭐야, 나 첫날부터 찍힌 거야?
우는 표정을 거두고 돌아보자, 허공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가방이 날아온다. 엉겁결에 두 손으로 가방을 잡았다.
나도 모르게 무거운 것을 받듯 무릎까지 굽혀가며 자세를 잡았으나, 그 동작이 허무하리만큼 가방이 가벼웠다.
각 잡아 구부린 다리, 숙인 허리, 길게 뻗은 두 손에 남자가 입술을 터트리며 웃는다.
“가는 길이니 부탁 좀 하자.”
“예?”
“임석영 자리에 좀 놔주라.”
“임석영 씨가 누군데요?”
멀뚱히 나를 보던 남자가 손가락으로 제 얼굴을 가리킨다.
“나.”
뜬금없는 자기소개에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임석영 씨는 몇 학년 몇 반이죠?”
임석영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사람이 몇 학년인 줄 몰라 존댓말로 물었다. 남자가 픽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임석영 씨는 너랑 같은 반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쓰바, 였지만.
“…네.”
절로 공손한 대답이 튀어나간다. 가방을 고쳐 들고 화장실을 벗어났다. 벌어진 문이 서서히 간격을 좁혀가는데, 낮은 목소리가 틈으로 새어 나왔다.
“콩알만 한 게 귀엽게 생겼네.”
달칵, 문이 닫혔다.
“흐어, 쫄았네.”
숨을 몰아 뱉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처음 마주친 학생들이라 그런지 잔뜩 긴장이 일었던 탓이다. 콩알? 나를 보고 한 말인가 싶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동갑인 줄도 모르고 계속 존댓말 했네.”
하지만 알 게 뭐람. 친구 할 것도 아니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고개를 젓고는 걸음을 옮겼다.
교실에 가기 전 교무실에 들렀다. 가방 두 개를 어깨에 메고 들어온 나를 담임이 의아하게 쳐다봤지만, 묻지는 않았다. 그냥 공부를 겁나 열정적으로 하려는 놈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담임을 따라 교실로 향했다.
“전학생이긴 하지만 개학 첫날이니 딱히 자기소개는 필요 없을 거야. 들어가서 그냥 빈자리에 앉으렴.”
담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교실 앞에 다다르자 왁자지껄한 남자애들 목소리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문밖에 석고상처럼 굳어 있는 나를 담임이 고개를 내밀고 보았다.
“안 들어오니?”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고 교실 앞문으로 발을 들였다.
“앞문으로 들어온 김에 자기소개 하고 들어가 앉자.”
자기소개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선생님….
네모난 교실 안, 아이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우르르 앉아 있어 그런지, 다들 검고 각진 사물들처럼 느껴졌다.
둥둥둥, 가슴이 북처럼 울렸다. 누가 아주 작게, 엄청나게 작게 크기를 줄여 몸속으로 들어가 방망이로 심장을 치고 있는 것 같다. 손에 땀이 배고, 식은땀이 흘렀다.
“저 새끼 교복 봐. 우리 아빠 온 줄.”
어디선가 나지막하게 흘린 목소리에 아이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미쳤냐고, 새끼야.”
낄낄거리는 소리에 담임이 교탁을 탁탁 두드렸다. 그러곤 씁, 하며 산만한 아이들에게 눈치를 줬다.
긴장되는 것과 동시에 숨이 턱 막혔다. 오늘 위장 전학 첫날이고, 아직 1교시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이렇게 힘들기 있냐.
“안녕. 홍차연이라고 해.”
이름만 소개했을 뿐인데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와아, 전학생이다.”
“차연이는 뒤에 빈자리 가서 앉아.”
“네.”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 교실을 가로질렀다. 4분단 맨 뒷자리에 가방을 놓고 앉았다.
내 가방 하나를 걸고 나니 화장실에서 얼떨결에 받아 온 가방 하나가 남았다. 뒤에서 둘러본 교실 안에 임석영이란 놈은 안 보였다.
자기 가방이 아닌가, 하며 가방을 의자 뒤에 걸어두려는 순간, 옆 분단 맨 뒷자리에 엎드려 있는 녀석이 보였다. 파란색 바람막이가 낯설지 않다 싶은 생각이 드는 찰나, 엎드려 있던 녀석이 상체를 일으켰다.
짧은 숨을 터트린 녀석이 후드를 뒤로 밀어 벗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흐트러진 머리칼을 고쳤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이른 시간, 햇빛이 교실 끝까지 밀고 들어온 탓에 남자애의 옅은 갈색 머리에 환한 빛이 걸렸다. 그 모습이 왠지 만화의 한 장면 같아 묘하게 시선을 뺏겼다. 멍하니 보자 녀석이 투박하게 말을 건다.
“부담스러우니까 그만 쳐다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