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벗어 봐, 얼른
까맣게 물든 밤. 빠르게 스치는 도시의 풍경. 불꽃은 택시 안에서부터 점화되었다. 가여울 정도로 경직된 택시 기사의 어깨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성후가 다정의 입술을 삼킬 때마다 젖은 소리가 가득 고였다. 쯔읍, 쯥. 소리가 울릴 때마다 다정의 엉덩이가 뒤로 물렸다. 그러나 도망갈 곳은 없다. 있다고 해도 그녀가 도망가도록 그가 허락하지 않을 터다.
자신을 속박하던 안전벨트를 성후가 급하게 풀었다. 다정과 멀어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다정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밀착해 키스했다.
성급하게 몰아치는 것에 반해, 혀는 마법처럼 부드러웠다. 다정의 입속에서 활개 치는 혀를 피하면, 성후가 그것을 놓아주지 않고 단단히 옭아맸다.
“으흣…”
잇새로 신음이 터져 나온다. 점점 고조되는 흥분감에 다정의 몸이 잘게 떨려왔다.
“자, 잠깐….”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예쁘게도 올라간다. 성후도 거친 숨을 다스리며 다정을 내려다보았다.
“도착… 했어요.”
이미 차는 멈춰져 있었다. 갑자기 기사가 궁색한 투로 덧붙인다.
“요금을 많이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바가지를 썼다 생각하면, 성을 내는 손님이 많았다. 때문에 기사가 지레 변명을 늘어놓았다. 듣는 이가 없는 변명이었다.
성후는 지갑을 펼쳤다. 오만원권 한 장을 얼른 기사에게 주었다. 그리고 다정의 손을 낚아챈 채 호텔로 달렸다. 다정도 그를 따라 심장이 터질 듯 달렸다.
냉랭한 한겨울을 두 개의 불덩이가 가르는 것만 같았다.
프런트에 도착해 성후가 급하게 말했다.
“남는 방 중 가장 좋은 방.”
한도 없는 카드를 내밀며, 그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등 뒤에 숨어있던 다정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가장 좋은… 방?”
성후가 그런 다정의 목을 옆구리에 끼고서 야릇하게 웃었다.
“귀한 것을 귀하게 대접하겠다는데. 안 됩니까.”
다정의 머릿속에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두 번째 불꽃은 승강기 안에서 붙었다. 함께 탄 숙박객이 낮은 층에서 내리자마자 두 사람은 엉켜 들었다.
첫 키스의 추억이 서로의 가슴 속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강렬하게 이어지던 키스가 잠깐 멈추고, 입술이 닿는 거리에서 성후가 속삭였다.
“익숙한 상황이죠?”
“여기는… 괜찮아요.”
유리 승강기 밖, 탁 트인 야경 덕분에 폐소공포증은 발현되지는 않았다.
“안 괜찮다고 말해줘요.”
조금 더 순진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의 마음을 읽은 다정이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구태여 소리로 마음을 꺼내는 성후다.
“멈추고 싶지 않으니까요.”
다시 입술을 붙이는데, 승강기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이 동시에 승강기 밖 너른 복도를 응시했다.
“…갑시다.”
잔뜩 힘 실린 발걸음 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다정의 심장도 그의 발걸음 소리만큼이나, 크게 방망이질했다.
성후는 카드키로 능숙하게 호텔 문을 열었다. 그리고 훅 몸을 굽혔다. 한쪽 무릎을 땅바닥에 붙이고 다정의 발로 손을 뻗는다.
“응?”
“아플 것 같아서.”
앵글 부츠 지퍼가 그의 손길에 지익 내려간다. 다리마저 화끈거린다.
그는 종종 엉뚱할 때 다정하게 굴었다. 처음에는 오해했지만, 근본적으로 상냥한 마음을 가진 남자라는 걸, 다정도 이제는 잘 알았다.
“성후 씨….”
잠깐의 감격도 잠시. 성후의 야릇한 손이 다정의 다리를 훑고 올라갔다. 청바지 밖으로 그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진다.
“아니, 잠깐… 이건 너무…”
“너무?”
성후가 악마처럼 웃었다. 이윽고 그녀의 성기를 뜨겁게 지분거리며 자극을 주었다.
“키스도 없이…”
“다정 씨 모르죠? 흥분할 때 표정이 어떤지. 그 표정이 날 미치게 해요.”
다정은 속절없이 허물어졌다. 능숙하게 핑크색 코트를 벗기는가 했더니, 단숨에 티셔츠를 위로 올렸다. 속옷에 담긴 뽀얀 살이 드러난다.
“내, 내가 벗을게요…!”
어리숙하게 굴고 싶지 않은데. 저돌적인 그를 능글맞게 받아칠 내공이 아직 부족했다. 그것이 경험의 차이인지, 성격의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다정이 티셔츠를 바닥에 던질 때, 성후가 그녀의 바지 버클에 손을 대었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너무 능숙해요. 선수처럼.”
다정의 말에 성후가 기꺼운 웃음을 흘린다.
하지만 동요는 없다.
태연히 코트를 벗고 엑스자로 꼬운 팔로 폴라티도 시원스레 벗어 던졌다.
그리고 읊조렸다.
“선수라.”
“문도 자연스럽게 열고요.”
다정의 사랑스러운 눈길이 문으로 향한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사납게 조각난 근육과는 다른, 진지한 눈빛이 다정에게 닿는다.
“오해하지 맙시다. 여자와 호텔에 온 건 처음이니까.”
“이제 마성후 씨 과거에도 질투가 나려고 해요.”
“질투하면 뭐가 다릅니까.”
성후가 다정의 하얀 목에 얼굴을 묻으며 물었다. 뜨거운 숨결이 닿자 다정의 전신으로 짜릿함이 번진다. 성후의 손아귀에 다정의 예쁜 엉덩이가 잡혔다.
“다르… 죠. 열 받잖아요.”
성후의 손이 다정의 브래지어 밖을 매만지다 이내 쑥 청바지 안으로 침범했다.
“어디가 어떻게, 열 받죠?”
“으읏…”
다정의 다리가 자동으로 오므라졌다. 그러나 버티고 있는 그의 두꺼운 팔뚝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꿈틀거렸다.
“하읏…”
성후의 손에 촉촉하게 젖은 속옷이 닿았다.
“…이런.”
그가 신음 같은 목소리로 탄복했다.
“꽉 붙잡아.”
그리고선 단숨에 다정을 높이 안고 호텔 방 안으로 들어섰다. 대리석 화장대 위로 그녀를 앉히고서 키스했다. 야릇한 신음을 내뱉는 입술에 키스하고 싶었던 소망을 이루었다.
그녀의 것이라면, 모조리 다 먹고 싶었다. 하나도 허투루 낭비할 순 없다.
연신 입술을 빨며 브래지어 걸쇠를 툭 풀었다. 도톰한 가슴 위로 얹힌 브래지어 컵을 성후가 단숨에 뜯어냈다.
툭.
바닥으로 떨어지자마자 그의 입술이 다정의 목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내려갔다. 손은 여전히 바빴다. 그녀의 청바지를 끌어 내리느라.
“빌어먹을.”
그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물었다.
“청바지를 왜 이렇게 좋아해요?”
홀로 벗기기 어려워 다그치는 목소리에, 다정이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벗을까요.”
그 말이 성후의 심장을 쑥 관통했다. 전기 충격기라도 받은 것처럼 가슴이 심하게 요동친다.
“다시 말해 봐요.”
날 것의 시선이 다정을 꿰뚫는다.
“야한 남자.”
다정이 성후의 입술에 짧게 입 맞춘 뒤 빙그레 웃었다.
“마성후 씨는 너무 노골적이에요”
“…누가 날 이렇게 했을까.”
“글쎄요.”
다정도 야릇하게 웃으며 성후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의 귓가를 깨물며 속삭였다.
“침대로 옮겨줘요. 그럼 바지는 내가 벗을게.”
성후의 척주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동시에 다정을 번쩍 안아 들고 다시 침실로 향했다.
그녀를 조심스레 눕히고서 자신의 옷가지를 모두 벗었다. 그는 조금의 부끄럼도 없이 다정의 앞에 앉아, 주문했다.
“벗어 봐. 얼른.”
보고 싶었다. 하나하나, 제 손으로 옷을 벗는 다정의 모습이. 역시. 기대를 배반하는 일이 없는 그녀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바지를 끌어 내리고 다시 속옷을 붙잡았다. 스킨색 속옷 안으로 비밀스러운 숲이 언뜻 비치는 것도 같았다. 성후가 침음을 삼키다 그녀의 손을 막아 세웠다.
“마지막 즐거움은 내게 줘.”
다정의 위로 올라온 성후가 다정의 속옷을 이로 물었다. 그대로 쑥 내리다 손으로 낚아채 단숨에 벗겨냈다.
속옷 구멍 하나하나에서 다리가 빠질 때마다 환상적인 각선미가 성후의 시선을 강탈했다.
“하아…”
“예뻐?”
은밀한 순간에 말이 짧아지는 그를, 다정도 흉내 내보았다.
“엄청.”
다정이 한 발 나가면, 성후는 여러 걸음 앞서가는 남자였다.
“그러니까 더 자세히 보여줘.”
절대로 그녀보다 뒤처지는 경우는 없었다.
“그건 부끄러운데…”
요. 어색함에 입맛을 다시는 다정에게 성후가 다시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성후의 섬세한 손가락이 다정의 갈라진 살결을 더듬다, 이내 낮게 경고했다.
“오늘 다 잤다, 너.”
*
“이러다 출근하면… 기절할 거예요.”
다정이 그물그물 감기는 눈을 하고서 말했다. 성후는 다정의 매끈한 몸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출근 안 해도 될 겁니다.”
그의 눈에도, 목소리에도,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근무표 확인해 봐요.”
성후가 그렇게 말하면 진짜로 그럴 것 같았다. 다정이 잠기운을 떨치며 몸을 일으키려 하자, 성후가 그녀를 제지하고서 침대에서 벗어났다. 맨몸으로 거리낌 없이 우뚝 선 채로 짧게 물었다.
“코트?”
어디에 핸드폰이 있냐는 질문이었다.
“…네.”
뚜벅뚜벅. 멀어져 가는 성후의 뒤태가 다정의 눈에 담겼다. 그의 등에도 꼭 눈이 달려있을 것 같아 노골적으로 감상하진 못했다. 힐끔힐끔 훔쳐보는 자신이 우스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보고 싶은 몸이었다.
널따란 어깨 밑으로 균형 잡힌 몸매. 호리호리한 선과는 거리가 멀다. 크고 두꺼운 등 아래로 탄탄한 엉덩이. 두꺼운 허벅지. 전체적으로 쭉 뻗은 긴 다리까지 시선을 내리는데, 한참을 걸렸다.
다정의 코트를 뒤적거리던 성후가 이내 몸을 획 돌렸다. 그 바람에 놀란 다정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버렸다.
“음…? 큭큭큭.”
낮게 키들거리는 웃음소리가 음흉한 시선을 눈치챘다 말했다. 죽자, 죽어.
다정은 자신에게, 알고 있는 모든 욕을 퍼부었다. 그래도 모자란 기분이 들었다. 그때 툭. 침대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이불 밖으로 빼꼼 정수리만 내밀자, 다시 침대 속으로 핸드폰이 들어왔다.
“확인해 봐요. 근무.”
아.
맞다. 그가 제게 등을 보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지.
다정은 안온한 이불 속에서 간호사 전용 어플을 열었다.
“!”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출근으로 가득 찼던 근무표가 텅텅 비어있었다. 무균 병동으로 차출된 후 쉬지 못했던 건 사실이지만, 이런 식의 오프는 당황스럽다.
그때 다정을 감싸주던 이불이 확 걷혔다. 아니, 거의 뜯기는 수준이었다.
“꺄악!”
다정은 웅크린 몸을 베개로 막았다. 몸집이 가녀린 편이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완벽하게 가려졌다.
성후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내 말, 맞죠? 쉰다는 거.”
“웃지 말아요.”
성후가 제 턱을 매만지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가뜩이나 잘생겼는데, 웃으면 죽음이긴 하죠.”
그러면서 다시 피식 웃는 성후다. 그러나 다정은 안다. 그가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자뻑에도 개연성이 필요하다면 그의 자뻑에 반박할 자는 없을 것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곧 개연성이니까 말이다.
다정이 개미 같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부정하진 않을게요…”
조용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 성후는 기꺼운 웃음을 흘리다 멈칫한다.
베개에 얼굴을 푹 묻고 있던 다정은 갑자기 사위가 고요해졌음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베개에서 얼굴을 떼어내 올려다본 성후의 얼굴이 짐짓 심각하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까치 머리의 다정이 고개를 갸웃한다.
“혹시 말입니다. 어릴 적에 프라하에 간 적, 있습니까?”
대단한 질문도 아닌데 그의 목소리가 무척 무겁다.
난 또 뭐라고.
다정이 평이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맞아요.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