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가 워낙에 그 좌판을 가고 싶어 했기에 우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그 근처로 갔다. 역시 사람들이 잔뜩 모여 웅성거리며 구경하고 있었다.
“저게 총이래. 시끄럽긴 하구만.”
“에휴, 저걸 가지고 누굴 죽여? 칼로 찌르는 게 더 빠르겠다.”
“어차피 저건 장난감이라며. 맞아 봤자 따끔하기만 하겠는데?”
일반인들은 총 자체를 만져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워낙에 대중적이지 않은 무기이기도 하고 실용화하기에는 지나치게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좌판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총을 처음 보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인기인 듯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확실히 장난감 총답게 어설프긴 했다. 내가 노아비크령에서 사냥 행사 때 썼던 총보다도 조악했다.
“에잇, 엄청 어려워. 생각보다 이게 쉽지가 않아.”
탕, 탕 하는 소리를 내며 과녁이 아닌 곳을 맞추던 참가자가 아쉬움의 한숨을 쉬며 총을 내려놓았다.
“쉬우면 장사 접어야겠죠.”
좌판의 상인이 히죽 웃으며 장난감 총을 받아 들었다.
“아니면 이미 제국의 군인들이 모두 총으로 무장했든가.”
어쨌든, 아무리 조악하고 명중이 어렵다고 해도 처음 보는 무기를 써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 덕분에 좌판은 계속 호황이었다.
“우와.”
레오는 눈을 크게 뜨며 좌판의 옆에 있는 커다란 곰 인형을 가리켰다.
“저거 엘로이즈 님 방에 있는 곰이랑 닮았어요!”
“아하하, 그러네….”
“잘됐다. 수도의 공작저에도 하나 두면 되겠어요. 엘로이즈 님 저런 큰 곰 인형 좋아하잖아요.”
괜찮다고 하기도 전에 요하네스가 레오를 내려 주었다. 그러고는 좌판 앞에서 안내하고 있던 소년에게 가서 즉시 돈을 치르고 말했다.
“대기를 걸어 두지.”
“우와! 재미있을 것 같아요!”
레오가 신나서 요하네스를 꼭 끌어안았다.
뭐, 한창 저런 것들을 좋아할 나이였다. 게다가 나와 요하네스가 함께 있으니 저렇게 흥분해서 방방 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요하네스에게 물었다.
“진짜 하게요? 레오가 곰 인형을 가지고 싶어 해서?”
“아니.”
요하네스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부인께서 좋아한다길래.”
무슨…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별로 필요 없다고 대답하려다가 레오의 반짝거리는 눈을 흘끗 보고 그만두었다. 대신 요하네스에게 미심쩍다는 듯이 물었다.
“총 잘 쏴요?”
“글쎄.”
그가 건성으로 대답하며 팔짱을 꼈다.
“해 봐야 알겠지.”
“쏴 본 적은 있어요?”
“아주 예전에.”
썩 정보가 될 만한 대화는 아니었다.
하기야, 요하네스는 검술의 귀재였고 굳이 총 같은 불안정한 무기를 쓸 이유가 없었다. 빈센트의 말에 따르면 연회 때 무기에 대해 조금 대화를 나누었으나 딱히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여기서 총을 제일 잘 쏘는 사람은 나일 것이 뻔했다.
하지만 곰 인형에 환장한 것도 아니고, 여기서 내가 나설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저 레오의 손을 잡고 사람들이 형편없이 과녁 바깥에 조악한 총알을 맞추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공작님은 꼭 저 곰 인형을 가져오실 거예요.”
레오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는 얼굴로 비장하게 말했다.
“공작님이 못하시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미안, 레오.”
요하네스는 피식 웃으며 레오의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푸른 루비’를 잡는 건 못 했다.”
“언젠가는 잡으실 거예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레오의 순진하지만 잔인한 응원을 들은 요하네스가 천천히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대 생각은 어때?”
“네?”
“내가 ‘푸른 루비’를 언젠가는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사실 지금까지는 연달아 실패했지만 말이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이 고요했다.
순간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지만, 당황하지 않고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그리고 칭얼대듯 그의 팔에 매달렸다.
“이제 상관없잖아요.”
반달처럼 접힌 내 눈을 요하네스가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는 지난밤의 대화를 상기하며 말을 이었다.
“다 끝나면, 우리 다 같이 북부로 가기로 한 것 아니었어요? ‘푸른 루비’랑 상관없이요.”
“…그래.”
어느새 탁해진 요하네스의 눈이 맥없이 휘어졌다. 그리고 내게만 들릴 정도로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상관없지, 이제.”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 안내하던 소년이 요하네스에게 그의 차례라고 알려 주었다. 그가 차분히 총 앞으로 걸어 나갔을 때였다.
“아니, 노아비크 공작님 아니십니까!”
총을 건네려던 상인이 요하네스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나와 레오는 수도에 얼굴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요하네스는 수도에서 꽤 오래 지낸 탓인지 은근히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아비크 공작님이 여기를 왜….”
상인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며 눈을 굴렸다. 돈을 받고 그를 안내한 소년 역시 상인의 반응에 놀라서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요하네스가 느긋하게 장난감 총을 만지며 말했다.
“왜, 내가 못 올 데를 왔나?”
“아니, 그건 아니지만….”
상인이 난감하다는 듯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요하네스에게 총을 건넸다. 대귀족이 이런 조잡한 좌판에서 남들의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저 곰 인형은 어떻게 해야 가져갈 수 있지?”
사실 요하네스의 재력이라면 저런 곰 인형으로 저택을 모두 채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를 묻는 것은 단순히 갖고 싶다는 뜻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인은 빠르게 대답했다.
“여, 열 발 모두 명중시켜야 합니다.”
“열 발을 다?”
“예. 아무래도 가장 큰 상품이다 보니….”
상인은 아홉 발이나 여덟 발을 맞추었을 때 받을 수 있는 상품까지 읊기 시작했으나 요하네스는 관심 없다는 듯 한쪽 손을 들어 상인의 말을 멈추게 했다. 그러고는 건성으로 한 번 웃고 곧바로 총을 들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조악한 장난감 총답게 다소 난잡스러운 소리였으나 어쨌든 첫 명중이 나왔다.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나 역시 레오의 옆에서 박수를 쳤다.
탕.
남이 총을 쏘는 것을 보는 건 또 처음이었다.
의외로 총은 요하네스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무기였는데, 검을 쓸 때의 그 유려한 몸짓과는 달리 절제된 움직임이 오히려 더 시선에 박혔다.
탕.
총알이 새끼손톱보다도 작아서 그런지 열 발 모두 한 번에 장전이 되어 그냥 쏘기만 하면 되었다. 요하네스는 자세 한 번 바꾸지 않으며 빠르게 아홉 발을 전부 명중시켰다.
“우와.”
레오가 눈을 반짝거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제 한 발 남았어요! 한 발만 맞추면 돼요! 우와!”
처음 레오를 만났을 때, 레오는 최대한 감정을 숨기려고 드는 무뚝뚝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서 그런지 감정 표현이 아주 풍부해졌다.
그 변화는 나만 느끼는 게 아니어서, 공작저의 사용인들 모두 ‘레오 공자님이 많이 밝아지셨어요, 특히 수도에 오면서요.’라는 말을 많이 했다.
북부의 공작성에서 홀로 후계자의 무게를 감당하다가 보호자들 사이에서 지내니 심적으로 많이 안정이 된 것 같다는 게 베이든의 의견이었다. 오히려 어리광이 늘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 모습이 훨씬 더 보기 좋았다.
“에네이스 백작 영애의 정원 파티에 가서 자랑할 수도 있겠어요.”
“정원 파티?”
“네. 연회에서 사귄 친구예요! 정원 파티에 초대받았어요!”
“그래? 언제인데?”
“건국제가 끝나는 바로 다음 날이요. 공작성에 돌아가기 전에 정원 파티는 갈 수 있겠죠?”
내가 관찰했던 레오는 북부에서 친구라고는 없었다. 하긴, 공작령의 후계자이니 누가 친구로 지낼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수도에는 같은 대귀족 신분의 또래가 많다 보니 연회에서 꽤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좋은 일이었다.
나 역시 기대하는 얼굴로 요하네스를 바라보고 있는데, 마지막 열 번째 총알을 장전한 요하네스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엘로이즈.”
“…네?”
이 상황에서 나를 부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대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채 요하네스가 느릿하게 말했다.
“내가 손가락이 아픈데… 대신 쏴 주면 안 될까. 이 총은 관리를 잘 못해서 그런지 방아쇠가 좀 뻑뻑하군.”
“네에?”
나는 깜짝 놀라 눈을 깜빡였다. 나설 생각은 조금도 없었는데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심지어 남들 앞에서 사격이라니.
“아, 아뇨. 저 총 못 쏴요…. 사, 사냥 행사 때 난사했던 거 모르세요?”
일단 당황한 얼굴로 두 손을 내저어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요하네스는 태연하게 말했다.
“손가락만 당겨. 나머지는 내가 다 해 줄 테니까.”
“뭘 다 해 줘요?”
가뜩이나 시선이 나한테 몰리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알 수 없는 소리까지 하니 더 당황스러웠다. 그때 뒤에서 사람들이 호기롭게 훈수를 두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 가족이면 당연히 방아쇠 정도는 당겨 드려야죠.”
“이런 일일수록 함께하는 게 부부 아닌가요.”
“부부가 같이 좋은 추억 한번 만들고 싶으신가 봐, 참 보기 좋아요.”
“신혼 맞으시죠? 한창 뭐든지 같이 하고 싶어 할 때지요!”
살짝 돌아보니 사람들이 모두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일에는 심지가 굳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일에서 남의 여론에 약했다. ‘보통의 가족이라면 무조건 임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른 성장 배경을 갖고 있다는 건 끊임없이 ‘혹시 내가 이상하게 굴고 있나?’ 스스로를 검열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타인에게 썩 관심이 없는 북부에서는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웠지만 수도에서는 또 달랐다. 심지어 레오까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 …근데 저 진짜 못하는데….”
“내가 다 해 준다니까. 손가락만 까닥이면 돼.”
요하네스는 쭈뼛대며 다가온 나를 품에 가두듯 끌어당겼다. 다리를 단단히 겹쳐 곧게 서게 한 뒤, 팔을 쓸어 그대로 총을 단단히 쥐게 했다.