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끔한 것이 좋아-23화 (23/82)

23화. 진동하는 수컷 향기.

병원장실 안에 스산한 긴장감이 흐른다.

“뭐? 다시?”

“네.”

기조실장이 말했다. 그러자 병원장이 그의 정강이를 차며 씩씩거린다.

“아니, 그걸 왜 이제 얘기하나!”

“저도 늦게 들은 터라…”

기조실장은 억울한 얼굴이었다. 성후 주치의인 김동학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문제 될 건 없지 않겠습니까. 마성후 환자가 다시 1004호실에 입원한다면 병원에 크게 보탬이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수액 값 얼마 해서. 그저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 됩니다.”

볼품없이 정강이를 끌어안고서 뻔한 타산을 늘어놓는 기조실장에게 병원장이 꽥 소리를 질렀다.

“아니,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씩씩거리는 그의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는 것 같았다.

“하아…….”

한숨이 병원장을 지배한다.

성후가 내준 숙제를 다 했음에도, 또 어떤 꼬투리를 잡힐지 모르기 때문에- 성후의 방문이 퍽 달갑지만은 않았다. 수십 년의 사회생활로 사람을 상대하는 데 도가 텄음에도 성후는 버거운 상대였다.

그것도 새카맣게 어린놈이.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병원장과 기조실장이 동시에 경기를 일으켰다. 병원장은 가냘프면서도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구세요-”

“마성후입니다.”

“히익…!”

황급히 입을 막은 병원장이 기조실장에게 어서 방을 비우라고 손짓했다.

후다닥.

기조실장이 나가며 성후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마성후님!”

양팔을 가득 벌리며 반가이 맞이했다.

“앉으시지요!”

인사 한마디 없이 자리에 앉는 성후다. 그의 뒤로 무성의하게 묵례만 깜빡이는 연석이 병원장의 눈에 들어왔다.

꼭 저 같은 놈을 고용했다고 여기며 그가 생글 웃었다.

“다시 입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병원장이 지난번의 모욕을 말끔히 잊은 듯한 얼굴이었다. 더불어 성후가 협박 조로 명령한 것을 완벽히 해결했기에, 당당해 보이기까지 했다.

“네.”

“연락받자마자 VVIP 병동 1004호실로 준비해뒀어요. 우리 성후 씨가 올 줄 알았는지, 마침 딱 비어있었지 뭡니까.”

그가 더욱 사근사근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성후가 생각에 잠긴 듯 잠깐 말을 아꼈다.

그것은 곧 병원장의 긴장으로 이어졌다. 속으로 얼마나 진땀이 나던지.

얼마간의 침묵도 참지 못하고 그가 입을 열었다.

“……마음에 안 드시는 거라도??”

성후는 다정이 폐소공포증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녀가 저를 만나러 오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계단을 오르고 내렸을지를 가늠해보았다. 여자의 몸으로 고되었을 터다. 바쁠 때면 위험도 감수하고 달리기까지도 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해지는 성후다. 그녀에 대한 무지가, 그녀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다.

“VVIP 병실은 됐습니다.”

설령 저가 그녀 덕분에 애가 타 죽을 지경이라도, 더는 다정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예??”

“정형외과 병동 1인실 있습니까. 금액은 VVIP 병실 이용료를 지불하겠습니다.”

“아니, 굳이 왜 그렇게…”

병원장의 몹쓸 호기심을 그가 단박에 제거했다.

“환경을 잘 갖춰달라는 뜻입니다.”

성후의 말을 듣고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병원장이다. 그럼 애초에 1004호실에 가면 되잖아?

하지만 맴돌던 의문을 꿀꺽 삼키고서 환하게 웃는다.

“흐음, 없어도 있도록 만들어야지요. 누가 오시는데.”

마치 특급 호텔 사장처럼 얘기하는 그다.

성후가 희미한 조소를 짓는다. 늙은 영감이 장사도 참 잘하는군. 그러니까 늙어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겠지.

이내 그가 한 가지 제안을 덧붙였다.

“단. 담당 간호사는 지정하고 싶습니다만.”

그쯤이야 누구라도 붙여주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풍기는 인상 또한 그렇게 인자할 수가 없다.

“정형외과 간호사, 온다정 선생님이 케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격한 공감의 손뼉을 치는 병원장이다.

“아, 온 선생! 좋지요. 정말 환자를 제 가족처럼 생각하는 훌륭한 간호사로 저명하답니다!”

“다른 사람까진 아낄 필요 없고. 저한테만 잘하면 됩니다.”

생각만으로도 싫은지 그의 입매를 굳혔다.

“아무렴요, 아무렴요. 전화 넣어 두겠습니다. 바로… 입원하시는 거지요?”

성후의 표정이 바뀔 때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병원장이다. 그런 그에게 공감과 더불어 동정이 드는 연석이 병원장을 가엾게 바라보았다.

“네.”

“지금 내려가시는 동안 조치가 다~ 끝나있을 것입니다. 어서 가보세요.”

“그럼.”

성후와 연석이 병원장실을 나왔다.

“그런데 병명이 뭡니까.”

연석이 물어왔다.

“손가락. 아프잖아.”

“경련만 인다면서요.”

“치료가 안 됐잖아.”

눈치가 없는 사람처럼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여는 연석이다.

“…그리 금방 치료가 안 되는 것으로…”

그러자 성후가 몸을 돌려 연석을 노려보았다.

“너는 지금 응원하는 거야? 초 치는 거야?”

“저는…”

형님이 ‘그녀’로 인해 애가 타 죽을 것 같은 얼굴과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럼 몹시 통쾌할… 아니 아니, 마음이 놓일 거 같습니다. 흠흠.

하마터면 말로 뱉을 뻔한 속내를 꿀꺽 삼킨 연석이 승강기를 척 잡았다.

“타시죠, 형님.”

성후도 그런 연석을 잠깐 노려보다 만다.

정형외과 병동 층으로 내려가자, 이제는 성후가 눈에 익은 간호사들이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인사했다. 그도 무심하게 눈인사를 한 뒤 슥 스쳐 지나갔다.

간호사 한 명이 연석에게 몇 호실인지 알려주었고 연석이 다시 성후를 빈 병실로 안내했다.

병실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제일 큰 사이즈의 환자복이었다. 침대 위에 곱게도 접혀 있다.

“나가봐.”

연석의 눈도 환자복에 닿았다.

“아. 네.”

비서가 나가자 성후가 셔츠 단추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헤쳤다. 그리고 벗은 셔츠를 툭, 침대 위로 던진 다음 환자복을 드는 순간이었다.

똑똑 노크하는 소리와 다정이 불쑥 들어왔다.

“우선 체온 체크부터 하겠습니다.”

그녀는 매우 간호사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표정은 차갑지도 상냥하지도 않았는데 중요한 건 그 속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온다정 씨는 내가 벗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상체를 완전히 드러내고 있는 성후가 잔뜩 공격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다정이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않아야 할 것 같아서요. 제 환자니까.”

담백한 목소리였다. 듣기에 청아해, 애가 더욱 타들어 갔다. 내가 그렇게 병원에서 나갔었는데……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그의 속에서 오기가 무섭게 고개를 쳐들었다.

“갑자기 왜 철벽을 치십니까. 우리 사이에.”

약이 바짝 오른 성후의 얼굴을 다정이 목격했다. 급기야 그를 도발하기에 이르렀다.

“왜요? 또 키스하시려고요?”

저도 당신이 제멋대로 굴게 두지 않을 거예요.

“못 할 것도 없지.”

“제가 싫다면요.”

그녀의 대답에 미간을 긁적이던 그가 이내 완전한 남자의 얼굴로 다가왔다. 그리고 다정을 벽 사이에 가두고서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다정도 지지 않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애썼다. 넓고 단단한 그의 야만적인 상체를 보지 않기 위해. 시선 끝에 잡히는 그것을 애써, 정말 애써, 모른 척하면서.

팽팽한 기운이 둘 사이에 흐른다.

그녀의 눈이 말했다. 당신이 좋지만, 당신에게 마냥 휘둘리진 않을 거예요!

그때, 성후의 입술이 열렸다.

“보고 싶었습니다.”

찌푸린 얼굴과 긁혀져 나오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서 수컷 향이 진동했다. 거기에 아찔한 고백마저 싣고 나왔으니 다정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니, 여자라면 누구라도 그의 관능적인 태도 앞에서 멀쩡하기 힘들 것이다.

다정이 숨을 헉 들이켰다.

“왜 나를… 버려두는 겁니까.”

애가 타들어 간 시선이 다정의 온몸에 달라붙었다. 그녀의 가슴은 체통을 잃은 지 오래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다시금 성후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정말 미친 거 아닙니까?”

언뜻 공격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애원에 가깝다.

“…네?”

하지만 다정은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쓸데없이 예쁜 거. 그래서 사람 돌게 만드는 거.”

“……네?”

콩닥콩닥. 긴장과 설렘으로 다정의 심장이 따로 생명을 가진 것처럼 유난스럽게 뛴다.

“들었잖습니까.”

역시. 그의 앞에서 간호사로만 있는 것은 힘든 일이다. 다리가 미세하게 떨려온다.

“쓸데없이 예뻐서 사람 돌게 만든다고.”

그가 굳이 재방송을 해주었다. 직관적인 눈빛에 말을 할 때마다 그의 단단한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다정의 기억 속 남자의 맨몸으로 가장 훌륭한 예시는 운동으로 다져진 우석이었는데. 본업이 피아니스트인 이 남자가 어째서 우석의 몸매를 능가하고도 남을 만큼 훌륭한 것일까.

마치 잔뜩 성이 나 있는 거 같았다. 벽을 짚은 우람한 팔뚝에선 불거진 핏줄이 꿈틀거렸고 그가 참는 듯한 음성으로 말할 때마다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가슴이 입체적으로 들썩였다.

그녀야말로 성후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당신이야말로 어째서 이렇게 야만적인 몸을 가졌냐고. 그래서 왜 내 눈을 돌게 만드냐고.

“……일단 비켜줘요.”

외면이 답이다.

“싫은데?”

그가 즉답했다.

“소리… 지를 거예요.”

다정이 입술을 짓이기고 성후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노려보았다. 그러자 성후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질러.”

가소롭다는 듯이.

“……진짜예요.”

그때 성후의 손이 다정의 양손을 포박했다. 그는 다정의 손을 묶듯, 한 손안에 다정의 두 팔목을 가두어 벽에 붙였다.

굴욕적으로 만세를 하게 된 다정이 이번엔 정말 매섭게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그 눈에 일렁이는 정염을, 그도 읽었다.

역시. 당신도 날 원해.

그가 시선을 내리깔고 코앞에 다가왔다. 하나의 공기를 나눠 마실 듯 가까워서 편히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서, 성후 씨…….”

제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 목소리는, 바보처럼 떨리며 나왔다.

그러자 그가 기껍게 웃는다. 다음으론 느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저는 당신한테 키스할 겁니다.”

허억!

“당신은 당신이 경고한 대로 비명을 지르면 되겠군요.”

“아니…!”

“물론! 이 키스가 싫다면.”

그렇게 성후가 다정의 입술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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