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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끔한 것이 좋아-42화 (42/82)

42화. 세도, 너무 세다

다정은 샤워할 때만 해도, 땅으로 꺼질 것만 같았다. 몸의 이완을 느끼며 떨어지는 물줄기 속에 몸을 맡겼더랬다.

저택의 주인이 허락한 침대로 돌아왔을 때, 가까운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망각했던 긴장이 다시금 다정을 덮쳐왔고, 나타난 성후가 그녀의 심장을 덮쳐왔다.

묵혀뒀던 진심이 섞이는 순간, 입술도 함께 섞였다. 긴장감과 별개로 떨어진 체력에 미끄러지듯 침대에 풀썩 넘어갔을 때다.

성후가 입술을 뗐다. 하지만 멀어지지 않고 속삭였다.

“유혹이, 확실하군.”

그런 게 아니라는 변명도 수줍어지는 다정이다. 어차피 입술도 다시 그에게 막혔으니 대답할 수도 없거니와.

“하아…”

가끔 입술을 뗄 때마다 겨우 뱉는 숨이 고작이었다. 그 숨결마저 모조리 빨아 먹을 듯 성후는 무섭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성후는 능숙하게 키스하며, 제 허리를 죄던 끈을 풀었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샤워 가운이 힘없이 벌어졌다. 단단하고 넓은 어깨가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눈 감은 다정은 그것을 볼 수 없었다.

그때였다.

성후가 완전히 그녀에게서 떨어져, 시원하게 가운을 벗어 던졌다. 덕분에 넓게 조각난 근육이 그대로 다정의 시선을 강탈했다.

언제봐도 멋진 근육은 다정의 호흡을 기이하게 흩트려놓았다.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가, 다시 제대로 호흡을 가다듬어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는다.

“눈빛이 너무 야한데. 그렇게 마음에 듭니까.”

다정은 지고 싶지 않았다. 나이 서른에, 숙맥처럼 굴기 싫었고 끌려다니는 건 더욱이 사양이다.

“기대하게 만드는 몸인데요.”

성후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되받아친다.

“그래서. 늘, 기대했습니까? 아님 상상했나. 마음껏.”

잠시 잊었다. 섹드립은 그에게 상대가 되지 않다는 것을. 다정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자, 귀엽다는 듯 그가 옅게 웃었다.

수컷 향이 물씬 풍기는 커다란 몸에, 소년 같은 미소가 환상이다. 표정을 바꾸자, 저를 직시하는 관능적인 눈빛에 심장이 떨려왔다.

성후가 다정의 손을 뻗어 자신의 넓은 가슴에 가져왔다.

“나 지금, 긴장했습니다. 느껴집니까.”

그의 단단한 왼쪽 가슴이 기이할 정도로 뛰었다. 그 고동이 다정의 손바닥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다정이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 고대했던 순간이라 그런가. 저는 했거든요. 상상. 고백하자면, 이불도 많이 더럽혔습니다.”

세다. 세도, 너무 세다.

다정의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서 성후에게 말했다.

“키스해 줘요.”

짐승처럼 덮칠 것 같던 성후가, 눈처럼 조심스레 내려와 키스했다.

바짝 밀착하지 않은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키스하면서도 바쁘게, 그녀의 가운을 벗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에 다정의 가운이 벗겨지고, 이내 새하얀 목덜미를 물었다.

“하읏…”

가느다란 허리를 쓸던 손은 풍만한 가슴으로 향했다.

전체적으로 선이 가는 그녀의 볼륨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꽉 찬 가슴이었다.

한 손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가슴을 부드럽게 만지다 결국, 참지 못하고 거세게 움켜쥐었다.

“하앗…!”

아파서. 혹은 좋아서 내지르는 그녀의 신음에 성후의 페니스가 단단히 섰다. 어디라도 들어가고 싶어 안달 난 성기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꿈틀거렸다.

그것이 툭. 다정의 허벅지에 닿자 그녀가 다시 터지려는 신음을 겨우 삼키고 눈을 떴다.

성후는 이미 눈을 뜬 채였다.

이 남자가 위에서 빤히 저를 보고 있었다 생각하니, 몹시 부끄러워지는 다정이다.

그녀가 말했다.

“…눈, 감아요.”

입술을 짓이기고 협박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성후는 눈썹을 치켜뜨며 뻔뻔하게 말한다.

“싫습니다.”

친절한 듯 불친절한 이유를 덧붙인다.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거든.”

그러면서 몸을 아래로 내린다. 이번엔 양손으로 다정의 가슴을 잡은 뒤 크게 베어 물었다. 딱딱하게 선 유두를 부드러운 혀로 핥고 누르기를 반복한다. 지그시 눌러지는 촉감에 다정의 허리가 절로 배배 꼬였다.

“하읏….”

뭉게뭉게, 육안으로도 보일 듯 젖은 숨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성후 씨…”

“내가 참은 거에 비하면, 지금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정이 고개를 저었다.

“못 참겠어요…”

이미 범람한 애액이 침대를 적신 지 꽤 되었다.

“참았다 먹는 열매가 더 달콤한 법이거든요.”

그는 사악하게 웃고서, 이번엔 다정의 다리 사이로 손가락을 넣었다.

그가 풍기는 분위기에 비해 손길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다정이 긴장으로 몸을 굳히자, 성후가 그녀에게 키스했다. 생리적인 방어를 해체할 심산이었고, 그것은 늘 그랬듯 성공했다.

다정의 다리가 서서히 열리면서 성후의 손이 그 속으로 진입했다.

건반을 만지듯 부드럽게 움직이던 손가락은 이내 원을 그리며 다정의 몸을 연주했다.

“하아… 하아…”

여태 들었던 피아노 소리도, 이만큼 아찔하지 않았을 터다. 이만큼 섹시하지 않았을 거고, 이만큼 성후를 미치게 만들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완전히 정신을 놓지 않았다. 때문인지 터져 나오는 신음이 다시 제 귀로 들어왔을 땐 민망함도 함께 밀려들었다.

그때였다.

성후의 몸이 다정에게 완전히 포개졌고 내벽으로 빡빡한 페니스가 관통했다.

윽. 통증이 동반된 신음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다정이 팔을 들어 제 입을 막았다.

그 손을 성후가 힘차게 낚아채 벌렸다.

일순 당황한 다정이 겨우 고개를 들어 성후를 올려보자, 그가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참지 마요.”

그의 말은 해석이 필요 없었다. 성후의 주문이 다정을 완전히 무장 해제시켜버렸다.

그녀가 대답이 없자, 성후가 허리를 강하게 밀어 올렸다.

“하응…”

“듣기 좋습니다….”

땀으로 젖은 다정의 잔머리를 쓸어 넘기며 이마에 진하게 키스한 뒤 말했다.

“야한 신음.”

그리고 다시 몸을 움직였다.

먹이를 쫓는 표범처럼 날렵하고도 강하게. 이미 굴복한 채 목을 내놓은 양에게도 자비를 모르는 짐승처럼 결코, 봐주지 않았다.

하아, 하읏, 하앙, 하아, 하아.

신음이 반복될수록 절정의 순간이 가까워졌다. 성후는 다정에게, 저를 각인시키고 싶었다. 마음에도 몸에도, 절대로 잊히지 않는, 절대로 놓을 수 없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오르가슴에 도달하려는 그녀의 다리를 낚아채 하나로 모았고 그 위에서 찍어 누르자, 교접 부위가 깊어졌다. 안 그래도 벅찬 성기의 크기가 조금 더 깊이 들어왔음은 물론이었다.

“꺄악-!”

다정이 저도 모르게 교성을 지르자, 성후가 악마처럼 웃는다.

“잘, 따라와요.”

절정이 두 번 지났을 땐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그러나 성후는 잠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태 참아왔던 것은 단박에 쏟아내듯 집요하게도 탐했다. 다정이 기절로 의식을 놓았을 때, 그녀는 비로소 쉴 수 있었다.

* * *

한 사람의 작업실이라기엔, 크기가 웅장하다. 20여 년 된 작업실은 석고를 바른 새하얀 벽. 체리목으로 짜인 선반. 조금은 어수선한 각종 미술도구와 한쪽에 마련된 간이 주방.

어느 공간은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둠이고, 어느 공간은 통창으로 자연광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늘 유리의 자리는 이곳이다.

자연광을 조명 삼아 보고픈 이를 실컷 그리는 것. 작품과는 무관한 취미활동을 할 심산이었다.

성후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근래는 연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조금 흐릿하다. 성후가 구두도 벗어 던지고 자유롭게 피아노를 치던 그 광경을, 다시 그림으로 재현하고 싶었다.

그 모습이 보고 싶고, 그에게 보여 주고 싶다.

“으음….”

연필을 들고 고개를 몇 번 갸웃하던 유리는 끙하고 앓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오빠 사진이…”

성후는 특이했다. 그다지 주변을 살피지 않음에도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특히 유리의 일에 나서는 건 유난히 좋아했다. 그런 성후가 이번 전시회엔 꽃과 카드로 대신했다. 섭섭하다기보다, 가슴 아팠다.

얼마나 실의에 빠졌으면, 나타나지도 않았을까. 몇 달간 성후만 생각하면 가슴이 시큰거리는 유리다.

유리는 핸드폰 속 앨범을 뒤졌다. 성후의 최근 사진이 없다. 성후 혹은 연석이 보내주지도, 기사에서 발췌한 사진도 없었다. 한동안 활동이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하….”

속이 상한다. 모두의 주목 아래 화려한 인생을 살던 마성후. 지금은…?

사람들이 성후를 잊지 않기를 바랐다. 기사를 검색해보자.

구글에 ‘마성후’를 입력하자, 그의 잠적 소식이 담긴 기사가 꽤 많이 올라와 있었다. 트위터에선 흉흉한 소문도 나돌고 있었고 그의 소식을 기다리는 팬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많았다.

그 순간, 웬 사진이 유리의 눈길을 끌었다. 음?

작은 섬네일을 클릭하자, 한 외국인의 SNS가 나왔다. 태그된 장소는 롱 아일랜드 파밍데일에 위치한 리퍼블릭 공항이었다.

얼마나 줌을 당긴 건지, 좋지 않은 화질 속에 보이는 사람은 웬 여자를 택시에 태우고, 함께 택시에 오르는 성후의 뒷모습이었다. 큰 키와 넓은 등, 여자를 바라보며 짓는 희미한 미소까지.

갑자기 초조해지는 유리다. 유리는 연필을 내려두고 롱 아일랜드라는 곳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그곳이 뭐가 있더라….

곧 유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설마. 그레이트 아일랜드…?”

성후 소유의 섬을 떠올리는 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리는 작업하려던 것을 중단하고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와 앉았다.

정말 성후가 제 섬에 여자를 데리고 갔다면 얘기는 심각해진다.

붙잡을 수 없는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오빠는, 많은 여자를 만났었지만 모두 스치는 간이역에 불과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가 탈 없이 은밀하게 연애를 해올 수 있었던 건 모두, 자신의 바운더리에 들이지 않아서였다.

집은커녕, 연습실에조차 여자를 초대한 적 없었던 성후가 저 멀리 미국 북동부까지 데리고 간 여자.

갑자기 초조함이 밀려들었다.

유리는 성후와 연석에게 번갈아 전화를 걸었다. 약속한 듯 둘 다 받지 않는다.

“진짜 연애라도 한다는 거야? 그것도… 진심… 으로…?”

유리의 시선이 다시 흐릿한 사진에 붙박였다. 공항과 어둠, 택시. 그리고 여자를 챙기는 성후의 듬직한 손. 더 자세히 보니 그가 얼핏 웃는 것 같기도 했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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