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40/65)

엘로이즈는 놀란 얼굴로 요하네스를 바라보았으나 ‘고마워요’라고 속삭인 뒤 다시 있는 힘껏 고개를 기울여 결혼식의 주인공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는 행사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 아주 오랜만에 열기가 돌았다.

“결혼식에는 주례를 보는 신관이 무조건 한 명 필요하지.”

요하네스는 레오와 엘로이즈에게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결혼식을 주관하는 신관은 신랑과 신부의 신분을 확인하고 결혼을 관공서에 등록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거든.”

그래서 엘로이즈와 요하네스가 올린 간이 결혼식에서도 신관만큼은 꼭 필요했던 것이었다. 보통 귀족들의 결혼식에서는 지위가 높은 신관이 참석하곤 했지만, 지금은 평민들의 결혼식이라서 그런지 평범한 지위의 중급 신관이 온 듯했다.

“알다시피 북부에는 신관들이 별로 없어서 파견된 견습 사제들이 오곤 하지만 어쨌든 미약하더라도 성력을 가진 자가 주관하는 것이 원칙이야.”

“왜요?”

“악령이 없던 시절에도 신관들은 자신의 성력으로 시작하는 연인들의 사랑을 축복해 줄 수 있다고 믿었거든.”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단테 노아비크가 실수로 이계의 문을 열어 악령을 불러들이기 전, 성력은 그 누구에게도 썩 대단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미신에 가까운 힘이었다. 그러므로 신관들은 결혼식 같은 곳에나 초대받아 축복을 내리곤 했는데,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아아… 그렇구나.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예요?”

엘로이즈가 신관의 옆에 서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관공서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데….”

“아.”

요하네스는 그녀를 안은 허리에 힘을 주어 더 들쳐 올려 주면서 대답했다.

“누구 하나가 막 성년을 맞이했나 보군.”

“네?”

“성년이 되는 날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나 본데.”

제국법상 결혼은 성년 이후의 남녀만 올릴 수 있었다. 성년이 되는 날 신분증이 나오고, 신관이 신분증을 확인해야만 결혼식의 절차가 완료될 수 있었다.

엘로이즈는 살짝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으나 곧 눈을 깜빡이며 탄성을 질러 보였다. 앳된 얼굴의 신랑이 신관의 앞에서 성력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기 때문이다.

“흠, 스톨리 아르미스….”

신관이 껄껄 웃으며 농담을 했다.

“자네에게 성력은 없네. 안타깝게도 신관이 될 기회는 없겠군.”

“뭐, 괜찮습니다.”

스톨리라고 불린 청년이자 턱시도를 입은 오늘의 신랑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신관이 될 생각은 없었거든요!”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농담이었지만 분위기에 취해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관공서에서 나온 사람이 그 즉시 스톨리에게 신분증을 발급해 주고 공식 문서에 무언가를 끼적이기 시작했다.

평범한 신분증 발급 절차였다. 성력이 있는지 신전에서 확인하고, 혹시나 성력이 있다면 신관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신관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신전에게 허가받지 않은 성력을 쓰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뒤 추적에 동의한다.

물론 성력이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또 성력을 가진 자들은 ‘인생이 피었다’라고 여기며 기쁘게 신전으로 들어갔다. 견습 사제로만 들어가도 상당한 부와 지위를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자, 신분증이 여기 있습니다.”

관공서 사람이 이제 막 성인이 된 스톨리에게 신분증을 내밀며 어깨를 두드렸다.

“성년도, 결혼식도 축하합니다.”

스톨리가 신분증을 받아 들고 환히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신부에게 달려가 ‘드디어 결혼할 수 있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우리가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조금 더 귀족적인 방법이지만, 어쨌든 비슷한 절차를 요하네스도 성인이 되면서 거쳤다. 정상적인 신분증을 가진 제국민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었다. 그 특별할 것도 없는 과정을 엘로이즈는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요하네스는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엘로이즈의 몸을 더 꽉 끌어안았다.

소란스럽지만 평범하고, 평범하지만 따뜻한 결혼식이 이어졌다. 신부의 조카라는 여자아이가 화동의 역할을 하며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에게 커다란 꽃다발을 안겼다.

가족들이 축하의 말을 나누고, 친구들이 축가를 불러 주었으며 신관이 긴 주례사를 했다. 워낙에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았지만 어차피 그 누구도 집중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소란스러운 풍경 속에서 엘로이즈만이 집중하는 얼굴로 열심히 신관의 입 모양을 바라보았다.

주례가 끝나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는 신랑이 신부와 함께 반지를 하나씩 나누어 끼며 사랑의 맹세를 했다. 결혼식이 끝날 때 신부는 화동이 준 꽃다발의 꽃을 하나씩 빼어 그들을 축하해 준 관객들에게 하나씩 던졌다.

“아!”

엘로이즈가 손을 뻗어 신부가 던진 꽃 중 한 송이를 받아 들었다. 붉은색 장미였다. 요하네스는 우연히 날아든 꽃 한 송이에 눈을 떼지 못하는 엘로이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별것도 아닌 장면을 열심히도 본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 요하네스의 눈에 그대로 박혔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본능적으로 안타까웠다. 그때 레오가 궁금하다는 듯 그들을 향해 말했다.

“어, 그런데 두 분은 결혼반지 없으세요? 수도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오셨다고 했잖아요.”

“아….”

엘로이즈가 아까까지 짓고 있던 묘한 표정을 순식간에 지우고 방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필요 없다고 했어. 난 보석이 질릴 정도로 많아서.”

“어… 그래도 되는 거예요?”

“뭐, 안 될 건 없지? 결혼반지 없다고 결혼식 안 올려 주지는 않거든.”

레오에게 친절하게 설명한 엘로이즈는 다시 행복해 보이는 신랑과 신부에게 시선을 옮겼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사실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신분증을 받는 과정과 결혼식을 처음 보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회귀 전에는 항상 밤에 움직였으니 낮에는 집에서 칩거했었고, 회귀 후에는 남부에 내려가 있다가 얼마 되지 않아 북부로 올라갔다. 그리고 북부에서 머무는 몇 개월간에는 딱히 친분 있는 자들이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드디어 결혼할 수 있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우리가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아까 신랑이 기쁨에 겨워 소리쳤던 그 기분을 엘로이즈는 꽤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전혀 사랑하지 않았지만 요하네스와 결혼하던 날, 그녀는 실제로 상당히 설렜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합법적인 가족이 생긴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엘로이즈 르노아로 자체가 가짜였는데.

엘로이즈는 자신의 감정을 부인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지금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신분을 보증받고, 남들 앞에서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떳떳하게 알리고, 그 모든 과정에 아무런 속임수가 없는 것.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그 평범하고 흔한 절차들이 새삼 부러웠다. 아무 드레스나 입어도 된다며 대충 맞췄지만, 막상 연회에 가고 나니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부러웠던 것처럼.

그동안 몰라서 탐내지조차 못했던 것들이 이제 와서 부러웠다. 실제로 겪어 보고 나서야, 정말로 세상에 나오고 나서야.

거짓된 이름으로 너무 멀리 와 버려서, 이제는 감히 꿈조차 꾸지 못하는 삶.

마지막으로 키스하는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엘로이즈는 요하네스가 그녀를 꼭 안아 조금 더 올려 줄 때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결혼식 내내 그가 그녀를 안아서 들어 올려 주고 있었다.

“어, 이제 내려 주셔도 괜찮….”

“부러워?”

요하네스의 짧은 질문이 귓가에 꽂혔다.

“부러워하는 것 같군.”

엘로이즈는 차마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저 정상적인 모든 과정들이 부러워요.’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대충 빠르게 둘러댔다.

“뭐, 가족이랑 친분 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축하받는 게 보기 좋아 보여서요.”

엉겁결에 뱉어 낸 핑계로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었는데 그가 몸을 더 꽉 밀착했다.

“북부에 돌아가면 결혼식을 한 번 제대로 올리도록 하지.”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에 놀라기도 전에, 그녀의 귓가에 작은 속삭임이 울렸다.

“공작성에서 정식으로. 아마 견습 사제 하나 정도는 부를 수 있을 거야.”

엘로이즈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느릿하면서도 여유로운 목소리가 달래듯 이어졌다.

“화동은 레오를 시키도록 하지. 북부의 꽃들은 이렇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모아 놓으면 또 보기에 괜찮을 거야.”

아마 요하네스는 그녀가 정식으로 올리는 결혼식을 부러워하고 있다며 착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평민들의 평범한 결혼식보다도 간략한 약식 결혼식을 올렸으니까.

그러나 그건 틀린 추측이었다. 엘로이즈는 결혼식 그 자체를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과 상대방에게 아무 생각 없이 떳떳할 수 있는 그 평범함이 부러웠다. 그녀는 정식으로 받지 못한 신분증이 부러웠고, 하다못해 신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될 뻔한 성력 검사마저도 부러웠다.

“축가는 베이든을 시킬까. 그날 미친 듯이 좋아할 사람인 것 같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로이즈는 요하네스의 속삭임이 이어지는 게 좋았다. 그녀는 요하네스에게 안겨 있으면서도 더 몸을 기대어 파고들었다.

“썩 훌륭하지는 않겠지만 진심은 충분히 느껴질 것 같은데.”

이렇게 많은 사람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엘로이즈는 그녀를 감싸고 있는 요하네스의 체온과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목소리만이 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는 결혼반지도 맞추는 게 좋겠어. 아무리 그대가 남부에서 가져온 보석이 많다고 해도, 북부 역시 광산은 많거든.”

그래서 엘로이즈는 그에게 기대어 마주 속삭였다.

“그럼 금반지를 맞춰 줘요. 당신의 눈이 생각나도록.”

“사파이어도 올려야겠군. 그대의 눈이 생각나도록.”

“결혼식이 끝나면 모든 사람들 앞에서 키스해 줄 거예요?”

“그대가 제발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할 생각이었는데.”

심장이 따끔거리며 아파 왔다. 요즘 들어 꽤 잦아진 통증이었다. 물론 엘로이즈는 그 익숙한 통증을 내색하지 않으며, 요하네스를 보고 환히 웃어 보였다. 가능성을 점치는 것을 떠나서라도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달콤한 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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