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끔한 것이 좋아-20화 (20/82)

20화. 클럽 104

-뭐 하냐.

“밥 먹었지.”

-혼자?

“아니, 교수님이랑 간호사 선생님들이랑 먹고 막 헤어진 참이었어. 왜에~? 우리 우석이~ 누나 보고 싶구나?”

-맛있는 거 먹었나 보네.

콧소리를 내는 다정의 업된 이유를 한 방에 맞추는 우석.

“쿨럭.”

-입으로 기침 소리 내지 말고.

다정은 인중을 길게 당긴 뒤 되물었다.

“너는 먹었고?”

-응. 근데 승주가 계속 놀러 오라고 노래노래 불러서. 혼자 가기가 좀 뭣한데…

“어디를?? 설마…… 클럽??!”

-…어.

난처함에 턱을 긁적이고 있을 우석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 다정이다. 그녀는 쿡쿡 웃으며 물었다.

“같이 갈까?”

-너, 괜찮겠냐?

“물론이지! 나도 언젠가 막 되게 놀아보고 싶었어!”

-그래, 넌 너무 성실하게만 살았어.

“야… 농담으로 던진 자뻑인데 다큐로 받으면 어떡해… 네가 그러면…”

-음?

“내 기분이 오예란 말이지!”

소꿉친구 앞에서는 체면 차릴 것 없이 밝아지는 다정이다.

꼭 어렸을 때 모습처럼.

-큭큭큭. 데리러 가?

“아냐 아냐, 택시 잡혔다. 장소 문자로 좀. 지금 바로 가.”

택시에 몸을 실은 다정은 승주에게 말로만 듣던 <클럽 104>로 향했다.

입구에서는 키가 190cm에 달하는 비율 깡패 문지기가 둘이나 서 있었다. 저런 남자들을 보고 클럽에 들어가면… 다른 남자들이 눈에나 차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거니는 다정의 눈앞에 쏙 나타난 남자. 우석.

“우와 우리 우석이…”

까만 피부에 검정 코트. 그 안으론 검은 폴라티와 청바지를 받쳐 입었다. 거기에다가 짧은 헤어스타일까지. 전혀 멋 부린 차림이 아니었음에도 멋이 흘러넘쳤다.

“네가 단연 크~”

다정이 검지를 치켜세우며 오두방정을 떨자, 우석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못 말려.”

“어이!!”

검정 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으며 꽃미소를 머금은 승주가 문지기들 사이에서 손을 흔들었다. 장신들 사이에 아담한 승주는 마치 어린 강아지 같았다.

강아지가 다가와 다정에게 말했다.

“선봤다며?”

“응?”

승주의 말에 우석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아니야? 선봤다던데.”

“선봤어?”

우석의 시선도 다정의 얼굴에 붙박였다. 두 친구의 관심을 한껏 받으며 다정이 민망함에 웃음을 터트렸다.

“어디서 들었어?”

“기봉이한테.”

“아, 이것들 진짜 비밀이 없네. 없어.”

“있겠냐? 말해 봐. 어땠어? 잘됐어?”

승주가 캐묻고 우석이 다정의 입술을 주목한다.

“……잘 안 됐어. 조선 시대 남자가 나타나서, 결혼하면 여자는 집에서 내조만 했으면… 어쩌고저쩌고.”

“쯧. 우리 다정이 스따일이 아니네.”

승주가 턱을 당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석은 속으로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 안도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승주의 요망한 질문 때문에.

“그럼 내가 괜찮은 남자로 소개해줄까?”

아니, 이 자식이….

대놓고 승주를 노려보지 못하는 우석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됐어.”

다정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석은 하마터면 환히 웃을 뻔했다. 그는 헛기침으로 감정을 추슬렀다. 그리고 두 귀는 바짝 세웠다.

“어머님이 시집가라고 맨날 뭐라 하신다며?”

우석은 이번에 참지 못하고 승주를 노려봤다. 그의 눈이 말했다. 이승주. 제발 좀 닥쳐라.

“괜찮아. 그것도…”

다정이 뜻 모를 미소를 희미하게 걸고서 얘기한다.

“곧 해결될 것 같아.”

“뭐, 그럼 다행이고. 이제 들어가 볼까?”

“……나 근데”

조금 흐린 말투에 승주와 우석이 다시 다정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클럽은 처음이라서…… 촌티 내는 거 아닌지 몰라.”

그런 다정이 귀여워 우석은 희미하게 웃었고 승주는 대놓고 푸하하 웃었다.

“그런 거 없어! 그냥 내가 주는 술 한 잔 딱 들고! 어색하다 싶으면 술 먹는 척 딱!! 삘 받았다 싶으면 술 한 잔 더 시키고! 그런 거지, 뭐. 정 정신없고 못 견디겠다 싶으면 이따가 우리끼리 한 잔 꺾고.”

소주잔을 털어 마시는 시늉을 하며 용기를 복 돋아 주는 승주.

“내가 살다가 클럽도 다 와보고… 촌스럽다고 쌩까기 없기다…?”

그랬던 그녀가……

“와우!!! 미쳤어, 여기!!!”

묶었던 머리까지 풀어헤치고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벌써 한 시간째다. 어색할까 봐 손에 들려 있었던 술잔은 거슬린다며 이미 어느 테이블 위에 버려져 있다.

고막이 터지라 빵빵한 스피커 바로 앞으로 향하더니 기어이 봉까지 턱! 하고 잡았다.

“와우…!!”

흥이라는 것이 아주 대폭발했다. 몰랐는데, 클럽이 체질이다.

얼마 뒤 그녀의 뒤로 남자가 하나둘 다가왔다.

때마다 우석이 근엄한 표정을 짓고 다정의 뒤를 지켰다. 진땀이 흘렀다. 모두가 즐기는 이 순간, 우석은 장승처럼 굳어서 오직 다정에게만 집중했다.

그때 다정이 우석의 근육질 팔뚝을 꽉 붙잡았다.

“야! 뭐 해?! 같이 흔들어!”

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미소를 짓더니 이내 우스운 폼으로 우석의 팔을 잡고 흔든다. 음악과 죽어도 안 어울리는 난해한 동작은 흡사 탈춤 같았다.

해서, 우석이 입가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넌 정말 못 말리겠어. 어릴 때고, 지금이고.”

“모라고오오? 안 들려어어!”

“그냥 춤이나 춰!!”

우석도 소리를 꽥 질렀다.

“추움~?! 조오치!! 와 진짜 너무 재미있다, 여기!!”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흔들던 다정.

자정을 넘기고도 몇 시간이 흘러, 승주가 슬쩍 다정과 우석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상태를 보니 다정에겐 말을 걸지 못하겠고, 그녀의 곁에서 자리만 지키고 있는 우석에게 말을 붙였다.

“너희 안 나갈 거야?!”

승주가 물었다. 우석이 매운 눈으로 다정을 가리킨다.

“가겠냐?!”

그러자 승주가 입술을 일자로 쭉 펴고는 고개를 주억인다.

“그럼 나 먼저 간다?!”

“뭐?? 먼저 가??!”

그러자 승주가 승리자의 미소를 입에 걸고서 눈짓으로 저를 기다리는 웬 여자를 가리킨다. 붉은 미니 원피스와 흑발의 긴 웨이브 머리. 멀리서 봐도 색기가 줄줄 흐르는 타입이었다.

우석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승주는 늘 그랬듯, 개의치 않고 소리쳤다.

“오늘은 내가 네 형이다!!”

쾌활한 미소와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음은 물론이였다. 승주와 여자의 뒷모습을 봤던 다정이 다가와 우석에게 물었다.

“이승주 어디 가?!!”

있는 그대로 말해주기는 민망해, 우석이 돌려 말했다.

“아는 사람 만났대! 우연히!”

그러자 다정이 노골적으로 우석을 노려본다.

“친구라고 감싸주기는! 너도 똑같아!”

다정의 말에 우석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속으로 욕했다. 이승주, 이 미친 새끼. 불러놓고 처 나가고 지랄이야?

“나도 나갈래!”

다정의 말에 우석이 그녀를 챙겨 <클럽 104>를 등졌다.

“집에 데려다줘?”

“…응. 기운이 확 빠지네. 이 흥을 너무 늦은 나이에 알아 버렸어.”

“큭큭.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야.”

“허업. 그러고 보니 내일 출근……. 아니, 오늘이구나.”

다정의 목소리에 절망이 어렸다. 절망도 귀엽다.

“어서 가자.”

택시를 타자, 다정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다 툭- 자신의 어깨로 그녀의 머리가 기대어졌다.

우석은 다정의 머리가 많이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하지만 조심스레 받치고서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천천히 좀 가주세요. 부탁합니다.”

조금 더 그녀가 제 어깨에서 곤히 자기를.

두근두근.

늦은 새벽. 다정의 체온과 쌕쌕거리는 숨소리, 그리고 자신의 심장 소리가 혼재된 이 순간은 내일이면 그의 기억 중 가장 근사한 과거로 업데이트될 것이다.

* * *

“흐읏……”

머리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는 다정이다. 그러다 결국 침대 밑으로까지 굴러떨어졌다. 아니! 거의 침대가 다정을 뱉어낸 것만 같았다.

“…윽!”

볼품없게 등을 말고 신음을 토해낸다. 흘러내린 머리에선 구역질을 유발하는 담배 냄새가 진하게 배여 있었다.

“…우읍!”

눈 밑은 시커멓고 피부는 푸석하다.

“아니… 어제 내가 술을 마셨던가……”

그렇다.

처음에는 그저 흔드는 것에 불과했던 그녀가 점점 고조될수록 술을 찾고 마시고 또 찾고 마시고를 반복했다. 우석에 만류에도 꽤나 집요하게 술을 찾던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하아…… 온다정, 죽자, 왜 사냐…”

다정의 숙취는 출근해서도 계속되었다.

근무하던 간호사와 교대하며 인계받고 간호사 라운딩을 돈 다음에 약국으로 달려왔다.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숙취 해소 음료를 구매했다. 뒤를 돌자 저를 보는 눈빛들이 따끔하다. 간호사와 숙취의 조합이니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번뜩 든다.

다정은 정형외과 병동으로 올라가는 비상구 계단을 하나하나 밟았다.

끼릭-

음료의 뚜껑을 열었다. 기대를 품고 꿀꺽꿀꺽 마시는데, 위층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감자는 무슨 감자야?! 됐다니까?! 병원으로?? 아, 엄마 제발!”

잔뜩 짜증이 섞인 목소리는 부연의 것이었다.

가뜩이나 골이 깨질 것만 같은데 앵앵거리는 부연 특유의 목소리가 다정의 머리를 콕콕 찔렀다.

“보내지 마, 절대. 여기 사람들은 나 다 미국에서 온 줄 알아~~! 허. 그럼 있는 그대로 말해? 강원도 깡촌에서 왔다고? 그러면 사람들이 다 나 무시하지! 안 그래도 강남권 출신 간호사랑 의사가 수두룩 빽빽인데! 엄마는 딸내미가 무시당했으면 좋겠어?!”

좀처럼 통화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정은 아래층 계단에 풀썩 엉덩이를 붙였다. 신부연 네 덕분에 좀 쉬네.

두 사람은 같은 대학 출신으로, 다정은 부연이 강원도 출신이라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같은 병원에 들어오고 난 다음에 제 입으로 미국에서 왔다고 떠드는 걸 보니, 아, 어릴 땐 미국에 있었구나, 정도로만 유추했었다.

그런데.

다정은 묘한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신부연 씨. 세상이 아주 당신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군요? 깡촌 출신이든, 미국 출신이든 남들은 너한테 별 관심 없다는 걸 모르시네. 우린 그냥 정형외과 병동 간호사일 뿐이라고.

“이제 안 하지.”

또 뭘 안 하니?

“눈은 원래 미용이잖아. 거봐. 엄마도 한 게 더 예쁘다고 하면서. 코? 몰라… 요즘 살짝 끝이 처지는 게……, 재수술은 비싸다던데…… 아 알았다고! 이제 안 한다고!”

오호라.

다정은 다시 피식 웃음 지었다.

간호사들 사이에서 은근히 자연미인임을 강조하며 으스대던 부연이었는데. 성형? 성혀엉?

“강남 월세가 얼마나 비싼데 어떻게 돈을 모아?? 간호사 월급 진짜 쥐꼬리라구…. 아, 내가 끝내주는 남자 잡아서 한 방에 다 갚는다니까? 괜히 이상한 남자 들이밀지 말고 딱 기다려, 내가 알아서 백마 탄 왕자님…… 허어억!”

묘한 미소를 띠고서 계단을 올라오는 다정을 발견한 부연이 풀썩 주저앉는다.

다정은 그런 그녀가 귀여워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런 미소는 오해 사기에 딱 좋다.

“너… 왜 웃어?”

핸드폰을 부랴부랴 주머니에 쑤셔 놓고서 부연이 물었다. 눈은 잔뜩 경계하는 눈이다.

“그냥. 덕분에 술이 깨네. 아, 숙취 해소 음료 덕분인가.”

평소라면 말하기를 좋아하는 부연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테지만, 오늘은 결단코 그러지 않으리라.

이건 속단이 아니고 확신이었다.

“……다 들었지?”

“들으라고 큰 소리로 떠들었던 거 같은데.”

다정의 말에 부연이 입술을 꽉 깨문다. 그러다 이내 짐짓 비굴한 얼굴과 침울한 목소리로 말한다.

“…비밀로 해줘.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부탁이야.”

“내가, 너니?”

“그러니까. 넌 내가 아니잖아. 비밀로… 해주는 거지?”

떠들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여태 촉새처럼 떠들고 다녔던 부연을 골려주고 싶은 다정이다. 타인의 입장도 좀 알라는 뜻에서.

“봐서.”

그리고 먼저 비상구 문을 밀고 나와 버렸다.

부연을 미워했던 적은 없었는데 어쩐지 속이 시원했다. 다정은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아 진짜 술이 확 깨네.”

그때, 다정의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몸을 떨었다. 지난밤 토끼처럼 튀었던 승주였다. 이 시간엔 잘 녀석인데 어쩐 일일까. 다정은 입술을 삐쭉 올리며 전화를 받았다.

“왜.”

인. 마!

속으로 외쳤다. 그런데 침묵이 흐른다.

…어?

“여보세요??”

-다정아…….

승주의 무너진 목소리에 다정이 흠칫 놀랬다.

“……무슨 일이야?”

-나… 어제……

“어제?”

기억을 애써 더듬어보는 다정이다.

-같이 나갔던 여자 말이야…….

침울한 성주의 목소리와 함께 붉은 미니 원피스를 입었던 여자가 아슴아슴 떠올랐다. 걱정으로 애가 타들어 가는 다정이다.

“그래. 그게 뭐?”

승주의 다음 말을 들었던 다정의 얼굴이 지옥을 목도한 사람처럼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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