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이혼?”
페이건이 화들짝 놀라 입을 떡 벌렸다. 세예나는 차마 요하네스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말을 이었다.
“네… 마님께서 아까 서류를 제출하신 모양이에요. 내일까지 취소하지 않으면 이혼이 그대로 성립된다는데, 취소 역시 당사자 둘의 서명이 모두 필요해서….”
요하네스는 아무 말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 엘로이즈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첫째 서랍이 벌컥, 하고 열렸다. 당연히 그가 서명해 두었던 이혼 서류는 없었다.
엘로이즈는 대체 몇 수 앞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시온의 집에 마련해 둔 은신처의 입구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계속 달아날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 안긴 것 같아서. 진심으로 모든 걸 버리고 그녀를 붙잡고 싶었던 사람은 자신뿐인 것 같아서.
기사단에게 죽어라고 매달려 소리치는 빈센트를 보며 그 어느 때보다도 분노에 휩싸였다.
상처투성이인 손을 지닌 네가, 나는 전혀 모르고 있는 엘로이즈의 ‘진짜 인생’을 모두 알고 있단 말이지….
절대로 요하네스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그 눈을 하고서, 너 따위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하면서.
“네가 뭘 알아! 네가 무슨 자격으로 엘로이즈를 내놓으라 마라야!”
요하네스가 침입을 강행할 때, 빈센트는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시온이 필사적으로 빈센트의 입을 막으려고 애썼으나 그의 입에서는 분노에 찬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 애에게는 그 애만의 삶이 있어. 너 따위가 전혀 모르는, 네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삶이….”
그런 빈센트를 형형한 눈으로 보며 요하네스는 낮게 말했다.
“상관없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엘로이즈 노아비크는 내 아내다.”
엘로이즈가 노아비크의 성을 갖고 있는 이상, 합법적인 결혼식 절차를 거친 그녀는 그의 아내였다. 엘로이즈와 수많은 시간을 함께했을 빈센트와 시온 앞에서 그것만이 그가 내세울 수 있는 마지막 정당성이었다.
그런데 이혼 절차까지 밟았다… 요하네스가 옅은 신음을 흘렸다.
그때 빼앗을걸.
신사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 서류를 찢고 싶다는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는데 그게 몹시 후회되었다. 요하네스는 빈 서랍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이혼 서류를 가져왔다는 건 북부의 공작성을 떠날 때부터 이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는 건데…. 이토록 철저했다면 분명히 그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아주 일상적이라 지나쳤지만 무언가 의미를 가지고 있을….
기억을 더듬는 요하네스의 눈빛이 형형했다.
문득 그의 시선이 엘로이즈의 방구석에 있는 커다란 곰 인형으로 향했다. 건국제 때 사격 행사장에서 그들이 따 온 인형이었다.
공작성의 엘로이즈가 머무는 방에 있는 곰 인형과 닮았다면서 레오가 무작정 공작저에도 하나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며 안긴 것인데….
혹시나 걱정할까 봐 서신 보내. 난 잘 지내니 오빠의 기다림은 아마 소용없을 거야. 빈센트와 작은 테디에게도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안부 전해 줘. 그리고 두 번 말하기 싫지만, 주접떠는 거 부끄러우니 제발 답장 보내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