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믿고 가세요.
앞서 걷는 성후를 따랐다. 나란히 차 뒷좌석에 오르자, 운전석에 앉아 있던 연석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연석이 나가고도 한참 동안 침묵이 차 안에 고였다.
“결혼 말입니다.”
그가 어렵게 입술을 열었다. 다정은 성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하지만, 못 들은 거로 해주십시오.”
일그러진 성후의 얼굴. 다정은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결혼이니 뭐니 그런 것들보다 현재 성후의 얼굴만 마음에 새겨질 뿐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뭐 때문에 이렇게 괴로워하는 거예요?”
다정이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제 입술을 짓이겼다.
“그게…”
죄인처럼 시선을 내리고 있던 성후가 어렵게 시선을 들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스스로도 놀랐는지 급히 훔쳐 닦은 뒤 손바닥으로 두 눈을 지그시 압박했다.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아이처럼 어깨를 떠는 모습에, 다정의 가슴이 다 무너졌다. 다정은 제 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성후의 어깨를 안았다.
혼자가 아니라고.
내가 곁에 있다고.
그것을 온몸으로 말해주고 싶어 연신 그의 등을 쓸었다.
“전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
어차피 내게 결혼은 아직, 현실감 없는 일이기도 했거든요.
“선생님이… 호스피스 병동에 있습니다.”
성후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
일순간의 경직. 단 한 마디에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다정은 더 힘을 꽉 주어 성후를 안았다.
종종 그에게 괴짜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다정이었다. 알 수 없는 노친네, 라며 험담하는 성후의 입가엔 늘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의 이야기나, 그와 있었던 일화를 얘기할 때는 질색하는 말투완 달리 항상 천진하게 웃던 성후였다.
특별하구나.
다정은 성후의 마음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호스피스 병동에 있다니. 그 병동은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한 환자들이 가는 곳이었다. 즉, 강한 진통제로 통증을 줄여가며 죽음을 기다리는 게 전부인 곳.
“선생님한테 시간이 얼마 없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을…, 결혼 준비에 쓸 수가 없어요. 내 행복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그의 목소리에서 끔찍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다정은 성후에게 잠시 떨어진 뒤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사람이 주관하는 일이 아니에요.”
아파하되, 자신에게 칼날을 겨누지 말라는 뜻이었다.
“…너무 무심했습니다.”
“선생님이 편찮으시지 않으셨다면, 아무것도 아닌 무심함이에요. 모두가 주변을 살뜰히 살피며 살지 않아요. 나 또한 그렇죠. 그러니 괜한 자책하지 말아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흐렸다.
“내가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래서 대장암 쪽으로 실력 있는 의사를 찾았더라면… 결국엔 손쓸 수 없었다 해도,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받을 때마다 모시고 다녔더라면… 그 늙은이가…”
목이 메는지 잠시 말을 멈추는 성후는, 이내 말을 이었다.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두려웠을까…….”
“성후 씨.”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성후에게, 다정이 아주 강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성후는 시선만 옮겨 다정을 바라보았다.
“너무 깊게 들어가면, 나도 다쳐요.”
“그게 무슨…”
“성후 씨 그 시간 동안 뭐했어요? 선생님이 치료받고 계실 때. 성후 씨 뭐하면서 지냈냐고요.”
“…….”
“선생님을 방관하는 시간이었나요?”
성후의 눈빛이 요동치며 흔들린다.
“아니잖아요. 우리 서로 미쳐, 사랑하느라 바빴잖아요. 설마. 날 사랑하는 걸 후회하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더는 지나간 시간 붙잡지 말아요.”
아무렇지 않을 리 없지만, 이런 일엔 늘 성후보다 대담한 다정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던 가요?”
“길면 삼 개월이라 들었습니다.”
다정이 속으로 남은 시간을 계산해 봤다.
“선생님과의 이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요. 성후 씨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면, 선생님은 더 괴로우실 거예요. 마음 단단히 먹어요.”
그렇게 말하는 다정의 목소리에 잔뜩 권위가 실려 있어 성후도 덩달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좋아요. 또 한 가지.”
강인한 기운을 내뿜는 다정의 눈에, 성후도 집중했다.
“선생님 앞에서 절대, 절대, 울지 말아요. 그건 내 앞에서만. 아시겠어요?”
환자는 서서히 거동이 불편해질 거고 머지않아 타인의 도움 없인 볼일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몸이 굳어지면 숨이 차 헐떡거리며 대답하는 것이 고작. 결국엔 눈꺼풀을 내리거나 입을 닫지 못해 혀는 바짝 마를 것이고, 물기 없는 혀를 보게 되면 그와 작별의 순간이 다다랐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보게 되는 보호자로선 매일이 충격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야속하고, 두렵고, 떨리는 것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당사자는 육체만 굳어갈 뿐, 떠나는 순간까지 그 속엔 평소의 그가 갇혀있다. 또, 귀는 죽음 이후로도 몇 시간 동안 열려 있어 끝까지 다 듣고 간다.
그러니 보호자가 흔들려선 안 된다.
이별하는 순간까지, 그가 그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네, 알겠습니다.”
바람 앞에 촛불처럼, 중심을 잡지 못했던 성후를 다정이 깨워주었다.
“좋아요.”
가혹하겠지만, 피할 수 없어요, 우리는. 힘내요. 성후 씨, 힘내요, 부디.
*
성후의 일상은 반복되었다. 하지만 성후의 일상만 반복될 뿐이었다. 조금씩 쇠약해져 가는 명호에게 매일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무거웠다.
그래도 웃었다.
힘들 때면 다정을 깊게 안으며 그녀의 체향에 잠깐의 위로를 받은 뒤 다시금 웃으며 명호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는 사이 한 해가 저물었다.
세상은 성후의 결혼이나 연애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성후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았다. 물론 다정에게 양해는 구했다. 지금 상황이 이러하니, 구설에 시달리더라도 괜히 기사나 댓글 같은 거 확인하지 말고 조금만 마음을 다독여 달라고. 언제가 시일이 닥치면 반드시, 해명하겠다고.
씩씩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다정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세 치 혀에 꼼짝할 제가 아니죠. 성후 씨 결정을 언제나 응원해요.’
성후는 사람의 크기와 깊이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다정을 통해 배웠다. 복받치는 버거운 순간마다 다정이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저 너무 떨려요.”
오늘은 명호에게 다정을 소개하는 날. 자신을 닮은 꽃바구니를 들고 있는 다정의 손끝이 얼어있는 것이 보였다. 날이 추워서. 혹은 긴장으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장갑을 사주리라 생각하며, 성후가 말했다.
“긴장할 거 없습니다. 그냥 괴짜 늙은이예요.”
“하필 첫 대면이…….”
성후의 병실에서 키스하던 날, 명호가 들이닥쳤던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어찌나 놀랐던지. 바로 어제의 것처럼 생생했다.
“괜찮습니다. 구닥다리 영감탱이는 아니니까.”
성후의 말처럼, 명호는 호쾌한 사람이었다.
“오! 어서 와요! 온다정 선생님!”
볼이 패여 홀쭉하고 입술을 말라 까칠했지만, 기운은 전혀 아픈 사람 같지가 않았다.
보라색, 연보라색, 연분홍색 등으로 화사하게 장식된 꽃바구니를 수줍게 내밀며 인사하는 다정이다.
“두 번째로 뵙겠습니다. 온다정이에요.”
“초면이 아니었던가요? 늙어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그러면서 윙크하는 명호다. 다정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성후야.”
“네.”
“커피 좀 사 와라.”
“아. 저 괜찮아요.”
다정이 손사래 치며 말하자, 명호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만 손님 대접하게 해줘요.”
성후가 대신 답한다.
“알겠습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선생님.”
성후가 강한 어조로 말하자, 명호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씁. 사 오라면 사 와.”
“…네.”
못마땅한 인상의 그가 나가고 부드러운 눈으로 다정을 바라보는 명호다.
“힘들죠?”
“네?”
“저놈이랑 연애하는 거.”
“아. 아니에요.”
명호가 팔짱일 낀 채, 턱을 현무암처럼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라고 하셔야겠지.”
“아.”
그의 유쾌함에 다정도 큭큭 웃음이 나왔다.
“교감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천하의 등신이라오. 저놈이.”
“그렇지도 않아요. 굉장히 따뜻한 남자예요.”
“따뜻하다기보단… 활활 태우는 놈 아닙니까.”
명호의 말에 다시 얼굴이 달아오르는 다정이다. 그런 다정을 귀엽게 바라보며 명호가 말했다.
“그 뜨거운 열정을 오랜 시간 피아노에게 쏟은 놈이에요, 저놈이. 대단했지. 어린놈이 톡 건드리면 깨질 것처럼 예민하게 굴다가도,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만큼의 독기가 굉장했어요.”
그때를 회상하는 듯 명호의 눈이 아련해졌다. 다정은 명호에게 성후가 어떤 아이였고, 어떻게 자랐는지 소상하게 듣게 되었다.
유학 당시, 동생 유리를 조롱하던 흑인을 반쯤 죽여 놓은 일. 마약과 빈곤으로 점철된 도시로 가출했다가 마피아들과 엮어 격렬한 싸움 끝에 FBI에게 붙들렸던 일. 비아냥거리던 콩쿠르 심사위원의 코뼈를 부러뜨린 일. 그 심사위원은 이후 검은돈을 받은 사실이 들통나 음악계에서 영원히 추방당했다고 덧붙이며 껄껄 웃었다.
다음 화제는 가족 얘기로 넘어갔고, 명호는 긴말 없이 그의 아픔을 직접 물어달라 말했다. 다정도 꼭 그러겠다, 약속했다.
“음. 가르니크 사람들이… 호락호락한 집안이 아닐 텐데. 그렇죠?”
“아직 제대로 뵌 적이 없어 잘 모르겠어요.”
다정이 모호하게 말하자, 명호가 그녀를 보며 안심하라는 듯 씩 웃는다.
“그래도 괜찮아요,”
그 순간 성후가 들어왔고, 명호가 다정에게만 들릴 정도로 은밀히 속삭였다.
“저놈이 더 미친놈이니까. 그러니 믿고 가세요.”
캐리어 든 커피를 나눠주며 성후가 인상을 찌푸린다.
“너무 가깝습니다. 접근 금지.”
“아깝냐 이놈아.”
“네. 완전 대박 아깝죠. 스치는 아무개 눈길에도 닳을까 걱정되는 사람이 바로 이 여자입니다.”
“저 봐, 저 봐, 완전 돈 놈이라니까.”
손가락질하며 혀끝을 차는 명호의 농담에,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병문안이 끝나고 비상구 계단 앞에 서서 다정이 말했다.
“혼자 갈게요.”
“같이 내려갑시다. 올라올 땐 엘리베이터 탈게요.”
“못 느껴도 내려가는 데 힘이 더 많이 들어요.”
성후가 다정의 머리 위로 비상구 문을 열며 말했다.
“본의 아니게 요즘 힘쓸 일이 없어서 말입니다. 이렇게라도 넘치는 기운을 좀 빼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씩 웃는 성후다. 다정은 졌다는 얼굴로 병원 아래까지 동행했다.
“데려다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택시 문을 붙잡고, 성후가 말했다.
“별말씀을. 내일 봐요.”
다정이 먹구름 한 점 없이 맑게도 웃는다. 택시 안에서 성후가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자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휴우…”
중간중간 잔기침을 하며 말을 잇던 명호의 모습이 다정의 머릿속에서도 둥둥 떠다녔다. 코끝이 찡해진다.
이윽고 집 앞에 도착했고, 빌라 앞에 섰을 때 낯선 차가 다정의 뒤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다정은 저도 모르게 뒤를 흘끔 보았다.
뒷좌석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고 아리따운 여자의 옆얼굴이 보였다.
“온다정 씨?”
여자는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빛나는 머릿결. 귀족처럼 새하얀 피부. 붉은 입술과 전체적으로 고아한 분위기.
“그런데요?”
그때 운전석에 있던 남자가 여자가 앉아 있는 반대편, 그러니까, 도로 쪽 문을 열었다. 여자의 차가운 시선이 다정에게 닿는다.
“타시죠.”
눈동자가 정확히 마주치자, 그녀가 누구인지 생각났다. 바로 성후의 동생, 마유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