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제의 폐회식 바로 전날 저녁.
마지막으로 대신전을 방문한 대귀족가는 노아비크 공작가였다. 순서의 끝으로 갈수록 더 권위 있는 귀족이라는 뜻이었으니, 귀족 중에서는 단연 수장의 대우였다.
벨리아나스 황족과 더불어 이능을 가진 유일한 가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수도의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은 채 고고하게 북쪽을 지키고 있어도 그 순서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들은 없었다.
“오셨습니까, 전하.”
그리고 노아비크 공작가의 방문마저 끝나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디에고 황태자가 대신전을 방문했다.
대신전에는 무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무색하게 그는 여러 명의 황실 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났다. 다만 과한 호위가 머쓱하기는 한지 변명하듯 대충 한마디 했다.
“노아비크 공작이 뭔가 눈치채고 먼저 달려들 수도 있으니.”
대신관은 이해한다는 듯 조용히 웃기만 했다. 천천히 기도 절차를 마친 디에고가 대신관을 돌아보며 물었다.
“별다른 일은 없었나?”
“뭐… 있긴 있었지요. 하지만 무슨 일을 꾸몄다고 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디에고를 안쪽 응접실로 안내하는 대신관의 목소리는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어차피 원하는 건 얻지 못했을 테니까요.”
대신관의 말에 디에고가 유쾌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요하네스 노아비크, 그가 대체 대신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분명히 무언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겠지만 황실과 신전이 결탁한 이상 아무리 대단한 노아비크라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여기 와서 전전긍긍하며 그 잘난 조카인 레오나 지키고 있었을 것이 뻔했다. 무장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더욱 긴장하고 있었겠지. 이미 신전에 ‘아파서 레오를 못 데려올 것 같다’라는 서신을 보내더라도 무조건 부르라고 명령해 두었다.
그러니 분명히 대신전에서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잔뜩 긴장해서 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 어리둥절하여 어쩔 줄 몰라 하고 있겠지.
뭐라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면 그 또한 오산일 것이다. 이미 모두 다 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흐뭇하게 웃는 디에고의 옆에서 대신관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뭐… 공작 부인이 ‘푸른 루비’에 대해 조금 알더군요. 아마 그 일로 맺어진 듯합니다.”
“아, 그래?”
“공작 부인의 말에 따르면 ‘푸른 루비’가 동료와 손잡고 ‘에이스’를 폭발시킨 뒤 남부로 떠나서 잠적 생활 중이라는데… 무기가 총이라는 것도 알더군요. 나름대로 신빙성은 있는 것 같습니다.”
“남부라. 뭐, 숨어 살기에는 딱 좋은 곳이군.”
“악령도 없고 요하네스 노아비크도 없고 또 신분 세탁하기에도 좋지요. ‘에이스’가 폭발한 뒤 악령을 몇 마리 죽인 것도 정착 자금을 위해서라고 하면 설명이 됩니다.”
대신관은 요하네스의 앞에서 그동안 ‘푸른 루비에 대해 아는 바는 없다.’라고 일관적으로 서술해 온 것이 무색할 정도로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미 죽었거나 곧 죽을 겁니다. 마법진을 새겨 놓았다고 하니까요. 아깝긴 하지만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디에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에이스’가 와해된 이상 ‘푸른 루비’에 별 관심은 없었다. 그녀가 벌어다 준 돈은 조금 아쉽지만, 어차피 실험은 거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으니까.
‘이건 네가 도저히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다, 요하네스 노아비크.’
디에고는 신전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며 씩 웃었다. 그는 굉장히 철저한 성격이었다. 모든 경우를 생각해서 꼼꼼하게 대비할 만큼, 그러니 그가 생각하지 못한 변수는 없다고 봐야 했다.
디에고는 젊었고 또 실험은 하루하루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정말 거의 다 왔다. 이제 필요한 것이 시간뿐이라면 디에고는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었다.
‘실험만 마저 성공하면… 그 징글징글한 노아비크의 터전인 북부부터 악령의 소굴로 만들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