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끔한 것이 좋아-79화 (79/82)
  • 79. 외전 2화. 아찔한 출국

    남편의 몸은, 전보다 더 좋아진 거 같았다. 제 속을 꿰뚫으며 활개를 칠 때마다 좁고 낡은 침대가 부서질 듯 삐걱거렸고 머리는 계속해서 침대 헤드에 찧어졌다.

    성후가 그런 다정을 끌어 내리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아내를 안아 들었다.

    “안 되겠어. 당신이 해.”

    휘청거리며 성후의 단단한 가슴을 짚게 된 다정의 두 눈이 말똥거린다.

    성후는 웃었다.

    나른하고 여유롭게.

    그가 곧 성기에 힘을 주자, 다정의 속에 박혀있던 단단한 기둥이 꿈틀거렸다.

    전율이 일었다. 그 바람에 다정의 몸에도 힘이 들어갔다.

    “읏.”

    끊을 듯한 압박감에 성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런 식이면 금방 사정을 할 것 같았다.

    “어서 움직여 봐.”

    성후가 다정의 가슴을 꽉 쥐며 종용했다.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가슴이 젤리처럼 뭉개졌다.

    “으읏…!”

    통증이 동반된 쾌감에 다정이 허리를 꺾었다. 팔은 자연스레 몸 뒤로 넘어갔는데 성후가 기민하게 무릎을 세워주었다. 그 무릎에 손을 받치고 다정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아래로 소극적인 움직임이 이어질 때마다, 마찰이 빡빡해지도록 페니스의 힘을 풀지 않는 성후다.

    둔덕 사이에 파묻힌 클리토리스에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곳은, 평소엔 수줍은 새순처럼 존재감을 숨기기에 여념이 없지만, 흥분으로 달아오를 때만큼은 붉고 크게 도드라진다.

    온 신경을 집중하면 아내의 음핵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조그마한 것이 다정을 정복하는 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내는 밤과 낮이 다른 여자였다.

    고루한 표현이라 해도, 낮에는 난초처럼 청초했고 밤에는 흑장미처럼 유혹적이었다.

    클리토리스가 여러 번 비벼지고 나면 그녀의 몸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이를 맞이하는 대문처럼 활짝 개방되었다.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성후는 다정이 더 마음껏 느낄 수 있도록 그녀의 골반을 잡고 보조를 맞췄다.

    “하읏… 하앙….”

    다정의 내벽이 성후의 성기를 꽉 문 채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충분히 빡빡할 텐데 조금 더 깊어지길 바라며 다리를 가위처럼 교차시켰다.

    일정한 리듬을 타는 것처럼 허리가 퉁겨질 때마다 성후의 울대가 꿀렁거렸다.

    “읏….”

    꽉 깨문 성후의 입술 사이로 참을 수 없는 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손을 뻗어 포물선을 그리며 흔들리는 가슴을 다시 쥐었다. 딱딱하게 도드라진 유두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며 부드럽고도 강하게 주물렀다.

    “아항…!”

    좀처럼 신음을 참지 못하는 다정이라는 걸 알지만, 목소리가 커도 너무 컸다. 성후는 급히 다정의 입술을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낮게 묻는다.

    “괜찮겠어?”

    성후의 커다란 손을 제 뺨에 붙이며 다정이 말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

    원망하는 투의 말이 더운 숨과 섞여 흘러나왔다. 그 순간 성후의 복근에 힘이 잔뜩 실렸다. 참기가 어려웠다.

    “…한 번 더 해.”

    조절이 어렵다면, 그녀가, 저가, 성에 차도록 안으면 될 일이다.

    갈증에 눈이 멀어 바닷물이 원 없이 마신 것처럼, 가져도 가져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욕정이겠지만 말이다.

    *

    “잠을 한숨도 못 잤어.”

    경환의 말에 아침을 먹던 다정이 뜨끔한다. 성후는 태연하게도 다정의 고봉밥 위로 장모님 표 도라지무침을 올려주었다. 오이랑 빨갛게 무친 도라지무침은 새콤한 것이 일품이었다. 도망간 입맛을 단숨에 찾아 줄, 그런 맛이었다.

    “왜요?”

    명정이 된장찌개를 각자의 국그릇에 퍼주며, 물었다.

    “천장이 얼마나 쿵쿵대던지.”

    “쿨럭…! 쿨럭, 쿨럭…!”

    먹은 것도 없이 사레들린 딸에게 무심하게 물을 건네는 명정이다.

    “혹시 쥐가 있는 거 아니에요? 으, 싫어라.”

    밀양 시골집을 생각하며 몸을 껴안고 떠는 엄마다.

    “오…, 오래된 주택이니까! 쥐가 있을 수도 있지!”

    다정이 거들었다.

    “음….”

    경환이 밥알을 꼭꼭 씹다 삼킨 뒤 대답했다.

    “그 소리는 쥐라기보다…, 거의 곰 발자국 같은 소리였어. 그냥도 아니다. 곰이 춤추는 소리 같은?”

    “에이, 과장이 심하시네요.”

    그러면서 호호 웃는 명정이다.

    “아빠, 꿈꾼 거 아니에요?”

    밤새 달린 성후는 몹시 허기진 까닭에 열심히 밥을 먹었다. 표정은 무감했는데, 다정의 눈에는 그것이 대범으로 보였다.

    “장모님! 한 그릇만 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 서방은 아침부터 참 복스럽게도 먹네~.”

    다정을 바라본 채로 씩 웃으며 말하는 성후다.

    “제가 좀 대식가라서 말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더라고요.”

    다정이 은밀하게 성후의 발등을 꾹 밟았다. 그가 잘생긴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경환은 텅 빈 밥그릇에 보리차를 따르며 말을 이었다.

    “이상해서 올라가 보려다가, 마 서방이 있는데 별일 있겠나 싶어서 관뒀어.”

    “난 아무 소리도 못 듣고 곯아떨어졌는데.”

    명정이 어깨를 으쓱하자, 경환이 고개를 주억인다.

    “당신은 그럴 만하지. 새벽부터 수산 시장을 뺑뺑 돌았는데…, 피곤하지 않을 리가 있나.”

    그런 명정의 노고가 동그란 식탁 위로 펼쳐져 있었다. 간장 새우장, 양념게장, 전복조림, 새우볶음. 된장찌개에도 해물이 한가득 들어가 있었고 사이사이 봄을 상기시키는 봄나물들과 육전, 장조림, 제육볶음 등이 식탁을 꽉 채웠다.

    “그러게…. 요즘은 사 먹는 반찬도 깔끔하고 맛있는데. 뭐하러 고생해.”

    “말 나온 김에, 다음부턴 사기로 해, 여보.”

    경환이 말했다.

    “자주 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가족끼리 오랜만에 모이는데 그걸 사 먹다니요. 믿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게 맞아요.”

    “맞습니다, 장모님. 저는 장모님이 해주신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어요.”

    다정이 성후를 은근하게 노려보았다. 성후는 개의치 않았다.

    “이따가 싸줄까? 미국에 들고 갈 텐가?”

    조금 시무룩했던 명정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는데, 가공된 음식은 가져가는 게 어려워서요.”

    명정이 아쉽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두 그릇을 먹은 성후의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밥그릇을 한 번 더 내밀었다.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고 가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다정이 일어서려 하자, 명정이 다정을 앉히고 성후의 밥그릇을 얼른 낚아챘다. 이런 거라도 해줄 수 있어서 기뻤다. 바꿔말하면 해줄 수 있는 게 고작 손수 만드는 음식 몇 가지가 전부다. 그러니 명정은 쉽게 사 먹자고 말하는 가족들에게 야속함을 느꼈다.

    그때 사위가 맛있게 밥을 먹으며, 자신의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말해주어 주책스럽게 눈물이 날 뻔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곧바로 한시적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한 몸이었던 서로를 꼭 끌어안고 헤어지려는 모녀. 머나먼 이국땅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딸의 어깨를 묵묵히 두드려주는 경환.

    지켜보던 성후가 곧 다가와 명정을 꼭 끌어안았다.

    “항상 고맙습니다, 장모님.”

    그리고 경환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장인어른.”

    고귀한 다정이를 낳아주셔서. 이렇게 예쁘게 키워주셔서. 사랑해주셔서. 저에게까지 잘해주셔서.

    “그리고 이거.”

    성후가 내민 건 하늘색 봉투였다. 그 속엔 항공권과 황금색 카드가 들어있었다. 명정은 받을 수 없다며 손을 휘저었다.

    “우리도 비행기 표 정도는 끊을 수 있어!”

    명정의 말에 성후가 부드럽게 웃었다.

    “모셔 가고 싶은 마음을 너무 쉽게 대신해서 죄송합니다. 손가락 관절염으로 고생하신다 들었어요. 이참에 미국에 들어오셔서 함께 지내시면 좋겠습니다. 더 젊고 건강하실 때요.”

    “그건….”

    경환이 입술을 달싹이자, 명정이 성후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진지하게 생각해볼게.”

    명정은 미용실을 닫을 마음이 없었다. 다정이 아이를 낳아 봐줄 사람이 없으면 몰라도 아직은 이르다. 그러나 그것을 권하는 성후의 마음이 효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단칼에 자르고 싶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가면서 다정이 물어왔다.

    “엄마 음식이 그렇게 맛있어요?”

    “설마 여태 몰랐던 건 아니겠지.”

    성후가 느긋하게 운전하며 말했다.

    “내 엄마라서…, 그래서 맛있는 줄 알았죠.”

    “맛있어. 그리고 내가 먹어보지 못한 요리가 너무 많아서, 입이 즐거워. 장모님 집에 가는 날을 학수고대할 정도야.”

    “그래도 너무 했어요. 성후 씨가 그러면 엄마가 더 부담스럽고, 다음에는 더 힘들 거 아니에요.”

    “하나만 아는 순진한 여자군.”

    “순진?”

    그게 뭐지? 먹는 건가? 하는 얼굴로 성후를 바라보는 다정이다.

    “장모님은 손수 음식을 해주시면서 기쁘신 거야. 가족들이 잘 먹어주는 것 또한 행복이실 테고. 또. 그 음식들이…, 모두 당신이 좋아하는 거잖아. 사랑받고 있어. 언제나.”

    “그건….”

    “무한정으로 당신을 사랑해주셔서 좋고, 덩달아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어 좋아.”

    다정이 픽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엔 제가 졌네요.”

    “늘 이기니까 한 번쯤은 지는 것도 괜찮지.”

    성후도 씩 웃었다.

    “참. 연석 씨는요? 공항에 먼저 가 있어요?”

    화제를 돌리지 않으면 점이 될 때까지 사라지지 않던 부모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휴가가 길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버리고 가려고.”

    “엥?”

    “단둘이 있고 싶어서.”

    말일 뿐이다. 성후는 연석에게 휴가를 주고 싶었다. 청춘사업에 가장 큰 보탬은 연석에게 시간을 허락해주는 일임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매정한 새럼.”

    “다정이한테만 다정해지고 싶은데.”

    그 말이 너무 진지해서 그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치.”

    붉어진 뺨을 감추며.

    공항에 도착하자, 다시 한국을 떠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다정이다. 그런 다정의 마음을 눈치챈 듯 성후가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힘과 온기가 동시에 전달되었다.

    전용기는 이용하지 못했다. 하려면 할 수도 있었으나, 다정이 반대했다.

    상류층의 삶은 물론 멋진 것투성이지만, 양날의 검처럼 평범해서 더 근사한 것들을 박탈한다는 설명을 곁들이면서.

    성후도 어렵지 않게 수긍했다. 일반 비행기를 이용하는 대신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기로 했다. 거기까진 양보할 수 없었다.

    이코노미석에 앉기엔, 성후의 몸짓이 너무 큰 까닭이었다.

    체형에 맞게 좌석을 조절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금세 나른해졌다.

    비행기가 완전히 하늘을 가를 때였다.

    이코노미석 쪽에서 분잡한 소리와 함께 이내 방송이 들렸다. 기내에 의사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섬뜩한 직감에 사로잡힌 다정이 자리에서 불쑥 일어났다. 부부는 성큼성큼, 이노코미석으로 향했다. 그나마 넓은 승무원의 자리 앞에 호흡 곤란으로 헐떡이는 사내가 보였다.

    “닥터! 닥터 없습니까?!”

    “무슨 일이죠?”

    쓰러진 남자는 한시가 급해 보였다. 붉은색으로 변하는 안색을 살피며 다정이 재차 입을 열었다.

    “평소 앓고 있던 질병이 있던가요? 설명해주실 동행은 없으시고요?”

    다정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남자의 넥타이를 능숙하게 풀었다.

    “의사십니까?”

    “간호사예요!”

    머릿속에 CPR(심폐소생술) 순서를 떠올려보며 대답하자- 부기장의 차가운 말이 다정의 심장에 날아와 박혔다.

    “간호사는 됐어요. 우리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